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대중지성 정리

질문자1: 친구와 오해를 풀고 연락을 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친구소개로 오늘 처음 왔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와 최근 대화하다가 가벼운 오해로 지금 7개월 정도 연락을 안 하고 있거든요. 근데 저는 되게 보고 싶은데 전화를 못하겠어요. 그걸 어떻게…

 

정화스님: 가벼운 오해로 자기한테 떠나간 사람은 거기서 생각하는 정도에 넓이나 깊이로 거기를 대한 적이 없어요. 그 사람 잡을 이유가 없어. 거기만 그냥 넓고 깊게 했지 그 사람은 그냥 좁고 얕게. 그러니까 거기가 사라져도 별로 아무 생각이 안나. 그런데 거기다 연연해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안 해도 되요. 그 옆에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되요. (일동 웃음)

질문자1: 근데 보고 싶다고 그러니까…

정화스님: 근데 웃기잖아요. 상대는 전혀 보고 싶지 않다는데 혼자 보고 싶다니까 얼마나 이상한 일이예요. 둘이 똑같이 하면 진작 만났지. 일주일도 안돼서 견디질 못해서 서로 보고 싶어서 그냥 헛소리 하면서 만나 가지고 진즉 풀었죠. 근데 한 쪽은 전혀 아닌 거지. 그런데 거기에 내가 연연한다는 것은 자기만 이상한거지. 그럴 필요 전혀 없어요. 그냥 나중에 만나도 그냥 전에 만났던 사람 정도지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러면 안 돼. 본인만 높고 깊게 했을 뿐이고 상대는 좁고 얕게 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여. “우리 관계가 뭐였다고 나한테 네가 그럴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이상하잖아요. 본래 그냥 놔두면 끊어질 그런 관계였는데 나만 아니었던 거지. 그런 인연은 그런 인연이니까 보고 싶은 것이 지금은 착각이지. 볼 수 있는 사람보고 좋아해야지. 그 사람은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 혼자 짝사랑 하면서 좋아하는 것은 인생을 괴롭게 살겠다는 거지. 날마다 보는 자기하고 가까운 사람들 좋아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지. 보지도 않는 사람 뭐 하러 좋아해요. 10년 20년이 문제가 아니에요.

질문자2: 딸과 떨어져있는 게 너무 싫어요.

안녕하세요. 질문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거든요. 저희 딸이 아까 앞에 분 얘기하셨던 것처럼 제가 참견하는 것을 싫어해요. 저는 참견하는 것을 좋아해서 딸의 일거수일투족이 항상 저의 레이더망에 있거든요. 얼마 전에 딸이 엽서 한 장 써 놓고 일본으로 여행을 갔었어요. 자기는 잘 지내다 오겠다고. 이번에는 교환학생으로 중국을 간대요. 5개월을 갔다 온다는 거예요. 제가 진짜 집에서 빌었거든요. “떨어져라! 떨어져라! 교환학생 똑 떨어져라!” 빌었는데, 근데 애가 두 군데 넣었는데, 두 군데 다 된 거예요. 저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우울한 거예요. 지금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진짜 울었어요. 저는 보고 싶어 가지고. 물론 딸이 성인이고 그런데 가슴 한편으로는 아들도 있는데 딸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 가지고 못 떼어놓겠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따라가야 될지.(청중 웃음) 멀진 않으니까 북경이니까,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거든요. 작년에도 한 달은 상해를 보내서 떨어져 있었는데 이번엔 저한테는 정말 굉장히 긴 기간이네요.

 

정화스님: 지금부터는 딸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지. 헤어지는 연습을.

질문자2: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려고 해요.

정화스님: 그럼 일주일간 울고.(청중 웃음) 그러고 난 다음에는 딱 조치를 정리해가지고 “네 인생 네가 살아.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라고 빨리 정리하는 생각과 정리하는 행동을 지금부터 일, 이년 안에 하지 못하면 일생동안 계속해서 괴로움에 사는 것이지. 딸을 굉장히 케어하는 훌륭한 엄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딸의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일을 좋은 일이라고 착각하면서 하고 있는 거야. 불교의 무지·무명이 그거라니까. 딸을 내 보낼 때가 됐어요. 이젠. 그런데 그걸 잡고 있으면 어긋나잖아요.

질문자2: 딸이 나갔어요. 지 스스로.

정화스님: 딸이 잘 하는 거지. 후손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려고 그래요. 그런데 부모가 못 떠나보내는 것은 부모가 짊어져야 할 고통이야. 본인이 만든 고통이여. 자식 때문이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아들·딸이 “이제 나 혼자 잘 살 테니까 잘 계세요.”하면 부모도 “알았어. 잘 가~”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는 거지. 그럼 이걸 못 하는 사람은 못한 만큼 자기 인생이 괴로워. 나는 이건 못 하는데 괴롭지 않을 인생이 있을까요? 있겠어요? 없어요. “나는 괴로워하면서 살겠다.” 여. 딸을 자유롭게 놓지 못하는 인생만큼 내가 괴로운 거예요. 내가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려면 빠이빠이를 잘 해야지.

그 다음에 이제 경제적으로 아직까지 네가 충분히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적당히 도와줄 만큼 도와주고 나머지는 네 힘으로 네가 알아서. 빠이빠이 했잖아요? 네가 네 일 알아서 살라고 자신한테 훈련을 잘 해야지. 아기가 25살까지 클 때까지 애기를 계속 케어를 하다보니까 머리 속에 아기를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처럼 하는 강력한 지도를 가지고 있는 거지. 그 지도를 수정하는 연습을 안 하면 그 지도대로는 도저히 앞으로 일어나지 못하는데.

