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앞에서 만난 순리의 대명사 노온서, 황패, 우정국은 누구보다 공감력 최강의 인물들이었다. 이런 인재들을 수족으로 둔 선제는 정말 운이 좋은 왕이다. 평민으로 떨어졌다가 황제가 된 것도 천운이지만 신하들 복도 많은 황제. 그 중에서도 최고의 신하는 병길이 아닐 수 없다. 병길이 아니었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었을 운명. 목숨을 살려준 것도 고마운데 보살펴주고 왕으로 천거까지. 이것만이 아니다. 선제 정치에 병길 없는 정치는 상상할 수 없다. 위에 언급된 세 사람도 직간접적으로 병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렇게 병길이 나라 안을 책임졌다면 밖은 조충국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선제의 인복은 정말 끝이 없다. 선제 정치의 가히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는 병길과 조충국을 만나보기로 하자.

병길1_법보다 사람이 먼저다

병길은 원래 옥리로 하급관리였다. 그러나 시경과 예기를 공부하면서 큰 뜻에 통한다. 그런 그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최고의 자리인 승상까지 오른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그는 관대하고 예를 지키고 겸양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는 조용한 듯하지만 강단 있는 사람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유병이를 살린 것을 보라. 확실한 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창읍왕이 폐위되자 병길은 곽광에게 유병이를 추천한다. 혹시나 유병이를 황제로 만들어 훗날 도움을 받으려는 계산인가 싶기도 하지만 웬걸 병길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입 밖에도 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병길의 은덕이 알려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 여인이 감옥에서 유병이를 돌보았다고 주장한 것. 아이를 게을리 돌보아서 혼난 여종이 보상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정말 도움을 준 사람은 묻히고 엉뚱한 사람이 거론되자 병길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선제는 그 때서야 병길의 도움을 알게 되었을 정도로 그는 신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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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병길이 죽을 정도로 큰 병에 걸렸다. 선제는 전전긍긍했는데 하후승은 죽지 않을 거라 단언한다. 이유인 즉은 음덕을 베푼 사람은 좋은 복을 누리고 자손까지 복을 내리는데 병길은 그 보답을 아직 받지 못했으니 하늘은 그를 데려갈 수 없다는 논리다. 하후승 말대로 병길은 하늘이 보우하사 죽지 않고 살았다. 하후승은 하늘이 병길을 버리지 않을 거라 확신할 정도로 그를 깊이 존경했다. 병길의 리더쉽은 이처럼 남달랐다. 한서는 병길이 하급 관리에게는 잘못을 덮어주고 장점을 드러내고 애를 쓴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런 그의 인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병길의 수레를 모는 관리가 술을 좋아하여 몰래 마셨는데 병길을 태워 가다가 수레에 오바이트를 했다. 주변에서 감히 승상에게 그럴 수 있냐며 그를 쫓아내라고 난리가 났다. 그러나 병길은 술에 취했다고 사람을 내치면 그 사람을 누가 데려가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참아야지. 그 사람은 승상 수레 좌석을 조금 더럽혔을 뿐이야.”(「위상병길전」, 『한서』 6권, 명문당, 463쪽) 라며 끝내 내보내지 않았다. 우리는 보통 상대가 잘못하면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헌데 병길은 한 번 더 생각한다. 수레 끄는 관리를 술에 취한 것으로 자르게 되면 그 꼬리표가 계속 따라 붙어 다른 곳에 가서 일할 수 없으니 자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상이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보면 고작 수레가 조금 더러워졌을 뿐이니 처벌할 일도 아니라는 것. 병길의 시선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사람을 존중하면 시비를 넘어 사람부터 살리는 판단을 하게 되는. 그의 시선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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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존중하면 시비를 넘어 사람부터 살리는 판단을 하게 되는. 그의 시선을 배우고 싶다.

그 이후에 수레 모는 관리가 병길을 돕는 일이 발생한다. 그는 변방에서 온 사람으로 그쪽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변방에서 공문이 왔는데 그것을 수레 모는 관리가 먼저 보고 흉노족이 쳐들어오는 상황을 병길에게 잘 설명했다. 병길은 그 사실을 황제에게 알렸고 대책을 묻는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병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용납되어서도 안 되지만 각자 잘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승상이 수레 담당 관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찌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겠는가?” 이에 승상부의 속관들은 병길을 더욱 칭송하였다.

