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스쿨정리

질문자1: 어떻게 분노를 다스려야 할까요?

저는 산책이나 운동, 일을 하거나 활동적인 걸 하고 있을 땐 괜찮은데, 공부를 하려고 자리에 딱 앉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온갖 잡념과 과거의 기억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히 크게 터질 것처럼 올라옵니다. 감정은 또 분노감이 그렇게 많이 올라와요. 그거를 억누르면서 이겨내면서 하고는 있는데 그 시간들이 굉장히 괴롭습니다. 이거를 어떻게 다스려 가야 할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네, 우선 분노의 특성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하는 나의 다음 걸음은 불안해요.’ 하는 요소와 겹쳐 있어가지고, 사람이 한 6, 7만 년 전에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언어 분별을 통한 시간 개념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하는데 예측한대로 미래가 안 되잖아요. 오늘과 내일과 모레가 똑같은 사건은 지구상에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예측된 대로 안 일어납니다. 예측을 하되, 동시에 뭡니까? 안 일어날 것에 대한 기분 나쁨이 쌓여 있어요. 그것이 나중에 불안으로 해석됩니다. 내일을 생각하는 순간 감정적으로 불안합니다. 그 말은 내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수만 년을 맞닥뜨린 거예요. 그래서 여기 있는 누구라도 그냥 그것을 대충 넘기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차이는 좀 있지만 내용상에서는 누구나 다 그런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그 불안에 대해서, 내가 분노에 대해서, “나는 왜 이래”라고 말할 수 없어요. 태어난 것은 몇 년 안 됐지만, 그 불안의 요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적 상속은 생물이 생겨난 저 먼 때부터 온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어요. 딱 앉으면, 오면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해야 돼요. 이런 것이 안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은, 내일도 앉으면 일어나는데 자기가 자기를 혐오하는 일만 하는 거예요. 내가 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어렸을 때 쌓여진 굉장히 많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가지고 종합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사건이에요.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에요. 

그 다음 두 번째는 “왜 그렇게 생각이 많이 나오는가 모르겠다.” 그랬잖아요. 한 가지로 생각의 강도가 높아지면, 다른 생각은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지금 엉덩이 한 번 느껴보세요. 엉덩이 느껴지죠? 제 말을 듣기 전에는 엉덩이 못 느꼈죠? 제 말을 들을 때 이것을 해석하는 정보 해석 흐름이나 엉덩이에서 올라오는 자기 내부의 위치 정보를 해석하는 정보가 똑같이 틀림없어요. 그런 귀에서, 머리에서, 다른 데서, 어디서 일어나는 정보가 막 계속 팥죽 끓듯 막 끓고 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어느 쪽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하는 것만 현재의 사건이 돼요. 나머지는 무의식이 돼요.

근데 무의식은 해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해석 하고 있어요. 끊임없이. 그 순간주의를 어디로 기울이느냐가 그 순간 하나의 사건이 돼요. 인지된 사건이요. 근데 앉아가지고 공부 할라고 하면은 방금처럼, 특정한 부위에 인지가 가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안의 모든 것들이 막 떠올라가지고 막 자기 색깔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것이, 앉으면 기본적으로 한 30분정도. 훈련이 된 사람은 좀 덜하고 훈련이 안된 사람은 기본적으로 30분. 왜 30분이냐 면은 안에 측좌액이라고 하는 뇌의 기관이 좌뇌, 우뇌 중앙에 이만한 콩알보다 작은 기관이 있어요. 어떤 것은 한 30분, 어떤 것은 앉자마자 재밌어서 내 할 일이라고 명령을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일은 한 30분쯤 지나야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라고 그때부터 서서히 어떤 곳에 주의를 보내기 시작해요. 그러면 점점 이게 좋아진다. 안되면 한 30분간은 할 일 생각하고 하든 말든 지내요. 그래서 안에 있는 측좌액이 ‘아 이것은 내 일이야! 해!’라고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그 일을 조금씩 조금씩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 다 그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본인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분노하는 것은 누구라도 내가 원했던 일을 많이 이루어졌다고 착각을 하거나 내가 원하는 일이 많이 안 일어났다고 착각을 해요. 사실이 아닙니다. 착각이에요. 왜냐하면 사건은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해석되는 대로 존재하는 거예요. 해석 되는대로. 똑같이 오는 건데 나는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왜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도 안 이뤄져’ 라고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거예요. 틀린 게 아니고. 어떤 사람은 맞지도 않는데 ‘아!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라고 착각을 하는 거예요. 둘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한테는 그것 밖에 없어요. 거기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나한테는 원하는 대로 하나도 안 일어나’ 라고 해석하는 통로가 강화돼 있어요. 다른 사람은 통로의 넓이와 강도에 따라서 분노심재에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분노가 많은 사람은 분노가 커졌잖아요? 그러니까 탐욕이 좀 줄어들어. 탐욕이. 별 욕심이 없어. 그런데 반대로 원하는 게 많이 이루어진 사람은 뭐가 됐습니까? 욕심이 계속 늘어나잖아요. 이 사람은 욕심의 길은 크고 깊고. 분노하고 탐욕은 두 개가 서로 침범하면서 그렇게 작용해요. 본인만이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자체가 아니에요. 분노가 일어나면 ‘아 나는 그렇게 해서 같은 사건인데 그것이 내가 원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성이 컸구나.’ 그 차이 뿐이에요. 틀린 게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내가 원했던 것이 일어났다’ 고 하는 것도 헛것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안 일어났다’ 하는 것도 헛것이에요. 어차피. 두 개 헛것을 어떻게 내가 접속하느냐에 하는 훈련의 방향 뿐 이예요. 훈련의 방향에서 한쪽은 분노와 성내는 아 내가 세상은 다 되는 것 같은 대로 욕망을 키워가는 거고,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분노를 키워가는 것이죠. 속성은 차이가 있지만 별 차이가 없어요. 둘 다 그렇게 일어나면 ‘아 나는 그렇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구나.’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는 것이 돼야 욕망이 주는, 탐욕이 주는 본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고 마찬가지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봐야 점점 분노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아무런 죄를 물을 수가 없어요. ‘나는 왜 이렇게?’ 할 수가 없어. 그래요 다음.

