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를 몰아내고 사방천리 영토의 주인이 되다! (1)

강보순

외부로 향한 무제의 시선

 『한서』에서 무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반고는 무제의 치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본기와 열전파트에만 무려 50%에 달하는 비중을 할애했다. 이러한 한서의 구성은 마치 반고가 유독 무제를 편애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반고의 편애가 아니라 무제치세의 실제다. 실제로 무제치세의 한나라는 온 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영토는 크고 넓었으며 인물은 많았다. 게다가 공적은 또 어찌나 많았는지 ‘육경의 지위 확립, 교사정비, 정삭 개정, 역법 개정, 음률의 표준 지정 및 봉선제도 확립, 태학 확립, 백신에게 제사, 주(周)의 전통을 잇는 문장과 제도 정비’등 어지간한 황제 2~3명의 치적을 합친 것 보다 많다. 그리고 이것은 여담이지만 후궁 역시 많았다. 이렇듯 무제치세의 한나라는 만물이 여름에 자신의 외형을 확장하듯 팽창과 성장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어떻게 무제치세의 한나라는 위와 같이 자기 운신의 폭을 전방위적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일까? 혹 무제라는 황제 개인의 천재성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다. 한나라의 여름을 있게 한 무제 치세의 핵심은 ‘외부’에 있다. 여기서 외부란 사이(四夷), 즉 한나라를 중심으로 사방에 위치한 오랑캐로, ‘인과 예’라는 가치에 포획되지 않는 자들이다.

  주지하듯 경제 치세까지의 한나라는 집안만 단속하기에도 여력이 없었다. 여씨의 난, 오초7국의 난과 같은 제후들의 반란이 전국에서 일어나 대외진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 그래서 경제 때까지 한나라의 시선은 늘 내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 안집하기 위해 머문 것이 아니라 형세가 그러했던 것이다. 무제는 이렇게 내부에 머물러 있던 한나라의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집안을 다졌으니 이제 집 밖의 세계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내부의 안정과 외부로의 확장! 

한나라의 시선을 외부로 돌린 무제

  무제가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경계 밖으로 발을 내민 것은 한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외부와의 마주침이야말로 무제치세의 모든 공적을 낳게 한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흉노는 무제가 한나라의 응축된 힘과 자신의 모든 황권을 쏟아 부은 대상으로 흉노 없이 무제를 논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무제가 ‘흉노’라는 ‘외부’와 충돌한 힘의 작용으로 사방의 영토가 개척 되었고, 그 개척한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관리의 필요성으로 인재양성기관 ‘태학이 확립’되었다. 또한 점점 영토가 넓어지자, 천하의 천자가 되었음을 하늘에 보고하기 위해 ‘봉선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고, 넓어진 영토로 인해 어느 지역에서라도 적용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역법을 개정’하게 되었다. 게다가 무제의 독자적인 연호 제정 및 사용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렇듯 무제의 치세는 ‘외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흉노’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해서, 무제가 이끈 한나라의 여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부’, 그 중에서도 흉노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반드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무제가 ‘흉노’와 관계 맺은 방식이 곧 한나라의 여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흉노의 무엇이 두려운가?

   흉노는 무제가 가장 진하게 접속한 외부다. 재위기간 54년 중 무려 45년간이나 흉노와 싸웠는데, 두태후 섭정기 6년을 제외하면 무제는 거의 평생을 흉노와 대결한 셈이다. 흉노의 어떤 면모가 무제를 평생 전쟁으로 이끈 것일까? 사실 무제 이전까지 한나라는 군사적으로 늘 흉노에 열세였다. 한고조 유방만 해도 흉노의 선우 묵특에게 평성에서 패배한 후 흉노와 형제의 연을 맺었으며, 문제는 흉노의 선우를 ‘북방의 태양’으로 칭하며 한나라와 대등한 나라의 군주임을 인정하여 흉노와 화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무제는 달랐다. 무제는 흉노와 화친하기를 스스로 거부하며 먼저 화친을 깼다. 화친에서 전쟁으로! 왜일까? 무제는 왜 화친이 아닌 전쟁을 선택한 것일까? 무제는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을 용납할 수 없는 군주로, 북방의 태양이라고 자처하는 흉노의 존재가 내심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흉노와의 전쟁에는 그런 개인의 욕망을 훨씬 뛰어넘는 무엇이 있었다. 흉노를 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반드시 흉노를 쳐야만 했던 현실적 조건이 한나라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선우가 한(문제)에 국서를 보냈다. “(상략) 하늘이 복을 내렸고 군사가 우량하고 말이 튼튼해 월지를 무찌르고 모두를 죽여 평정하였습니다. 누란, 오손, 호게 및 그 주변 26국이 모두 흉노 땅이 되었습니다. 이에 활을 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란히 일가가 되어 북쪽 땅이 안정되었습니다.(하략)”

「흉노전」, 『한서』9권, 명문당, 43쪽

  경제가 즉위하였다. 조왕인 유수는 은밀히 흉노에 사자를 보냈다. 오와 초등이 반기를 들자 흉노는 조와 모의한 뒤 국경 진입을 꾀했다. 한이 조를 포위하고 격파하자 흉노는 침입을 중지했다. 이후에 경제는 흉노와 다시 화친하였고 관시와 시장을 열어주었고 선우에게 물자를 보냈으며 예전 약속대로 옹주를 보내주었다. 경제의 재위기간에 가끔 소소한 침범이 있었으나 대규모 침입은 없었다. 

