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1: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에서 스님의 기이한 행동이 이해가 안가요.

저는 개인적인 질문이 아니라 전에 불교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부분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 질문을 드려요. 고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이라는 한국근대 선승을 소개하는 책인데 거기에 경허스님에 대한 글을 읽었어요. 근데 그분이 하신 행동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게 현재 세상의 도덕·관습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셨더라고요. 원래 경허스님 하면 기이한 행동을 하셨다는데, 그 두 가지 행동이 뭐냐면 인제 경허스님 어머니가 계신데, 아들이 절에서 법회를 여니까 아들이 자랑스러운 거예요. 그래가지고 어머님은 진짜 너무 기쁜 마음으로 떡을 해가지고 열심히 머리에 이고 가셨는데, 딱 절에 와서 보니까 경허스님이 옷을 하나도 안 걸치고, 그냥 완전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앉아있는 걸 어머니가 보신 거예요. 어머니는 그걸 보고 굉장한 수치심을 느끼신 거죠. “아들이 왜 저러고 있을까?” 이해도 못하겠는 수치심… 경원 스님은 나의 이런 모습을 어머니가 보고 뭔가 깨닫게 해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 같은데. 그런 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도 그렇고 제 마음에 안 들고 그런 부분이 있더라고요. 저도 어색했어요. 왜 어머니한테 그렇게까지 하셔야 되나. 경허스님은 깨달으셨으면 어머니 시선에 맞춰서 왜 그 모습을 안 보여 주셨을까. 또 하나는 절에 불공드리는 한 예쁜 처자가 있었어요. 그 처자는 돈은 많으면서 맨날 술이나 먹고 구박이나 하는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그 처자가 결혼을 해서 불공을 드리러 안 오니 경원 스님이 그걸 알고 처자를 어떻게 다 수소문을 해서 그 처자와 정을 통한 거예요. 정을 여러 번 통하다가 나중에 꼬리가 잡혀서 그 집주인에게 거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맞고 나서 겨우 어떻게 잘 살아나긴 했다는 거예요. 그런 스님이 하는 기이한 행동이 저는 이해가 안가요.

 

정화스님: 이해를 못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뒤의 경우 같은 데는 감옥에 가야 되고. 앞의 경우도 경범죄 벌금을 받아야 되고. 그런데 이 사실은 책으로 전해지는 거지만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니까. 실제로 있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근데 앞에 예를 보면 이것은 인제 사실이 아니고 은유로 바꿔서 이야기한 거 같아요. 은유로 바꿔 은유로. 앞의 인제 옷을 벗었다는 것은 실제로 옷을 벗은 게 아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완벽하게 전도시켰다는 거예요. 이게 지금 나를 규정하고 있는 이 옷이라는 것이 그냥 옷이 아닙니다. 옷으로 사람을 볼 때는 그것을 전부로 해서 그 사람을 규정하는 어떤 장치가 되요. 머릿속의 생각이나 외부의 옷이나 지위나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옷에 해당되는데,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옷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다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만일 사실 이걸 표현하기 위해서 본인이 경범죄의 벌금 물 각오를 하고 했으면 모르지만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데, 그렇게 했다면 일상에서는 그렇게 당하게 되겠죠.

뒤의 두 번째는, 지금 여기의 여성분들이 이렇게 나와서 공부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월이 불과 몇 년 안돼요. 그때 여성분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거의 남편이나 그쪽 방면이죠. 그러니까 결혼이 갖고 있는 한 존재의 옥죔을 이렇게 풀어 주는. 은유로서는 그런 이야기가 가능한 거죠. 왜냐하면 불교에서 수행하는 것은 이것뿐만 아니라 수행을 이룬 사람들은 또 그렇게 안 살아요. 그래서 그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났으면 감옥에 갈 일이고. 은유로 일어났으면 가장 파격적으로 근본적인, 결혼이든 뭐든 존재의, 삶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주는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그다음에 책 읽는 작가, 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을 ‘길 없는 길’이라고 쓸 때 여러분은 아마 근래의 프랑스의 들뢰즈라고 하는 철학자가 ‘홈 파인 공간’과 ‘홈이 없는 공간’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홈 파인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앞에 나온 개인과 시대적 습속이 우리로 하여금 그 길로 가도록 요구하는 거예요. 근데 만약 조선시대에 파 놓은 홈이 지금까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여성분들이 나와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홈이 이미 메꾸어진 거죠. 그래서 그분은 아예 처음부터 홈이 없는 것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홈 파인 공간으로 가는 게 아니고 자신이 가는 길이 홈이 되면서 메꿔지는 길이에요. 길인데 메꿔지는 길이 있어. 그 뒷사람들은 또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거예요. 그게 경허스님의 삶을 ‘길 없는 길’로 표현을 한다면 들뢰즈의 표현으로 ‘홈이 없는 공간’, 길을 걷지 않는 분들이에요. 그러고 자기 길 조차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예요. 서산대사가 눈이 왔을 때 발자국을 함부로 내서 뒷사람을 현혹시키지 않듯이 자유스러운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본인의 길 조차도 메꿔 버리는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은유로서는 그런 일들이 가능하고 실제로 했다면 감옥에 가겠죠.

