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1: 예전의 아픈 기억을 어떻게 이겨내야 되는가요?

지금은 그런 상황이 없지만 과거에 남편이 폭력적인 것 때문에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거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조금 별거 아닌 것에 남편에게 언성이 조금 올라간다든가, 아니면 제가 다시 두려움을 느낀다든가 그런 상황이 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야 되는 건지요.

 

정화스님 네! 우선 남편이 잘못했어요. 어떤 경우라도 폭력을 쓰는 것 자체는 아까 말한 대로 자기 권력을 힘으로 행사해서 다른 사람의 자율적인 삶을 억압하는 일이예요. 그래서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좋은 문제해결이 아니죠. 실제로 지구가 살아온 모든 과정들은 거의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행동뿐 아니라 생각의 방법까지도 억압하는 것이요. 그래서 1960~70년대 김수영 시인이 생각의 자유에 대해서 뭘 말 하냐면, “우리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북한을 찬양해도 그 생각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가 받지 않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어느 정도 생각의 자유를 허한 것이고 그것이 민주의 본질이다.”라고 하는 시를 쓴 것이 있어요. 지금 아마 그렇게 하면 바로 많은 비난을 받겠죠. 그런 건 아니더라도 정당한 사회 일반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막 비난받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것을 좀 성숙한 사회라고 하면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타자를 인정하고 이렇게 싸우는 과정들이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인데 지금도 가정이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실제로는 양상은 좀 다르지만은 거의 중세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이 가치체계를 가지고 하는 일들이 있어요. 그러니 남편이 과거에 한 일이 인류가 살아온 과정에서 학습한 것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제 남편이 나아졌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남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했을 때에 나쁜 점도 많지만 같이 살면 좋은 점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남편을 생각했을 때 ‘이런 일은 좋은 일이야’라고 하는 항목을 한번 써 보세요. 써 놓고, 그 일을 내부화하는 일이 강력히 커져야 남편이 언성을 높여도 내부에서 남편의 긍정적인 면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하고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힘을 얻게 되요. 이렇게 힘이 얹혀 져야 나중에 편안할 때 비난이 덜 섞인 것으로 남편한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일이 되는 것이지. 지금처럼 받들면서는 잘 안 될 거거든요. 그러니 남편하고 같이 살면서 ‘이러 이러 좋았어.’라고 하는 것을 몇 개 쭉 써가지고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훈련을 해보세요.

질문자1: 그런 게 별로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정화스님 전혀 없는데도 일단 작은 것들도 고맙게 보이는 항목을 자기가 써보세요. 그래서 그것이 고맙게 느껴지면 그것이 커지기 시작해요. 지금은 안 좋은 것이 너무 커가지고 그것만 보는데, 부모가 마음에 안 드는 자식 보듯 그렇게 보세요.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식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크게 보이면 자식이 있음으로써 내가 어떻게 삶의 위안도 얻고 뭐도 얻었는지 하는 부분이 처음에 안보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을 기울여야만 보여요. 그런데 안 좋은 부분은 이미 체화되어 있어서 그냥 생각 안 하려고 해도 누군가 꽝 때리기만 하면 바로 열 개 스무 개 백 개가 나올 거예요. 그러니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이는 좋은 점도 써 가지고 그것을 외우면서 자기가 남편을 보는 내부영상의 색깔과 크기와 모양을 점점 바꿔 가는 연습을 해야만 자기 내부에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져요. 궁극적으로는 자기 내부에서 불필요하게 두려워했던 감정을 해소시키려면 이렇게 하는 것 이예요. 그래서 남편이 이제까지 해 준 것을 보면 밥 한 끼도 해 주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점을 내면화하다 보면 자기가 표현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을 좋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지는 것이에요.

질문자2 : 심상은 어떤 것인가요?

