청년공자스쿨 스페셜팀 정리

질문자1 : 어떻게 하면 안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에 겨울에 잠깐 방학 동안에 여행을 다녀왔었는데요. 근데 평소에도 좀 많이 덜렁거리기는 하거든요. 이번 여행에서는 되게 유독 더 덜렁거려서, 되게 하루에 몇 가지씩 계속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막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은 안 잃어버릴 수 있을까, 그런 거를 좀 줄일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화스님

​우선 덜렁거리는 성격이 좋다 나쁘다라고 자신한테 말하지 않아야 돼요. 성격은 아주 오랜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거거든요. 그래서 한 25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자기가 세상과 만나는 성격이 형성되어지는데. 그 성격을 형성하는 기초들이 전부 다 다 똑같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성격 그 자체가 자신을 표하는 건데 어떤 성격은 좋고 어떤 성격은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 사실상 없어요. 어떤 성격가지고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이 행위를 보고 문제를 삼을 수는 있지만 덜렁이는 성격 자체가 좋다 나쁘다 하는 성격이 아니예요. 그래서 혹시라도 나는 안 덜렁거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초가 돼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우리가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들은 거의 뇌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일정하지 않습니다. 오른손잡이는 주로 거의 한 90%이상의 언어중추가 좌뇌에 있습니다. 그래서 귀 위쪽에 있는 것은 듣고 이해하는 것이고 입에 가까운 데는 이해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이 두 부위가 여기에 있어요. 언어중추가 여기에 있는데, 왼손잡이들은 반대로 한 45%가 오른쪽에 있어요. 그래서 좌뇌 우뇌를 나누긴 하는데, 왼손잡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상의 우뇌가 좌뇌에 있을 수가 있는 거거든요. 이걸 가만히 들으면, 좌뇌는 주로 생각이라든가 분별이라든가 이런 것을 언어를 통해서 사건 사물을 분별하는 일을 많이 담당해요.

​근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요즘이 아니죠, 한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가, 전부다 분별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집중해서 해놨어요. 그러니까 마치 분별하고 사는 것, 그것을 잘 하는 것이 자기의 전부인 양 이해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상 그 분별 살짝만 내려놓으면, 우뇌 쪽이, 그 언어중추가 작용하지 않는 곳으로 가면 자기 존재의 성향 자체가 전혀 다른 식으로 자기한테 다가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그 두 개의 기능조차도 잠시 멈추면, 전혀 또 다른 자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밖으로 드러난 행동 하나하나는 그 순간에는 그것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배경이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일단 덜렁이는 것은 좋고 나쁜 건 아니예요. 그냥 내가 그런 거다.

​두 번째는 이제 그러면, 항상 이걸 잊어버리면 할 수 없지만, 노트를 준비해가지고 거기다 이렇게 써놔야 돼요. 우리가 시장에 갈 때 무엇, 무엇을 살 것인가 하듯이 다음 행동을 할 때 노트에 적어놓고 그것을 하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됩니다. 왜냐면 이미 그 성격은 그런 식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그걸 가만히 있는데, 예를 들면 좌뇌 쪽이 더 막 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잘 안 되는 거예요 지금은. 계속해서 그렇게 하다 보면 이제 그런 것을 훈련시키는 것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훈련된 힘이 좀 축적되면 나중에 그런 것이 조금씩 바뀔 수가 있어요.

​근데 지금 젊은 사람들이 실제로 더 많이 훈련해야 될 것은 방금처럼 분석하고 판단하고 하는 것보다는 분석과 판단을 내려놓고,  우뇌 쪽의 통일감 있는, 자기의 존재 그 자체가 오롯이 가치 있는 것으로 느껴지면서 자신을 기뻐할 수 있는 이런 경험을 하는 것들이 훨씬 지금의 젊은이들한테는 더 중요하죠. 왜냐하면 너무나 분석적인 사고를 하도록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떤 면은 덜렁이는 성격은 그런 것을 잘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가만히 자기 생각, 어떤 상태로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그런 생각이 나면 그냥 그러는갑다 하고 앉아서 하루에 한 15분 정도. 자기를 지켜보는 훈련을 하다 보면 균형 있는 좌우뇌의 운동이 잘 돼요. 자존심은 비교를 통해서 무언가 한다 라는 뜻이 있고, 자존감은 비교를 떠난 상태에서 자기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이렇게 심리학에선 구별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존감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질문2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해주는 조언이 제가 가고자하는 방향이랑 같은 건데도 외부에서 들어오면 ‘내가 내 주도권을 뺏긴다, 지시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여기서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들이나 친구들한테 조언을 듣는 게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공부를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데 가끔 이게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거랑 외부에서 이렇게 뭔가 주어진 게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주어지면 약간 하기가 싫어지고 더 부담스러워 질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친구들이랑 하는 세미나에서 이번 세미나에서는 책을 반드시 다 읽어가야지, 라고 결심을 했고, 그래서 친구들한테 내가 책을 못 읽으면 벌금5,000원을 내겠다, 라고 말을 하려고 이미 준비를 하고 갔는데, 그 세미나에서 그 벌금이 10,000원으로 책정이 되면 이게 왠지 내가 하려고 분명히 했던 건데 강압적으로 하는 거 같고 그렇게 하면서 이게 책 읽는 데 재미도 떨어지고 이런 게 저는 좀 많거든요. 일상에서. 분명히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해주는 조언이 제가 가고자하는 방향이랑 같은 건데도 이게 왜 외부에서 들어오면 내가 내 주도권을 뺏기고 지시를 받는다는 식으로 자꾸 들어 오는데 이런 거를 어떻게 조율을 해야 할까요?

