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

가로줄을 인식하지 못하는 고양이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한 연구팀은 감각 형성에 대한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아주 어두운 실험실에서 몇 마리의 고양이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은 하루 중 22시간을 이 암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2시간은 세로 줄무늬만 그려진 방에서 보냈다. 이런 환경에서 5개월을 생활한 고양이들을 1미터 정도 높이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고양이들에게 1m 정도의 높이는 뛰어다니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가로줄이었다. 바닥에는 고양이들이 몇 달 동안 본 적이 없던 ‘가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들은 사육사(연구자)가 뛰어내리라고 하자 선뜻 뛰어내리지 못했다.

오랫동안 세로 줄무늬만 보면서 지낸 고양이들에게 가로 줄무늬는 보이지 않았다. 인식되지 못했다. 때문에 1m의 아래에 있는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자, 고양이들이 서있는 책상은 그저 막막한 절벽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고작 1미터밖에 되지 않는 책상에서도 뛰어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가로 줄무늬 바닥판을 90도 회전시켜 세로 줄무늬로 보이게 했더니 고양이들은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그제야 바닥이 인식된 것이다. 세로 줄무늬만 보아 온 고양이들은 가로 줄무늬를 감각하는 능력을 잃었다. 보통의 환경에서 생활한 고양이들은 가로 줄무늬, 세로 줄무늬, 30도 기운 줄무늬 등등을 감각할 수 있는 뉴런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로 줄무늬만을 보며 5개월을 생활한 고양이에게, 세계는 세로 줄무늬만을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되었다.

세로 줄무늬만 보게 된 고양이의 뇌 속에서는 가로 줄무늬에 반응하는 뇌세포가 거의 사라졌다. 이것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퇴화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뜻밖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기브스 한 채 몇 달간 지난 후, 기브스를 풀면 그 다리의 근육이 퇴화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상생활에서 가로 줄무늬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니, 가로 줄무늬를 인식하는 신경 세포(뉴런) 역시 활동할 기회가 없어졌다. 그에 따라 가로줄무늬를 인식하는 뉴런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실험에 참가한 고양이의 눈에는 가로 줄무늬가 그려지거나, 가로 막대기가 놓인 곳은 보이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공간이 되었다. 만약 가로막대기가 놓인 곳을 이 고양이들이 걸어간다면 가로막대기마다 걸려 넘어지는 엄청 두려운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가로 줄무늬가 아닌 세로 줄무늬를 보지 못하고 5개월을 생활했다면, 고양이들의 세계는 세로 줄무늬가 없는 세상이 된다.

각 고양이에게는 자기 눈에 보이는 것, 즉 뇌가 반응하는 세계가 세상의 전부였죠. 그러므로 세로밖에 못 보는 고양이에게는 가로가, 가로밖에 못 보는 고양이에게는 세로가 시각 세계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이케가야 유지지음,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123쪽, 은행나무 출판사

위의 실험을 인간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인간에게 해볼 수는 없다. 고양이들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고양이들의 경험이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바는 매우 크다. 모든 생명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감각하고 이 감각에 바탕하여 자신들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개별 생명체들은 모두 신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고양이들은 보여주었다. 실험에 참여한 고양이와 참여하지 않은 고양이는 가로줄을 만날 때 다르게 감각할 수밖에 없다. 고양이의 눈으로 보는 것은 같아도, 감각하여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경험이 감각인식을 다르게 만들고 있었다.

실험팀은 다시 고양이들을 서서히 가로줄무늬가 있는 공간에 적응되도록 생활환경을 꾸며주었고, 고양이들은 천천히 가로 세로줄 모두를 인식하게 되었다. 실험실에서는 세로 줄무늬의 자극만 있었고 이에 따라 세로 줄무늬만 볼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자극을 접하고 감각하자 다시 모든 형태의 선과 도형을 인식하는 뇌세포들이 증식하기 시작하였다. 고양이의 다양한 신체 경험이 고양이의 뉴런들을 다양화시켰다.

