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순(감이당, 화요대중지성)

권력가와 가족의 사생활은 늘 문제다. 공적인 권력으로 사적인 특혜를 누리려는 가족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이럴 경우, 권력가는 대체 어떻게 처신해야할까? 흥미롭게도 『한서』에는 가족문제에 대한 처신이 달라,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르게 겪은 두 인물을 다룬다. 한무제가 말년에 가장 총애했던 신하, 곽광과 김일제가 그 주인공이다.

우선 곽광은 흉노정벌의 공신 곽거병의 이복동생으로, 무제와 소제 그리고 선제 때 최고의 권력을 가진 신하이자, 훌륭한 정치가다. 무제의 유지를 이어받아, 어린 소제를 충심으로 보필해, 한나라를 안정시켰고, 소제가 후사 없이 붕어해 새로운 황제를 추대해야 했을 때에는, 그 과정에서 조금의 사심도 없이 황제를 옹립한 충신중의 충신이었다. 소제에서 선제로 이어지는 한나라의 중흥기는 곽광의 이러한 충심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곽광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제어할 수 없는 부인의 욕망이었다. 선제가 옹립되고, 아직 황후의 자리가 공석일 때, 곽광의 아내 현부인은 막내딸을 황후로 만들고 싶어 했다. 남편이 황제를 옹립하고 폐위할 권한을 갖고 있었으니, 자기 딸을 황후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꿈은 곧 물거품이 되었다. 선제가 평민 시절 결혼했던 허평군을 갑작스레 황후로 책봉한 것이다. 이에 현부인은 격분하여, 허황후 독살을 모의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기어이 막내딸을 황후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현부인은 여의 순우연을 꾀어 허황후를 독살한다.

곽광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 체, 황제의 명을 받아 이 사건을 엄중히 처리하려했다. 안심하고 있던 현부인은, 막상 수사망이 좁혀오자 불안에 휩싸인다. 특히 순우연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실토할 게 걱정이었다. 이에 현부인은 곽광에게 사건의 전말을 모두 말하며, 순우연을 심하게 문책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들은 곽광은 경악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오랜 시간 공명정대하게 정사를 돌본 곽광이었지만, 차마 부인에게 자신의 공적인 잣대를 적용할 수 없어, 결국 비리를 듣고도 눈감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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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공명정대하게 정사를 돌본 곽광이었지만, 차마 부인에게 자신의 공적인 잣대를 적용할 수 없어, 결국 비리를 듣고도 눈감아 버린 것이다.

몇 년 뒤, 곽광은 비밀을 안은 체,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밝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허황후 사건의 전말은, 곽광이 죽자마자 온 천하에 드러났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곽씨 가문은 멸족한다. 가문을 다스리지 못한 일이 이토록 무거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족을 다스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일제다. 일제는 곽광에 버금가는 권력가였지만, 자기를 지켜냄은 물론, 가문을 5대에 걸쳐 황제를 모시는 충신 집안으로 키워냈다. 대체 일제는 가족문제를 어떻게 다루었기에, 가족문제의 함정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1. 한 눈 팔지 않는다.

김일제는 흉노의 왕자로, 부친이 휴저왕이다. 흉노 귀족이 한나라 황제의 신하라니. 이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이야기는 무제의 흉노정벌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곽거병이 흉노의 기연산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을 때, 흉노의 선우는 관할지역을 지키지 못한 혼야왕과 휴저왕에 책임을 물어 죽이려 했다. 이때 혼야양과 휴저왕은 선우의 손에 죽는 것 보다 차라리 함께 한나라에 투항하는 게 어떠냐며 모의한다. 그런데 휴저왕은 투항을 앞두고 후회가 밀려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를 눈치 챈 혼야왕은 머뭇거리는 휴저왕을 죽이고, 지체 없이 휴저왕의 모든 식솔을 데리고 한나라에 투항해 열후로 봉해진다. 반면 왕족이었던 김일제의 식솔은 관노가 되었다. 부친이 투항하지 않고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14살의 김일제는 그렇게 노비가 되어, 황문에서 말을 기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무제는 연회 중 후궁들과 함께 말 구경을 하게 되었다. 김일제 등 수십 명이 말을 끌었는데, 말을 끌던 노예들은 저마다 후궁을 훔쳐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그런 후궁들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걷던 이가 무제의 눈에 들어온다. 바로 김일제다. 8척 2촌의 큰 키에, 노예답지 않은 위엄 있는 용모, 게다가 잘 키운 말까지! 무제는 단번에 일제를 알아보고 그날로 특별 채용했다. 훗날 망하라가 반역을 일으켜 무제의 침실을 습격했을 때, 망하라를 온 몸으로 막아 무제의 목숨을 구한 게 일제였으니, 무제의 안목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일제는 무제의 눈에 들어 말을 기르는 노비에서 시작해, 마감(말을 기르는 책임자)을 거쳐, 무척 짧은 기간에 시중, 부마도위, 광록대부에까지 오른다. 게다가 외출 시에는 무제를 참승하고, 들어와서는 무제를 최측근에서 보필했다. 그런데 황제가 한 사람을 지나치게 총애하면, 뭇 신하들의 시기를 불러오는 법! 일제는 별다른 공적도 없고, 이적출신이었기에 더더욱 시기를 받았다. ‘폐하는 어쩌다가 흉노 애 하나를 데려다가 정말로 귀히 여긴다.’(「곽광·김일제전」, 『한서6권』, 명문당, 72쪽)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허나 무제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제를 아꼈다. 왜일까?