정화스님

​한국의 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렇게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아왔어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클 때, 자기가 자기 생각을 주도적으로 이야기해서 각자가 주도로 이야기해서 결론을 내는 게 아니고 항상 누군가가 내 결론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존재 자체는 그 존재 자체가 우주적 사건이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가 자기 이야기예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절대 나하고 동일한 양상으로 굴러갈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또는 학교 다닐 때 항상 마치 갑들이 우리한테 무언가를 지시하면 받는 식으로 훈련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받은 나라가 한국이에요. 한국은 살짝만 건들면, 그 부분을 건들면 굉장히 자존심 상해 해요. 자존감을 높인다는 말은 방금 말하는 자기 의견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이야기되어져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고, 결론을 내려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똑같은 일을 선택할 때, 지금 외국 선방에 있는 것과 좀 차이가 있는 거예요. 10가지 일을 써놔요. 그럼 이전에는 이제 어른들이 ‘네가 이것 해, 네가 이것 해’ 이렇게 해서 열 가지를 정해줍니다. 그러니까 결정장애 있는 사람들은 좋아요. 그런데 외국 선방에 살 때는 10가지 일만 써놔요. 그리고 누가 할 것인가를 자기가 정해요. 그리고 겹쳐지면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을 교환해서 자기들끼리 정하는 거예요. 할 일만 있지 누가 할 것인가를 정해주지 않는데, 우리는 할 일도 누구도 어떤 방법까지 다 정해 줘가지고 그 일에 주도적으로 자기가 끼었다는 생각을 전혀 못 갖게 교육을 받아왔어요.

​ 그러다 이제 일정 정도 이렇게 되면 방금처럼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는 느낌을 가져서 OECD국가 중에 자살률이 제일 높고 그 사건에 개입해서 창의적 생각을 내는 형태가 가장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렇게 스스로 자존심을 상하도록 신체가 되어있는 교육 환경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 거의 우리가 끼어보지를 못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왔었을 때는 그전까지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젊은이들한테 굉장히 유용했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배워왔는데, 한편으로는 유용성이 개인의 창의적 생각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못 된다고 하고 살아왔던 거죠. 근데 지금은 거의 전적으로  일 년 단위로 이미 어른들이 말하는 것이 우리들한테 영향력을 주지 않는 시대가 와버렸거든요. 유용성에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젊은이들이 가장 다음 세대에 유용한 것을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 앎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죠.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펼쳐서 일을 내가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고 답습된 생각이 ‘네가 해!’ 이렇게 한 거랑 똑같아요. 그래서  같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하도록 그런 일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외국 선원보니까 바로 그렇게 하더라구요. ‘오늘 모인 선원에서 해야 될 일은 이것입니다’라고 그쪽 관리들이 정해놔요. 그러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내가 오늘 밥하겠다, 뭐 하겠다 다해요. 그러면 이제 밥하는 사람한테 그때 이제 유럽의 누구가 왔었는데, 일단 특별한 밥을 하나 만들고 싶은 그런 레시피가 있으면, 우리 절에서 다 해줄 테니까 레시피를 달라. 그러면 시장에서 사 올 테니까 네가 하라. 그렇게 하고 또 한국인인 당신도 뭐 한국에 있는 특별한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가 있으면 말해주면 우리가 시장에서 사 오겠다. 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구요.

​ 그쪽에서는 벌써 상당히 오래전부터 우리처럼 ‘너 오천 원 내!’가 아니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것이 보편화되어있는 거고, 우리는 아직까지도 마치 완장을 찬 사람이 정해주는 식으로,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에 좀 안 맞는 일이긴 하지만, 켜켜이 내려온 학습이니까 쉽게 변하진 않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말한 대로 그 또한 언어적 분석을 통해서 만들어진 지배적 허구니까, 거기에 대해서 내가 너무 감정으로 휘둘리지 않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90초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그다음에 자존감도 낮아지고 자존심 상한 일이 탁 오면 우울하고 기분 나쁜 호르몬 등이 팍 나오는 거죠. 90초간 있으면서 거기다 자기가 계속해서 이럴 수가 있느냐, 뭐할 수가 있느냐 하면서 보태가는 거잖아요. 90초부터 그걸 보태가면 자기 인생이 굉장히 괴로워진 거고, 90초 후에 그런 식으로 의식이 개입해서 다른 식으로 자기를 만들어 가면은 자기 인생을 덜 괴롭게 사는 거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까진 어쩔 수 없어요. 왜냐면 거기서 그런 말 한다고 해서 같이하는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할 리도 전혀 없고요.

​그래서 자기가 거기서 90초 이후에 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연습을 잘해서 거기에 욱한 것이 자기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잘 해나가고, 그다음에 같이 있는 동료들도 훈련이 안 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훈련이 안 된 사람들한테 이렇고 저렇고 비난해봐야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에요. 우선 자기 자신이 괴롭고요. 물론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중요하지요.

​ 엊그저께 슬라보예 지젝이라고 하는 사람이 한겨레인가 경향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정부한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야 조금씩 가능한 일이 커지는 것이죠. 근데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는 방금처럼 잘 훈련을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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