고양이들이 다른 환경에서 몇 달을 지내면서 감각하여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각자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환경이 다르다. 환경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의 감각에 따른 인식의 차이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로줄무늬를 경험하지 못한 고양이처럼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인식을 가지고 관계의 장에 들어선다. 이때 느껴지는 약간의 이질감, 혹은 뭔가 다른 느낌은 바로 가로줄무늬 경험이 없는 고양이의 마음과 같다. 이렇게 사람들 모두는 각자가 다른 경험과 감각인식을 가지게 된다.

 

내 몸이 감각하는 방식은 같지만, 인식하는 방식은 다르다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의 생명활동은 정(精)·기(氣)·신(神)의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위의 가로줄을 못 보는 고양이의 생명활동도 정기신의 활동이다. 이 고양이의 몸은 정(精)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의보감에서 정은 모든 물질의 기본을 이루는 에센스다. 정은 동물의 근육, 내장과 기관들, 뼈 등등의 물질적인 모든 것들을 만드는 기본 물질이다. 고양이의 모든 몸은 정을 바탕으로 정의 밀도와 강도를 다르게 제련하여 근육과 뼈와 내장이 만들어졌다. 정으로 만들어진 고양이의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 바로 기(氣)의 활동이다. 고양이들만의 보는 방식, 듣는 방식, 먹는 방식, 걷는 방식 등등은 고양이들의 기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고양이들은 고양이들의 몸을 움직이는 기 활동 방식이 있다. 고양이가 고양이로서 보고, 듣고, 야옹거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고양이들의 공통된 기의 활동 때문이다. 고양이의 기 활동과 인간의 기 활동은 다르기 때문에 고양이와 인간은 다르다. 하지만 고양이의 몸과 인간의 몸을 기능하게 하는 것이 기(氣)라는 점은 같다.

이때 각각 개별 고양이만의 정신활동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신(神)이다. 고양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볼 때 고양이는 다 똑같은 고양이다. 하지만 고양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사람에게 고양이는 각자 자신들의 특이성을 가진 단 하나의 고양이이다. 이처럼 각 개별 고양이의 특이성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신(神)의 작용이다.

신은 생명력의 표현이다. 신은 생명력이 드러난 것이므로, 그 자체는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다. 신은 그 사람의 형(形, 꼴)과 색(色, 얼굴빛 등의 색)과 태(態, 몸짓)를 통해 드러날 뿐이다. 박석준 지음, 『동의보감, 과학을 논하다』, 349쪽, 바오출판사

사람은 모두 정으로 만들어진 몸을 가졌고, 이 몸을 기 활동으로 움직이며 생명활동을 한다. 또한 신(神)으로써 자신만의 생명력을 드러낸다. 모든 생명들이 그러하다. 고양이가 고양이로 개가 개로 사람이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생명력이 표현되어 개별 형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개별의 사람들이 다 다른 사람들로 인식되고 그 사람마다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생명력, 즉 신(神)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의 다른 생명력은 그 사람의 신체의 형태, 얼굴 색, 그리고 그만의 고유한 태도로 드러난다. 생명력인 신은 고정된 물질로 나타나지 않고, 움직이는 생명의 흐름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사람과 모든 생명들은 정기신을 기본으로 생명활동을 한다. 정이 신체를 구성하고, 신체의 각 기관들은 기의 작용으로 활동한다. 더불어 사람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다. 각자의 환경 속에서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기능적인 방법은 같다. 기 활동으로 감각하는 기능적 방식은 같지만, 그 감각을 바탕으로 인식이 만들어지면서 구성되는 신(神)은 다르다. 각자 다르게 구성된 신은 자신 앞에 펼쳐지는 일상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같은 것을 보는 기능적 방식은 같지만, 보고 난 후 해석하는 인식체계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같은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게 된다. 각자의 신(神)이 다른 환경 속에서 감각하고 인식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세계라는 보편성과 자기만의 세계라는 특수성이 중첩된 일상이 자기 앞에 펼쳐진다.