「흉노전」, 『한서』9권, 명문당, 58쪽 

  당시 흉노는 한고조 유방을 평성에서 무릎 꿇린 이래로 문제 치세까지 누란, 오손, 호게를 비롯한 북방의 26개국을 복속한 상황이라, 군사적 물리력만 놓고 보자면 한나라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무제가 보기에 흉노의 진정한 위협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대국, 운중군, 안문군, 삭방군과 같은 한나라의 흉노 인접 제후국들이었다. 왜 무제는 한나라의 제후들이 지키고 있는 이 땅이, 한나라의 위협이 될 거라 판단했던 것일까? 역사적으로 흉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땅들은 누구의 독점도 허락지 않던 땅으로 그 소속이 수시로 변해왔던 바, 이 땅의 제후를 자처하는 자들의 충성도는 늘 낮은 편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경계 위에 설 수 밖에 없는 땅의 기운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조왕 유수가 흉노와 연합하려 한 사건과 한고조와 천하대업을 이룬 한왕신(韓王信)이 대국을 분봉 받은 뒤 흉노에 투항한 사건 역시 이 땅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 천인(天人)이 감응하듯, 지인(地人)도 감응하는 것이다. 하여 이 땅의 주인은 적절한 조건과 기회가 만들어지면 언제든 흉노와 손을 잡아 한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태였다.

누구의 독점도 허락지 않았던 흉노와의 국경 지역

  팽팽했던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별 다른 것에 있지 않다. 흉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나라의 제후세력 중 단 한곳만 돌아서도 대등했던 힘의 균형은 깨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제는 이러한 잠재적인 위협 요소가 실제 위협으로 드러나기 전에 흉노를 정벌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는 흉노의 소소한 침범이 도를 넘어섰던 시점이었다. 당시 무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대행령 왕회는 ‘지금 변경이 자주 소란하고 사졸이 죽고 다치며 중원에 관을 실은 수레가 꼬리를 무는 것에 인인은 마음을 아파하고 있습니다. (「한안국전」,『한서』4권,  152)’ 라고 말하며, ‘지금 한나라가 흉노보다 만배나 융성하니’ 흉노를 토벌해야 할 때라고 주청했다. 안정되었던 변경민심이 더 흉흉해지기 전에 흉노를 쳐야 한다는 것이다. 무제의 흉노 정벌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외부를 안정시켜 천하의 안정을 도모하고자했던 무제의 의도가 말이다. 

유목군대와 싸운다는 것은

  원광 1년. 흉노가 화친을 청해왔다. 화친을 맺을 것인가? 전쟁을 할 것인가? 무제는 이 문제를 주제로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신하들은 즉각 둘로 나뉘었다. 전쟁을 하자는 왕회 파와 화친을 하자는 한안국파. 한안국은 무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리를 가서 싸울 경우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흉노는 戰馬가 많은 것을 믿으며 금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이동하며 생활하다가도 새떼처럼 모여들기에 제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 땅을 차지했다 하여 넓어진 것이 아니고 그 무리를 얻어도 나라가 강해졌다 할 수 없으며 예로부터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수 천리를 나가 싸울 경우 인마가 모두 지치지만 흉노는 전 부족을 동원하여 지친 우리를 제압할 것이니 형세가 틀림없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신은 이러한 이유로 화친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안국전」, 『한서』4권, 명문당, 148쪽

 흉노들은 사납고 날쌘 군사이며 질풍처럼 쳐들어왔다 번개처럼 떠나고, 목축이 생업이며 활로 사냥을 하고 짐승과 초지를 따라다녀 거처가 일정하지 않아 제압하기가 어렵습니다.

