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1: 아이들이 공부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 아이들은 공부를 별로 안 좋아해요. 스님 말씀에 의하면 욕심이 없는 건지 그냥 학교 다니고, 공부에 대한 비중보다는 친구에 대한 비중이 더 크고요, 대학에 대한 것도 절실함이 없어요. 작년 같은 경우에 아이의 학원 친구가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일이 있어서 공부해야 하는 걸 어떻게 얘기를 해줘야 되나 고민됩니다.

 

정화스님 우리는 의견을 제시하는 게 아니고 “네 의견대로 해라.” 하는 게 달려있어.

질문자1: 지금 참느라고 힘들거든요.

정화스님 내 생각대로 해라는 걸 참아서는 안 되지. 왜냐하면 이것 자체가 틀린 거예요. 내가 의견은 말할 수가 있어. 다섯 살 먹은 애 아닌 이상 대학생이면 “난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까지가 내가 할 일이예요. 마찬가지로 부모한테 자식이 “나한테 부모가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까지만 자식이 애기해야지. 내가 살든 안 살든 내 맘이지. 자식 뜻대로 살려고 하는 건 뜻대로 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걸 말하는 내 마음만 괴로울 뿐 이예요. 똑같이 자식들도 부모 뜻대로 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그 뜻대로 살라면 서로가 괴로워. 밥 먹을 때 “나는 네가 이렇게 살면 좋겠네.” 그렇게 살든 안 살든 네가 결정하는 것이지. 부모로써 이야기는 할 수가 있죠. 그러나 네가 선택한 것은 존중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죠.

다음 두 번째, “네가 25살이 지나면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살아. 난 돈 벌어서 너의 25세 이후의 삶까지는 책임 못 지니깐.” 거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빨리 정해야 해요.

질문자1: 이야기를 해놨어요.

정화스님 잘 하셨어요. 실제로도 안해야 돼요. 그럼 자기가 자기인생 살아가니깐 그냥 거기까지만 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몇 가지하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살아라. 빨리 정리를 하세요. 앞으로 공부해가지고 AI를 이길 수 없어요. 삽질 잘 해가지고 포클레인을 못 이기듯이 공부 잘해서 핸드폰을 이길 사람은 지구상의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아요. 이 접속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새로운 영역으로 하는 일이예요.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 없어요. 지금 한국교육은 선진국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질이 안 좋은 교육 이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방금 말한 대로 “내 의견이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의견대로 살아라.”라는 말이 예요. 부모의 삶은 그렇게 안살아도 좀 유도리가 있어요. 하지만 학교는 바로 F를 주고 벌점을 줘서 그렇게 안하면 안 되도록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지금 F를 주는 내용이 완벽히 달라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제 작년 미국에서 대학교 시험을 보는데 어떤 대학교수가 학교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어요. 왜 징계를 받았냐면, 그 대학교 학생 중 하나가 커닝을 했어요. 그럼 우리 같으면 커닝한 사람에게 벌칙을 주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교수가 시험문제를 어떻게 냈기에 다른 사람 생각을 그대로 베껴 써서 답이 될 수 있는 시험 문제를 제출했는가. 그래서 시험 안에 한학생의 독자적인 색깔이 들어나지 못하면 그 답이 틀린 답 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냥 커닝하면 100점 맞게 되어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자기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이것이 가장 안 좋은 교육이다. 이제 그런 교육을 굳이 안 받아도 돼요. AI가 탑재된 핸드폰이 앞으로 일을 잘해줘요. 지금 부모님세대하고 자식세대는 세대 차가 요즘 하루 이틀 차이라고 할 정도로 빠른 시대니깐. 이제 “25살부터는 네 밥은 네가 챙겨 먹고, 네 할 일은 네가 해라.”고 선언했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더더욱 내가 말을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말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이 이상한 거예요. 그러니 질문의 의도는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아까하고 똑같아. “답을 나의 생각대로 써. 답은 정해져 있어.”

