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고자헌(顧子獻)이 상한병을 앓다가 막 나을 무렵 화타(華佗)가 맥을 보고 말하기를, “아직 허약하고 회복되지 않아서 양기가 부족하니 힘든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힘든 일은 그래도 괜찮으나 여자와 관계하면 즉사할 것인데, 죽을 때는 혀를 몇 치 빼물고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아내가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백여 리 밖에서 달려와 살펴보고 며칠 밤 있는 동안에 방사를 치르고 나서 그는 과연 혀를 몇 치 빼물고 죽었다.

어떤 부인이 상한병을 앓을 때 도적떼가 쳐들어왔는데 미처 달아나질 못했다. 그 도적들 6~7명이 그녀를 겁탈하고 나서 그들은 모두 그 부인의 병을 얻고 죽었다. 이것이 음양역(陰陽易)이다. (잡병편() 1122)

20년도 전의 일이다. 겨울방학 때 아이들이랑 육지로 여행을 갔다. 하루는 저녁에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밤에 뭔가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문득 차가운 바람이 머리칼 틈으로 싸아 스며드는 걸 느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당장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몸이 뻣뻣해지는 듯하며 상당히 괴로웠다. 찬바람을 맞아 감기이겠거니 했는데 전에 앓았던 감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팠고 하루 하루 증상이 더 깊어져서 놀라웠다. 오래 전의 일이라 많이 잊혀졌지만 지독하게 아팠던 기분이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오래 앓지 않고 한 일주일이 넘자 서서히 나았던 기억도.

요즘 『동의보감』을 읽다보니 그 때 그게 감기가 아니라 ‘상한(傷寒)’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한은 겨울철의 차가운 기운에 몸이 상하는 것이다. 이는 감기와는 다르다. 감기는 동의보감에선 ‘감한(感寒)’이라 한다. 감한도 한기에 상한 증상이긴 하지만 겨울철에 국한되지 않으며 ‘차고 더운 것이 조절되지 않거나 조리를 잘 못 한 것, 좀 덥기만 하면 옷을 벗거나 몹시 더울 때 찬물을 마신 것’(1136쪽)등 몸을 조섭하지 못해서 생긴다. 증상도 상한처럼 심하지는 않아서 죽음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반면 상한은 13일이 지나도 낫지 않으면 위험하다. 주요 증세는 열인데 감기와 달리 한기는 경맥을 타고 흐른다. 몸의 겉에 흐르는 3개의 양경맥과 안에 흐르는 음경맥 3개를 하루에 하나씩 타면서 6일 동안 옮겨가며 날마다 증세가 깊어진다. 7일째부터는 신기하게도 위와 같은 순서의 경맥마다 하루씩 사기가 없어지면서 나아간다. 그러나 이 때 면역력이 부족해 자연적으로 낫지 않거나 약을 잘 못 쓰면 다시 3음 3양 경맥을 타고 반복적으로 흐르면서 위태로워진다. 아마 나는 그 때 자연적으로 나았던 모양이다.

겨울의 추위는 수(水)기운이고 음(陰)의 기운이다. 음의 기운은 모이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상한은 당장 발현되지 않고 잠복했다가 다음 해에 발병할 수도 있어 무섭다. 봄에 나타나면 ‘온병’, 여름에 나타나면 ‘서병’으로 부른다. 서병은 열이 온병보다 더 심하게 나는 것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온병과 열병을 많이 앓는데 이는 ‘겨울철에 한사에 감촉되었기 때문’(1068쪽)이라며 동의보감에선 안타까워한다. 먹고 입을 게 부족한 사람들이 겨울에 많이 한사(寒邪)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상한은 처방도 어렵다. 대체로 3일 까지는 열이 몸의 곁에 있으므로 땀을 내서 날리고 4일 부터는 안에 있으므로 설사를 시켜 열을 뺀다. 그러나 상한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다른 병과 증세가 비슷해서 구별이 어려워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 약 처방도 마찬가지다. 혹 잘못 쓰면 죽는다고 동의보감은 자꾸 경고한다.

완전히 낫기도 어렵다. 낫는 것 같아도 ‘100일 동안’은 성관계를 금해야 한다. 남자의 성은 여자와 교합할 때가 힘든 일을 할 때보다 몇 배 더 정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지키지 못할 경우 본인이 아닌 파트너가 병이 옮아 죽는다는 게 묘하다. 반대로 여자가 아팠을 때는 위의 도적들처럼 남자가 죽는다.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추위에 감촉되었을 뿐인데 왜 상한은 이렇게 무서운 증상을 보일까? ‘사철의 기후에 상하게 되면 다 병이 될 수 있는데 유독 상한병독이 가장 심한 것은 그 속에 죽이는 기운(살 지기)이 있기 때문이다.’(1068쪽) 겨울의 수기운을 죽이는 기운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상한을 ‘대병(大病)’이라 보고 지면을 가장 많이 할애하고 있다.

나는 그때 호되게 아팠던 후로 나름대로 지키는 게 있다. 아침에는 밖에 나와야 하니까 찬 기운에 드러나지 않기 위해 샤워를 하지 않고 자기 전에 한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한 다음에는 냉수로 헹구어 주리가 열리지 않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는 그처럼 심한 증상은 없었다.

지금의 절기는 추분(秋分). 가을과 겨울의 분기점에 있다. 이제 겨울의 추위가 몰려올 것이다. 약 처방도 어려우니 우리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고의 처방이자 양생이다. 춥지 않게 옷을 입고 차가운 바람을 함부로 쏘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성욕의 절제 또한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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