질문자2: 어떻게 하면 화가 날 때 자신을 잘 컨트롤 할까요?

결혼이 늦어 아기가 7살인데, 일과가 끝나면 체력적으로 힘들다보니 아이에게 잘해줘야지 하다가도 아이에게 자상하게 친절하게 안 되고, 잘해야지 참아야지 하다가도 짜증이 올라오는데…화가 날 때 자신을 컨트롤 하는 수행방법이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일단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안돼요. 힘들면 짜증나게 신체가 구조화 되어 있어요. 거기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라도 힘들면 짜증이 나는 거예요. 짜증나면 목소리 톤이나 행동양상이 달라져요. 거기까지 오면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짜증이 나기 전에 신체를 조율하는 거 뿐예요. 우리는 참고 참아. 힘이 들면 빨리 가고, 따로 설거지 할 것 없고, 남편이 와도 밥 차릴 필요 없고, 침대에 누워서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충분히 쉬어야 하는데 이걸 안하는 거예요. 그걸 하면 마치 “내가 지금 설거지가 저렇게 많이 남았는데 저걸 안하고 있으면 이 집안 일하는 여자로서 할 짓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그 설거지 하는 것보다 침대에서 한 시간 자는 게 백배 잘하는 일이에요. 남편이 왔는데 내가 애들하고 놀아주다 힘들면 관심 안 갖고 내가 두 시간 정도 잠자며 쉬는 게 백배 잘하는 거예요. 짜증이 올라올 정도 되면 내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빨리 30분이나 한 시간 전에 신체를 그렇지 않도록 훈련시켜야 해요. 그걸 넘어가면 여기 있는 누구도 그걸 감당할 사람이 없어요. 그걸 감당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 몸에 병들 때까지 가는 사람예요. 그렇게 가는 것이 아까 말한 대로 무지한 일이예요. 잘하고 병들어.

지금 7살 아기면 앞으로도 한 20년 가까이 케어를 받아야 되는데… 부모가 병들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하루 24시간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시간 중에서 하여튼 하나 짜증이 올라오는 지수를 잘 살펴가지고 “야 이거 넘어지면 내가 짜증날 때가 됐다. 네 인생 네가 살아라.”하고 그냥 누워야 되요. 7살 애한테도.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제 잘 돌보면서 짜증을 훈련시키는 거예요. 엄마만 짜증나는 게 아니고. 짜증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아들도 그런 상황이면 짜증 난 연습을 하는 거예요. 둘 다 잘하고 있으면서 짜증나는 훈련을, 짜증나는 인생을 사는 거예요. 뭐하려고 그렇게 살아요? 진짜 알잖아요. 한 30분만 있으면 짜증나겠는데 그럼 모든 걸 올 스톱하고 무조건 쉬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그 연습 안하면 고쳐질 수 없어요. 남편이 와서 해줘? 아이고 그건 되지도 않는 일이니까 바랄 것도 없고. 해주면 좋고 안 해주면 말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내 몸이 짜증에 가지 않을 정도로 빨리 빨리 훈련시켜야 됩니다. 그 때 내가 안하는 것이 굉장히 잘하는 일이예요. 아이가 특별히 갑자기 이상한 일이 있어가지고 안 할 상황이 아니면 해야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7살 정도가 되면 엄마가 그러고 쉬어 있어도 그 때는 애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 줄 필요가 없어요. “너는 네 알아서 살아라. 위험하지만 않으면 네 알아 살아라.”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본인 몸도 편안한 시간을 많이 갖지 않으면, 내가 괴롭고 애기한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질문자3: 사람들과 솔직하게 오픈해서 친해지고 선을 넘으면 칼처럼 자르는데 괜찮은가요?