미국은 시험지를 주고 핸드폰을 보던지 교과서를 보던지 컴퓨터를 보던지 완벽하게 오픈되어있어요. 그러나 그걸 그대로 쓰면 다 0점 처리가 되는 거예요. 일단 핸드폰, 교과서, 컴퓨터에는 네 인생이 없잖아요. 옆 사람 것을 보고 써도 0점. 더구나 문제는 교수들에게도 그렇게 요구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시험문제를 냈는데 커닝해서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를 내느냐고 하며 교수가 징계를 받아요. 한국은 교수들이 다른 생각하면 전부 다 모난 돌이라고 조지잖아요. 계속 학계에 인정된 논문을 말하고 따라가는 게 좋고. 그걸 따라 가는 사람은 누가 따라갑니까? 또는 미국에 가서 공부할 사람이 우리의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미국에서 배운 생각을 그대로 받아오면 누가 제일 유리하냐고요. 1% 부자가 제일 유리해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칼럼에 우리나라 큰 정당 두 개를 말해서 저는 늘 다른 생각을 했었는데, 한 정당은 고작 1%의 부자를 위한 정당이고, 다른 정당은 10%의 부자를 위한 정당이다. 즉 국회는 우리를 위한 정당이다? 몇 사람 빼고 다 없어요. 그 사람들 미국 다 보내주고. 그 다음에 학교에 약 서른 개 학과의 교수가 미국대학교에서 공부해서 박사학위 받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이미 카르텔은 형성 됐어요. 그럼 우리는 뭡니까?

한국에서는 미국사람들 생각을 배워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배운 인식 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 살아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하면 안 되죠. 각자가 자기 생각을 하면 그 사회 시스템을 운용하고 싶은 사람이 마음대로 못 하잖아요. 시스템 상 그렇게 못하게 만들면 그 시스템이 오래 갈 것인지는 좀 의문스러워요. 한번생각해보세요. 미국대학교하고 서울대학교가 각자 석사나 박사과정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은 어쩐지 모르지만 서울대학교 석사 박사 학위를 따서 서울대학교 교수하는 사람 있는가 모르겠어. 그런데 지방에 다른 대학에는 많아. 즉 자기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한 인재를 안 써. 자기들도 쓸 수 없는 인재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우리 석사나 박사는 서울대학교에 와서 강의할 만한 인재가 아니리고 자기네들이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힘들게 미국까지 보내서 그렇게 써. 이렇게 해가지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빨리 남편에게도 이야기만하고 결과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그렇게 사셔야합니다.

질문자2: 저는 식탐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식탐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안 먹어야겠다.’고 생각해도 어느새 직장에서 먹고, 집에 먹고, 먹을 게 있으면 배가 부른데도 그 음식이 끝낼 때까지 먹고 앉아있어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때가되면 제가 먼저 밥을 먹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화스님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보니까 자기 신체 비율로 많이 먹는 게 아닙니다. 다만 아까 말한 대로 식사의 질을, 채소를 드시고 고기는 적당히 드시고 하는 식으로 식단 내용을 바꾸는 것은 필요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많이 먹는 몸은 아니에요. 자주 먹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자기 먹는 식사량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 보면 그냥 요만큼 먹고 있는 사람들을 표준으로 삼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지금 다이어트를 하는 젊은 사람들 보면 지금 먹는 것 두 세배를 먹어서 이상증상이 발생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비슷하게 미국의 유행병이 잠 안자는 것하고 폭식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식사의 양이 아니라 식사의 질 이예요. 바삐 일해야 하고 햄버거나 먹고 운동 못하는 상황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요. 작은데다 왕창 많은 칼로리를 집어 넣어가지고 또 거기다가 탄산음료를 엄청 마시잖아요. 미국에는 학교에선 탄산음료를 못 팔도록 법제화시켜 놓았잖아요. 하루에 2천 칼로리를 먹어야하는데 5~6천 칼로리를 먹는데 실제 양은 그렇게 안 보이거든요. 그러니 식단의 질을 어떻게 하는가만 잘 살피면 되요. 지금 상태에서 보면 그렇게 많이 드시는 것이 아니에요. 그 다음에 부부싸움하시다가 배가 고프면 먹는 것이 옳지. 아까 말했듯이 배가 고프면 요만한 것도 골치 아파. 배가 딱 부르고 나면 이만한 것도 ‘그럴 수 있지’하게 돼. 그러니 배고플 때 부부싸움 하지 마시고 배고플 땐 잘 드시고 뱃속이 편안할 때 이야기하시면 좋습니다.