(「위상병길전」, 『한서』 6권, 명문당, 464쪽)

병길은 특출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병길의 리더쉽은 특별했다. 하급 관리들이 잘못해도 장기 휴가를 줄 뿐 끝내 조사하지 않았다. 그가 징계하지 않자 사람들은 술렁였다. 그러자 삼공이 일하는 부서에 관리가 조사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아마 내 식견이 좁다고 할 것입니다.”라는 말만 한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자신의 식견이 좁다고 말해지는 게 싫어서 징계하지 않은 걸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천하의 병길이 설마 그런 쪼잔한 마음을 냈겠는가. 병길이 처벌이 아닌 장기 휴가를 준 것은 관리들에게 ‘자숙 기간’을 갖도록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한다.

관리들이 처음부터 잘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을 하다 보니 주변의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사적으로 욕심도 생겼을 것이다. 수레 몰이에게 기회를 주듯 병길은 자숙 기간을 통해 자정 작용을 하게 한 것이리라.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관리라야 법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성찰할 기회도 없이 처벌만 한다면 상관 눈치만 보면서 관직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겠는가. 병길은 사람의 본성을 믿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방치한 게 아니라 관리들의 성향과 업무 능력 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병길이 죽을 때 그의 사람 보는 능력이 빛을 발한다. 선제가 친히 문안하여 병길이 죽으면 누가 승상으로 적합하냐고 묻자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고 뒤로 뺀다. 선제가 재차 묻자 병길은 적합한 인재를 줄줄이 사탕으로 늘어놓는다.

  “서하태수인 두연년은 법도에 밝고 나라의 엣 일을 잘 알고 있으며 이전에 10여 년간 구향의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군을 잘 다스린다는 명성이 있습니다. 정위인 우정극은 법집행이 상세하고도 공평하여 천하에 원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태복인 진만연는 계모를 잘 봉양하여 돈후한 성품에 행실이 바릅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저보다 나은 사람들이니 폐하께서 잘 살펴 보십시오.”

(「위상병길전」, 『한서』 6권, 명문당, 467쪽)

이처럼 병길은 사람마다의 캐릭터를 완전히 꿰뚫고 있다. 잘못한 관리에게 장기 휴가를 준 것도 그들의 성향을 잘 알았기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병길은 관리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자. 백성의 스승이자 귀감이 되는 자를 발굴하고 추천하는데 쉼이 없었다. 선제는 믿고 맡긴 병길의 추천을 무조건 반영했는데 모두가 직무를 잘 수행하였다고 한서는 기록하고 있다.

병길2_정치의 큰 틀을 아는 자

이렇게 사람 잘 보는 병길이 사람을 외면한 사건이 있었다. 병길이 행차를 하는데 길에 패싸움을 하여 죽고 다친 자가 길에 널렸다. 병길은 무슨 문제인지 묻지 않고 가다가 소가 혀를 내놓고 헐떡거리자 멈춰서 말 탄 관리를 시켜 소를 몰고 몇 리 길을 왔는가?” 물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사람은 안 챙기고 소를 챙긴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병길은 말한다. 백성들이 서로 싸워 죽고 다친 것은 소속 관리들이 체포할 일이다. 승상은 연말에 일을 잘했으면 그 치적을 평가하여 상과 벌을 주면 될 뿐이다. 승상이 그 일에 관여하면 태수들의 할 일을 뺏는 격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소는 왜 챙긴 것일까. 소를 챙기는 일이 승상의 일이란 말인가.(라고 따지고 싶겠지만 진정하시라. 우선) 병길의 해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지금 봄철에 동방의 신이 나올 때라서 크게 더울 때가 아닌데 소가 가까운 길을 왔어도 더위 때문에 헐떡거린다면 이는 절기가 이상한 것이니 혹시 재해가 있을지 걱정할 일입니다. 삼공(三公)은 직분 상 음양의 조화를 걱정하기 때문에 물었던 것입니다.” 승상부의 속관들은 병길이 정사의 큰 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위상병길전」, 『한서』 6권, 명문당, 465쪽)

