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용장(龍場)을 향한 여정

양명의 나이 35세, 그는 꼿꼿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양명은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환관 유근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정장 40대의 형벌을 받게 된다. 간언하는 신하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장은 허벅지 뼈가 부러질 정도의 형벌이었다. 그렇게 양명은 유배지인 용장(龍場)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형벌로 상한 몸으로 이끌고, 유근이 보낸 자객을 따돌리며 가는 그 길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37세가 되던 해 봄, 양명은 출발한지 1년여 만에 용장에 도착했다. 용장은 북경에서 5000km나 떨어져 있는 중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저 먼 땅이었다. 그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고비들이 있었을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엔 정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묘족(苗族)의 땅에서 떠오른 화두

양명이 도착한 땅은, 묘족(苗族)이라는 원주민들이 살던 곳이었다. 풍토병도 심한 지역이었고, 중원에서 한참 떨어진 거의 중국이 아닌 땅이었다. 묘족은 ‘몽족’이라고도 불리는데 11세기까지 왕국을 이루며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력이 약화되어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특유의 복장과 음식 등의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공동체다. 양명이 만났던 묘족은 혈거(穴居)를 하던 민족이었다. 절벽에 구멍(穴)을 만들어 집을 짓고 살아가는(居) 토착민들, 그들과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땅에 도착했을 때의 양명을 다시 한 번 상상해보자. 지위도 명성도 잃어버렸고, 그가 공부해온 학문과 사상은 이곳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땅이었으니 무엇을 더 논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그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였다. 게다가 유근이 언제 또 자객을 보내 목숨을 위협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이질적인 땅에서 그저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죽음과 싸워가는 것. 이것이 양명에게는 절박한 화두였다.

「연보」 37세조에는 “나(양명)에 대한 유근의 분노는 여전했다. 일생의 영달부침(榮達浮沈)은 조금도 걱정되지 않지만, 생사에 대한 것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에 석곽(石槨)을 만들고 스스로 맹세하여 ‘나는 다만 천명(命)을 기다릴 뿐이다’(최재묵, 『내 마음이 등불이다』, 이학사, 113쪽 재인용)”라고 쓰여 있다.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용장(龍場)’이라는 새로운 현장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실제로 용장에 도착해서 산록에 굴을 파서 『주역』을 읽었다고 한다. 『주역』을 완색하는 굴인 ‘완역와(玩易窩)’는 지금도 귀주 양명동(陽明洞)에 남아있다. 이번에 우리가 여행을 떠날 그곳이다! 깨봉2층 감이당에 있는 ‘양명동’이라는 공간의 이름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잠깐…! 양명이 삶과 죽음을 화두로 삼았다고, 비장하게 삶을 대했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니. 비장하게 시작했을지라도, 일상에서는 역시 재미난 해프닝들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양명이 처음 이곳 용장에 도착했을 때, 시종들과 함께 움집을 지었다고 한다. 갈대를 엮고 가시덤불로 집을 만들었는데, 이 움집은 비가 오면 비가 스미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고 한다.^^ 저녁이 되면 집 주변으로 원숭이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원주민들이 구경하며 신기하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양명은 힘들었겠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참 재미난 볼거리였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같이 온 시종들이 병이 났다. 시골구석에 처박혀 살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아 병이 난 것이다. 이때 양명의 반응이 아주 놀랍다! 양명은 시종들의 병간호를 하기도 하고, 행여나 그들이 우울증이나 향수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여 시와 노래를 불러 주기도 했다. 시종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라니~ 그렇게 양명은 농담으로 그들을 웃기기도 하며 이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활기(活氣)차게 시작하고 있었다.

공부로 맺은 묘족(苗族)과의 인연

양명은 삶과 죽음을 탐색하는 『주역』뿐만 아니라 묘족사람들과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자신이 그동안 일구어 온 모든 것들이 무색해지는 이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양명의 공부였다.

양명은 묘족의 말을 배우고, 서당을 지어 사람들에게 학문을 나누며, 그들과의 관계를 열어갔다. 자신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간 것이다. 양명은 ‘용강서원’이라는 서당을 지어 그곳에서 계속 학문을 익히고 또 가르쳤는데, 묘족마을 여기저기 인품이 좋다고 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양명은 학문으로 원주민과 연결고리를 만들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 4월, 양명의 고향인 절강성의 여요(餘姚)현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 양명이 살았던 ‘양명고리’라는 곳을 들렀었는데, 양명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인 ‘벽하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주변에 살다보니, 그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닌가! 배우기 위해 자신의 근거지를 옮기고, 따르고 싶은 스승을 찾아가고, 그렇게 살다보니 마을이 생기다니!!! 이곳 용장에서도 양명의 인품과 학문을 보고, 그의 덕에 감화되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스스로 배움을 행하며 사는 사람 곁에 그것을 알아본 이들이 모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묘족마을로 귀주성 사주의 대부가 보낸 사신이 찾아오게 된다. 사신은 대부의 위엄을 등에 업고 양명을 모욕했다. 묘족마을 사람들이 분개하여, 그 사신을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은 양명을 마음으로 따르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따르는 스승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던 것! 결국 이 사건은 상부에 보고되고, 상급관청의 안찰부사 모응규가 사죄를 요구해왔다. 양명은 그 편지에 답장을 보내는데, 안찰부사는 답장을 받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태도를 바꾸었다고 한다.

묘족마을 사람들과 양명은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었고, 양명의 생각과 말은 안찰부사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무르익고 있었다. 양명은 이 ‘용장’이라는 땅에서 묘족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학문하는 삶’을 살았던 양명

양명은 용장의 땅에서, 그 땅의 사람들과 삶을 섞으며 살아가고 있었고, 배움의 현장에서 학문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성치 않은 몸으로 전혀 다른 것을 만나고,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양명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명은 자신의 자리에서 계속 배웠다. 묘족의 언어, 생활풍습,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까지. 

변화하는 생활과 삶 바로 지금 여기(動時)에서 현실과 부딪히며 공부·수행을 하는 것이다. 현실이 책이고 생활이 교실인 셈이다. (…) 이처럼 사상마련의 공부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에게 참으로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몽둥이와 주먹에 맞아 피가 솟아나고 몸에 자국이 날 때처럼 긴장하는 것”은 흐리멍텅하고 무감각한 몸을 마음과 바깥 사물 전체와 긴장감 있게 공명(共鳴)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부를 자기 것으로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 즉 체인(體認)을 말한다.

최재묵, 『내 마음이 등불이다』이학사, 157쪽

학문한다는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고, 무엇이든 배움으로 삼는 것이다.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세상 탓을 할 수도 있었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두려움에 숨어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용장으로 향하던 중 은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 양명은 현실을 책으로, 생활을 교실로 삼을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기 삶의 매순간을 치열하게 배움으로 삼았던 사람이 살아 숨 쉬던 땅으로 떠난다. 믿고 따르는 스승의 삶의 흔적을 따라 걸어본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가자~ 귀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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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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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Guest
moon彬

어떤 상황에서도 배움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사상마련이군요~!
양명 선생님의 생애에 양명 선생님의 사상이 녹아들어 있는 거 같네요~~
귀주에서 사상마련의 깨달음을 느끼고 오기를!

한수리
Guest
한수리

양명이 주장하던 백성과 하나가 되야 한다는 친민이 무엇인지가
양명의 삶에서 자연이의 글에서 잘 들어난 것 같아.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부!
귀주가서 더 즐겁게 느끼고 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