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선제는 때에 맞게, 인재를 중시하고 백성들의 아픈 곳을 해결하는 능력을 구비한 왕이었다. 손바닥도 맞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이 없으면 한 손으로 박수치는 격이리라. 한 나라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의 풍요로움 누려야 할 시기에 선제가 등장하고 그의 손발이 될 인재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 시기는 가을에 매서운 서리가 내리듯, 공정한 신상필벌을 해야 하는 시기. 그 미션을 선제와 함께 이루어낸 대표 주역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공정한 법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한 그들은 누구인가.

노온서, 한나라의 옥리 개혁을 외치다

먼저 옥리 개혁을 가장 먼저 제안한 노온서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부친은 마을의 문지기였는데 아들 노온서에게 양을 키우게 했다. 그는 양을 키우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연못의 풀을 꺾어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글씨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점차 글을 잘 쓰게 되자 옥의 작은 관리가 되었고, 그 다음에 법을 익혀 옥리로 승진했다. 옥리 역할을 어찌나 잘 했던지 사람들이 현에서 의문 나는 점은 모두 그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태수가 그것을 보고 특별히 여겨 어떤 부서의 부책임자로 임명하였고, <춘추>까지 배우게 하자 그는 큰 뜻을 깨쳤고, 그 후 조정에서 효렴 천거를 통해 중앙 관직까지 진출한다. 문지기의 아들이 양을 치다가 공부를 좋아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과정이 놀라웠다. 당시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던가? 오히려 평등을 외치는 우리 시대가 금수저, 흙수저 하며 신분의 경계를 더 견고히 하는 듯 보인다.

당시 노온서를 보면 신분제 사회가 무색해 보인다. 이것은 선제가 강조한 ‘선량한 2천석’의 효과라 생각한다. 역시 사람이다. 선량한 2천석이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노온서가 아무리 좋은 자질을 타고 났다 해도 양치기로 끝났을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서 중앙에 진출한 노온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소문을 올린다. 옥리를 오래했던 그는 천하가 태평하지 못한 것은 형벌이 혼란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생각은 공정한 법만이 백성을 안정시킨다던 선제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는 강조한다. 형벌은 백성의 생명과 관계가 있으니 잘못 판결해서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다고. 서경에 ‘무고한 사람을 죽이느니 차라리 법도를 잃고 실패하겠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법 적용 보다 ‘사람이 먼저’임을 강조하고 있다. 노온서가 보기에 당시 옥리들은 실적을 내어 명성을 얻는데 급급하여 각박하게 법을 적용했다. 옥리들은 인정을 받기 위해 백성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형벌을 받거나 사형에 처해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법은 백성의 평안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옥리들의 실적이 되면서 전도가 된 것이다. 노온서의 육성으로 좀 더 밀착해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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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백성의 평안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옥리들의 실적이 되면서 전도가 된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란 편안하면 사는 것이 즐겁고 고통을 받으면 죽고 싶습니다. 몽둥이로 때리는데 무엇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죄수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말을 지어내어 알리게 되고 문초하는 관리는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뜻대로 밝혀지게 되며, 상주하여 기각당하는 것을 걱정하여 잘 다듬고 꾸미고 주밀하게 맞춰냅니다. 개개 상주할 것이 다 갖추어지면 옛날 구요(皋繇_요순시대의 공정한 법을 집행한 관리)가 듣는다 해도 사형에 처하고도 여죄가 남을 것입니다. 이는 왜 그렇겠습니까? 꾸며대는 것이 그만큼 많고 법조문으로 얽은 죄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옥리들은 오로지 모질고도 각박한 처리에 힘쓰기에 잔인한 살육이 끝이 없거나 아니면 적당히 처리하여 나라의 환난을 생각지도 않으니 이들이 바로 세상의 큰 도적입니다. 그래서 속어에 ‘땅에 줄을 그어 감옥이라 하여도 들어가선 안 되고 나무를 세워 옥리라 해도 쳐다보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옥리들을 질시하는 풍조이며 비통한 말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걱정거리는 감옥보다 더 한 것이 없고, 나쁜 법은 정도를 어지럽히며 친족을 흩어지게 하고, 정도를 막기로는 옥리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가추매노전」, 『한서』 4권, 명문당, 98쪽)

검찰 개혁이 절실한 이때에 어찌나 절묘하게 딱 들어맞는지 놀라울 정도다, 법 적용은 시대마다 고민 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법은 그 자체로 공정한 것 같지만 법 적용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이 실적에 매이면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날아가 버린다.

