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근 한 달 간 내게 정신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힌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현관문의 반란이었다. 아직도 이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랜만에 홈리스 의사 친구가 아바나에 방문을 했고, 나는 그에게 나의 손님방을 내어주었다. (그렇다, 이 친구 아직도 쿠바를 못 떴다. 아직도 그의 서류는 ‘처리 중’이다.) 한참 수다를 떨던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디저트를 만족스럽게 끝마친 후, 나는 그에게 집열쇠를 건네주었다. 나는 또 다른 친구와의 저녁 약속 때문에 센트로 아바나에 가야 했고, 친구는 내 집으로 먼저 돌아가서 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구아구아 버스는 도통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버스나 잡아탄 후에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려서 50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친구에게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보았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살짝 불안해졌다. 이게 무슨 일일까? 피곤해서 잠이 들었나? 밖에서 바라본 핑크하우스의 불은 꺼져 있었다. 증폭하는 불안감을 달래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나는 어둠 속에서 커다란 물체를 보았다. 헐… 현관문 앞 테라스 소파에서 친구가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열쇠까지 줬더니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눈을 뜬 친구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문 좀 열어봐…..뭔가가 잘못 되었어……” 나는 더욱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뭐지? 집 안에 거대한 바퀴벌레가 있나? 아니면 살인 현장이 벌어졌나?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이 말 그대로 ‘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열쇠는 정상적으로 꽂혔고, 역시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는 마치 문과 열쇠구멍 사이의 견고한 유대관계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과 같았다.
그제야 나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문이 고장났다. 열쇠가 있어도 문을 열 수가 없다. 그리고 문 밖의 테라스에는 통닭 박스, 여기저기 흩어진 닭뼈들, 소파에 몸을 구겨넣고 떨고 있는 인간 한 명이 있다. 우리가 헤어진 게 7시쯤이었으니, 이 친구가 집 안에 돌아가지 못한 채 밖에서 나를 기다린 게 벌써 다섯 시간 째라는 뜻이었다. 통닭은 배가 고파서 저녁 대신으로 사먹은 것일 테고, 흩어진 닭뼈는 고양이가 왔다 간 흔적이었다. 아바나는 토네이도가 지나간 직후라 여전히 추웠고, 친구는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벌써 자정이 넘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할 수도 없고, 열쇠공을 부를 수도 없다. (쿠바에 24시간 출장 서비스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하다.) 나 혼자라면 다른 친구네 집에 가서 신세를 지겠지만, 지금 나는 이 의사 친구를 돌보고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 친구는 추워서 이미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결국 나는 가장 빠르고 비싼 방법을 택했다. 이 동네 빈 까사 아무데나 들어가서 밤을 새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문자를 넣어서 날이 밝자마자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다.
까사에 도착하자, 친구는 자기가 다섯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는 자기 잘못 때문에 문이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겁에 질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뒷문으로 진입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집은 2층에 있다. 뒷문과 그와 연결된 다용도실도 2층 높이에 위치해 있고, 여기에는 1층과 통하는 계단이 없다. 즉, 이 친구는 나무를 타는 원숭이처럼 파이프를 잡고 벽을 타서 ‘그’ 다용도실까지 기어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뒷문을 더듬어 열쇠구멍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뒷문에는 열쇠구멍이 없었다! 이 문은 안쪽에서만 잠글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쿠바의 문은 쿠바만큼이나 예측불가능하다.) 친구는 다시금 절망에 잠겼다. 그리고 1층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다가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 그 사이에 해가 져서 길거리가 완전히 어둠 속에 잠긴 것이다. 그는 어디로 뛰어내려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다리가 부러지게 생겼다.
유일한 방법은 옆집 지붕으로 뛰어내린 다음에, 다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것 뿐이었다. 문제는 옆집이 송아지만큼 큰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운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필 때는 허스키의 저녁시간이었다. 이 거대한 개는 정원에 당당하게 앉아서 밥을 먹으며, 잠재적 침입자인 내 친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친구도 중얼중얼거리면서 개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발 가라, 제발 가라, 제발, 제발 꺼져라…… 그의 간절한 주문이 통했는지, 30분 후 개는 마침내 자리를 떴다. 그렇다,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친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쏜살같이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개가 떠나기만을 기다린 그 시간이 무색하게, 그가 지붕에 발을 디딘 순간 온 동네가 떠나갈만큼 큰 소리가 났다. 쿠쿠쿠궁! 그리고 곧바로 그 집에서 한 소년이 총알처럼 뛰어나왔다. 이 소년은 자기 집 지붕 위에 엉거주춤 서 있는 ‘치노’를 보았고, 충격에 입을 떡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친구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의 한 마디를 남겼다. “음… 부에나스 노체스. (Buenas noches : 좋은 밤. 영어로 ‘굿 나잇’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담을 넘어서 훌쩍 사라졌다.