승상은 자연 재해가 나면 그것을 해결한다. 그러니 계속 변하는 자연의 흐름을 관찰할 수밖에. 요즘으로 치면 기상청 기능을 승상 자신이 한 것이다. 병길은 소가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더워하니 이상 기후를 예견했던 것. 사람의 다툼은 하급관리가 해결할 수 있지만 재해 대비는 하급 관리가 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승상은 더 큰 틀에서 세상을 봐야 재해에 대비를 할 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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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족 관리를 엄격하게 했다. 곽광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다. 곽광도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결국 가족 문제에서는 투명하지 못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병길은 곽광과 어떻게 달랐을까. 병길의 아들 병현이 제사를 지낸 후 제복을 갈아입지 않고 다른 일을 보았다.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병길은 대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묘는 지극히 중요한 일이거늘, 병현이 공손하고 신중하지 못하니 틀림없이 내 작위를 없앨 것이다.” 실제 병현은 죄를 지어 작위가 깎였다. 작은 실수가 결국 큰 실수가 되는 법. 병길은 아들의 작은 실수조차 무시하지 않았다. 앞서 하급관리에게 너그러웠던 병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누구보다 자신과 가족에게는 엄격했고 남들에게는 너그러웠던 병길.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선제 시대에는 병길 외에도 좋은 관리들이 줄줄이 배출된다. 선제와 그를 받쳐준 상급관리들의 선한 영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법이 정교하고 객관적이어도 결국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 하여 한서는 병길과 위상의 논찬에서 선제의 중흥기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날에 이름을 지으며 필히 그 모습을 따라 지었으니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고 가깝게는 몸에서 취했다. 그래서 경전에서도 주군을 원수(元首)라 하고 신하를 발과 다리라 하여 한 몸으로 서로 의지해야 성취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처럼 군신이 서로 짝이 되는 것은 고금의 상도(常道)이었고 자연스러운 형세였다. 근래 한의 승상을 보면 고조가 나라를 열 때 소하와 조참이 으뜸이었고, 선제의 중흥의 병길과 위상의 명성이 있었다. 이때 면직과 승진에도 차례가 있었고 여러 직책이 잘 운영되면서 공향은 그 직분을 잘 수행하였고 해내에 예절과 양보의 기풍이 있었다. 지난 일을 본다면 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위상병길전」, 『한서』 6권, 명문당, 465쪽)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나라의 중흥기는 좋은 임금과 좋은 신하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인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좋은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반고의 촌철살인 멘트라고 생각한다.

조충국1_노장의 설득력으로 한나라를 구하다

병길이 안을 평정했다면 밖은 조충국이 평정했다. 먼저 다시 대외 정세 변화를 알아야 한다. 무제 때 위청과 곽거병이 흉노와 전쟁하여 서역으로 통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북방의 흉노와 남방의 강족은 다시 한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도 내부 분열이 있었고 흉노는 강족을 부추겨 한나라에 대적하고자 했다. 이들이 서로 연합하여 서역으로 가는 연결로가 끊기자 선제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때 노장 조충국이 나선다.

조충국 : 저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제가 다시 물었다.)

선제 : 장군 생각에 강족은 어떠하며 어떤 사람을 써야 하는가.

(그러자 조충국이 말했다.)

조충국 :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군사란 미루어 짐작할 수 없으니 신이 금성군에 가서 방략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강족은 약소 이민족으로 천자의 뜻을 거스르며 배반하면 머잖아 멸망하니 폐하께서는 제에게 맡기시고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에 선제는 웃으면서 말했다.)

선제 : 알았소!

(「조충국신경기전」, 『한서』 6권, 명문당, 99쪽)

당시 조충국은 나이가 70세라 선제는 그를 너무 늙었다고 생각해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그가 셀프 추천으로 직접 가서 대책 마련을 하겠다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백문이 불여일견’이 여기서 유래한 말이니 기억하기 바란다. 은퇴를 해도 한참 전에 했어야 할 노장이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우기니 선제도 난감했을 것.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조충국은 누구보다 용감하면서도 신중한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제는 허락한다.

강족은 용병은 쓸 줄 몰랐지만 기동력이 뛰어나므로 성급히 공격하면 병사를 크게 잃게 되므로 조충국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의 견고한 방어에 강족 장수들은 조금씩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의 용병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함부로 배반한다고 해서 지금 천자가 장군을 파견하는데 나이가 8, 90인데도 용병을 잘 한다. 지금 죽을 각오로 한 번 싸워본다지만 싸워 이기겠나!”