질문자2: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도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사람은 귀하고 천지만물의 연장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뉴스에는 끔찍한 범죄들이, 잔혹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미성숙한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성장한 어른들에게서도 상상할 수 없는 범죄들이 왜 일어나는 건지 그게 이해하기 어렵고, 또 그러면서 많은 스승님들 글이나 책들이 있는데 왜 그런 것들을 사람들은 저 또한 읽고 변화되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걸 보고 공부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자기의 노력과 욕심이라면 욕심이고 욕망이나 욕구가 있어야 그런 공부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조금 어려운 세상 속에서 또 이런 많은 사건들 속에서 저희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정화스님 : 우선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반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진화상 몇 만 년 안됐어요. 굉장히 늦게 생겼어요. 흔히 이성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굉장히 늦게 생겼어요. 신피질이 생긴 게. 그 다음에 감정이나 생존 욕구를 담당하는 부분은 엄청나게 오랜 전에 생겼어요. 오래 전에 생겼다는 것은 그 부분들이 힘이 세다는 말이에요. 아까 돈 같은 거 말했죠. 실질적인 돈은 그냥 이것은 명목화폐니까 ‘내일 우리 명목화폐 없앱시다.’ 하면 가치가 없어져요. 돈으로의 가치가 없어요. 블레어드의 책의 서평을 읽어봤는데 “돈은 가짜다. 금이나 은을 사라”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사회적으로 명목화폐를 만들어서 그것을 세금 등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가치를 갖는 것이에요. 아까 월급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잖아요. 월급이 어디를 건드리나 하면 이성을 건드리는 게 아니고 생존, 생존층. 옛날 우리 어른들이 지금 과장이나 부장들이 지금 젊은이들보다 일 하는 것이 10배를 더 옛날에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그 분들은 그걸 견뎌냈던 이유는 월급이 생존에 직결되는 가장 큰 사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에요. 또 그걸 나가는 순간 요즘처럼 돈을 적게 벌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옛날엔 많이 없었어요. 그것이 제일 오랜 전에 뇌에 생긴 가치인 생존을 건드려요. 그러니 그것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데 요즘은 돈이 그렇게 거기를 건들지 않는 거예요. 지금 젊은 사람들한테는 BTS가 훨씬 더 강하게 하지. 그냥 내 돈 가지고 쓰는 거예요.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아주 오래전에 생긴 뇌는 틀리고 옳은 것은 상관없어요. 자기 판단 하에 내 생존과 문제가 대입하면 거기에서 공포 등을 발현시키는 능력이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어요. 이것을 반조해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불쑥불쑥 나와요. 특히 청소년기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전두엽 중에서도 전전두엽입니다. 전전두엽은 신경세포가 정비가 안돼요. 그래서 엄마아빠처럼 세상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도 여기가 정비가 안돼서 훨씬 오래 생기는 뇌가 ‘싫어’라고 말하면 그냥 막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사춘기에요. 이것은 철저히 완성되긴 하지만 완성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훈련을 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이 훈련이 대체적으로 다 잘되어있어요. 그런데 특정한 사람들은 마치 사춘기처럼 훈련을 잘못해가지고 그런 끔찍한 일을 하는데 “별로 뭐 이래”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인류가 현명하긴 한데 현명함을 담당하는 뇌가 생긴 지가 그렇게 오래 안됐고, 두 번째 오래 안 된 뇌를 그렇게 쓸 수 있는 훈련을 전체적으로 하지 않아요.

