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칼을 뽑은 양명

양명이 명나라의 관료가 되었을 때, 세상은 참 어두웠다. 명나라 역대 황제 중 가장 우둔한 사람으로 불리는 무종은 방탕한 생활을 멈출 줄 몰랐다. 더 심각한 건 황제의 눈을 멀게 만드는 환관들이었다. 무종 곁에 있는 8명의 환관들은 간언을 하는 자에게는 누명을 씌우고, 제멋대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어찌나 횡포를 부리며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는지 이들에게는 8명의 호랑이, ‘팔호’라는 별명까지 생길정도였다. 특히 유근이라는 자의 횡포는 막대했다. 뇌물로 나라의 직책을 결정하는 건 기본이요, 5년동안 환관을 하면서 긁어모은 재산은 당시 세금의 10년치였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나라는 아첨하고 약삭빠른 무리들의 배를 채우다 망할 것이 분명했다.

양명은 이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침내 양명은 결단을 내린다. 황제에게 간언을 한 언관들을 용서하고, 유근과 같은 무리들을 제거하여 덕을 밝히길 바라는 상소문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유근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상대는 아니었다. 유근은 이미 예전부터 이부, 호부, 병부의 주요기관에 자신의 심복을 심어서 황제가 자신의 아첨 외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손을 쓴 상태였다. 양명의 상소문이 황제에게 가닿기도 전에 유근의 손에 가로채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유근을 향한 양명의 일격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유근을 향해 겨눴던 양명의 칼날은 다시 양명에게로 돌아왔다. 유근은 양명에게 없는 죄도 만들어 씌워, 궁중의 계단에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는 형벌, 정장 40대를 내린다. 몽둥이를 맞으며, 기절하기를 반복하고 엉덩이는 찢어지고 허벅지 뼈는 부러졌다.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고 난 후 양명을 기다리는 것은 감옥이었다. 양명은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옥중에서 한겨울을 보내야 했다. 세상을 위해 올바름을 바로잡으려했던 결과는 잔혹하고 시렸다. 하지만 이 시련은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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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깜깜한 세상

아마 양명은 까딱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은 각오했을 것이다. 대충 넘어가고자 했다면, 충신들이 간언을 올려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것을 뻔히 보면서 상소문 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상황이 암담하다는 것이었다. 우선 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선 살아야 한다. 목숨마저 유근의 손아귀에 넘어가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순간, 양명은 『주역』(복서)을 펼쳐든다. 양명은 대체 어떤 심경으로 『주역』을 붙잡은 것일까? 양명은 전습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서가 바로 이치이고, 이치 또한 바로 복서이다. 천하의 이치 가운데 복서보다 큰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단지 후세사람들이 복서를 전적으로 점괘의 측면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복서를 잔재주로만 간주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스승과 벗 사이의 문답이나,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변별하고 돈독하게 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 모두 복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복서란 의심이 많은 것을 결단하여서 내 마음을 신묘하게 밝히려는 것에 불과하다. 『역』은 하늘에 묻는 것이다. 사람에게 의심이 있지만 (홀로 해결할) 자신이 서지 않기에 『역』을 통해 하늘에도 묻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사로움에) 연계되는 바가 있지만, 오직 하늘만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등불이다』, 재인용, 98쪽

주역 역시 따지고 보면 문왕이 걸주시대에 억울하게 옥에 갇혀서, 이 우환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양명 또한 이 까마득한 현실에 대해 ‘지금 이 상황이 바뀔 수는 있는 걸까’라는 막막함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력감이 통제할 겨를도 없이 시시때때로 올라오지 않았을까. 끝없이 올라오는 의심과 무너지고 싶은 마음 속에서 양명을 붙잡아 주는 책이 바로 『주역』이었다. 양명에게 주역공부는 앞이 깜깜하기만 한 감옥 속에서 마음 속 한줄기 빛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런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유근의 보복은 끈질기기까지 했다. 그는 눈엣가시인 양명을 짓밟고 죽여 후환이 없도록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먼저 양명을 북경에서 5000km나 떨어진 용장의 하급관리로 좌천시켰다. 형벌과 옥중 생활로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을 이끌고 그 먼길을 떠나라는 건 길 위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근은 용장행으로도 안심이 안되었는지, 양명 뒤에 자객들을 계속 붙여 죽이라고 명한다. 양명은 자신의 뒤를 노리는 자객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다. 그리고 두건과 신을 강가에 벗어 자신이 투신자살을 한 것처럼 위장을 하고 동생에게 거짓유서를 남기기까지 한다.

살아남기 위해 거짓죽음을 가장했지만, 양명은 점점 지쳐갔다. 용장으로 가는 길은 유근과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양명에게 이름을 숨기고 세상을 피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올라왔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죽었다고 아는 마당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 유근의 횡포와 권세는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해 자신은 의지처는커녕, 사방이 적이었다. 자신만 이토록 잔인한 상황을 외면하면 되는 일이었다. ‘맞서봤자 아무 소용없다’,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라는 절망감이 양명을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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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행을 결심하다

양명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계속 갈등하고 있을 때, 한 도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도사는 양명이 17살 때, 철주궁에서 양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도사였다. 양명은 도사에게 자신이 쫓기고 있는 처지이고, 도사처럼 이름을 숨기고 세상을 피하고 싶은 뜻을 말한다. 그에 대해 도사는 양명에게 뜻밖의 말을 한다.

  “자네에게는 부모가 있지 않은가? 만일 자네가 행방불명이라는 것을 알면 유근의 분노가 자네의 아버지에게 미칠 것이야.”

『내 마음이 등불이다』, 102쪽

도사는 이 상황을 피하면, 더 큰 화만 불러 낼 것이라는 사실을 짚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를 한 수 지어, 뜻을 굽히지 말라는 마음을 전한다. 이때, 도사가 양명에게 주역점을 쳐주는데, ‘명이(明夷)’괘가 나온다. 명이괘는 ‘소인이 위에서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군자가 재야에 내려와 있는 형상’(같은책, 102쪽)을 한 괘이다. 횡포가 넘치고 답답함이 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명이의 시대, 이때에는 숨어서 덕을 닦으며 재화(災禍)를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름을 숨기고 초야에 숨어 사는게 맞지 않을까? 양명의 대답은 반대였다. 양명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용장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자신이 큰 화를 피해 초야에 숨어야 하는 건 맞지만, 이름을 숨기고 현실을 외면하는 건 자신의 덕을 죽이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양명의 용장행은 자신이 아무리 극한 처지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었다. 동시에 유근에게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개의치 않을 것이고, 절대로 유근의 기대대로 자신의 삶을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세상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으로 가리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양명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공부이자, 유근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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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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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Guest
moon彬

오!! 역시 왕양명 선생님은 달라도 너무 달라~! 정말 대단하고 멋진 분인 거 같아요~~!!
귀주에서 양명 선생생님 기운 팍팍 받고 저에게도 전달해주세요~~~!!!

한수리
Guest
한수리

양명의 용장행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하다니!
다영이가 ‘나는 왜’를 쓰면서 겪은 고난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ㅎㅎ
너무 재미있게 잘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