질문자3: 저와 잘 통하는 사람만 만나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 같아요.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소통이 힘든 사람들과 굳이 만나서 서로 부딪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관계를 정리하고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생각이 드는 게 ‘내가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고 세계가 점점 좁아 질 수도 있겠다. 그럴 위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화스님 사람들과 꼭 넓은 관계가 아니어도 좋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책이나 다른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지평을 넓히지 않으면 진짜 오그라들어요. 사람들과 관계는 안 맞으면 여러 가지 다른 문제로 부딪칠 일이 많지만 책은 안 맞으면 안 봐도 되는 거예요. 대인관계가 넓지 않은 사람일수록 밥을 잘 먹고 운동 잘하고 학습을 통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렇게 안하면 진짜 사유가 쪼그라들어서 자기세계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죠. 자기 머리가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우물 안 개구리도 우물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거예요. 그것을 넓혀주는 것은 꼭 사람들과의 소통은 아니더라도 학습 등을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밥 잘 먹고 운동 잘하면서 그렇게 하면 돼요.

 

질문자4: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요?

전에 분별과 무분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고, 또 김수영시인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북한에 관해 이야기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 주변사람들 중 “돈이면 다 돼.” “지금 접시에 있는 떡을 내가 다 먹어도 내가 행복이라 생각하면 이것은 행복이야.”라던가 아니면 “캄보디아 사람들이 그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미개해서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럼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너의 생각이니까 존중할게.”하고 그냥 인정해주는 것이 맞는가요?

 

정화스님 그것은 기초가 틀린 것이지. 캄보디아 사람들이 미개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개해서 그런 게 아니죠. 아프리카를 점령한 유럽의 힘센 나라들이 지속적으로 아프리카를 그런 인식이 되도록 사회 시스템적으로 규정해. 미개한 사람들이 전혀 아닌데 인식 시스템으로 “그들이 미개하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그런 거.”라고 자꾸 이미지를 입히는 것 이예요. 어느 것이 사실인지 100%는 알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가짜뉴스처럼, 그러한 인식도 가짜를 가지고 규정하는 부분이 많으니까 팩트체크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니 그러한 주장은 팩트 자체가 잘못됐어요. 아프리카나 캄보디아가 미개하다고하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고. 즉 “현대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은 미개하지 않고, 그들처럼 사는 건 미개한 것이야.”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렸을 뿐 아니라, 지금 아프리카 사람들이 저러한 모습으로 사는 결정적 이유는 유럽 사람들 때문이지. 사람들이 전혀 사실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캄보디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미개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죠. 왜냐하면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나 세계 각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식이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현대적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의 문화 전체를 규정지을 수 없는 일이예요.

질문자4: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 친구와 “그것은 이러저러해서 사실이 아니야.”라고 말하면 “너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다른 거지 틀린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논쟁이 일어나요.

정화스님 사실에 기반 한 다른 사건을 보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근데 사실 자체가 틀린 말이 있잖아요. 근데 다른 사람이 그걸 안 받아들이면 내가 할 수가 없는 일이지.

질문자4: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게 사회가 변화를 이루어낼 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거는 변화를 이룰 수가 없잖아요. 그 안에서 논쟁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요.

정화스님 아까 말 한 대로 “네가 한 것이 틀렸다.” 이것이 목소리에요. 지금은 한 사람이 말했지만 사회가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임계점이 되면 여러 사람이 그 말을 시작하는 것이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로 점점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러나 우리 안이 내부화 되어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아직까지는 그것을 돌파하는 것이 좀 시간이 걸릴 뿐이죠. 사람에 대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들이 지금 새롭게 형성 되어 있으니까 그걸 기반으로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죠. 예전에는 사실을 누가 규정했냐 하면은 권력자들이 규정 했지요.

