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5)

Moon 명(청스, 의역학)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헤어질 때 했던 말이 있다. “넌 왜 하고 싶은 게 없어? 하다못해 같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다 좋다고만 하잖아.” 만나는 동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했던 나대신 모든 결정을 대신해야 했던 그.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한꺼번에 표출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난 후,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막상 내가 나서서 뭔가를 결정한 경험은 없었다. 그냥 다 괜찮은데…, 딱히 별 고민이 없었던 나에게 그 말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하나? 호불호가 강하지 않은 성격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리하야, 각종 심리 검사를 동원했다. MBTI며 애니어그램 등, 하다못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리스트까지 작성해보았다. 그래도 나의 결정 장애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선택의 늪에 빠지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오늘 뭘 먹지를 고민하며 맛집을 검색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며 더 이상 상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옷 하나 사기도 힘들다. 맘에 드는 옷이 나올 때까지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격 비교를 한다며 같은 상품을 가장 싸게 파는 곳을 찾아서 또다시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쇼핑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가.성.비이지 않은가. 이렇게 하다 보니 밤늦게 뭐 하나 사려다 보면 새벽에 잠들기 일쑤다. 결국, 다음날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하다. 왜냐? 가성비에 내 시간과 체력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상품을 고를 때, 1부터 10까지 내가 원하는 제품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더보기]에 가려져 아직 보지 못한 리스트 중에서 나에게 찰떡같이 맞을 상품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을 굴린다. 옷 색깔을 고를 때도 머스타드냐, 레몬이냐를 따지고, 배송비가 붙나, 안 붙나를 치밀하게 따진다. 결제를 하려고 보면 갑자기 5만 원 이상 할인쿠폰이 나온다. 장바구니 금액은 4만 5천원! 헐~ 다시 고민의 늪에 빠진다. 5천 원짜리 상품을 찾기 위해 다시 전선에 뛰어든다. 재빨리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다면 결제 성공!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쇼핑할 기력도 없다. 마음속에서 짜증이 벌컥 치민다. 이런 짓을 왜 하고 있냐는 의문이 올라온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인터넷 창을 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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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뭘 먹지를 고민하며 맛집을 검색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며 더 이상 상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나의 정기신(精氣神)을 모두 쏟아 고른 상품이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택배기사님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받은 박스를 열고 상품을 보는 순간,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내가 봤던 화면의 상품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모델이 입고 있었을 때는 그렇게 예쁘더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옷들과 매치시켜 보며 괜찮다고 합리화한다. 절망스럽던 마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 애쓴다. 온갖 머리를 굴려서 고른 상품이 정작 불만족스러울 때가 많다. 구매한 상품과 비교했던 상품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거 살걸! 아쉬움에 몸부림친다. 하지만 모델이 입은 옷의 이미지만을 비교하며 잘못 골랐다고 한탄할 뿐이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정작 옷을 입을 사람인 나의 체형이나 활동성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는 보통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을 보고 ‘결정 장애’, 혹은 ‘선택 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는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problem)’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존재를 건 고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민을 늘 하고 있다. 바로 식당에서 말이다! 메뉴를 선택하는 것조차 크나큰 고민이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를 놓고 신중하게 고민한다. 뭘 먹을지 그렇게 고민해야 하나 싶지만, 실제로 그러고 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짬짜면과 양념반, 후라이드반이 나오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하는 것 중 어떤 것도 절대 놓치기 싫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그냥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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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 중 어떤 것도 절대 놓치기 싫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그냥 할 수 없다.

우리 앞에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놓여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경계는 매우 뚜렷했다. 정규직, 평생직장, 가족, 국가 등 뚜렷한 가치관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게 유동적이다. 기업은 국가를 넘어 움직이고, 노동환경, 가족제도는 계속 변하고 있다. 태어나면 신분이 결정되어 있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이상향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하인츨 마이어는 ‘이제 계획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성공과 이미지 관리 혹은 소비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얼마나 많은 효용을 창출한 것인지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결정장애 세대』, 올리버 예게스, 미래의 창, p.42)

행동 하나도 쉽지 않다. 인터넷 쇼핑에서 옷을 고르듯, 인생의 모든 선택지를 다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행동을 골라야 할 것 같다.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것을 이루지 못한 개인에게 그 책임을 온전히 전가시킨다. 이제 청년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끝에서 맞이하는 좌절감은 더 크다. 그래서 우리는 ‘무나니스트(무난과 사람을 뜻하는 -ist의 합성어)’가 됐다. 무엇도 되기 힘들다는 걸 알았으니,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여전히 동일하다. 우리는 ‘그저 좀 행복한 삶이 아니라 그야말로 끝내주는 삶’(같은 책, p.28)을 원한다. 뭐하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힘들다. 그러면서 나대신 결정을 내려달라며 타로와 사주를 보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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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좀 행복한 삶이 아니라 그야말로 끝내주는 삶’을 원한다.