「한안국전」, 『한서』4권, 명문당, 154쪽 

  흉노는 유목국가다. 유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주적인 삶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삶의 중심을 목축과 이동에 두는 생활양식이다. 반면 한나라는 정주국가로 정주란 삶의 중심을 농경과 정착에 두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이렇듯 두 삶의 양식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거처하는 곳이 다르니 생존양식이 다른 것이다. 무엇이 더 우월하고 열등한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초원과 사막이라는 조건은 누구라도 이동하게 만든다. 제 아무리 정착 전문가라도 초원과 사막에서 정착할 수는 없다. 초원과 사막에서 정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이기 때문이다.초원과 사막이 정주할 수 없는 땅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한안국은 무제에게 ‘그 땅을 차지했다 하여 넓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주국가에게 있어서 영토의 확장은 땅의 쓸모와 연결 되어야 하는데, 초원과 사막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한안국은 그런 땅을 얻기 위해 백성을 힘들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흉노와 화친을 맺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한안국은 흉노의 본질이 유목성에 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토론은 한안국의 의견을 지지하는 신하들이 더 많아 화친 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원광 2년, ‘재물로 흉노를 유인해 복병으로 습격하자’는 마읍사람 섭옹일(섭일)이 낸 흉노 유인 계책을 왕회에게 듣게 된 무제는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토벌의 욕망을 드러낸다. 

‘짐은 그동안 옹주를 딸처럼 꾸며 선우에게 출가시키고 재물이나 비단, 면직물 등을 많이 보냈었다. 선우는 우리 명령을 더 무시하면서 노략질을 그치지 않고 변경을 침입하기에 짐은 이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 이번에 거병하여 토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한안국전」, 『한서』4권, 명문당, 149쪽

  사실 흉노의 노략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경제치세 때만해도 ‘대규모 침입’은 없었지만 흉노의 ‘소소한 침범’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던 이유는 소소한 침범을 허락함으로써 대규모 침입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소소한 침범을 묵과할 수 없었다. 이때 다시 한 번 왕회와 한안국이 토론에서 맞붙지만, 이번 토론의 승패는 논리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정벌을 주장하는 왕회의 승리로 말이다. 

  왕회는 기세등등하게 30만 대군을 이끌고 승리를 장담하며 출정했다. 이전에 동월을 토벌한 경험이 그를 더욱 더 기세등등하게 했으리라. 계획대로 왕회는 섭일을 만나 30만 대군을 마읍현 옆 계곡에 매복시켜두고 흉노를 기다렸는데, 정작 이 작전은 사전에 기밀이 노출되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하고 만다. 어찌된 일일까? 

  한(漢)은 복병 30여만을 마읍 주변에 배치하였고 어사대부 한안국은 호군장군으로 4명의 장군을 데리고 선우를 기다렸다. 선우가 한의 영역에 들어와 마읍 100여리 지점에 왔는데 들에 가축이 널려 있지만 돌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근처 마을의 정소를 수색케 했다. 그때 안문군의 위사(군의 무관)가 순찰을 돌다가 흉노를 만나게 되자 정에 들어와 숨어 있다가 선우에게 잡혔고 선우는 위사를 죽이려 했다. 위사는 한의 모의를 알고 있었기에 투항하며 모든 것을 말했다. 선우는 크게 놀라며 “나도 정말 의심쩍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군사를 인솔하고 돌아갔다

「흉노전」, 『한서』9권, 명문당, 60쪽

 유목민에게 동물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왜일까? 사막과 초원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오감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곳이다. 반드시 인간의 오감을 넘어서는 감각이 필요한데, 그 감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존재가 바로 동물인 것이다. 동물의 감각을 인간의 감각으로 삼아야만 생존 가능한 유목의 공간성. 그런 유목의 공간에서 동물을 풀어놓고 관리하지 않는 유목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정주민인 왕회는 동물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매복을 위해 마읍현의 사람들을 숨긴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들이 키우는 가축은 전부 들판에 내버려 두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흉노의 선우는 이 광경이 무척 낯설게 다가왔을 터. 왕회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가축이 선우의 눈에는 보인 것이다. 유목세계와 정주세계가 가축을 바라보는 감각은 이렇게나 다르다. 

감각의 지평을 넓혀주었던 존재, 동물

 곧 흉노의 선우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더 이상 군대를 움직이지 않은 채, 주변을 살피려 수색대를 급파한다. 이 과정에서 순찰을 나왔던 한나라의 무관이 흉노의 군사에게 붙잡히게 되었는데, 선우는 이 포로로부터 들판에 가축만 널려 있는 것의 이유를 듣고 곧장 퇴각한다. 유목민의 감각이 아니었다면 분명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왕회는 흉노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들의 기동성으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군사를 모두 철수시켰다. 결국 한나라의 30만 대군은 아무런 소득 없이 회군하게 되었다. 

  비록 전면전은 없었지만, 무제는 자신이 상대해야하는 흉노가 얼마나 기민한 감각의 군대인지를 알게 되었으리라. 그리하여 무제는 왕회를 사형에 처하고,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흉노보다 더 기민한 동물적 감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재를 발탁한다. 기존에 왕회로 대변되는 한나라 군대체제를 확 바꾸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 때 무제가 뽑은 인재들이 흉노를 서역으로 몰아내며 전한시대를 풍미한 이광, 위청, 곽거병, 이광리, 이릉, 곽광과 같은 장수들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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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스
Guest
문리스

한나라와 흉노, 이 비대칭적 호명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두 ‘세계’ 이야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