어떤 집은 아들이 있는데 부모가 아들을 좋아해 가지고… 결혼해서 분가를 했는데 이 시어머니가 절대 아들 집에 안 가. 이유는 아들 집에 딱 가면 아들하고 같이 안자면 잠을 못 자. 그래서 아예 한번 가서 보고 그냥 와 버려. 마음이 별로 안 좋긴 하지만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그 꼬라지가 말이 안 되잖아요. 일 년에 한번 정도면 모르지만 그게 자주 되면 결혼한 아들딸은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지. 이것은 상당히 극단적인 예인데 거의 그거와 똑같아. 결혼해서 두 사람이 잘 살면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야지. 가서 어렸을 때 아들 품에 안고 자듯이 결혼한 아들하고 같이 자고 싶은 생각일 일어난다는 거야 자기가. 그래서 이제 안 간대. 거기 가면 그렇게 훈련되어 있는 자기의 기억의 배선망을 조절할 수가 없대요. 안 가는 것이 현명한 거잖아요. 일 있으면 가서 보고. 가서 보고 바로 와. 혼자 살아 그냥. 그렇게 해야지. 훈련 안 하면 서로가 괴로운 거예요.

질문자2: 5개월인데… (청중 웃음)

정화스님: 5개월이 됐든 6개월이 됐든 상관이 없어요. 결국 못 놔주면 본인도 괴롭고 딸도 괴로워. 문제는 그것이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모성이에요.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모성. 같은 모성인데 놓아서 자유롭게 하는 것도 모성이고 살피는 것도 모성이에요. 선택은 어떤 모성을 선택했습니까? 안 놓아주면서 서로 괴로운 것을 선택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무지라고 해요. 무지. 뻔히 알면서도 그러고 있는 무지.

빨리 같은 모성애인데 네가 클 때가 됐으니까 네가 가서 즐겁게 사는 것이 나를. 얼마나 훌륭해. 혼자 나가서 아이고 나가래도 안 나가는 아들·딸도 있는데 자기가 알아서 나가서 산다하니 얼마나 좋아. 훌륭한 딸을 둔 줄 아시고 훌륭한 엄마가 되세요. 5개월을 따라가면 말이 안 되지.

질문자2: 5개월 어학연수로 따라가겠다고… 나이가 먹어서 안 된다고…

정화스님: 다른 사람이 말하면 다 정신 빠진 여자라 그런다니까.(웃음) 다 큰 딸을 내보내면서.

질문자3: 직장동료의 행동이 신경 쓰이는데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나요?

이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제가 직장생활을 하는데 저희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전 직장에서 컴퓨터를 다른데 저당을 잡혔다가 그게 문제가 돼서 그만두고 이쪽에 왔다는 이야기를 저는 알고 있죠. 그런데 얼마, 한 일주일 전에 컴퓨터를 또 동일한 방법으로 지방에다 놓고 왔다며 일주일 째 안 갖고 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저는 그게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죠. 중간 중간에 물어 봤어요. “왜 분실되면 어떡하나? 큰 일 되지 않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제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 굳이 이런 신경을 쓰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 그러면서도 이 사람이 자꾸 신경이 쓰여서 이 사람이 자꾸 미워지는 거죠. 불편해지고.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하지?’ 약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화스님: 저런 걸 보고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합니다. 요즘 20대 전후 세대를 밀레니엄시대라고 분석을 해요 밀레니엄… 웹툰에 나온 만화입니다. 부장님이 20대 신입사원한테 자기들 옛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 때는 돈 주고 고생을 샀다.”라고 근데 그 얘기를 딱 듣더니 ‘그걸 왜 사요? 그래도 사야 되면 부장님이나 사세요.’ 그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어떤 거를 내가 생각해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지금 세대는 “웬 오지랖?”입니다. 웬 오지랖.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래서 거기는 선의를 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근데 서양 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있다. 선의로. 이렇게 돼있어요. 방금 선의가 결과적으로 나한테 뭘 남겼습니까? 괴로움을 남겼잖아요. 지금 세대는 돈 주고 “네~ 당신이나 사세요. 나 안사요. 다섯 시 땡 하면 나는 가요~ 왜 핸드폰으로 전화하세요?” 이런 세대가 온 거에요. 그래서 선의를 지금부터는 그렇게 쓸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안하면 내가 괴로울 일도 없어요. 얘가 물어보면 경험을 얘기해줄 수는 있지만 그러나 행동까지를 내가 규제하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거기서 월급을 주지 않는 이상 그 사람 말 들을 이유가 없는 거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고 괴로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질문자4: 수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술을 매일 한잔씩 먹는 게 안 좋은가요? 막걸리 한사발정도?

 

정화스님: 괜찮아요. 딱 그 정도를 조율할 수 있는 힘만 가지면 되요. 누가 뭐라든지 딱 끊을 수 있는 힘을 갖췄으면 되는데, 왜 그러냐면 술이 약간 들어가면 골치 아프게 사건, 사물들을 막 가리는 이 구분이 잠시 흐리멍덩해져요. 그래서 심리가 편안해져. 명상이 깊어지면 저절로 이 작용을 하게 되요. 그래서 아주 편안한 상태가 돼. 술은 명상이 깊지 않은 상태에서 거기를 살짝 느슨하게 해줘요. 이다음 단계를 조율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면 한잔 정도는 괜찮아요. 그러나 만일 그것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코드가 막 나오는데 내가 조율을 못한다? 이것은 독약이 되요. 그래서 그것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확실한지 안한지를 잘 살펴서 안 되면 끊는 연습해야 되고, 그런데 그게 잘 된다. 근데 내 이렇게 하면은 그나마 하루 24시간 중에서 최소 2시간은 행복하다. 그러면 해도 괜찮습니다. 네. 그래요.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