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혜 숙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요즘 거의 매일 죽음의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이고 어떤 사고로 어떻게 몇 명의 사람들이 죽고 실종되고…등. 죽음의 양상은 2500년전 부처님이 계시던 때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친숙한 느낌으로 <법구경>의 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건 죽은 이들의 가족이 겪었을 고통과 관련해서입니다.

 

사대양의 물보다 많이 흘린 눈물

먼저 빠따짜라 이야기입니다. 빠따짜라는 인도 꼬쌀라국 싸밧티 시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으나 하인과 정을 통하고 집을 도망쳐 나와 살았습니다.

빠따짜라는 임신하자 당시 풍습대로 친정집으로 가서 출산하려 했습니다. 남자는 맞아 죽을 것 같아 거절합니다. 결국 그녀는 혼자 출발해 가다가 도중에 산통이 와서 숲에서 애를 낳게 되었습니다. 날씨마저 폭풍우와 번개와 천둥이 몰아치는 최악의 상황. 뒤쫓아온 남편이 급히 출산할 자리를 마련하려고 덤불을 자르다가 개미집에서 나온 독사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출산하며 피를 많이 흘려 얼굴이 노란 낙엽처럼 되었습니다. 남편이 뱀에 물려 자줏빛으로 죽어있는 것을 본 그녀는 두 아이를 품어 안고 친정집을 향해 갑니다. 허깨비 같은 몸으로 밤새도록 엄청난 비로 불어난 아찌라바띠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먼저 갓난아이를 맞은 편 언덕 위에 건너놓고 큰 아이를 데리러 다시 강물로 들어갔어요. 그녀가 강 중간에 이르렀을 때 공중에 독수리가 나타나 갓난아이를 낚아채려는 걸 보았습니다. 그녀는 훠이훠이 두 손을 들어 독수리를 좇는 시늉을 했지만 독수리는 갓난아이를 낚아채 가버렸어요. 건너편에서 기다리던 큰 아이는 어머니가 흔드는 두 손을 보고 ‘나를 부른다’고 생각하고 강물에 들어섰다가 거센 물결에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순식간에 남편과 두 아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녀는 무너지려는 몸을 겨우 추스르며 통곡하며 친정집을 향했습니다. 고향인 싸밧티 시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 집안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간밤에 심한 폭우가 몰아쳐 그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상인과 처자가 다 죽어서 이웃과 친지들이 오늘 화장을 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그나마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실성하여 벌거벗은 채 방황하며 통곡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미친년, 미친년”하며 쓰레기나 흙더미를 던졌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부처님이 계신 제따 숲에까지 오게 되었어요. “자매여, 정신차려라!”하자 빠따짜라는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 땅에 몸을 움츠렸습니다. 누군가 옷을 던져주자 걸치고는 사연을 말했습니다. 부처님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빠따짜라여, 이제 걱정하지 말라. 그대가, 사람들이,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하는 동안 아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비탄해하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이 훨씬 더 많아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법구경, 의 품)

이 말에 빠따짜라는 마음의 위로를 느끼고 비로소 고통을 덜 수 있었습니다. 왜 이 말에 그녀는 그토록 위로를 느꼈을까요. 사람들이 오랜 세월 윤회하며 흘린 비탄의 눈물이 지금 내 자식, 내 남편, 내 부모 형제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요?

 

아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비탄해하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이 훨씬 더 많아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흰 겨자씨를 구해오면 살려 주리

끼싸고따미는 결혼하여 애정을 듬뿍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녀가 시집온 이후로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낳았고 행복은 절정에 이른 듯 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할 즈음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때까지 끼싸고따미는 죽음이란 걸 몰랐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를 업고 살려달라고 돌아다닙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건 당연합니다. 그러다 한 현명한 자가 그녀를 부처님께 보냅니다. 부처님이라면 살려줄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부처님은 찾아온 끼싸고따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도 딸도 다른 어떤 사람도 죽지 않은 집에서 흰 겨자씨 한 줌을 구해오면 살려주리라.” (법구경, 의 품)

끼싸고따미는 집집마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발 저의 아이를 살릴 수 있도록 흰 겨자씨 한 줌 주세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어느 집도 죽지 않은 이가 없는 집은 없었습니다. 끼싸고따미는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됩니다. 왜 부처님이 이런 주문을 하셨는지를. 그녀는 돌아와 부처님께 말합니다. “겨자씨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한 집도 죽지 않은 이가 없는 집은 없었습니다. 아니 모든 집이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녀는 업고 다니던 죽은 아이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나만의 고통에서 눈을 돌릴 때

빠따짜라와 끼싸고따미의 슬픔과 비탄에 공감하지 못할 이가 있을까요. 자식은 핏줄로 유전자로 연결된 ‘나의’ 분신이자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의지처였을 겁니다. 사랑하는 만큼, 내게 주는 의미가 큰 만큼 그 상실의 고통은 비례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간 죽기마련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자식들도 아버지도 친척들도 그대에게 피난처가 아니다.(게송288)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윤회하며 사대양의 물보다 많은 슬픔과 비탄의 눈물을 흘려왔다는 부처님의 말은 부처님 자신이 빠따짜라 보다 더욱 깊고 넓게 그로인한 괴로움을 느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잃고 흘린 개인의 눈물은 한 개인만의 눈물이 아니라는 걸, 죽음의 문제 앞에서 인간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근원적인 고통이라는 걸, 부처님은 이미 몸으로 절절히 자각하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또한 마침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마음이 빠따짜라에게 전달되어 비로소 자신만의 고통에서 눈을 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끼싸고따미는 어떤가요. 자식을 살리기 위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동안 그녀는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제발 한 집이라도 아무도 죽은 이가 없기를! 그러나 그 어떤 집도 죽지 않은 자가 없는 곳은 없었습니다. 아 ‘죽음 없는’ 집이 없다니! 아니 나보다 훨씬 많은 죽음을 그들은 겪었다니! 도처에 널려있었을 죽음을 그때까지 왜 나는 보지 못했던가요. 아니 보았으면서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걸까요.

빠따짜라와 끼싸고따미의 이야기는 과연 ‘나만의’ 고통이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만의’ 고통이라는 협소한 에고, 그 집착에서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라는 거지요. 그럴 때 비로소 그녀들이 그랬듯, 자신만의 슬픔과 비탄이라는 진흙구덩이에서 한 발짝 빠져나올 수 있을 터입니다.

‘나만의’ 고통이라는 협소한 에고, 그 집착에서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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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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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Guest
moon彬

슬픈 일을 겪었을 때, 무언가 막힌 느낌이 들 때
주변은 다 괜찮은 것 같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만 같아
자신의 상황을 더 비관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거 같아요~그럴 때 저희는 시간성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네요~지금 당장은 나 혼자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긴 시간 속에서 보면 누구나 희로애락을 지나오며 살고 있잖아요~~

여와씨
Guest
여와씨

그렇죠. 누구나 희로애락을 지나지요. 그중 죽음과 연관된 감정은 좀 남다른 것 같아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맞닿아있기도 하고요.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아직 푸릇푸릇한 청년 빈군의 댓글을 보니 좋네요. 긴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