(「조충국신경기전」, 『한서』 6권, 명문당, 102쪽)

조충국은 한의 위엄으로 반역자들의 투항을 유도하고 적들을 해산시키며 그들이 피폐한 때를 공격하는 전략을 시행했다. 점점 전쟁 기간은 길어지고 대규모 파병에 대한 비용이 커지자 선제는 속전속결을 명령한다. 조충국은 그럴 수 없었다. 장수로서 군사를 거느리고 임지에 있다면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나라를 편안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면서 그는 군사적 이해관계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여 설득한다. 내용인 즉은 지금 공격하면 그들을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적의 병력이 더 많아져서 앞으로는 더 많은 힘을 써야 토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라의 걱정은 십여 년 이상 계속 될 것이며 2, 3년 안에 끝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멘트에 그의 충정이 묻어난다. 자신은 올라갈 때까지 올라간 신하이니 76세에 소명을 실천하다가 죽어 시신이 썩지 않는다 하여도 걱정이 없다는 것. 사심 없이 오로지 병법의 이해득실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자신을 믿어달라는 것이다. 죽음도 불사한 충정어린 노장의 글에 선제는 설득을 당하고 조충국의 방책을 결국 허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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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불사한 충정어린 노장의 글에 선제는 설득을 당하고 조충국의 방책을 결국 허락하고 만다.

조충국은 사졸들을 사랑하여 함부로 죽게 할 수 없기에 계략을 세운 뒤에 전투를 신중하게 했다. 그렇다고 적들을 함부로 죽인 것도 아니다. 적군을 공격하는데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천히 몰아가자 누군가 행군이 느리다고 보챈다. 그러자 조충국은 말한다.

저들은 궁지에 몰린 것이니 급박하게 공격할 수 없다. 천천히 공격하면 도주하며 뒤돌아보지 않지만 급히 공격하면 돌아서서 죽기로 싸우려 할 것이다.” 또한 강족 중 선인의 마을에 들어가자 불을 지르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한나라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복속해왔다. 군사를 동원하지 않고 강족의 마음을 얻어 평정한 것이다. 그렇게 차츰 차츰 강족을 해결해 가는 중 조충국이 병이 들자 선제는 불안해서 공격을 명한다. 조충국은 강족 중 선련이 스스로 붕괴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기다리면 저절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황제 명령이라도 따를 수 없었다. 그는 선제가 서두르는 이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장기적인 병력 파병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그 유명한 ‘둔전책’을 제안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서역에 보병 약 만 명을 각지에 배치시켜 농사일을 해가면서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것. 자급자족을 해서 병력의 손실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조충국은 선제에게 둔전책의 12개의 이로운 점을 열거하면서 방책을 채택해 달라고 애원한다. 선제도 바로 허락하지 않고, 의심나는 부분을 묻는다. 조충국은 선제에게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죽음을 무릅쓴 글을 올린다. 그의 글이 얼마나 설득력 있었는지 선제는 그때마다 신하들과 의논했는데 처음에는 조충국을 지지하는 자가 10에 3인이었다면 갈수록 늘어서 10에 8까지 올라간다. 승상인 위상이 마지막에는 밀어붙일 정도로 조충국의 신뢰도는 높았다.

  “신들은 어리석어 군사의 이해관계를 잘 모르고 조충국이 여러 차례 말한 군사방책은 늘 옳았으니 신은 그 계책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선제는 이에 조충국에게 답신을 보내 말했다.

  “황제가 후장군에게 묻나니, 상서한 강족을 이길 수 있는 방책에 대하여 장군의 계획을 승인하니 장군은 계책을 실행하시오. 또 남아서 둔전하는 인마와 혁파하는 인마의 숫자를 보고하시오. 장군은 식사를 잘 챙기고 군사 업무에 조심하며 건강에 유념하도록 하시오.”

(「조충국신경기전」,『한서』 6권, 명문당, 136쪽)

결국 조충국의 끈질긴 설득으로 선제와 신하들을 모두 수긍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조충국전을 읽다보면 흉노와 싸우는 건지 조정과 싸우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것이 백전노장이 보여준 전쟁의 지혜가 아닐까.

조충국2_산서지역과 분리할 수 없는 자

다음 5월 조충국은 드디어 승리한 군사를 이끌고 귀환했다. 귀국했지만 오랫동안 조정을 비운 탓에 그의 방책을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공격적인 장군들의 공이 더 크다는 여론이 있었던 것이다. 친한 자가 조충국에게 조정의 분위기를 알려주면서 그들을 높이는 게 유리할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자 조충국은 말한다.