무제가 인재를 뽑는 기준은 철저히 능력으로, 능력만 있다면 출신성분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제가 곁에 두는 신하들은 달랐다. 능력은 물론 무엇보다 조심하고 근신할 수 있는 자질이 필요했다. 황제의 총애가, 신하의 마음을 사심으로 흐르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측근에서 사심을 채우다 내쳐졌던 관리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무제가 본 일제는 사심이 없었고, 심지어 수십 년간 황제를 보필하며 잘못 하나 없었다. 어떤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고 신중했던 일제를 무제는 총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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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고 신중했던 일제를 무제는 총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위태로움의 싹을 자르다

일제는 무제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일제의 두 아들 역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길흉과 화복은 같은 자리에서 자라는 법! 황제의 사랑은, 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재앙이기도 하다.

  김일제의 두 아들은 귀여워서 황제의 농아가 되었는데 늘 황제 곁에 있었다. 농아가 가끔은 뒤에서 무제의 목을 껴안기도 하였는데 김일제가 앞에 있다가 노한 눈길로 바라보면 농아가 달아나 울며 “아버지가 화났다”고 말했다. 무제가 일제에게 “왜 내 아들한테 화를 내는가?”라고 말했다. 그 뒤로 농아가 장대하여 조심하지 않고 전각 아래서 궁녀를 희롱했는데 마침 일제가 이를 보고서 음란한 짓을 할까 걱정이 되어 농아를 죽여 버렸다. 죽은 아이는 바로 김일제의 장남이었다. 무제가 이를 알고 대노하자 김일제는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면서 농아를 죽여야만 할 상황을 모두 말했다. 무제는 매우 애통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이후 마음속으로 김일제를 높이 평가했다.

(「곽광·김일제전」, 『한서6권』, 명문당, 73쪽)

가족의 비리 앞에서 공적인 잣대를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위 관직자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앞서 본, 곽광 역시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일제의 처세는 달랐다. 보통은 자식이 총애를 받으면, 이걸 발판 삼아 더 많은 부귀를 꿈꾸려는 부모들이 많은데, 일제는 아들이 받는 총애와는 무관하게, 아들의 후궁 희롱을 보고 주저 없이 아들을 죽인 것이다.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을까? 둘 다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춘추』에 ‘은미한 것은 반드시 드러나고, 작은 것은 반드시 커진다.’고 했던 바, 일제는 아들의 후궁 희롱이, 다음엔 결코 희롱에서 끝나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후궁이란 누구인가? 황제의 여인 아닌가! 황제가 출궁을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후궁을 함부로 탐해선 안 된다. 이것이 한나라 황실의 법도다. 그런데 만약 일개 농아가 후궁을 범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문의 멸족은 피할 길이 없다. 일제는 아들의 후궁 희롱으로부터 멸족의 조짐을 읽은 것이다. 게다가 도를 넘은 농아의 행동을 방치하는 건, 무제가 정국을 이끄는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은 물론, 나라를 혼란케 할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일제가 지극히 사소할 수도 있는 일에서 아들을 죽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와 가문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무제와 나라마저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처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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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와 가문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무제와 나라마저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처세였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무제는 분노했다. 하지만 그 분노도 잠시, 일제가 무제에게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자, 무제는 애통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더욱 더 일제를 총애하게 되었다.

3.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흥미롭게도 반고는 『한서』에서, 충심으로 시작해, 전혀 다른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 곽광과 김일제의 열전을 나란하게 구성했다. 권력이 주는 특혜를 이용해, 그것에 안주했던 곽광의 삶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특혜에 안주하지 않았던 김일제의 삶을 대조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반고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택했을까? 답은 논찬에 있다.