질문자4: 그러면 그 안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논쟁이 일어나면 제가 굉장히 힘들어지잖아요. 그럴 때 그 친구를 멀리 하는 것이 나의 태도로 괜찮은 것인가요?

정화스님 내가 몸과 마음이 그 친구 만나서 힘들다 그러면 두 번 만날 거 한번 만나는 걸로 빨리 줄여야 돼. 되지도 않는 일 가지고 힘쓸 필요 없어요.

질문자4: 근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분별과 무분별을 모호하게 해서…

정화스님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분별이에요. 선분별. 팩트에 기반 해서 좋은 분별을 하자는 말이고, 부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뇌에 인지 시스템이 전혀 다른 쪽으로 가버린 거예요. 이때는 우리가 지금 일상으로 하고 있는 가치체계 이런 것들이 완벽히 사라지고 전혀 다른 식으로 자기 인지시스템이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는 아까 말한 대로 옳고 그른 것이라고 하는 것을 설정할 수 있는 배경자체가 사라져버려요. 뇌에 인지시스템이 스위치가 바뀌어 버린 거예요. 이것은 경험한 사람들끼리만 ‘아 그런 체계가 있구나.’하고 말할 뿐이지 우리 일상에서 삼고 있는 것을 가지고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무분별은 방금 말한 대로 팩트에 기반 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가지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분별을 자주 해야 합니다. 팩트를 기반으로 잘 하고 그 다음 두 번째는 점점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조금씩 사회가 변화가 오는 것이지. 우리 가운데에는 ‘클라우스트룸’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이 ‘클라우스트룸’이라는 아주 작은 기관이 좌뇌와 우뇌 한 중간에 있는데 거기 스위치가 딱 꺼지면 의식 자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요. 좀비처럼. 이처럼 아까 말한 무분별을 경험했을 때는 뇌에 인지 시스템이, 스위치들이 바뀌어 있어요.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말 한 이 분위기에서의 이야기를 가지고 무분별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다가 아예 내부에 일어나는 감각정보를 분석하는 스위치가 완전히 꺼져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이것은 아까 말한 좀비 자체도 아니고 아예 완벽하게 다른 식으로 바뀌어 있어요. 뇌에 그 인지 시스템이 스위치들이 어떻게 켜져 있느냐에 따라 다른 거예요. 앞에 말하는 것은 일상에서 스위치가 다 켜져 있어요. 평균으로 봤을 때는 사실이 아닌 것에 기반 해서 자기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 이건 문제가 있는데 그 사람이 어느 날 다시 그걸 봤을 때 자기 스스로 “아 사실이 아닌 것에 기반 했구나.”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까지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은 이런 사실이야.”라고 말하는 것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치고 안고치고 까지는 내가 해줄 수 없어요.

질문자4: 그러면 우리가 몸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분별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스위치가 딱 꺼지는 그 무분별을 우리가 인체를 가진 삶에 적용하는 데에서는 어떤 태도와 어떤 행동으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정화스님 그것은 아까 말한 대로 공감이라고 했지요. 공감이 가장 극대화 되는 것은 마치 세계 전체가 나처럼 되어 있는 거예요. 그 분별의 스위치가 꺼지면 바로 그런 걸 느껴요. 우주와 합일 됐다는 이런 느낌. 지금 이 상태에서는 그 부분은 베이스에 깔려 있어요. 그 베이스 중에서 분별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이 분별을 쓰면 이 베이스가 먼저 좀 올라와요. 그러면 이제 ‘이런 세계도 있구나.’ 주로 토론은 그런 베이스가 깔려져있고 인지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여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색깔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죠. 이것은 전체 인지 시스템 중에서 1/3만 열심히 움직이는 거랑 똑같아요. 어쨌든 뇌의 인지 시스템 자체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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