예전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 사주는 관상만 못하고 관상은 심상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 심상을 예전에는 착함이라 생각했거든요. 착함에 대해서 좀 착함이 아닌 것을 이제 좀 알게 되었는데, 그 심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심상’이라고 하는 것은 내부와 접속하는 유일한 통로예요. 얼굴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심상’이라는 필터링을 통해서 보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어떤 분을 볼 때 좋은 얼굴로 본다고 하는 것은 내 필터링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고, 어떤 분을 볼 때 안 좋다면 이런 형상을 내 필터링이 안 좋다고 여기는 거예요. 상대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근데 그것 중에 남성들은 자기 어머니와 좀 유사한 사람은 자기가 별생각 안 해도 좋은 여성상으로 갖게 되고, 여자아이들은 자기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의도하지 않아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요. 그 사람이 좋은지 나쁜지도 몰라도 내 안에 있는 어머니가 좋은 거고, 아버지가 좋은 거예요. 그래서 상대가 엄마 상을 닮았으면 남성은 호감이 가고, 아빠 상을 닮았으면 여성은 호감이 가는 거예요. 이 남자가 정말 좋은지는 모르나 내 안의 심상이 그렇게 정해지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인류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성 선택을 해서 암컷, 수컷이 만들어지는데 유전자 진화와 성 선택을 통한 진화가 병진해서 일어나요. 이 성 선택을 할 때 후손을 더 잘 남길 수 있는 짝이 누군가를 선택하는 것이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남성이 나한테 보내주는 냄새에요. 냄새로는 뭘 판단하는가 하면 나하고 저 사람이 면역세포가 많이 다른 것을 판단해요. 병원균이 많듯이 면역세포도 많아요. 그래서 나하고 다른 면역세포가 많을수록 그 남자가 호감이 가는 거예요. 이처럼 내부의 심상이 이런 식으로 유전적 학습적으로 통해 가지고 내가 지금 얼굴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다음에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정해진 것이죠.

두 번째는 바로 찰나의 생각이 다음 찰나의 생각에 영향을 바로 미친다는 것. 만약 환경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면 외부로 일어난 관상을 보기 이전에, 하나 예를 들면 미국에서 배심원들이 이 사람이 밖에서 구속되지 않는 상태로 재판받아도 좋은가 아니면 구속된 상태로 재판 받는 것이 좋은가 이런 것을 배심원들이 판결할 때, 11시부터 12시 사이에 온 배심원들은 “나가서 받아도 되요.”하는 것이 약 20%밖에 안돼요. 그런데 점심 먹고 2시에서 3~4시에 온 사람들은 약 70%가 “아~ 나가도 되요.” 점심 전에 온 배심원들은 배가 고파가지고 짜증이 나는 거죠. 그래서 같은 유형인데도 배고픈 배심원들은 가두어 놔야 된다고 판결하고, 점심 먹고 배가 부른 배심원들은 “아 사람을 가두면 안 되지”라고 판단한다. 밥을 먹고 안 먹느냐가 다음 판결에 이만큼 영향을 주는 거죠. 그러니까 밥을 먹은 외부에서 세계를 보는 내부지도가 바뀌어 있는 거지. 같은 혐의인데 식전에 배심원 판결 받는 사람은 굉장히 불리해. 그런데 자기가 정할 수 없는 것이죠. 수백, 수천 명이 몇 년 동안 어떤 식으로 판결 받는가를 통계 내보니까 거의 50%가 차이나요.

그래서 자기 안의 내부의 심상을 부드럽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압력으로부터 자기가 괴로워할 확률이 적고, 내부의 심상이 힘들면 조그만 일에도 힘들게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이 커지는 거죠. 근데 얼굴 만들고 신체 만들고 이런 것들은 이미 유전자를 통해서 결정되어 있어서 안 바뀌어요. 그런데 심상만 거의 유일하게 자기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데, 심상이 바뀌면 관상이 바뀌는 게 아니고, 관상이 풍기는 기운이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심상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얼굴을 수술해서 바꿔 봐도 효과는 없어요. 다른 사람한테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죠.

질문3: 책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니고 제가 왜 이럴까요?

요즘에 제가 무료한 시간을 많이 보내더라고요. 책을 읽을 만큼 집중이 되거나 이러지도 않고 머리도 복잡한데 딱히 뭘 하기는 싫어서 앉아 있다 보면 앉은 상태로 졸고 보면 하루가 다 가있더라고요. 책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니고 제가 왜 이럴까요?

