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란(감이당 금요 대중지성)

5G의 시대와 무욕의 사상

불교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갈파한다. 생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까지야 좋다. 그런데 불교는 그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감각적 쾌락을 제어하라고 가르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모든 감각의 영역을 물샐 틈 없이 지켜야 하며, 되는 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지 말라’는 소극적, 부정적인 가르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비와 지혜, 선정, 비폭력, 무소유 등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실천해야할 영역도 많다. 아무튼 이런 불교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비유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솔직히 말해도 될지 모르겠어. 저건 분명 멋진 물건이기는 하지만 너무 크고 지불해야할 비용도 비싸고…. 굳이 사서 집에 가져다 놓고 싶지는 않아!’라는 얼굴들이랄까.

감각적 쾌락의 ‘즉각적’ 실현. 그것을 서비스할 뿐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이전보다 스무 배나 빠른 속도로 “초저지연성과 초연결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가상현실,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술”을 구현하는 5G의 시대 아닌가. 이런 휘황한 기술은 그러나,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감각적 쾌락의 ‘즉각적’ 실현. 그것을 서비스할 뿐이다. 가상현실이 무엇인가? 굳이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혹시라도 불쾌감을 유발할지 모르는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고 원하는 것만 쏙쏙 골라서 ‘경험’하는 것 아닌가. “시네마천국”에서 “가상현실체험”으로! 더 빠른 속도로 더 다양한 감각적 쾌락을 선사하는 기술의 현란함이라니!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이미 무의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불교는 행복한 종교

쾌락을 좇는 시대에 무욕을 말하는 불교. 이건 마치 가게에서 몸에는 별로 좋지 않지만 맛있는 과자를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와 ‘그건 안 돼!’라며 엄한 태도로 돌아서는 엄마를 보는 것과도 같다. 물론 우리는 아이의 기분에 동일시된다. 그러나 불교가 정말 그런 걸까? <대칭성 인류학>의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한 대담집에서 불교는 “행복한 종교”라고 말한 바 있다.(우리 MVQ의 “불교가 좋다”는 이 대담집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에게는 불교하면 어쩐지 행복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런데 서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는 인생의 기쁨을 부정하는 불행한 종교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동양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행복한 종교는 없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지 않습니까? 기독교가 훨씬 불행한 느낌이 들어요.

나카자와 신이치, 『불교가 좋다』, 146쪽

종교학자이면서 철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담 상대는 가와이 하야오라고 하는 일본의 임상심리학자인데 이 분 역시 심리학 뿐 아니라 종교와 신화, 과학 등을 두루 섭렵한 학자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대화는 이슬람이나 티벳 밀교, 일본 불교와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의 성인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같은 인류학자 등 시공, 종파, 학문의 경계 없이 종횡무진 넘나드는데 이들이 보기에 불교는 기쁨을 부정하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행복한 느낌의 종교라는 것이다. <불교가 좋다>라는 제목에는 두 사람의 불교에 대한 애정고백과 더불어 불교는 ‘좋은’ 것, ‘행복한 종교’라는 주장이 실려 있다. 한데 우리는 왜 불교의 가르침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지? 검은머리 서양인, 그게 우리??

‘이렇게 행복한 종교는 없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지 않습니까?

부정, 행복의 출발

정말 우리는 검은머리 서양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일본 불교와 한국 불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두 석학의 저 행복에 잠긴 듯한 대화를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짐작만 해야한다는 게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행복한 공감 대신,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질 쳐 사라질 ‘부정(否定)’의 방법이 유효하다. 이제 <숫타니파타>가 전하는 인연담을 한 편 보도록 하자.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베나레스에 짜뚜마씨까 브라흐마닷따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사개월에 한 번씩 아름다운 왕의 숲에 가서 쉬다 오곤 하였다. 어느 여름날, 왕은 신하들과 함께 더위를 피해 왕의 숲을 찾았다. 때마침 숲의 어귀를 지키는 꼬빌라라 나무에는 보석같은 꽃이 가득 피어 있었고, 왕은 나무 아래를 지나며 무심코 꽃 한 송이를 꺾어들었다. 그것을 본 대신들도 코끼리를 탄 채 한 송이씩 꺾었고, 뒤를 따르던 병사들도 한 송이씩 꺾었다. 행렬의 뒤에 있던 사람들은 꽃이 다 사라지자 나뭇잎을 꺾어 들었다. 마침내 그 빛나던 꼬빌라라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악인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꽃 한 송이, 그저 꽃 한 송이를 꺾어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왕의 욕망은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의 욕망에 방아쇠를 당겼고, 그 무심한 행위의 결과는 보다시피다. 모든 사람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는 라캉이 말했던가. 욕망은 들불처럼 번지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증식한다. 두려운 일이다. 여기에 나의 책임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숫타니파타>는 이 짧은 장면을 통해 욕망의 속성을 칼로 도린 듯 드러내 보인다. 그러니 이야기가 여기서 그쳤다면 불교는 과연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조금 더 계속 된다.