실제 가장 기본은 뭡니까? 정부에서 노동자들이 데모하면은 10여 년 전, 20여 년 전 뭘 했습니까? 그 노동조합들한테 전부다 형사적 책임 외에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물게 해요. 손해배상을 물리는 이유는 돈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최고 권력자들이 “너 그 일하면 죽어”라고 하는 공포심을 주어서 전부 다 위축되게 만드는 거예요. 정부가 돈을 뜯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강성운동이라고 말하잖아요. 전체 노동자 중에서 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는 10% 밖에 없어요. 90%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자체가 아예 없어. 강성이냐 아니냐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돼.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다니까. 왜 그렇게 만드느냐하면 방금처럼 훨씬 오래된 뇌에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을 만들면 전두엽이 함부로. 그런 것처럼 아주 법률대로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짐승이 가장 강력하게 하는 일을 권력자들이 하는 거예요.

개인도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반조하는 능력이 생겨서 ‘사피엔스’라고 지혜로운 종이 지구상에 났다고 하는데 그 힘은 그리 세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6천~8천 년 전 사이에 문화라고 하는 것이 많이 생기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보다 100년, 200년, 300년 후대들은 이런 문화의식을 동반해서 자신을 비춰보는 힘이 계속 세져가지고 이런 일을 덜 할 거예요. 지금 보면 매일매일 뉴스에 굉장히 이런 일이 많이 나오니까 살기가 계속 나빠지는 것같이 보이잖아요.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밟혀진 모든 통계를 가지고 계산해 봤을 때 거의 이런 식으로 줄어들었어요. 방금처럼 사회 전체가 개인이 자기를 반조하는 힘과 사회 전체가 반조하는 힘이 계속 늘어나가지고 옛날같이 감정과 생존에 어긋났다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는 행동이 이렇게 줄여들었어요. 지금이 지구상, 인류역사상 가장 적은 범죄시대에요.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반조하는 능력이 엄청 커가는 사건이니까 희망적으로 봐도 될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그리고 또 뭘 물어보셨죠? 공부요?

질문자2: 공부하는데 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정화스님 : 공부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컴퓨터,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는 일을 익혔지 문화라고 해서 언어를 만들어가지고 세상을 언어적 정보로 해서 반조한 역사가 몇 천 년 안돼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그대로 선배로부터 상속받지 못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컴퓨터를 만들고 AI를 만들 때는 뭘 위해서? 우리가 못하는 걸 중심으로 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애들은 그냥 던져주면 계산 잘해요. 2550 곱하기 3000 하면 당장 머리가 안 돌아가죠. 그런데 그 애들은 그 일을 하도록 훈련시킨 애하고 똑같아요. 지금 이런 공부는 언어 문자가 형성되고 나서 인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에 너무 바빠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 인류가 일로부터 해방이 되니까 인류가 드디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지적 훈련을 본격적으로 하는 시대에 접어든 거예요. 즉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건 무조건 어려운 일이에요. 왜 어려운 일입니까? 물려받는 것이 아니에요. 공부하는 능력은 물려받았지 공부하는 내용을 물려받지 않아요.

근데 앞으로는 이제 이런 것들을 생물학적으로 전승하기 어렵고. 엊그저께도 전기차 만드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이 있잖아요. 그 사람의 주장은 뇌에다가 이런 정보를 그냥 심자고. 뇌를 인간의 뇌 플러스 AI의 뇌로 만들자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할 수 있답니다. 아주 가는 연결을 해가지고 뇌신경 세포를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거예요. 앞으로는 이 일이 어떤 사람이 목숨 걸고 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많이 나와요. 지금도 칩을 심어놓은 사람이 한 50만명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병증이 있어서 50만명인데. 그래도 뇌가 통증 세포가 없어가지고 아무렇지 않아요. 그러면 아주 가는 실을 넣어가지고 뇌의 신경지도 하나하나에 조율한 신경망들을 인공적으로 조율해서 사람 플러스 뛰어난 AI가 합쳐진 뇌를 만들자 그래요. 그때가 되면 방금 같은 일들을 수월하게 하는 거예요. 100년이나 200년 걸리겠지만.

그런데 어려운 일은 그 전에는 이런 게 별로 필요 없었어요. 좀 전에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지금 직관 적으로 사는 세상에서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직관적으로 살다보니까 안에서 자기가 직관적으로 보는 것이 사실인양 착각이 많이 일어나니까 착각을 통해서 사물 사건을 잘못 해석 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만약 그래도 요즘처럼 일을 안 하고 지낼 수 있는 시대적 사건이 없었다면 모르죠. 그래서 앞으로는 인간은 노동이 해방됐다는 말은 공부하는 인간이 저절로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에요. 지금도 그런 일을 하는 대 그런 건 별로 해보지 않아서 어려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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