선제는 노온서의 상소를 적극 반영하여 공평한 법 판결이 되도록 힘쓴다. 녹봉 6백석을 받는 정위평 4명을 뽑았는데 당시 우정국과 황패 등 덕이 높은 관리들에게 일을 맡겼다. 우리 시대의 공수처 설치와 비슷한 느낌이다. 매해 가을에 옥사를 논하게 되는데 그 때 선제는 몸을 재계하고 일을 처리할 정도로 공정한 판결이 되도록 정성을 기울였다. 노온서가 옥리 개혁의 선두 주자였다면 정위평에 적절한 인재로 선발된 황패와 우정국 등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황패1_최강 공감력으로 법을 적용하다

선제는 백성들의 고생을 잘 아는 터라 관리들에게 은택을 베풀라는 조서를 수시로 내렸다. 관리들은 들은 척만 척. 하지만 황패는 달랐다. 우량한 관리를 선발하고 부서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왕의 뜻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과부나 홀아비 등 어려운 자를 돕기 위해 닭이나 돼지를 키워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향촌의 규칙을 정해서 선행을 장려했다. 백성의 자립을 위해 농사와 길쌈을 장려하고 과일 나무를 심게 하고 가축을 기르게 하고 말에게 곡식을 먹지 말게 하는 등. 백성들의 가렵고 힘든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해 황패는 온 정성을 다했다.

황패는 백성 뿐 아니라 아래 관리들도 세밀하게 챙겼다. 사찰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나이가 많고 청렴한 관리를 내보냈다. 현승이란 나이든 관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늙고 귀가 먹었다고 축출하려고 하자 황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현의 현승은 청렴한 관리이니 비록 늙었다지만 일상에 불편이 없고 좀 듣지 못한다고 무엇이 나쁜가? 잘 도와주어서 현명한 사람은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라.” 혹자가 그 까닭을 묻자 황패가 대답했다. “나이가 많은 관리를 자주 바꾸면 옛사람을 보내고 새사람을 맞이하는 비용이 들며 나쁜 관리가 장부를 조작하거나 재물을 도적질하여 공사 간에 지출이 많이 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백성들이 부담해야 하며 관리를 새로 임명하여도 꼭 똑똑하지도 않아 옛사람보다 못할 수 있으니 공연히 혼란만 부추길 것이다. 무릇 백성을 다스리는 길은 아주 심한 것만 없애면 될 것이다.””

(「순리전」, 『한서』 8권, 명문당, 306쪽)

마지막 멘트, ‘아주 심한 것만 없애면’을 관리를 대충 써도 된다는 뜻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관리가 늙었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것. 일 처리가 느리니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주변에서 도와주면 얼마든지 해결된다. 황패는 사람 하나하나를 공감하는 정치를 펼쳤다. 백성에게 벌을 주기보다는 부지런히 먼저 가르치고 나서야 형벌을 적용하였고, 위와 같이 나이 많은 관리들을 온전히 지켜주는데 힘을 썼다. 황패가 관리들과 어떻게 소통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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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리가 급히 출장을 가다가 식사를 하려는데 까마귀가 손에 있는 고기를 낚아챘다. 지나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황패에게 전했다. 그 말을 들은 황패는 출장 갔다 온 관리에게 “고생이 많았구나. 길에서 식사를 하다가 까마귀한테 손에 쥔 고기도 빼앗겼다니!” 관리는 감격을 했고, 황패가 출장 중의 일을 훤히 알고 있다고 여겨 묻는 말에 숨기지 않고 보고하였다. 황패 늘 관용과 온화한 태도로 다스린다고 명성이 자자했다. 선제는 다음과 같이 칭찬한다.

  “영천군 태수 황패는 조령을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교화에 힘써 효자와 공손한 젊은이와 정숙한 부인과 온순한 젊은 사람이 날마다 많아졌으며, 농부는 밭두둑을 양보하고 백성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갖지 않았으며, 홀아비나 과부를 보살피고 가난한 백성을 구휼하였으며, 감옥에는 8년 동안 중죄를 지은 죄수가 없고 관리들은 교화에 힘쓰고 바른 행실을 권장하였으니 가히 현인군자라 할 수 있다.”