나중에 친구는 소년의 집을 방문에 사정을 설명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가 ‘도둑’으로 오해받는 일은 없을 터였다. 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갈아 입을 옷도 없고 칫솔도 없이 난민처럼 자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실컷 웃고 나니 기분은 좀 나아졌다. 그렇게 괴롭고도 웃긴 밤이 지나갔고, 아침 일찍 집주인에게 (마침내) 전화가 왔다. 자신도 문을 열 수 없다고. 그러나 자기는 출근을 해야 한다고. 자신의 친구인 열쇠공에게 말을 해놓을 테니, 그쪽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하라고. 그녀의 무책임한 행동에 화가 났지만, 다른 수가 없었던 우리는 다섯 블록을 걸어서 열쇠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열쇠공은 그날따라 아바나 밖으로 출장을 간 상황이었다. 또 다른 열쇠공은 점심 때까지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우리보고 12시까지 집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렸다. 물도 없이, 음식도 없이, 돈도 없이. ‘절망’이라는 단어를 비로소 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 즈음, 드디어 열쇠공이 왔다. 그는 문을 잠시 살피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문고리가 낡아서 고장난 듯한데, 여기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것이다. 문고리 자체를 부숴서 문을 여는 것밖에는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제부터 문을 부술 거라고 통보를 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친구는 망설임 없이 문에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발로 차고, 어깨로 치고, 손으로 밀고…… 부스스, 벽에서 돌이 떨어지면서 마침내 문이 열렸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19시간 만에 돌아온 집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열쇠공에게는 고장난 문고리를 대체할 새로운 문고리가 없었다. 그는 우리보고 새 문고리를 사오라고 했다. 그러면 설치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 안 돼…… 쿠바에서 ‘문고리’ 같은 공산품을 구하는 것은 참으로 까다로운 문제다. 공식 매장에서는 도통 팔지를 않기 때문이다. 친구가 집을 봐주는 사이, 나는 쉬지도 못하고 아바나 이곳저곳을 쏘아다니며 문고리를 찾아다녔다. 발품을 판 끝에 두 개의 문고리를 발견했지만, 불행히도 우리 집 문과는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 집주인은 오늘은 바쁘니 내일 오겠다고, 오늘 밤은 불안하겠지만 1층 문을 잠그면 2층 문이 열려 있더라도 별 문제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밖에서 밤을 지새우고 결국 문까지 부수고 집에 들어간 것을 이제 온 동네가 아는데,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아는가? 지난 밤도 불편하게 보냈는데 오늘 밤도 불안하게 보내라는 말인가? 그것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말이다. 그러나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테라스 소파를 집 안으로 들여서 문 뒤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리고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문제가 발생한 지 40시간 만에 집주인이 납셨다. 그녀는 자기도 문고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발뺌을 하더니, 결국 나를 데리고 아는 사람이 하는 가게에 가서 문고리를 샀다. 처음에는 내가 돈을 지불하게 하려고 하더니, 내가 화를 내자 그제야 말을 바꿨다. 자기는 현재 수중에 돈이 없으니 일단 내가 돈을 내라고. 지금 지불한 돈은 월세에서 깎아주겠다고. (오호라, 돈이 없단다. 문은 내가 월세를 지불한 바로 다음 날에 고장났는데.) 수리공은 오후 5시에 도착했다. 한 시간의 작업 끝에 내 현관문은 새로운 문고리를 갖게 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48시간 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나의 모험은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또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열쇠를 멀쩡히 가지고도 집에 못 들어가기도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사건이 닥쳐올 때마다 재빠르게 해결하고, 한바탕 웃어넘기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이처럼 쿠바에서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모험의 연속이다. 체 게바라처럼 시에라 몬따냐를 휘젓고 다니는 모험은 아닐지언정, 이웃집 지붕으로 뛰어내리고 개와 눈싸움을 하는 모험 정도는 되는 것이다. 나의 일상을 모험으로 변신시켜주는 이 놀라운 공간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