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자 (읽생철학학교)

과연 『말과 사물』은 놀라운 책이었다. 진리는 연속적으로, 진보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는 것,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인식의 틀로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던 그것은 여하튼 ‘우리 시대’의 진리일 뿐이다! 이럴수가, 내가 그동안 배워온 것은 무엇이었나. 무지에서 진리로,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인 사회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이 역사 아닌가. 그런데 각각의 시대적 지반 위에 세워진 진리‘들’이라니, ‘단절’의 역사라니! 『말과 사물』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뿌리를 흔들었다.

『말과 사물』에서 이 새로운 진리를 뒷받침해줄 증거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즐거웠다.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그렇게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진리란 고정불변 된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또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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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내가 푸코를 이렇게 읽고 있었다니. 푸코에게는 각각의 앎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서 있는 지반에 질문을 던진다. 각 시대가 자신들만이 구성하는 진리를 갖듯, 푸코 역시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그는 방대한 자료들을 풀어헤치고, 그 사이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내며 완전히 다른 역사를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앎의 길을 내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 바로 여기가 내 공부자리여야 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살아오며 답답했던 일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 직장 일로 외국에 살던 시절 집에서는 영어식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성인이 되면서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놀고먹는 잉여적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각종 보험을 들었다. ‘생명’은 당연히 죽음과는 반대편에 있으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 외에도 나는 수많은 ‘당연히’들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분명 힘들고 혼란스러웠음에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니까.

푸코를 만난 이후 나의 ‘당연히’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당연히’들이 구성된 지반을 잘 보여주었다. 그 지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좇아 사느라 힘들었었다.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 잘못을 한 것 같았었다. 조심조심 ‘당연히’들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는? 절대적인 것도 아닌 것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네. 괜히 피곤하게 살고 있었네. 그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되겠군. 신난다!

그렇게 나는 멈춰섰다. 편안함 위에, 푸코를 새로운 진리로, 또 다른 당연함으로 붙잡으면서 말이다. 이는 공부하기 전에 있던 ‘당연히’를 다른 ‘당연히’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는 고민을 배우는 대신, 나를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내용만 취하고 있었다. 나아가 내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식을 찾아냈다. 배운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그것으로 나의 편안해진 삶을 계속 유지하기.

『말과 사물』은 이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흔든다.편안함에 주저 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자신의 질문을 놓치지 않고, 지난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는 푸코의 공부가 배우고 싶었다. 나의 ‘당연히’를 뿌리째 뒤흔드는 공부를.

잘 가 ‘당연히’~. 나는 이제 푸코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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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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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
Guest
다영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흔들어 대는 책이라니ㅋㅋ! 말과 사물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