(「순리전」, 『한서』 8권, 명문당, 308쪽)

태수 황패의 다스림으로 인해 한 고을의 분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황패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난 황패가 진심으로 학문을 좋아해서라고 생각한다. 당시 하후승과의 에피소드가 있다. 하후승은 학문이 높은 자로 질박하고 정직하여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자였다. 선제는 증조할아버지 무제를 높이는 의식을 치루고 싶어 했다. 모든 신하가 찬성하는데 하후승만 반대했다. 이유인 즉은 무제는 땅은 넓혔지만 병사를 죽게 하고 백성들의 재력을 고갈 시켰으니 높임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 그러자 신하들은 황제의 조서를 거부했다고 하후승 탄핵 상주문을 올린다. 황패는 탄핵을 거부하고 하후승을 지지해서 같이 하옥된다.

죽을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힌 상황에서 황패는 하후승에게 경전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하후승이 죽음을 앞두고 무슨 공부냐며 거절 하자 황패는 “아침에 도를 깨우쳤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자 옳은 말이라 여겨 그 다음해 겨울이 넘도록 강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후 재해가 일어나자 황제는 자신이 부덕한 탓이라 여겨 대 사면령을 내렸고 그들도 출옥할 수 있었다. 죽음이 목전에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는 정신. 이것이 황패를 관용과 온화의 아이콘으로 만든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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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패2_태수의 그릇과 승상의 그릇은 다르다

황패는 ‘순리전’에 기록된 대표적 인물이다. 순리와 혹리의 구분은 사마천이 구분한 분류다. 순리(循吏)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백성을 위해 법을 집행하는 자라면 혹리(酷吏)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법 적용으로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는 관리이다. 한서는 사마천의 구분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황패는 한나라 대표 순리로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여 승상까지 올라간다. 황패가 승상에 올랐으니 얼마나 정치를 잘 할까라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한서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황패의 능력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우수했으나 승상으로서 기강을 잡고 호령하거나 풍채 면에서는 병길과 위상, 우정국에 미치지 못했으며 공적이나 명성은 군을 다스릴 때만 못했다.”

(「순리전」, 『한서』 6권, 명문당, 311쪽)

황패가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은 탁월했으나 승상의 역할은 부족했다는 평가다. 반고가 황패를 폄하한 걸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상에 다양한 그릇이 필요하듯이 황패의 그릇은 태수의 역할에는 완벽했으나 승상으로 쓰기에는 용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반고는 황패에 대해 묘한 문장을 또 남기고 있다. 이것은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 각자 고민하기 바란다.

  “전에 황패가 젊었을 때 양하현의 유요로 근무하며 관상을 보는 사람과 친하여 함께 다녔는데 한 여인을 보더니 관상가가 말했다. ‘이 여인이 부귀를 타고 났는데 그렇지 않다면 관상 보는 책이 쓸데가 없을 것이다.’ 황패가 물어보니 마을 무당의 딸이었다. 황패가 바로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고 평생을 같이 살았다. 승상이 된 뒤에 두릉현으로 이사했다.”

(「순리전」, 『한서』 8권, 명문당, 315쪽)

관상을 보는 자와 친함을 굳이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방술가들은 권력과 결탁한 경우가 많았다. 만약 황패가 부귀에 욕심이 멀어 무당의 딸을 부인으로 삼았다면 병길이나 우정국보다 승상 역할을 못한 것이 사심을 가진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부귀에 대한 욕심이 많아 무당의 딸도 마다하지 않던 그가 학문 수양을 통해 개과천선하여 순리 황패가 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해석이든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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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점은 훌륭한 대로 부각해주고, 아닌 것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반고는 좋은 사람이라고 무조건 추켜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펙트 체크가 정확하다. 훌륭한 점은 훌륭한 대로 부각해주고, 아닌 것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아무튼 위의 문장은 황패를 디스한 것인지 아닌 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긍정적이진 않아 보인다. 순리전에 실릴 정도의 훌륭한 황패지만 황패도 사람이다. 반고는 인간은 이렇게 울퉁불퉁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우정국’의 판결

우정국, 황패보다 승상 역할을 잘 했다고 반고가 평가한 인물이다. 그는 창읍왕의 부정한 행위를 리스트 업하여 곽광에게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우정국이 창읍왕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한나라는 진작 망했을 수도 있었다. 우정국은 올바른 법 판결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아래 사람을 대등한 예로 대우하는 등 처신을 잘하여 모든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우정국은 스승을 모시고 춘추를 배웠는데 경전을 들고 수업을 받으며 북면하고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사람됨이 청렴하고 공손하였는데 특히 유생을 우대하면서 비록 비천하여 걸어 다니는 하급 관리에게도 우정국은 대등한 예를 갖추었으며 은애공경을 다했기에 학사들도 모두 칭송하였다. 그의 의옥평결에 법 적용이 공평하였고 홀아비나 과부를 불쌍히 여겼고 죄상이 의심스러울 때는 가벼운 쪽을 따랐으며 특히 신중하게 처리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도 우정국을 칭송하였다. ‘장석지가 정위가 되니 천하에 억울한 백성이 없었고 우정국이 정위가 되니 백성은 원망하지 않았다.’”

