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희 (금요대중지성)

 

重風巽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九三, 頻巽, 吝.

六四, 悔亡, 田獲三品.

九五, 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凶.

 

중풍손 괘는 하나의 음효가 두 양효 아래에서 양효에게 공손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괘 이름이 공손함을 뜻하는 손(巽)이다. ‘공손하다’고 하면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한 태도로 윗사람을 따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초효에서 이런 공손함과는 좀 안 어울리는 듯한 “무인의 올바름”이 이롭다(利武人之貞)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동파는 공손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초육과 육사는 실제로 권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자리가 합당하지 않으니, 합당한 자리에 있는 구이와 구오를 통해서 권력을 행사해야 하고, 구이와 구오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힘이 초육과 육사에게 있으니, 그것을 인정하고 그 힘을 가져다 쓰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 공손한 거라고. 즉, 어떤 상황에서 힘을 행사할 때,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의 자리[]와 절차에 맞게 행사하는 것이 공손함이라는 것. 그런데 이것만 충족되면 힘은 올바르게 쓰일까? 힘은 자리와 절차에 맞는 형식상의 합당함뿐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바에 합당해야 비로소 올바르게 쓰일 수 있다. 그러니 힘을 행사할 때는 그 방향이 올바른지를 봐야 한다. 괘사에서는 그것을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고 표현했다. 여기서 ‘대인’은 목표나 비전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효에서 말하는 무인의 올바름(武人之貞)이란 무엇일까. 무인은 전장에서 명령을 통해 자신의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고, 그 명령에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을 어떤 방향으로 언제쯤 어떤 강도로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 즉 결단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초효에서 말하는 무인의 올바름이란 바로 이 결단력이다. 초육은 음유한 자질을 가진 자로 양의 자리에 있으니 제 자리를 얻지도 못했고, 아래 괘에서 가운데가 아니니 중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리고 다른 효들과의 관계를 보면 위로 강한 자(두 양)를 받들고 있으니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자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결단력이 없으면, 자칫 바로 위에 있는 두 양에게 아첨을 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로 우물쭈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거나, 힘을 엉뚱한 방향으로 써서 목표나 비전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힘을 행사하는 첫 스텝인 초효에서 이를 경계하여 무인의 올바름을 가지는 게 이롭다고 말한 것이다.

어디 무인만 그런 상황에 놓이겠는가. 크든 작든 모든 공동체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비전을 구현해 간다. 그 현장에서 각자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힘들이 섞이고, 그러다 보면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수시로 생긴다. 작년에 장자스쿨 담임으로 겪은 일이다. 장자스쿨은 1년 동안 진행되는 감이당의 여러 ‘대중지성’ 프로그램 중 하나로, 그 대상이 짧게는 2년 길게는 6,7년을 공부하고 있는 학인들이었다. 이들에게 1학기 초에 새로운 미션이 부과되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임하던 학인들이 갈수록 미션이 구체화되고 부담이 커지자, 그걸 가볍게 해 달라는 요구를 언뜻언뜻 내비쳤지만 그럭저럭 두 학기를 마쳤다. 2학기를 마치고 조장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생각지도 않게 다시 그 부담감을 언급하자 나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그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함께 이런저런 대안들을 모색했다.

선생님께 논의된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간단하게 몇 말씀 하셨다. “어떻게 해도 좋다. 여기서 중단해도 좋고. 그러나 우리가 왜 그런 미션들을 주었는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들에게 이 미션을 준 이유는 학인들의 신체적, 지적 능력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여 그것의 확장을 도모하겠다는, 더 이상 지금처럼 정체된 상태로 있게 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여러 명이 부담감을 호소하자 그 순간 미션의 취지보다는 그들의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고, 거기서 다시 방향을 잡아주고 미션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써야 할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힘을 사용하는 첫 번째 스텝에서 가져야 할 결단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공동체는 다양한 힘들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평소에 힘을 제대로 쓰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러니 자신과 공동체의 성장을 원한다면 어찌 힘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기술을 익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공손’이라는 덕목을 몸에 익히려 애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동안 우유부단, 몸 사림, 유약함을 공손으로 단단히 오해한 듯하다. ‘공손’하려면 먼저 ‘무인의 결단력’을 기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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