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90초 동안 바라보기

화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조절할 건가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화스님: 우선 당신이 바라는 어머니상은 우주에서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이 만나는 어머니는 지금의 어머니인데 우리가 ‘어머니는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어머니상과 대비돼요. 내가 보는 어머니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어머니예요. 내가 욕망하는 어머니와 현실에서 만나는 어머니와의 편차가 있는 것이에요. 내 욕망과 어긋나고 거슬리니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어릴 때는 어떻게 해볼 수 없다가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 싸울 수 있느니 분노를 표현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원하는 엄마의 모습은 현실의 엄마가 아니고 이상의 엄마를 그리는 거예요.

우리가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것’이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을 생겨나게 해요. 이것이 인류에게 자기 극복, 성과 같은 좋은 면도 되지만 동시에 불안과 동요가 따르게 대요. 그래서 첫째 지금의 엄마 이외에 다른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빨리 이해하기. 둘째 모든 감정은 90초 법칙이에요. 분노가 일어나면 마음이 분노하는 것처럼 드러나는데 이 배경에는 분노라고 하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 동반해서 따라와요. 그 화학물질이 올라오면 내가 분노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그 물질이 나와서 머물다가는 시간이 90초에요. 그동안에는 나에 대해서 절대 탓하면 안 돼요. 그건 이미 탁 오게 돼 있어요. 그러므로 90초 동안 내 감정이 어떻게 머물다 사라져 가는지 지켜보면 돼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우리는 그런 식으로 신체가 조직되어 있어요. 인류의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상(相)이 생기게 된 거예요. 현실의 어머니가 아닌 이상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에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만큼 괴로워지고 분노가 자주 발생하게 되는 화학물질이 나오게 돼 있어요. 처음에 감정이 일어나면 일단 알아차리고 90초간 기다리는 것을 연습해야 해요. 그래야 그 화학물질이 점점 약해지면서 ‘우리 엄마는 내 눈앞에 있는 저분이야. 저분을 좋아하겠어.’ 하면서 계속 안 올라와요. 좋아하는 마음이 나오면 분노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을 만드는 90초의 화학물질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화학물질을 바꾸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지금은 괴로운 심리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화학물질이 나오도록 펌프질이 잘 되어있고, 엄마를 생각할 때 좋은 감정은 가만히 물러서 생각하면 좋은 것 같은데 막상 엄마와 부딪히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감정의 통로를 만드는 연습은 아까 말한 첫 번째 이상형을 내려놓는 훈련이에요. 괴로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 괴로운 거예요. 잘못한 일도 아닌데 인생이 괴로운 거예요.

그러니 90초 안에는 뇌가 아무리 분노의 감정을 다른 식으로 바꾸려고 해봐도 쓸데없는 노력이에요. 변하지 않아요. 눈을 뜨면 탁 나타나듯이 그것이 탁 올라오면 엄마에 대한 상상력에 더해서 엄마의 어긋난 행동, 내가 바라지 않는 엄마의 모습들이 막 동시에 올라오면서 분노가 일어나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보살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렇게 형성됐어요. 그래서 앉아서 90초간 괴로워하자. 90초 까지만. 더 괴로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한테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어요. 가다가 또 올라오면 90초 훈련을 계속해서 90초를, 90초에 대해서 아무것도 시비하지 않는 마음이에요. 이런 마음이 올라왔으면 좋겠네, 다른 마음이 올라왔으면 좋겠네, 이것 자체가 아무 무의미한 전제에요. 이것을 ‘마음 챙김’이라고 불러요.

질문자: 예전에는 6시간 정도만 자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많이 자면 10시간을 자기도 하는데 괜찮은가요?

정화스님: 8시간이 넘어간 수면은 그때부터는 건강에 안 좋은 잠을 자는 거예요. 가능한 8시간 넘지 않게 자야 해요. 그래서 잠자는 시간이 8시가 지나가면 의지를 갖고 일어나야 해요. 수행자들은 수면이 6시간 정도가 충분하다고 하는데 신체 리듬으로 보면 7시간에서 8시간 자는 게 제일 좋아요.

근데 우리가 잠을 생각할 때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는데 잠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인생 학습이에요. 잠자는 시간에서 오늘 이렇게 경험한 것들을 정리하는 수면을 ‘렘수면’이라고 해요. 렘수면 시간에 오늘 경험한 것들을 옛날 기억과 더불어서 계속해서 전부 매칭을 해서 정리를 하는 시간이에요. 근데 이걸 안 해주면 뇌에서 단기기억층과 장기기억층의 통로가 잘 열리지 않아서 머릿속에서 계속 윙윙거리면서 쓸데없는 막 소리가 커져요. 그리고 며칠 안자면 머리가 띵해지면서 생각이 정리가 안 돼요. 그래서 7시간에서 8시간 잠을 자는 것은 뇌 속의 정보를 가지런히 정리해서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인 거에요. 하여튼 사람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선택되어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방금처럼 10시간 잤다는 이것은 문제가 있는 잠이에요. 그럴 때는 빨리 8시간에다 알람 울려놓고 그때는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해요. 왜냐하면, 그때는 자는 것은 뇌에 건강하지 않게 도움을 준거에요.