 

요가의 수련은 망상집중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가로 줄무늬가 없는 환경에 적응한 고양이처럼 인간은 야생의 자연 속에서 생명유지를 위해 감각하고 인식하는 자기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왔다. 공룡이 마구 출몰하던 쥐라기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며 덤불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상황에 따라 숨거나 달아나거나, 맞서 싸울 준비“(릭 핸슨 지음, 『붓다 브레인』, 69쪽, 불광출판사)를 하며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해 왔다. 이렇게 살아남은 우리의 조상들은 ”그 대가로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엄청난 주의를 유전자에 심어 놓았다.“(릭 핸슨 지음, 『붓다 브레인』, 69쪽, 불광출판사) 살아남은 우리 조상들의 신(神), 즉 정신활동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움직이면 바로 경계하고 주의하라는 활동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 정신활동은 여전히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중요하게 남아있다. 하여 우리 정신활동의 내용은 부정적인 것에 유난히 집중한다. 사람의 정신활동-신(神)-의 내용 중 많은 것들이, 바로 부정적인 경험을 다시 떠올려보는 과정이다. 부정적인 사건을 떠올리면서 앞으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다른 경로를 찾아보고, 고민해보는 과정을 거친다. ”미래의 사건을 시뮬레이션하는 것 역시 우리 조상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을 위한 비교를 가능케“(릭 핸슨 지음, 『붓다 브레인』, 71쪽, 불광출판사)했다. 여러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비슷한 상황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생존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신(神)의 활동은 끊임없이 자신 안의 정보를 가지고서 이리 저리 펼쳐보고 전개해보고 그 과정을 통해서 다음 행동을 어찌할지 계획해보는 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활동을 이어받아 현재를 사는 우리들도 생각들이 끝없이 펼쳐지며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헌데 현재의 우리들은 생존이 매우 위협받는 상황 속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션이 멈춰지지 않고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 생존이 아닌 사회적 성공과 자기 주변의 관계 등등을 위해서 여러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여전히 정신활동은 펼쳐지고, 계획되고, 예상하고 다시 다른 경험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거기서 펼쳐진다.

정신활동으로 펼쳐진 자기 안의 상황들은 사실 실재가 아니다. 가상현실이다. 매우 몰두하게 되면 마치 자기 안에서 영화가 상영되듯이 지나간 경험과 미래의 행동양식이 겹쳐져서 펼쳐진다. 이때 자기 앞의 일상이 문득 사라진다. 지난 추억 중 즐거웠던 것들은 보다 더 즐겁게 상상되어지고, 힘들었던 일들은 더욱 고통스럽게 펼쳐지기도 한다. 기억은 한 번 떠올려지면 현재의 자신의 기운과 다시 섞이게 된다. 하여 현재의 기운과 섞인 기억으로 수정되어 다시 재기억 된다. 지나간 과거는 그렇게 자기 안에서 증식된다.

신의 활동이 끝없이 펼쳐지고 새롭게 전개되려고 하는 것이 주요한 속성이라는 것을 기원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알아챘다.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정기신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 놓은 『동의보감』에 신(神)은 고요해야함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신은 사유, 지각, 감정 등 정신활동 전체를 의미한다. (중략) 신은 대체로 고요함의 덕목을 가진 정신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안도균 지음,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105쪽, 작은길출판사)

정은 물질적 토대로 음적인 성질을 갖지만, 신은 비물질적이고 무형적이라서 양적으로 활발하게 흩어진다. 그런데 정신이 그렇게 양적으로 끝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면 분명 망상과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본성은 흩어짐이지만 신의 미덕은 고요함이 된다. 안도균 지음,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105쪽, 작은길출판사

우리 몸의 질료는 정이다. 정은 기가 있어야 움직인다. 때문에 몸 자체는 정으로 움직이지 않기에 동의보감에서는 음적인 것으로 본다. 정으로 만들어진 몸이 기의 활동으로 움직이면서 감각하게 되면, 신의 활동으로 인식이 일어난다. 신은 “펼칠 신(伸)”으로부터 한자의 글자가 유래했다. 하여 정신활동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본성이다. 움직이는 것은 양적인 것이다. 음인 몸과 양인 신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 상태가 바로 사람이다. 동의보감에서도 신은 펼쳐지려하는 것이 바로 본성이라고 말한다. 신의 활동으로 우리의 정신활동은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가 바로 이어서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은 곧 지나간 과거의 어느 지점과 결합되어 한편의 영상이 펼쳐진다.

