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2019년 5월 중순, ‘나는 왜 열하일기를 읽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주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썼다. 17주가 흘렀다. 100일이면 곰도 사람으로 변한다던데, 나의 글은 100일이 훨씬 넘도록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찾았다. 『열하일기』를 읽으며 나는 분명 연암의 호기심과 행로, 독특한 시선에 연신 감탄을 했건만! 막상 글을 쓰려 하면 ‘좋았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책에 있는 장면들을 늘어놓을 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찾지 못했다. 글은 늘 주제가 명확하지 않고, 겉돌았다.

시간이 지나도 글이 나오지 않자, 나는 점점 조급해졌다. 그리고 글 대신 다른 것들이 늘어났다. 하나, ‘써야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키보드 앞에서 일시정지 된 시간이 늘어났다. 둘, 늘 머뭇거리고 마감시간 직전에 부랴부랴 쓰느라, 오타와 비문도 점점 늘었다. 셋, 매일 글 쓴다고 앉아있으니, 주위에서 글 다 썼냐고 묻는 일도 많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빨리 써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섣불리 결론부터 내려고 했다. 첫 문단도 채우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으면서 말이다. 부끄럽고 숨고 싶은 마음만 잔뜩 올라왔고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나와 달리 연암은 여행을 하며 매순간 쓴 메모와 원고들로 보따리를 가득 채워간다. 청나라 사람들이 똥덩어리처럼 하찮은 물건을 다루는 모습부터 황제의 스승 판첸라마를 만나고 길거리에서 기묘한 마술쇼를 보던 이야기까지! 뭔가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연암을 상상해보다가 문득 나 자신이 글에 대해 가졌던 조바심을 떠올렸다. 정신이 확 들었다. 연암은 자신이 만나는 세상 자체가 글쓸거리였다. 연암의 시선은 언제나 남들을 향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은커녕, 오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움켜질 생각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동안 나는 내가 지내고 있는 연구실, 남산강학원과 감이당 생활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4년이 다 되어가는 연구실 생활은 익숙하고 안전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적게 벌지만 내 생활을 감당할 수도 있었고, 공부는 평생해도 끝나지 않을 양이었다. 그에 비해, 연구실 바깥은 전혀 살만해 보이지 않았다. 혼밥, 혼술이 너무 흔할만큼 사람들은 외롭고 각박해 보였다. 거기다 요즘은 취직도 힘들고, 운이 좋게 취직을 한다 해도 바로 퇴사생각을 하고, 언제 그만둘지 몰라 불안해 보였다. 그런 세계로 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연구실 생활을 놓치면 나는 이 애매한 나이에 취직은커녕 알바자리만 전전하다가 비참한 끝을 맞이할 것 같았다.

헉, 그럴 순 없었다. 나는 연구실 안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내 가치를 인정받아야 했다. 내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스펙 쌓듯 나를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더 많은 것들을 했다. 더 많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활동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늘 다음, 그 다음을 생각하느라 주위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는 궁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시간은 물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조금만 길어지면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면서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전전긍긍했다. 내 평판이 어떤지는 신경써야했기 때문이다. 피곤했다. 얼른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만을 향한 세상에는 오로지 불안과 긴장, 그리고 피곤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연암을 만날 수 없었다. 연암이 누구인가. 천하를 널리 구경하기 위해 만 리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두려움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바심도 없었다. 호기심 가득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뿐. 연암은 그 속에서 설렘과 기쁨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이젠 불안으로 움켜쥔 나의 세계는 내려놓고, 연암의 호기심 어린 그 눈을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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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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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
Guest
석영

헛!!!! 48번째 글에 첫 댓글이라니 영광입니다!! ㅋㅋ
오오.. 남다가 그렇게 ‘자기에 빠져있다’고 했던 게 이런 내용이었군요.
그런 상황에서 매 순간 쓰는 글들로 보따리를 채워가는 연암에 왜 그리 꽂혔는지, 또 얼마나 부러웠을지… ㅋㅋ 잘 알 것 같아요!
마지막엔 짧은 문단에서도 정말 세상으로 눈을 확! 돌릴 수 있을 거 같은 기운이 느껴지네요!
다영의 씩씩함으로 연암의 호기심을 배워나가길..!!

moon彬
Guest
moon彬

오…드디어 완성!! 추카추카!!
48번이나 고쳤다는 게 사실?! 대단쓰~~~
이제 또롱또롱한 눈으로 세상을 관찰할 일만 남았군!

수정
Guest
수정

말로만 듣던 나는 왜 마지막 글이군요~!
‘나’ 말고 세상의 많은 것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연암의 시선… 뭔진 몰라도, 참 활기차고 시원한 느낌일 것 같아요.
앞으로 해나갈 공부에서 이번에 한 고민으로 연암을 찐하게 만나면 좋겠네요!
옆에서 끙끙대며 글을 쓰던 모습이 선명해서 수고했다 말해주고 싶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