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되기, 사자되기 (2)

김 주 란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1. 저 사람을 보아라

한 청년이 집을 나와 도시로 갔다. 나이 29세. 이름은 고따마 싯닷타. 상상해 보라. 인도에서 가장 강력하고 번성한 마가다 왕국의 수도 라자가하 시의 풍경을. 그날도 많은 사람들과 온갖 물건을 가득 담은 수레, 화려하게 장식한 말과 코끼리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제 겨우 24세가 된 마가다의 젊은 왕은 궁전 위에서 활기찬 아침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의 눈길은 시끄러운 거리의 한 복판을 천천히 걷고 있는 어떤 한 청년에게로 저도 모르게 이끌리듯 향했다. 자신보다 너댓 살 정도 위로 보이는 건장하고 잘 생긴 청년이었다. 맨발에 짧게 깎은 머리, 누더기 가사를 두른 꼴이 흔하디 흔한 거리의 수행승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빔비싸라 왕이 사랑해 마지 않는 라자가하 시의 특징을 이루는 활기찬 소음과 온갖 빛깔과 넘쳐나는 냄새들의 소용돌이가 그의 주변 공기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우아한 걸음걸이 때문일까? 왕국의 화려함에 시선을 뺏기지 않는 태도 때문일까? 저 사람은 누구이길래 저토록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것일까?

 

 

그대들은 저 사람을 보아라. 아름답고 건장하고 청정하고, 걸음걸이도 우아할 뿐 아니라 멍에의 길이만큼 앞만을 본다.” – 출가의 경, 숫타니파타

 

빔비싸라 왕은 신하를 보내 이 청년의 뒤를 따르게 한다. 청년은 발우를 들고 차례로 민가를 돌며 탁발을 했다. 그리고는 도시를 빠져나와 외곽에 위치한 빤다바 산으로 향했다. 왕의 사신들은 돌아가서 이렇게 보고한다. “대왕이시여, 그 수행승은 빤다바 산 앞 쪽에 있는 굴 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사신들의 보고를 들은 왕은 그가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 한 복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깊은 굴 속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역시 흔들림 없는 고요한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왕은 이 보기 드문 청년을 만나기 위해 몸소 그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자신과 왕국을 위해 일하지 않겠느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며 태생을 묻는다. 고따마는 답한다.

 

“왕이여, 저쪽 히말라야 중턱에 한 국가가 있습니다. 꼬쌀라 국의 주민으로 재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씨족은 ‘아딧짜’라고 하고, 종족은 ‘싸끼야’라 합니다. 그런 가문에서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왕이여, 나는 출가한 것입니다.” – 출가의 경, 숫타니파타

 

 

“대왕이시여, 그 수행승은 빤다바 산 앞 쪽에 있는 굴 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빔비싸라 왕은 세상에 드문 한 고귀한 영혼을 알아보는 능력은 지니고 있었지만, 그 고귀함이 어디서 비롯되는 지는 몰랐던 것 같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구도의 길에 나선 이에게 다시 권력과 명예를 선물하다니 말이다. 이 날 왕은 호의를 거절당했지만 그 대신 평생의 지기이자 스승을 얻었다. 이렇게 출가의 경은 이제 막 출가한 스물 아홉 살 청년 고따마의 어느 하루를 스틸 컷처럼 선명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런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어떻게 남게 된 것일까? 그건 아난다 덕분이다. 고따마가 깨달음을 얻은 후 고향에 갔을 때 많은 귀족 청년들이 그를 따라 출가했다. 그중 한 명이 사촌 아난다였다. 붓다의 충실한 시자로 곁에서 들은 말씀을 고스란히 외워 전한 그 총명한 아난다 말이다. 어느 날 아난다에게 ‘싸리뿟따 등 다른 제자가 어떻게 출가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막상 우리 세존께서 출가한 이야기를 아는 이는 드물구나.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도 저 빔비싸라왕처럼 복잡한 도시의 대로를 유유히 걸어가는 청년 고따마를 보게 되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동쪽으로, 더 낯선 곳으로

   위의 경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가 되기 전 청년 고따마는 히말라야 산기슭 중턱에 있던 고향의 왕궁을 벗어나 동쪽 갠지즈 강 유역의 타국으로 향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번성한 나라인 마가다국, 그 중에서도 제일 발달한 수도 라자가하 시로. 구도를 위해 머리를 깎고 약속된 부귀와 쾌락을 버린 청년이라면 문명의 불빛과 거리가 먼 깊은 숲을 찾아 들 것 같은데 어째서 다시 환락의 도시를 찾은 것일까? 

   당시 인도는 철기문명으로 인한 가볍고 정교하고 값싼 농기구의 보급, 그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급증, 여기서 발생한 거대한 부(富)가 요청하는 상공업과 교역의 발달이라는 테크트리 위에 있었다. 도시는 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집결지였다. 오랫동안 인도의 정신과 정치의 토대였던 베다사상은 브라만이라는 사제 계급에 의해 독점되고 있었는데, 교역이 발달하자 세상이 열리게 되면서 독점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었다. 그간 브라만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에 대한 독점적인 지식을 지니고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신성한 제사를 지내는 대신 제 1계급으로서의 특권을 보장받아왔다. 그러나 세상의 부가 커지자 각 분야에서 돈과 힘을 소유하고 향락을 누리는 대상인과 왕들이 생겨났고 사제들 또한 그 부를 누리기 위해 제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사제들이 부유해진만큼 베다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더불어 신에 대한 믿음, 세계의 질서에 대한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혼란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법이다. 베다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온갖 새로운 견해와 사상이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돈과 사람이 모이는 도시 한 복판에서 가장 화려하게 개화했다. 구도의 길을 나선 고따마가 도시를 찾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출가한 청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배움이고 스승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도시로 가야한다. 중국의 현장법사가 인도로 구도 여행을 떠나고, 신라의 의상대사가 중국으로 길을 떠난 것처럼 학문과 사상은 사람이 모여 드는 도시에서 꽃을 피운다

 

구도를 위해 머리를 깎고 약속된 부귀와 쾌락을 버린 청년이라면 문명의 불빛과 거리가 먼 깊은 숲을 찾아 들 것 같은데 어째서 다시 환락의 도시를 찾은 것일까?

그런데 왜 고따마는 하필 라자가하 시로 갔을까? <출가의 경>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싸끼야 족은 꼬쌀라 국의 속국이었다. 꼬쌀라는 당시 인도에서 마가다 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의 하나였다. 싸끼야 족의 도시는 인도의 북중부에 있는 카필라밧투(지금은 네팔 령)이며 여기서 약간 서쪽에 꼬쌀라 국의 수도인 싸밧티 시가 있다. 반면 마가다 국은 동쪽으로 가야 한다. 인도의 문명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점진적으로 이동, 발달해갔다. 서쪽은 전통적이고 고향과 가까우며 보수적인 곳이고 동쪽은 낯설고 이질적이며 보다 개방적인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구도의 길을 떠날 때 어디로 방향을 잡을 것인가? 우리 또한 여기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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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Guest
moon彬

구도의 길은 고독하고 지겹고 힘든 것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붓다가 걸었던 길은 배움과 스승을 찾아 떠나는 생기있는 여행같아 보이네요!!
붓다의 여정이 궁금해지네요~~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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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맞아요, 구도의 길은 고독하다는 편견이 우리에겐 있지요. 하지만 배우려면 다른 존재와 만나야 하는 법!
물론 고독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는 지겹고 힘든 그게 아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생명수와도 같은 고독!
그래서 다음에는 그러한 고독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스승과 벗, 배움을 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붓다의 여정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거에요!
청년 붓다의 여행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