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숙 (감이당)

부처님, 오늘 부처님께 건네는 저의 첫 이야기는 몇 달 전의 제 경험으로 시작해보렵니다.

 

어느 새벽녘이었어요. 걷잡을 수 없는 마라(Mara악마:망상이라는 의미)의 속삭임이 제게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의 요지는 힘든 공부의 길을 가지 말고 몸 편한 길을 가라는 거였습니다. 이러다 정말 일찍 죽고 싶냐(?)면서… 그맘때 쯤 저는 빡빡하게 짜여있는 공부일정을 앞에 놓고 지레 지치고 있었습니다. ‘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필요해’라는 생각이 올라 온 순간, 그 틈새를 놓칠세라 이렇게 마라의 소리가 망동을 하더군요. 뭐 그 정도가지고 죽음까지 들먹이며 호들갑이냐구요? 네~ 호들갑에 오버하는 거 맞습니다. 여기에 바로 저의 문제가 있지요. 오래 전 큰 수술 후 몸이 안 좋았을 때, 어느 사주쟁이 아줌마가 내 명이 64세 아니면 74세라고 하더군요. 지금 제 나이 63세, 그 시점을 몹시 의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따져보면 태어난 시도 분명하지 않은 사주였고, 십년이라는 널널한 시간차를 두고 명을 말하고 있는 것도 우스웠지요. 문제는 그럼에도 제가 그 말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부처님도 아시다시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는 게 마라의 역할입니다. ‘오래 살아야 공부도 오래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마라의 정체는 물론 제 욕망의 다른 소리입니다. 나의 마음은 이 욕망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그 순간의 제 마음은 참으로 황량한 바람이 부는 황무지 같았습니다. 그것이 언제이든 언젠가는 죽음은 실제상황이 될 터입니다. 정말 죽음을 이렇게 정신없이 휩쓸려가듯 맞닥뜨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건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백 살을 산다고 죽음 앞에서 저절로 편안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이런 저의 마음을 『법구경』에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잡혀 나와 땅바닥에 던져진 것과 같이 이 마음은 펄떡이고 있다. 악마의 영토는 벗어나야 하리.”(게송34) 그렇습니다. 공부를 몇 년을 했건만 저는 여전히 죽음의 문제 앞에선 땅바닥에 내쳐진 물고기처럼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법구경』은 가차없이 죽음을 대면하게 하는 부처님의 게송과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 쓸모없는 나무조각처럼 의식없이 버려진 채, 머지않아 이 몸은 땅 위에 눕혀지리라.”(게송41) “죽음이 닥치지 않는 곳은 공중에도 바다 한 가운데도 없고 산의 협곡에 들어가도 없으니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게송128)…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 쓸모없는 나무 조각처럼 버려지고, 죽음 또한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 무상함의 진리. 이 당연한 사실들을 부처님은 왜 이토록 적나라하게 반복하고 반복해서 노래하셨는지요? 처음 『법구경』을 접하고 너무나 당연한 듯 여겨지는 ‘진리의 말씀들’, 그 말들을 버전을 달리하며 반복하고 있는 것에 좀 놀랐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알았습니다. 이 무상성의 진리,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정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몸으로 터득해 깨닫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바로 그랬듯이 말입니다. 부처님은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지요.

 

이미지 설명

『법구경』은 이런 저에게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상세히 보여주었습니다. 『법구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연담들은 등장인물들의 생과 사의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자신의 근기와 처한 자리에 따라 부처님으로부터 각자 다른 해법을 배웁니다. 그 구체적인 해법 속에서 터져나온 ‘진리의 말씀’들이 『법구경(Dhammapada)』이지요. 그것은 곧 ‘진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괴로움(고苦)과 괴로움의 원인(집集)을 알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멸도滅道)! 그 길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길 자체임을 『법구경』은 생생히 보여줍니다. 부처님이 넘어서고자 했던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 저는 이제 그 고통의 당사자가 되어 생사의 문제를 넘어가고자 합니다. 『법구경』 속 인연담의 주인공이 되어. 부처님은 제게 어떤 해법을 알려주실 건가요? 그것이 어떤 것이건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가볍고 즐겁습니다. 저는 이미 그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어떻게, 마침내 삶과 죽음에서 자유로워졌는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여기까지가 제가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부처님께 말문을 여는 첫 글입니다. 부처님은 무어라 답해주실 건가요~ 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밖에요.

 

 

  • “붙 잡 다 !” 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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