신(神)이 끝없이 펼쳐질 때,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일상은 사라지게 된다. 펼쳐지는 신의 세계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인식되어 저장된 기억들에 근거하여 상영되는 자기만의 세계이다. 가상의 세계인 그곳에서는 자신만의 많은 믿음들이 불쑥 불쑥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앞의 가로줄무늬를 경험하지 못한 고양이가 가로줄은 없는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과거를 떠올리며 미래에 발생할 일들을 대비하는 생각 중이라면 고양이의 미래대비전략은 전혀 소용이 없다. 현실세계에는 가로줄이 수도 없이 출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정신활동이 펼쳐지는 순간들도 대체로 이와 같을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는 한 번도 같은 기운을 반복한 적이 없다. 헌데 자신이 경험한 인식과 감각에 근거해서 외부 세계에 대한 대비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신이 끝없이 펼쳐지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망상 혹은 가상현실 속에 자신을 그대로 놓아두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몸이 상하게 된다. 양은 음과 함께 활동하기 때문에, 양이 너무 지나치게 펼쳐지면 음이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게 우리 몸은 질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때 신(神)의 본성의 펼쳐짐 속에서 신의 미덕인 고요함을 연습하는 것이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요가를 오래도록 수련한 요기들은 알았던 것 같다. 요가수트라 제 1장 제 9절에 망상은 제어되어야 할 마음작용이라고 나오고 있다.

제 9절/ 망상은 [대응하는] 사물 없이 말[에 의거한] 지식을 따르는 것이다. 68쪽, 이거룡 지음, 『요가수트라 해설』, 선문대학교출판사

요가수트라에서는 말한다. 망상은 외부 세계에 대상이 없는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이라고…. 외부 세계에 일치하는 대상이 없는 말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는 관념이 생성된다. 예전에 보았던 비슷한 사물, 혹은 상황을 떠올리며 관념작용이 일어난다. 이런 것을 요가에서는 망상이라고 부른다. “망상은 명확치 않은 개념에 기인하는 마음작용”(68쪽, 이거룡 지음, 『요가수트라 해설』, 선문대학교출판사)이라고 말한다. 이 명확치 않은 개념도 관념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자신 안의 여러 기억과 지식과 경험들을 섞어서 이런 저런 추측과 추리가 이어진다. 이러한 상태를 요가에서는 망상이라고 부르며, 망상의 상태는 제어되어야 할 마음작용이다.

요가의 수련은 망상을 집중으로 바꾸는 수련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요가를 수련해온 사람들은 신의 펼쳐짐으로 인해 망상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들을 많이 경험했다. 지금의 우리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신(神)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요가수련을 개발하고 지속해왔다. 또한 오늘의 우리들도 집중을 수련하기 위한 도구로 요가를 수련한다. 신(神)의 활동은 고요함 속에서 사유과정으로 들어가며, 자신의 경험을 보다 통찰하게 된다. 요가의 동작과 호흡을 통한 집중의 상태가 바로 신(神)의 고요함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끝없이 흐트러지며 이어지던 정신의 활동이 몸이 만드는 느낌과 호흡이 만드는 느낌에 집중한다. 이때 신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몸이 만드는 느낌들 속으로 들어간다. 정신활동이 몸에 집중된다. 자신의 몸과 호흡이 만들어내는 자리에 집중될 때, 망상은 사라진다. 망상이 사라지면 일상이 만드는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아가게 된다.

 

(1)연구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코린 블렉모어 교수팀의 실험.

(2)신(): 동의보감에 나오는 정((() 중 신()을 말한다. 신은 인간의 정신활동 또는 이를 관장하는 주재(主宰)의 의미를 지니며, 인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반되는 일체의 정신적 활동을 포괄하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 생명의 기초인 정()이 기()의 매개 작용을 통해 인체의 생명활동을 주관하는 신()으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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