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한 컵의 물만 공유할 뿐입니다

화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1 : 아이가 제 마음대로 안 돼서요. 아이가 좀 예민해서 힘든데 어떻게 해야 아이를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정화스님 : 1960년대 일본 뇌 과학자가 쓴 책을 읽어보니까 애들은 4살 때부터 자기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고 해요.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계속 확장되고, 그때부터는 온전히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이미 만들어진 세계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기 세계를 못 만들게 하고 있어요. 이게 첫 번째이고, 또 다른 일본의 뇌 과학자 쓴 게 있는데 우리가 컵을 보면 컵이라고 다 알아요. 그런데 이 컵이라고 인지하는 것에 사람들의 완벽한 공감지수가 얼마나 되겠는가를 연구한 게 있어요.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이 컵에 욕조에 물 한번 덜어낸 것만이 상호 간에 완벽하게 공유하는 공유지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완벽하게 공유는 거의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바라는 대로 아이가 됐으면 하는 생각하고 있으면 아이가 커서 성공했을 때에는 성공이 아닐 수 있고, 아이가 자기 멋대로 큰다고 자신이 그 생각을 가짐으로써 내가 불편해 지면 아이는 아예 아무것도 되지 않는 거예요.

그 담에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딱 지루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잠이 옵니다. 이 말을 왜 하느냐면 지루한 생각이 들면 우리 뇌 안에서 신경세포를 만들어서 뭔가를 호기심 있게 볼 수 있는 조건 형성이 되지 않아요. 근데 어른들이 가르치는 많은 항목은 아이들이 대부분 다 지루한 사건으로 만나요. 이때 지루한 사건으로 만난다는 말은 뇌의 활동량이 풍성해지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인생을 재밌게 살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만약 아이들이 재미있는 사건을 만나면 안에 신경세포들이 활동을 많이 하고 덩달아서 재미가 있으니까 도파민이라는 즐거움이 나와요. 그러면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모를 정도로 지루함이 잘 안 느껴져요. 물론 아이들은 특정한 정도의 제재는 가해야 해요. 이게 학습 동기를 만들어 주는 데 가장 기본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조건이에요. 아직 해야 할 일과 하지 못할 일이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 밖의 영역에 대해서는 지가 인생을 재밌게 살도록 놓아두는 것이 부모가 하는 가장 좋은 교육 중의 하나에요. 그래서 위에서 말했잖아요. 아무리 부모가 잘 해봐도 아이와 한 컵의 물을 가지고 공유하고 있는 거예요. 나머지는 아이하고 나하고는 공유가 안 되는 거예요. 아이가 클 때까지는 홀로서기가 힘드니까 도와주되, 아이가 커가는 모습 자체를 좋아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질문자: 아이가 약간 공격성이 있어요. 여자아이인데. 근데 저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엄마로서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제가 말만 하면 자기방어를 하는 거예요.

 

정화스님 : 말을 아주 잘 듣는 아이와 그냥 약간 까불까불하는 아이 둘을 가지고 스트레스 측정기로 측정을 했어요. 말을 잘 듣는 애가 스트레스가 엄청 높아요. 이것은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자기감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억제를 한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사회에 적합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부모와 학교에서 아이에게 너무 요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아이들은 지루한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는 교육을 엄청 받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지금 아이의 성향으로 발현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직 어리니까 지금부터라도 그냥 두세요.

 

질문자: 지금 사춘기거든요.

정화스님 : 아 사춘기입니까? 사춘기의 아이는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이해할 수 없냐면 뇌 신경세포가 이때 제일 많아요. 그러다가 14살쯤 되면 뇌 신경세포의 가지가 막 펼쳐집니다. 아이 몸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계속 재잘거리는데 이것을 자기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아침저녁으로 막 일어나고 있는 상태인 거예요. 십대들의 뇌란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사춘기를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할 겁니다. 일단 집에 가셔서 이 책 한번 읽어보세요

질문자2 : 저는 직장을 오래 다니다가 백수로 지낸 지 한 4년 정도 됐는데, 처음 1, 2년은 부모님이 “좀 그동안 뭐 고생했으니까 쉬어라.” 그렇게 하시다가 최근에는 충돌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직장 다닐 동안 집에 물질적으로 많이 했다고 생각을 해서 나름 자신 있게 놀려고 했는데 지켜보는 식구들은 그게 아니었나 봐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지금 많이 부딪히고 있어서 고민입니다.

