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란(감이당 금요대중지성)

天火同人

同人于野, , 利涉大川, 利君子貞.

初九, 同人于門, 无咎.

六二, 同人于宗, .

九三,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九四, 乘其墉, 弗克攻, .

九五,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上九, 同人于郊, 无悔.

동인의 괘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에 관한 괘이다. 나는 늘 이 주제에 꽂힌다. 타인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묻는다는 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묻는 동시에 인간 본연에 대한이해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질문에 묻고 답하며 살고 싶다. 동인괘가 제시하는 답을 한 마디로 줄이자면 동심(同心)이다. <계사전>은 군자가 “마음을 함께 하여 하나로 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르며 그 말에서는 난초와 같은 향기가 난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고 했다. 그렇다. 동인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일 것이다. 한데 이 아름다운 동인괘의 실상은 지독한 야욕과 음모, 피 말리는 경쟁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이게 대체 웬일일까.

먼저 잘난 사람, 친한 이와 짝짜꿍하는 건 동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먹을 것도 없고 돈 될 것도 없는 황야에서 만난 변방의 사람들(同人于野), 살아온 이력만큼이나 행색도 다르고 성질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의기투합하는 것이 동인이다. 시커먼 사내가 다섯이고 여자는 단 한 명. 그런데 보라. 이 와중에 육이와 구오가 운명적인 사랑 운운하며 눈빛을 주고받는다. 이제 동인이고 뭐고 다 물 건너갔다. 그녀와 제일 가깝다고 내심 들떠있던 구삼은 눈이 확 돌아서 풀숲에 군사를 매복하고 언덕에 올라 정찰한다. 나름 능력자라 자신하던 구사도 담벼락에 올라앉아 공격할 기회를 엿본다. 거친 변방의 사람들인지라 수틀리면 바로 판을 엎고 칼을 드는 것이다. 구오도 어제의 동지들에게 분노를 금치 못하고 울부짖으며 군사를 일으킨다. 결과는 구오의 승리. 구사는 구오의 기세에 진작 승복했고, 삼년을 기다렸다 덤빈 구삼은 대패하고 말았다. 하나의 목표를 놓고 펼쳐진 진검승부의 장은 이렇게 끝났다.

울고 웃고 싸운 끝에 만난 두 사람, 육이와 구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전력을 다해 겨룬 자들 간에 어쩌면 이제야 진짜 신뢰가 싹 텄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동인괘의 진짜 동인은 구삼과 구사와 구오, 이들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나의 과거 행태가 떠올랐다(나를 두고 다섯 남자 어쩌고 그런 얘기 아니니 안심하시길.) 나는 워낙 성격이 온순하고 평화주의자여서^^;; 싸우거나 경쟁하는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감이당에 오기 전 십여 년 간 생협활동을 할 때도 그랬다. 우리는 허구한 날 복작복작 모여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얘기했다. 벼룩시장, 각종 교육과 독서모임, 시의회참관, 동네운동회, 환경운동…일이 많았지만 원해서 하는 일이었고 사람 만나고 논의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인지라 크게 부대끼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잘 한다”거나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 날이면 고민이 되었다. 그게 그저 순수한 칭찬이든 질투심의 일단이든, 논의 내용 자체보다 내 태도가 두드러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의견을 강하게 내세웠던 날은 특히 불편했다. 그런데 나 잘하는 것만 싫었을까? 너만 잘하는 건 더 싫었을 것이다. 모두 똑같이 골고루, 싸우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함께 하기”란 이런 것이었다. 대립과 갈등이 생기면 나는 구오처럼 격분하여 싸우는 대신 입을 다물고 표정을 관리했다. 이기고 웃는 대신 의견을 철회했다. 몇 번인가 끝까지 정색하고 논쟁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참지 못한 자신을 미숙했다고 여겼다.

동인괘를 읽으니 분명히 보인다. 나는 평화주의자여서 안 싸운 게 아니었다. 솔직하지도 않았고, 상대를 믿지도 않았던 거다. “선호도이후소, 대사극 상우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 울부짖었다 뒤에 웃으니, 크게 군사를 일으켜 이긴 후 서로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동인괘 구오의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구삼도 구사도 대담하지만 군주인 구오가 계급장 떼고 한 판 붙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차다. 육이는 일편단심 구오만 보는 지조있는 여자이고 구오는 강력한 리더이니 모른 척 상황을 넘길 수도 있었으리라. 만에 하나 구오가 졌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속으로 욕망을 품은 채 겉으로만 점잖게 굴었다면 셋은 끝내 마음을 합칠 수 없었으리라. 그러니 최선을 다해 싸우고 만난 사람이 어찌 육이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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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Guest
moon彬

저도 ‘함께 한다는 것’을 ‘다같이 똑같은 힘과 마음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네요!!
그래서 무언가를 같이 할 때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부정하게 되고
힘을 너무 과도하게 쓰거나, 너무 적게 써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나랑 너무 다르다!!’라는 감정에 휩싸여 속으로 미워하고, 증오하던 저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이건 나를 지키려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는 태도라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공부를 해 나가면서 ‘싸워야 만난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받아들여지는 거 같아요~
실제로 친구와 싸우면서 친구의 이해되지 않던 행동들이 이해되는 신기한 경험도 있었구요!
나의 전제를 알고, 나의 전제를 깨고,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싸움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물길
Guest
물길

오오..문빈님의 강렬한 파토스가 전해집니다 ㅎㅎㅎ
실은 저도 소싯적엔 꽤 싸웠어요. 근데 아줌마가 된 후 어쩐지 그럼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제 다시 잘 싸우며 살려구요. 문빈님과도 함 붙을 날이 오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