질문자: 불면증이 심할 때는 약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건가요?

정화스님: 나쁘지 않습니다. 내가 불면 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수면유도제 같은 것을 잠깐 마셔서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도움을 받는 거예요. 단 도움을 받되 전체적으로 신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첫 번째로 잘 드셔야 해요. 잘 먹는다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면 채소를 엄청나게 먹어야 해요. 그럼 육식을 하지 말고 채식‘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너무 육식이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채식이 줄어들어요. 채식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몸속에는 신체의 세포보다 10배나 많은 미생물이 있어요. 이 미생물들은 ‘셀룰로스’라고 하는 채소 성분 만 먹고 살아요. 그런데 채식이 줄어들면 ‘셀룰로스’ 성분이 적어지면서 미생물들의 먹이가 줄어들어 우리 몸속 미생물의 생태계에 혼란이 오기 시작합니다. 혼란이 오면 미생물들이 자기가 사는 터전이 별로 안 좋으니까 위벽이나 장벽에 있는 세포들하고 교류할 때 별로 기분 좋은 이야기를 안 해요. 기분 좋은 이야기를 안 하면 장벽 세포들이 기분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세로토닌’을 잘 안 만들어요. 이 ‘세로토닌’이 행복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근데 이 세로토닌의 95%가 장벽에서 만들어져요. 세로토닌이 장벽에서 혈관을 타고 뇌로 가서 이것이 싹 분출되면 “아! 인생을 살만해~!”라고 말하는데 그것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미생물이에요. 그런데 미생물들의 먹이인 채식이 준다? 그러면 뱃속이 불편하면서 생각도 불편하고, 생각이 불편하면 잠도 잘 안 올 수도 있고 그래요. 그러니 식사를 하실 때 다양한 채소들을 많이 구해서 그냥 먹는 연습을 하세요. 이건 연습이에요.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고요. 그러면은 자기 몸의 생태계가 건강해지고 생태계가 건강하다 보면 마음도 편안해지죠. 몸에서 특별히 아프거나 문제가 없으면 채식의 비율을 늘리는 것만 해도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는 잠자는 시간 한 시간 전부터는 일체 가전의 불빛을 다 꺼야 해요. 그때까지 가전에서 나오는 빛에 있는 특수한 것이 신경세포들을 자극해서 잠이 들기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해요. 최소한 한 시간 전에는 꺼야 해요.

질문자: 공부가 잘 안 될 때 의지를 갖추고 잘 할 수 있는 조건이라든지 방법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첫 번째가 삼십 분 이상 앉아있기. 우리 뇌에는 학습 동기가 많이 있는데 그런 것이 생기려고 하면 뇌 안에 측좌핵이라는 곳에 불이 싹 들어와야 해요. 그런데 이 불은 즐거운 것은 보자마자 빨리 들어와요. 생전 공부도 안 하고 머리에 복잡한 것들은 측좌핵에 불이 잘 안 들어와요. 그런데도 삼십 분 동안 앉아서 공부에 집중하면 지금 내 행위가 측좌핵을 속여요.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하고 불이 들어와요. 그때부터 이 행위가 마치 내가 재미있게 공부해야 할 것처럼 다가와요. 그것이 한 삼십 분 걸리는 거예요. 어린애들은 삼십 분 버티는 게 힘들지만 이제 나이가 그 정도 됐으면 의지를 갖추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삼십 분 동안 한 번 해보면은 측좌핵에 불이 들어오면서 그것에 관한 공부를 시작 할 수 있어요.

질문자: 바른 생각을 위해서는 추상적인 관념들이 필요한 게 아닌가, 그리고 이상(理想)을 위한 추상적인 관념이 문명을 추동시켜 온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화스님: 이미지, 통일된 이미지, 이미 탁 된 것. 이 세 가지가 자유롭게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 신체가 가진 인지 시스템을 가장 잘 작동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추상을 어떻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욕망하느냐 하는 것을 선택할 때, 자기가 잘못 추상하고 잘못 욕망하면은 쓸데없이 괴로워 할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욕망하는 구조에 대해서 기본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해요. 그리고 이 기본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욕망과 추상을 통해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는 사유의 통로를 만들어야 해요. 그것이 안 만들어지면 나는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경우가 많은 거죠. 더군다나 바른 생각이라고 하는 것 자체도 모든 사람에게 다 바른 생각이라고 완벽하게 공유하기가 힘들어요. 나한테는 바른 생각인데 다른 사람한테는 아닐 수가 있는 상태가 있거든요. 이것 자체만 이해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의 가장 기본인 거예요. 그래서 불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지 않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선택할 때는 ‘존중’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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