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연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관련한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정수기녀’가 되었다. 정수기 사건은 나와 같이 입사한 10살 어린 동기와 관련된 것으로, 나는 평소 동기가 정수기를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정수기 위에 올려져있는 컵의 물 새것으로 교체하기, 다 떨어진 커피랑 차 채우기, 물 버리는 공간 세척하기 등이 정수기 관리이다. ‘서무’를 맡은 동기가 비공식적으로 인수받은 일이지만, 그 친구가 매일 아슬아슬하게 회사에 출근하는 바람에 내 일이 되었다. 아무도 내게 그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왠지 내 역할만 같아서 내가 관리하는 날이 늘어 갔다. 나는 그 친구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표현은 하지 못하고 불만을 쌓아갔다. 에세이 시간에 사람들은 이 일이 심각한 고민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먼저 의아해했다. 아무나 하면 되지 뭐가 대수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사소한 문제다. 그런데 이 사소한 문제가 내게는 큰 고민이다. 우선 정수기 관리를 하면 하루를 불만으로 시작하게 된다. 이런 작은 일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내가 못나 보이고, 정수기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그 직원과 다른 직원들이 미워진다. 정수기를 관리하는 일은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문제가 나와 그 동기, 더 나아가 다른 동료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너무 가벼운데 내겐 너무 무거운 당신!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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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지 못한 문제로 고민하던 중, 『선악의 저편』에서 ‘허영심’에 대한 부분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거움이 허영심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귀금속을 즐겨하지 않으며 명품으로 치장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허영심이라고? 나도 약간의 단서만 있는 상태이다. 지금부터 니체가 허영심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정수기 관리와 허영심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기존의 가치에 복종하는 사람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면서 보게 된 나의 모습 중 하나는 내가 위계질서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는 상사가 내 생각과 반하거나 적절치 않은 지시를 할 경우 그것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다. 모두가 상사의 의견을 따르고 싶지 않지만 침묵할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반대 의견을 냈다. 그래서 스스로가 기존의 위계질서에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위계질서의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운 좋게 기득권에 탑승해 편익을 누릴 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즉 아득한 옛날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예속되어 있는 사회층에 속한 평민들은 타인들[주인들]이 평가하는 대로 존재하는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스로 가치를 정립할 줄 몰랐으며 그들의 주인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 이외의 어떤 다른 가치도 자신에게 부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오늘날에도 일반인들이 항상 자신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기대하면서 그것에 본능적으로 굴복하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격세유전의 결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선악의 저편』, 아카넷, 370쪽 

니체는 평민의 특징을 ‘타인이 평가하는 대로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평민은 기존의 가치에 예속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원래부터 그래왔던 것, 전통, 도덕 등 기존의 질서가 부여한 가치를 아무런 의심 없이 맹목적으로 따른다. 기존의 질서를 따르면 가장 대중적이며 안전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은 투쟁을 치러야 하며 그동안 누리던 편익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가치를 창조하는 자는 소수였고 가치를 따르는 평민은 다수였다. 하지만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는 자는 안전을 대가로 명령을 기다리며 복종할 수밖에 없다.    

 동기를 대하는 내 태도를 보니 나는 기존의 위계질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직급, 나이와 경험에 따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따르는 행동에 그대로 복종하고 있었다. 우선 암묵적으로 신입사원의 일이라고 정해진 질서를 따르니 나와 그 친구가 정수기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나이와 경험의 측면에서 보니 나는 그 친구보다 우위에 있다. 따라서 진짜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동기이다. 이것이 내가 복종한 질서인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동기는 이 질서를 흔들고 있었고, 이는 나이와 경험이 많은 내가 받아야 할 대우를 잃게 되는 문제로 다가왔다.    

동기를 대하는 내 태도를 보니 나는 기존의 위계질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적어도 회사에서의 나는 위계질서에 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정수기 관리는 그동안 내가 누리던 권력을 잃고 내 가치가 하락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퇴직 후 사회적 명예를 상실한 아버지들이 무능한 존재로 집에서 구박받으며 느끼는 허탈감, 내게 정수기 사건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사소한 일이 내가 기존에 누리던 권력과 존중, 내 위치가 하락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나는 ‘내가 너보다 높은데,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라고 부정하면서 한없이 무거워진 것이다.    

평판에 굴복하는 사람

 니체는 이렇게 복종하는 삶의 모습 중 하나로 ‘허영심’을 이야기한다. 허영심이라고 하면 물품으로 자신을 치장해서 빈곤한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런데 니체는 허영심을 ‘평판’과 연결시킨다. 타인의 평가로 자신을 채우는 것 또한 허영심으로 본 것이다. 물품이든 평판이든 원래의 나보다 좋게 평가받으려는 마음,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점,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 줄 모른다는 점, 그래서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허영심있는 인간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좋은 평판에 기뻐하면서, 자신에 대한 나쁜 평판에는 괴로워한다. 한마디로 수질 관리, 언제나 좋은 평판만 받고 싶어서 나쁜 평판에는 더 귀가 쫑긋거린다. 그래서 항상 타인의 눈길을 좆는다. 상대의 눈길이 내게 어떻게 내려앉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를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물품을 휘두를 돈이 충분하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돈이 충분치 못하다면? 사소한 일 하나에도 타인의 시선, 평판에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서 터져 나오는 저 가장 오래된 복종이 본능에 따라서 이 두 평판에 굴복하며 자신이 그것들에 예속되어 있다고 느낀다. 자신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도록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피 속에 남아있는 ‘노예’이며-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여성의 내부에는 아직까지도 얼마나 많은 ‘노예’가 남아 있는가! – 노예적인 교활함의 잔재다. 그러고서는 [자신에 대한 좋은 평판을] 자신이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 것처럼 즉각 이러한 평판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도 노예다.   