금(金), 숙살지기를 기르자!

목화토금수 오행 중에서 결단력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금’이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나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는 푹푹 찌는 무더위를 견딘다. 성장에 대한 욕구로 자신의 에너지를 강렬하게 발산하며 세상과 만난다. 하지만 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하나둘씩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오롯이 결실에 집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숙살지기(肅殺之氣)’의 기운이 필요하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엄숙하게 죽이는 기운’이란다. 살벌하기 그지없다. 쌀쌀하고 매서운 가을의 기운은 나무의 수분을 말려 줄기를 마르게 하고, 낙엽을 만든다. 그렇게 떨어뜨릴 것을 떨어뜨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활동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펼친 다음에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가을의 열매와 같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올리버 예계스가 『결정장애 세대』에서 말하는 ‘메이비족(Generation maybe)’인 우리는 숙살지기의 기운이 부족하다. 인터넷으로 세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접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눈앞에는 무한정의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 좋은 것만을 쏙쏙 골라서 다 갖고 싶다. 그러니 어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낙엽을 떨어뜨리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슬픈 일이 아니다. 결핍이 될 수도 없다.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거친다. 사계절의 좋은 것만을 골라내어 한 번에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상상만 해도 기괴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걸 원한다. ‘콜라 광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맛은 백 퍼센트 즐기면서 설탕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그런 걸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자기를 완벽하게, 전체적으로 ‘최적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같은 책,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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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떨어뜨리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슬픈 일이 아니다. 결핍이 될 수도 없다.

『동의보감』에서 금의 기운을 가진 장부는 ‘폐’다. 폐는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심장의 화기를 폐의 서늘한 기운으로 가두어 놓는다. ‘심장은 신지를 주관하므로 폐가 건강할수록 신지가 안정감을 찾는다.’(『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안도균, p.194) 또한 폐는 호흡을 통해 천기를 받아들인다. 하늘의 기운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소-이산화탄소의 교환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받아들인 천기를 아래로 깊숙이 내려야 한다. ‘들숨이 신장까지 내려가야 건강한 호흡이 된다.’(같은 책, p.199) 폐가 주도하는 이 작용을 바로 폐주숙강(肺主肅降)이라고 한다. 폐기가 약하면 호흡을 깊숙이 내릴 수 없다.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에 걸릴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유동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시대를 ‘리퀴드 모더니티(액체 근대)’라고 한다. 이러한 시대에 삶의 방향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어디서 주어지지도 않는다. 지금 청년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었다. 계속 변화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호흡이 가쁘다. 얕은 호흡으로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 쫓아가느라 헐떡거리기만 할 뿐이다. 금기의 숙강작용처럼 삶의 호흡도 단전까지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정보만을 가지고 삶을 꾸려나갈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들만 모아놓은 이상향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한다. 숨을 깊이 쉬면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주어지지 않은 방향에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건강한 폐기에서 ‘패기’가 나온다

20대 초반, 뭘 해도 불안했다. 대학을 가도, 돈을 벌어도,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잘했나, 못했나를 따지기 일쑤였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다 쏟느라 정작 행동할 타이밍은 놓쳐버렸다. 왜 이렇게 끊임없이 불안한지, 그것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동의보감』은 말한다. 변화하는 게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자연의 사계절은 매번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작년 여름은 너무 더웠다. 올해는 비교적 더위는 덜하지만, 매우 습하다. 항상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달달 볶게 만든다.

삶의 완벽한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봄의 꽃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열매와 겨울의 씨앗을 한꺼번에 얻을 수도 없다. 그러니 지금 나의 결정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완벽한 선택’이라는 것도 환상이지 않을까. 효율성을 따지느라 전전긍긍하며 자기를 옥죄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내 선택에 책임지고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한 폐기에서 ‘패기’가 나온다! 지금의 시대적 유동성을 끊임없는 불안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일 것인가. 선택은 지금 우리 청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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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을 따지느라 전전긍긍하며 자기를 옥죄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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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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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결정장애가 사실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놓치기 싫어서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게 명쾌하면서 재밌어요
이도 저도 못할 때, 대상을 분석하기보다 내가 무슨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봐야하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