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주역스쿨 정리

 

질문자1: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영과 혼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화스님: 따라서 해보세요. 나무아미타불.

질문자1: 나무아미타불.

정화스님: 자, 이제 보살님은 무조건 극락에 가도록 딱 정해졌습니다. 지금부터는 내일을 어떻게 살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든 보살님은 완벽하게 극락에 갑니다. 자, 이것이 정해진 답이에요. 불교에서 말한 답이에요. 그러면 영혼이 무엇인지, 뭐라고 개념 짓든 무조건 죽으면 보살님은 완벽하게 좋은 데로 갑니다. 불교에서 말해준 답인 거예요. 그래서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자신을 즐겁게 대하고 재밌게 살라고 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다르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무엇을 받아 들이냐가 자신의 미래가 되는 것처럼 파악될 뿐이에요. 당신은 죄가 많아요. 죗값을 치르지 않으면 지옥가요. 이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죽을 때까지 죄 값 치르러 고민하다가 죽는 거고, 사실은 아무 상관없어요. 자기 내부에 신념체계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다음에 자기를 결정해요. 불교는 당신의 신념체계를 왜 그렇게 괴롭게 하느냐. 나는 당연히 좋은데 간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안심하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집착하지도 말고 마음 편히 먹고 지금 집착하지 말고 집착하지 않으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에 그래서 원하지도 말고 잘 살아라 이것뿐이에요.

잘 사는 것은 책을 읽는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잘못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신념체계가 자신의 현재 삶을 결정해요.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 라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이 안 좋은 삶이 되는 거고 다른 사람이 볼 때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삶이냐.’ 고 말하더라도 본인한테는 너무나 훌륭한 삶이라고 신념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훌륭한 삶인 거예요. 우선 내 삶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할 때, 배운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각각이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 정의라는 것이 거의 맞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들어오는 여러 가지로 자기 삶을 재단하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체계가 ‘잘 살고 있어’ 라고 말하도록 신념체계를 계속 훈련해가야 해요. 그러면 현재는 물론이고 죽은 이후까지도 잘 사는 거예요. 앞으로도 나는 잘 살아왔고 잘살 수 있을 거라 말하세요. 어떤 일을 해서 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잘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잘 살 거예요. 그거면 돼요.

질문자2: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종가집인데요. 저희 시아버님이 저를 며느리로 선택할 때 제사를 잘 재내겠다 생각해서 선택하셨대요. 그래서 그동안 잘 지내왔어요. 그런데 요번 추석에, 사실은 저희 시어머님이 편찮으셔서 그것도 제가 건의를 해가지고 ‘차례를 모시지 말자’ 그래서 안모셨어요. 사실은 안모시니까. 가족이 그렇다고 해서 안 모이는 것도 아니고 먹을 건 다 해서 먹고 하니까.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즐겁고 좋더라고요, 부담이 없어서. 그래서 안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또 어디서 들으니 제사는 산사람을 위해서 지낸다고도 이런 이야기도 들리고 하는데 살짝 안 지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는데 또 한편으로는 이 제사라는 게 그래도 몇 천 년을 이어 와 가지고, 제가 알 수 없는 범위의 뭐가 있으니까 그래도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조금 그 부분에 대해서 갈등이 생기고 있어요.

 

정화스님: 우선 제사를 지내지 마세요. (청중 웃음) 왜냐하면 옛날에는 상을 많이 차려놓으면 그것이 자기집안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 이예요. 그 앞에 서면 다 흐뭇해요. 그래서 그 흐뭇한 것을 보고 있는 조상들도 흐뭇해. 지금은 이것을 많이 차렸다고 해서 아무라도 가문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아요. 괴롭기만 해. 이제 조상은 뭘 보느냐 하면 이걸 보는 게 아니고, 흐뭇해하지 않는 후손들만 보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걸 보고 흐뭇해하는 거요. 우리 집안이 이렇게 재물을 많이 올릴 만큼 했다고 자부심을 가지니까 그냥 이 재물하고 상관없이 흐뭇해하는 후손과 조상이 만나잖아요.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아요. 왜 그런 고리탑탑한 걸 하고 있느냐. 뭣 하러 고생만 하냐. 왜 며느리는 하고 다른 여자는 안하고. 또는 왜 여자는 하고 왜 남자는 안하냐 하고… 집안에서 이혼감이 되는 상황이 예요. 그러니 전부다 불편해요. 받아들이는 사람도 불편하고 하는 사람도 불편해요, 조상도 불편하고… 그런 것을 뭐하려고 해요.

조상은 자기 후손들이 흐뭇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지 자기를 잘 섬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엄마 아빠가 자기를 두고 돌아가셨는데 생각해봐요. 자기 음식을 만들면서 찔찔거리고 있는 딸을 보고 싶겠어요? 아니면 편히 앉아서 즐거운 딸을 보고 싶겠어요. 다 즐거운 딸을 보고 싶은 거예요. 옛날에는 제사를 하는 것이 권위를 상징하는 때도 좀 괴로운 것에 더 보태서 이것이 더 자기를 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일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해하니까 가장 간소하게 하고 그것도 싫으면 전화를 하면 제사음식 다 주문 해줘요 불러가지고. 그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그냥 잠깐 하고 한 시간 보고 그냥 오고. 오고 싶으면 오고 이렇게 하면 돼요.

앞으로는… 그전에 제가 80년대 어떤 분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그때는 그래도 장지에 묻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왜 화장 하는 경우가 드물었지. 그런데 화장을 하드라고… 큰아들이 선택을 해서… “왜 화장을 하십니까?” 하니까 내 아들, 딸부터는 아무도 이 무덤가에 와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애들한테 오지도 않는데 괜히 쓸데없는 짐을 지울 이유가 없다. 화장해서 그냥 어디 모시지도 않고… 화장해도 모시잖아요. 그 어른은 모시지도 않고 산에 그냥 뿌려가지고 우리 후손들이 아무도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도 있는지 관심 안 갖도록 하겠다… 그래도 아버지는 좋아해요. 자기 후손이 편하면 좋아해요. 그래서 마음에 찜찜한 생각 전혀 가지지 말고 즐겁게 그런 날을 맞이하면 모든 조상들이 다 좋아합니다. 조상이 좋아하면 됐지요. 조상이 괴로운 일을 하려고 그렇게 고민하세요? 고민할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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