  소제를 옹위하고 선제를 세울 때 곽광은 황제의 스승이며 보호자였으니 비록 주공과 이윤이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했었다. 그렇지만 곽광은 학문과 경술이 없어 대리(大理)에 어두웠고, 그래서 처의 사악한 음모를 숨겼고, 딸을 황후로 세우며 탐욕에 흠뻑 빠져 완전히 멸망하는 화를 키웠으니, 죽은 지 겨우 3년에 일족이 멸문 당하였으니 슬픈 일이로다! (중략) 김일제는 이적으로 나라를 잃고 한(漢)에 포로로 잡힌 몸이었지만, 돈독한 신심과 공경으로 주군을 깨우쳤고, 충성과 신의를 스스로 지켰으며, 상장으로 공을 세워 후손에게 나라를 전해 대대로 충효로 이름을 날리면서 5세에 걸쳐 천자를 모셨으니 그 얼마나 융성했는가?

(「곽광·김일제전」, 『한서6권』, 명문당, 89쪽)

곽광은 아내의 비리를 눈감고, 막내딸을 황후로 앉힌 일이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알지 못했다. 가문이 멸족에 이르는 길인 줄 알았다면 과연 그러한 일을 했겠는가. 반고가 곽광을 두고 ‘학문과 경술이 없어 대리(大理)에 어두웠다.’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대리란 지혜로, 나의 행동이 나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과가 되어 후대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는 안목이자, 길흉이 결코 다른 자리에 있지 않음을 아는 것, 나아가 자기의 욕망을 알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대리를 아는 방법은 오직 공부를 통한 자기 수양뿐이다.

반면 반고는 김일제 가문의 융성함을 ‘충성과 신의를 스스로 지킨’ 일제의 엄격함에서 찾았다. 『대학』에서 치국을 논할 때, 정치는 반드시 수신과 제가에서 출발한다. 수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학문을 통해 자신의 몸을 닦는 것으로, 단순히 열심히 독서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의 실천적인 자기 수양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기 수양은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수행이기에, 자기 수양은 곧 권력의 한복판에서 자신을 지키는 처세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일제는 한 평생 남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음은 물론, 황제가 궁녀를 하사해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심지어 무제가 일제의 딸을 후궁으로 삼겠다는 명마저 거절했다. 남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은 것은, 자신의 거만해질 태도를 경계함이요, 황제가 보낸 궁녀를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보내지 않은 것은 권력에 도취될 자신의 욕망을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기정치로, 자기를 닦아(修身), 자기를 지키는 일(守身)이다. 곽광이 막내딸을 황후로 만든 것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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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이 정도 소양은 갖춘 후에라야, 제가(齊家), 즉 가문을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김일제가 살아서는 높은 관직에 머물고, 죽어서는 충신 집안의 가장으로 남을 수 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가문차원에서 드러날 수 있는 욕망을 사전에 다스린 것이 크다. 한나라 시절의 가(家)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핵가족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아내, 자식들을 넘어 친척은 물론 집안의 노비들마저 가(家)의 범위에 속했기에, 가장으로서 가문을 다스리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정치였다. 해서 자기 가문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치국을 할 수 없다는 게 『대학』의 전제이자, 한나라의 전제다.

곽광의 삶을 보라. 한 평생 충심으로 정치는 잘했을지 모르나, 제어하지 못한 가문의 욕망과 그것에 눈감아 버린 자신의 욕망이, 생전에는 황후를 죽게 하고, 사후에는 가문이 역모를 일으켜 나라를 혼란케 했으니, 곽광의 수신과 제가의 문제는 진정 치국과 평천하의 문제였다. 반면 김일제의 삶은 누구보다 엄격했다. 아들의 후궁 희롱에 눈감지 않은 건 가혹하게 보이지만, 위험의 싹을 미연에 자른 것으로, 자기와 가문을 지켜냄은 물론 나라의 혼란을 사전에 막은 일이었다. 흔히 역모는 황제의 총애를 받은 신하들로부터 시작되지 않는가. 일제의 결단은 자기에게 엄격해야, 가문에 엄격할 수 있고, 가문의 도가 바로서야 비로소 치국을 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제의 이런 일상들을 보면, 무제가 곽광에게 소제를 부탁할 때, ‘신은 김일제만 못합니다.’라는 곽광의 말은 결코 곽광의 겸사가 아니라 진심이란 걸 알 수 있다. 곽광은 일제가 가도(家道)를 바로 세우고, 자기수양을 끊임없이 한다는 면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인물이란 걸 알았던 것이다.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권력가는 어떻게 가족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에 김일제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자기 수양을 통해 일상의 엄격함을 유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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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결단은 자기에게 엄격해야, 가문에 엄격할 수 있고, 가문의 도가 바로서야 비로소 치국을 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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