(「전소우설평팽전」, 『한서』 6권, 명문당, 246쪽)

그의 결정은 늘 공평하여 누구도 그의 결정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군의 백성들은 우공이 아직 살아 있는데 그를 칭송하기 위해 사당을 세울 정도였다. 그의 법 적용이 어땠기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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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군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시누이는 며느리가 죽였다고 고발했다. 며느리는 죽이지 않았다고 아무리 부정해도 해도 옥리는 믿지 않았다. 옥리의 문초가 고통스러워서 며느리는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사형선고로 사건 마무리! 이 사건은 상부에 보고가 되었고, 우정국은 공평하게 처리가 됐는가를 알기 위해 조사를 하다가 며느리에 대한 주변 평가를 듣게 된다. 며느리는 10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해서 마을에 효부로 평판이 자자했다. 우정국은 효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밀착 조사를 했다. 그러자 이웃의 충격적인 증언을 듣게 된다. 착한 며느리가 나를 봉양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자식도 없이 수절하는 것이 애처롭기만 하다. 나는 이미 늙어 젊은이만 오랫동안 고생시켜야 하니 이를 어찌하겠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을 봉양하느라 발목이 묶여 젊은 인생을 수절하고 있으니 내가 죽어 버리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우정국은 태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태수는 사형선고를 철회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면 사건을 잘못 처리 한 게 되니 더욱 인정할 수 없었던 것. 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다. 그것을 알아차릴 때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다면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완벽함을 위해 계속 부인하는 태도가 문제다. 바로 태수가 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우정국은 판결을 뒤집을 수가 없자 사건의 문서를 끌어안고 통곡하면서 병을 핑계로 사직한다. 결국 며느리는 처형되었고 그 이후 그 마을은 3년 동안 가뭄이 들었다. 후임 태수가 가뭄의 이유를 점 쳤는데 우정국은 효부가 부당하게 죽어서라고 말해준다. 후임 태수는 소를 잡고 직접 효부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석비를 세우자 하늘에서 바로 큰 비가 내렸고 그 해는 풍년까지 들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우정국을 더욱 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의 디테일한 심경과 상황까지 헤아린 법 적용! 이것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마음이어야 한다. 검찰 개혁이란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기계적인 판결을 한다면 AI가 더 낫지 않을까. 굳이 사람이 판단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익을 위한 법 집행을 하는 자가 검찰이라면 의사도 인공지능 왓슨이 활약하는 시대에 AI 검찰 교체를 검토하는 게 나을 수도.^^; 이 시대에 우정국 같은 인물은 없는 것일까. 아니 우정국 같은 검사가 나오는 토양을 만드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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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디테일한 심경과 상황까지 헤아린 법 적용! 이것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마음이어야 한다.

우정국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대단한 애주가! 술 몇 말을 먹어도 난잡하지 않았으며 겨울에 판결을 내고 평의를 청할 때 음주하면 더욱 정밀하고 명철했다니 남다른 체질을 타고 났나 싶었다. 달리 생각해보면 보통 사람은 조금만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데 말술을 마시고도 정신 줄을 잡는 경지니 얼마나 자기 수양이 잘 된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한서에는 우정국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우정국 부친이 마을 문이 무너져 수리를 하고자 했다. 그러자 부친은 마을 사람들에게 네 마리의 끄는 덮개가 높은 수레가 다니도록 문을 더 높고 크게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유는? 나는 옥을 다스리면서 음덕을 많이 베풀었고 남의 원한을 산 일이 없으니 필히 융성한 자손이 있을 것입니다.”(「전소우설평팽전」, 『한서』 6권, 명문당, 246쪽) 부친의 말대로 우정국은 승상이 되고 아들 우영은 어사대부가 되었다. 축적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자식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자식을 위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처럼 음덕을 베풀고 남의 원한을 사지 않는 삶을 자손에게 선물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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