프리드리히 니체,『선악의 저편』, 아카넷, 371쪽 

 다시 정수기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정수기 관리는 내 경력에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쟤는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신입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봐 신경 쓰였다. 한편으로는 이왕 이 일을 하고 있으니 괜찮은 직원으로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일부러 누군가가 물을 뜨고 있을 때, 새로운 물을 채운 머그컵을 내놓기도 했다. 내 수고를 칭찬받으면 으쓱하면서도, 계속 칭찬 받으려면 이 일을 해야 하니 짜증이 났다. 동기에게 일찍 출근해서 (네가 막내니까) 물 좀 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를 꼰대로 볼까봐 말하지도 못했다. 좋은 평판에 굴복하고 불편함이 있어도 나쁜 평판을 받을까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내가 평판에 굴복하는 것은 복종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본 적이 없기에 스스로를 긍정하는 법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만들어주는 나의 가치, 평판에 예속된다.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힘을 쓴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문제와 대면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주인으로 이 상황을 만난다면, 동기에게 좀 일찍 출근해서 같이 정수기 관리를 하자고 말을 하거나, 아니면 이 일을 끝까지 무시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노예는 반동적으로 힘을 쓴다. 반동적인 힘쓰기는 문제와 대면하지 않는다.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상대를 악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힘을 쓰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한다. 나는 내 불편함을 말하는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동기와 직원들을 미워하는 것으로 힘을 쓰고 있었다. 능동적으로 힘을 쓰지 않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되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이 주인이 되고 나는 노예가 된다. 

무거움을 털어내기

 내가 기존의 가치에 복종하는 사람이라고,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니체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예속된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정수기 관리를 통해 드러난 내 모습은 노예의 민낯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인 힘을 쓰지 않고 타인을 비난하며 문제를 회피해왔다. 늘 기존의 가치에 복종하는데 익숙했고 적당한 이익을 누려왔기에 복종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가로 자신을 스스로 긍정하는 능력, 문제를 해결해가는 능력은 퇴화되었다. 그래서 평판에 예속되지 않을 능력 또한 부재했다. 결국 정수기라는 사소한 문제가 이토록 무거운 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정수기라는 사소한 문제가 이토록 무거운 일이 되고 말았다.

 예속은 무거움만 더해가는 우울한 삶을 만든다. 반동적인 힘만 쓰다 보니 동기와 직원들에 대한 미움이 쌓이고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면서, 내가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기회를 놓치고 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장점이 있을 텐데 스스로가 그 기회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나를 무겁게 하고 관계까지 왜곡시킨다. 관계를 맺어가는 우여곡절 속에서 내가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능력이 퇴화된다. 주인으로 사는 게 아니라 노예로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제 예속이라는 무거움을 털어 내고 싶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들을 조금씩 깨부숴 가면서 조금 더 가벼운 모습으로 나와 다른 이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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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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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문제를 대면하는 게 평판에서 벗어나는 길이었군요!
사소해서 더 바라보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더 세밀하게 잡아야겠습니다
정수기를 가볍게 하는 마음으로~ㅎㅎ

moon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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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허영심’이 ‘평판’과 연결된다는 게 흥미롭네요. 언제나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만 해서 머리가 비대해진 모습이 떠오르네요 ㅎㅎ 어떤 상황에서는 몸과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을 탁 터놓고 말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쁜 이미지로 비춰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머리로만 생각을 굴리고 있는. 그러면서 상대는 악하고 자신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저의 허영심도 떠오르네요~~!

만복
Guest
만복

세상의 평판에 굴복하는 것이 격세유전이라는 니체의 말이 너무 웃겨요…ㅋㅋㅋ
단순히 비싼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나를 꾸미는 것이야말로 진짜 ‘허영심’이었군요! 스스로 가치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더 궁금해집니다!ㅎㅎ

예민한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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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코끼리

보연샘 정수기 문제를 니체를 통해 풀었네요. 더운 여름에도 글과 씨름하고 있는 보연샘 보면서 자극받고 갑니다. 평판과 허영심, 무거움의 연결~, 샘의 인용을 통해 오랜만에 니체를 다시 만나 그것도 반가웠어요.

소민
Guest
소민

글 잘읽었습니다~
외부의 평판에 복종하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곧 ‘주인’이 되는 길 맞나요?^^
요즘 한참 소세키 글을 읽으며 고민중이었는데, 글을 읽으면서 소세키의 ‘자기본위’가 떠올랐어요.
니체의 주인과 소세키의 자기본위! 이렇게도 연결이 되네요~
정수기 사건의 결말이 궁금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