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란 ( 감 이 당 )

먼저 묻겠다. “불교하면 연상되는 색깔은?” 나의 경우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대개의 답은 회색과 금색이 아닐까? 한때 회색 계열의 내추럴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었을 때 자주 들었던 소리가 ‘중옷’같다는 말이었다. ‘절복(절하기에 적당한 스타일로 절다니는 보살님들이 선호함) ’이냐고도 하더라. 회색이 스님의 색이라면 금색은 부처님의 색이다. 대웅전의 황금불상, 혹은 부처님의 출현 씬(영화나 일러스트 등)마다 어김없이 연출되는 금빛 광휘.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는지? 회색과 금색이라고 했다고? 맞다. 그런데 틀렸다. 이런 뻔한 결과를 유도해서 죄송하다. 물론 한국에서 불교의 색깔은 회색과 금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불교가 다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미얀마의 스님들은 자주색 가사를, 태국이나 라오스의 스님들은 오렌지색 가사를, 일본의 스님들은 검은색 법의를 걸친다. 스마트폰이 시방삼세(十方三世)를 5G로 연결하는 이 시대, 이런 사실은 사실 모르기도 어렵다. 이런 걸 눈치 채지 못하는 건 그냥 관심이 없기 때문.

 

다들 그랬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똑똑또르르르 똑똑” 소리를 뜻도 모르면서 흉내 내며 놀던 나는 불교에 대해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마야부인에게서 태어난 싯다르타왕자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셨다는 이야기도 알고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불 이야기도 알고. 심지어 학교에서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이런 것도 배웠다! 옛이야기에는 부처님, 동자승, 시주 다니는 스님들 이야기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그래서일까. 사실 “부처님”이라는 하나의 명칭 만 봐도 그 안에는 엄마나 할머니, 연등행렬, 사천왕상, 목탁소리, 지옥도, 산사의 고즈넉함… 뭐 이런 게 잔뜩, 패키지로 들어있다. 그러다보니 ‘부처님’을 생각하면 어쩐지 우리 엄마나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우리나라 여인네들이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비는 모습이나 합격기원 삼천배가 조건반사적으로다가 떠오르고야 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조계종의 활약에 힘입어 사찰비리, 각목, 조폭 등 연상단어의 목록이 풍부해졌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렇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불교라는 단어의 색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실상에는 우리의 오랜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만, 니체도 세상 모든 의미와 가치는 힘과 힘들의 중중무진한 충돌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과거로 회귀하자는 말도, 현재를 부정하자는 말도 아니다. 현재의 불교, 한국의 불교는 분명 고유의 힘과 색을 갖고 있고 그 역사와 지층을 탐사하는 일 또한 가치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초기불교, 그러니까 불교가 탄생한 그 시점의 조건과는 분명 다르다. 나는 그 다름을 선연히, 충분히, 보고 싶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색도 금색도 아닌, 시주도 목탁도 없는 기원전 5세기 북인도의 갠지즈 강가에서 스물아홉의 청년이 목숨을 걸고 뛰어넘은 그 도약의 장면들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우리 얼굴부터 더듬어 보자! 오랫동안 걸치고 있던 각자의 안경을 확인하고 과감히 벗어버리자! 그리고 맞으러 가자! 맨발로 길에 나선 저 젊은 구도자를, 그리고 그가 만난 길 위의 친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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