 

정화스님 근래 읽은 어떤 책 중에서 지금 인류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것은 8시간 잠을 안자는 전염병이 있데요. 8시간 하루에 잠을 자는 것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전체 밸런스를 맞추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예요. 두 번째 잠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꿈꾸는 시간이 줄어드는데, 꿈꾸는 시간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다음날 일어나서 사회하고 능동적으로 편안히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요. 우선 한참 젊으시니까 뭐 내가 잠 한 몇 시간 안자고 나가서 일해도 되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착각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선 내가 밥 3끼 잘 먹고, 잠 8시간 잤는가 안 잤는가를 살펴봐야해요. 잠을 8시간 안 잤으면 오늘부터 집에 가서, 잠을 자는데 잠자기 두 시간 전에는 특히 청색광을 보면 안돼요. 잠자기 2시간 전에 푸른 빛 나는 LED를 이용하는 핸드폰이라든가 전자기기 같은 것을 보면, 멜라토닌이라고 하는 것이 잘 분출되어야 잠을 잘 자는데, 청색광을 받으면 뇌 안에서 신경세포들이 저절로 ‘야! 잠잘 시간 아직 멀었어! 멜라토닌 생성하지 마!’하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어요. 그래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일단 잠자기 전에 한 두 시간부터는 책을 읽으면 멜라토닌 생성이 많이 되요. 여러분 책을 읽으면 진짜로 잠이 오잖아요. 그러면 그땐 시간이 되면 멜라토닌 생성이 많이 되는데 반대로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멜라토닌 생성이 줄어요. 빛이 나의 신체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 밥 3끼 잘 먹었는가 보고, 그다음에 적당히 운동했는가 보고, 그다음에 잠을 8시간 잤는가를 확인해야 되요. 잠을 안 잤으면, 낮에도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죠. 꿈도 잘 꾸어야 되요. 보통 사람들이 꿈을 모르는데 하루에 2시간 내지 3시간 꿈을 못 꾸면 다음날 일상에 생활하는데 굉장히 지장을 받을 거예요. 그러고 두 번째는 밖의 외부의 빛이 없어야 되요. 암막커튼을 탁 쳐놓고 잠잘 때는 거의 빛도 없이 자야 되요. 심지어 암막커튼을 쳐서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으면 암세포도 가만히 있어요. 그 정도로 잠을 자야 되요.

질문4: 미리 걱정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떤 날은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어쩌지?” 하는 그런 고민을 하다가, 어떤 날은 “직장 생활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또 어떤 날은 사고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사고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제가 일부러 고통들을 쫒아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화스님 인류는 약 7만 년 전부터 불안을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내일이라고 하는 단어를 처음으로 알 때가 지금부터 약 7만 년 전이에요. 누구나 내일을 상상할 수 있지만 내일을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없어요. 경험되지 않는 일은 우리한테 편안하게 오기 어렵고 불안하게 오기 쉬워요. 그러면 굉장히 미래를 더 자주 연상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지금 여기에서 맛있는 거 먹고 그냥 편안히 있는 이것을 많이 갖기보다는, 내일의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면 동시에 불안한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와요.

그래서 이럴 때는 맘에 맞는 친구 한 사람 있으면 꼬여가지고 “오늘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거예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내일에 대한 생각이 좀 줄어요. 내일의 불안을 앞당기지 않는 수행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맛있는 거 먹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지금 여기를 사는 훈련이에요. 수다 떠는 일을 자꾸 만들어서 하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감정의 느낌이 커지면 내일을 맞이할 때 ‘아 내일도 좋을 거야!’ 라고 생각할 확률이 커지는 거예요. 아까 말 했잖아요. 배만 불러도 70%를 석방해줘요. 나의 내일의 70%를 그냥 즐겁게 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70%가 불안해 지는 거예요. 어차피 내일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너무 내일을 사고하지 말고 회사에 가서 부장이 뭐라 하면 ‘그 부장이 나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재미있게 놀면서 하는 일을 계속 하면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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