정화스님 거기서 지금보다 백배를 더 해줬어도 똑같이 오는 문제예요. 왜냐면 내가 무엇을 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해주는 것을 보는 각자의 시선이 계속해서 그 해주는 행위를 원하는 거예요. 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목이 마를 때 물을 한번 마시면 욕망이 끝나지 않고 좀 있으면 또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 나오잖아요. 추상적 욕망은 이 갈증보다 계속해서 더 커져요.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얼마나 해준 것 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우리 딸이 아주 예쁘게 잘하는데 더 예쁘게 잘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욕망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부모한테 “그렇게 욕망하지 마세요.”라고 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부모가 저런 말씀과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나의 욕망과 부모의 다른 욕망이 부딪히는 건데 둘 다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워요. 그래서 ‘아, 저분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마치 다른 사람 보듯이, ‘부모님이 저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빨리 내려놔야 해요. 그걸 안 내려놓으면 서로 계속 부딪힐 뿐이에요. 이렇게 보는 자기 시선을 만들지 않으면, 본인도 괴롭고 그 공간도 힘들어져요.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리적 성향이에요.

 

질문자2 :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또 하나 약간 채워지지 않는 의문이 생깁니다. 주변에 나보다 불행한 존재들과의 소통에서 오는 연민 같은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나를 돌보고 어느 정도의 깨우침과 자기 수련이 끝난 다음에 주변에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요?

 

정화스님 이것은 인류의 문명이 형성된 이후로 아직도 결론이 안 났습니다. 자기완성을 하면서 도와주라는 쪽도 있고 도와주면서 자기완성을 하라는 쪽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 성향인 거예요. 꼭 둘 중에 어느 것이 답은 아니에요. 그건 학파가 그냥 다른 거 정도에요. 내가 성찰을 하고 싶으면 시간적이나 날짜의 비율을 정해요. 전체가 10점이라고 하면 8점 정도는 나를 위해서 살고 2점 정도는 타인을 도와주세요. 그런데 타인을 도와주는 2점을 넘어서면 내가 자기성찰을 하겠다고 한 8점이 흔들리기 시작해요. 그래서 자기성찰의 강도가 크게 부딪치지 않는 정도에서 시간을 내서 타인을 도와주세요. 그래서 시간 안배를 좀 해서 구체적으로 일주일에 몇 시간 한다든가 하고 그 밖에 다른 이타적인 것은 이제 신경 쓸 거 없어요. 그렇게 안 하면, 이게 자칫하면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듯이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합니다. 나의 성찰과 타인을 돕는 비율이 무너지면, 타인을 돕고 있으면 이것이 자기성찰인 것으로 착각하고, 또 자기성찰하고 있으면 타인을 돕고 있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성찰이 커지는 것이 먼저예요. 불교 수행도 부처가 되는 단계를 특별한 인식의 전환이 오는 것으로부터 부처가 되는 단계를 열 단계로 나누는데 첫 단계부터 여섯 단계는 자립을 위한 단계다. 그다음에 일곱 단계에서 열 단계는 이타를 위한 자기 수행이에요. 이 자립 속에 이타가 들어있기는 하는데 중요한 건 자기를 중심으로 한 이타에요. 그러니까 이타가 훨씬 어려워요. 그래서 첫 단계부터 여섯 단계까지 수행 힘이 완전히 잘 갖춰진 사람이 아까 말한 대로 내가 타인을 돌보겠다는 원을 세웠잖아요? 그럼 여섯 단계의 수행에 힘이 잘 갖춰진 사람은 그 원을 흔들림 없이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요. 그래서 이타와 이기는 다른 것이 아니에요. 지금은 8점 정도는 자기성찰에 쓰고 2점 정도는 이타적 행위를 해라. 이제 8점 정도에 자기성찰의 힘이 세지면 차차 이타적 힘을 늘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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