계속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부분인데요. 제가 필요이상으로 굉장히 다 솔직하게 오픈해요. 저는 솔직한 게 좋다고 생각하고 거의 100개에서 99개를 그렇게 하는데, 그래서 굉장히 빨리 친해지죠. 그런데 상대방이 저를 그것을 가지고 이용하는 느낌이든다면 잘라버려요. 완전히 칼처럼 잘라버리거든요. 몇 년을 친했어도… 그러니까 여기서 제가 뭐가 문제인지.

 

정화스님: 문제없어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픈을 하고 싶은 사람은 다 오픈하고 오픈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하면 되요. 이 둘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판단근거가 전혀 없어요. 그 다음에, 아까 말한 대로 그렇게 해서 이용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안 만나야죠. 당연히 끊고 혼자 잘 살면 돼. 여럿이 꼭 있어야 잘 사는 사람이 있고. 혼자 잘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 문제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내가 이렇게 오픈했는데 네가 이렇게 할 수가 있어.”라고 하는 것 자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예요. 오픈 한 것 가지고 방금처럼 이용하는 놈도 있고 더 잘해주는 사람도 있고 그것은 그 사람들이 하는 몫이에요. 그래서 이때 내가 속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만이 내가 오픈한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이예요. 그렇지 않고 상대에게 “내가 이렇게 오픈했는데 나를 좀 알아줘.”알아주면 좋지만 안 알아줘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런 바람만 없으면 괜찮아요.

질문자3: 그런 바람은 없어요.

정화스님: 그러면 충분히 잘사는 거예요.

질문자3: 이용당했을 때 제가 약간 힘든 일을 몇 번 겪었거든요.

정화스님: 예. 당연히 안 만나야죠. 자기를 힘들게 하고 약간 이용하는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가족도 그러면 안 만나는 판인데. 친구까지야…

 

질문자3: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저의 어머니가 약사여래불을 너무 찾아다니셔요. 귀가 잘 안 들리시니까 자기 몸 낳게 해달라고. 근데 약사여래불 사찰만 찾아다니시는데 아무 절에나 가도 괜찮은 것 아닌가요?

정화스님: 어머니는 그것이 가장 재밌는 삶이여. 다른데 가면 그 느낌이 안와. 왜냐하면 자기가 생각해 놓은 설계도가 있잖아. 그 설계도 속으로 가야되지. 다른데 가면 그 느낌이 안 오는 데. 그래서 거기 가서 돈을 일천만원, 이천만원씩 내면은 문제가 크고 십만원, 이십만원 주면서 재밌게 살면 괜찮아요. 효험이 있건 없건 아무 상관이 없어. 본인이 가서 좋다하면 그걸로 효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은 불교에서 부처님들은 우리를 강제로 구원해주시는 분들이에요. 강제로. 여기서 “구원을 받고 싶다. 나는 받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해도 안돼요. 구해야 해. 왜냐하면 그분들이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어. 그런데 여기서 믿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누구라도 하겠다. 누구라도. 사실상 믿건 말건 공부하고 안 하곤 상관없이 불교이론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반드시 구원 돼버려 반드시. 약사여래불을 찾아가든 관세음보살을 찾아가든 아무 상관없어. 반드시 우리를 강제로 구원시키는 분들이야 강제로.

그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창하는 일본에 정토진종이라고 하는 종파가 있는데, 나도 젊었을 때는 30대 때는 그 말이 잘 안 믿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종파의 나랑 비슷한 나이또래 스님한테 “야 느그 종파는 그렇게 가르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라고 물어 보니까 그 분이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 엄마가 애기를 데리고 개울물을 건너가는 거예요. 징검다리 같은. 그런데 애기가 가다가 비틀비틀 하거나 아니면 무서워서 “엄마” 하고 부를 때, 어떤 엄마가 “네가 나를 믿어?”라고 묻는 엄마가 어디에 있어요? “내가 너를 구원해 줄 거냐? 믿나? 안 믿나?” 이거를 물어보는 거여. “야, 구원해줘, 구원해줘, 구원해줘 이것을 네가 30년 해야 되.” 이것을 30년 보고 있는 엄마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그냥 비틀하면 가서 잡고 “엄마” 하면 가서 껴안고 건너가는 거예요. 깨달은 사람들은 우리한테 “야, 네가 나를 믿는지 안 믿는지 한번 봐야겠는데~”이런 것이 없다는 거예요. 불교이론은 그래요. 그래서 그냥 엄마가 돈을 너무 많이만 쓰지 않고 돈 많이 쓰면 골치 아프니까. 많이는 쓰지 않고 재미를 찾아서 다니시면 “아이고 우리 엄마 저러면서 뭐 잘 사시네!”라고 보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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