마침내 그 빛나던 꼬빌라라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다

저녁 무렵 왕이 유원을 떠나려다가 그 나무를 보고 ‘어찌 된 일인가.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보주와 같은 가지에 산호 같은 꽃이 피어 있었는데 지금은 꽃도 잎도 달려 있지가 않다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서 멀지 않은 약간 그늘 진 곳에 또 다른 꼬빌라라 나무가 서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서 잎만 무성한 나무였다. 왕은 두 그루의 꼬빌라라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꽃이 핀 나무는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순식간에 파멸을 맞이하기에 이르렀구나! 그러나 탐욕의 대상이 되지 않는 다른 나무는 여전히 푸르게 서 있다! 왕국도 꽃 핀 나무와 같이 탐욕의 대상이다. 그러나 수행승의 삶은 꽃 없는 나무처럼 탐욕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저 나무처럼 약탈당하지 않는다. 나는 꽃 핀 나무가 아니라 잎이 무성한 나무처럼 가사를 입고 출가해야겠다.’

순식간에 헐벗은 나무를 보고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를 알아차린 왕은 등골이 서늘했으리라. 아, 이건 아니구나! 여기엔 길이 없구나! 이러한 알아차림을 우리는 ‘부정(否定)’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접근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모두가 탐하는 대상이 되기를 염원해 마지않는 우리 문화권에 가장 필요한 태도가 바로 이런 ‘부정’이며 여기가 행복으로 가는 시작점이라면, 이 부정은 긍정보다 더 큰 무엇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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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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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꼬빌라라 꽃 이야기까지는 슉슉 재밌게 읽다가… 짜뚜마씨까 브라흐마닷따라(이름도 재밌어요!)의 깨달음을 보는 순간 “와 불경이 엄청난 책이구나”라고 저도 깨달았?어요ㅎㅎ 뭔가 장자의 “쓸모없음”도 생각났고요. 부정이라는 개념도 더 궁금해집니다!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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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토론 참여…짜뚜마씨까 … 우울할 땐 이런 이름들을 소리내어 읽어보길 권함! ^^
소민샘 말대로 불교와 장자는 욕망의 위험을 통찰하는데 있어서 정말 최고의 텍스트 같아~

moon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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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왕이 무심코 이쁜 꽃을 꺾었는데, 그 행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니!! 그래서 결국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됐다니. 한 사람의 행동 하나 하나, 마음 하나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야기인 거 같아요~ 작은 마음을 쓰는 데에도, 사소한 행동을 하는 것에도 섬세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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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토론 참여…그치? 무소의 뿔 경에 있는 인연담 중에 은근 생각할 수록 오싹한 이야기들이 많아.
예전엔 그냥 지나쳤는데 자꾸 읽다보니까 하나 둘 들어오더라구~~
그나저나.. 요즘 빈이의 댓글이 점점 핵심을 파고드는 것 같음!

이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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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저도 불교가 들여오기엔 너무 비싸고 큰 가구라는 생각이 들어서ㅋㅋ 라는 책에 관심이 갔었는데(읽진 않고 책장에만..;;)
불교가 행복한 종교일 수 있겠구나, 샘 글의 마지막 두 문단을 읽고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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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토론 참여…있잖아, 곧 초기불경 세미나가 시작된단다. ㅎㅎㅎ 행복의 나라로 오지 않으련? 드루와 드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