  “나는 이제 늙었고 작위도 끝까지 올랐으니 어찌 한때의 혐의를 벗으려고 명주를 속이겠는가. 전쟁이란 나라의 대사이며 당연히 후세의 법도가 되어야 하오. 늙어 남은 목숨을 다해 폐하를 위하여 전쟁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밝힐 수 있다면 내가 갑자기 죽는다 하더라도 누가 다시 나에 대한 말을 하겠는가.” 조충국은 자신의 의견대로 대답을 하였다. 선제도 그 계책을 옳다고 생각하였고, 신무현을 해임하고 본래 주천 태수의 관직에 복직 시켰으며 다시 후장군으로 위위(衛尉) 가 되었다.

(「조충국신경기전」, 『한서』 6권, 명문당, 139쪽)

조충국은 이 나이에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 오직 충정만으로 진실을 이야기할 뿐. 선제는 그런 조충국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신뢰했다. 그는 사람 보는 능력도 정확했다. 그는 강족의 후임자로 신탕이 내정되자 그는 술주정으로 인해 다스릴 수 없고, 그의 형 신임중을 추천한다. 황제는 지절을 받은 신탕에게 지위를 거두고 신임중을 다시 임용할 정도로 조충국을 신뢰했다. 신임중이 병으로 면직하자 신하들은 신탕을 재천거했다. 그러나 그는 조충국의 말대로 주정을 부려 강족이 배반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처럼 조충국의 사람 보는 눈은 예사롭지 않았다.

선제는 조충국을 무한 신뢰하였다. 나이가 들자 조충국은 간신히 사직을 간청해서 허락을 얻어낸다. 선제는 말 네 마리가 끄는 안거(安車)와 황금 60근을 하사한다. 그 후에도 조충국은 흉노와 강족에 대한 큰 논의가 있을 때 마다 군사작전에 협의하며 방책을 건의했다. 그것은 그가 86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백전노장의 지혜가 있었기에 한나라는 건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보통 장수라고 하면 공격 장면부터 떠오른다. 조충국은 설득의 달인에 가깝다. 70세의 노장의 몸으로 전장에 나갈 때도 선제를 설득했고 굽이굽이 위험할 때 마다 그는 모든 걱정을 해소하는 상서문을 올려 설득한다. 한서에는 주옥같은 조충국의 글이 남겨져 있다. 조충국의 글을 읽다보면 싸움이란 결국 사람을 아는 일이고 설득의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의 글을 옮기기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나는 반고의 조충국에 대한 평가 또한 흥미로웠다. 반고는 산동 지역에서 재상이 나오고 산서 지역에서 명장이 나온다면서 대부분의 장군들이 산서지역 사람이라며 배출된 장군들을 쭈~욱 열거한다. 산서의 형세가 흉노 지역과 비슷하기 때문에 전투 준비와 말 달리기와 활쏘기에 익숙하다는 것. 그런 풍조와 기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그의 마무리 멘트이다. 결국 이런 토양이 조충국 같은 장군을 배출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런 토양이 없는데 그런 장군이 나올 수 있겠냐는 반문으로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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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라는 토양이 조충국으로 표현된 것일 뿐 조충국 개인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우리라면 개인 조충국을 영웅으로 높이지 못해 난리가 났을 텐데. 참으로 조충국을 평가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 결국 조충국이 아니라 강서지역이 한나라 땅이어서 다행이라는 말로 읽힌다. 아무튼 조충국의 맹활약으로 인해 흉노의 힘은 점점 약해져 흉노 전체가 한나라에게 복속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선제는 그런 흉노를 제후의 윗자리에 서게 할 정도로 최상의 예우를 했다. 원제 때는 한나라의 사위가 되고 싶은 선우까지 등장. 우리에게 익숙한 미녀 왕소군도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다.

선제의 정치 노하우, 오직 참된 관리 뿐!

이제 선제에 대한 반고의 평가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효선제(孝宣帝)의 치국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이며 가분과 실질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정사나 문학과 법리의 인재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 직무에 정통하였으며 기술자나 산업분야에서도 원제나 성제 때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으니 모든 관리가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고 백성은 생업에 안주했음을 알 수 있다. 흉노의 분란을 만나 무도한 자를 없애고 대도를 따르는 자를 지켜주어서 한의 신의와 위엄을 북방에 떨쳤으며 선우는 인의(仁義)를 흠모하여 고개를 숙이며 번신을 자청하였다. 탁월한 공적으로 선종의 공덕을 빛나게 했으며 대업을 마련하여 후사에게 물려주었으니 가히 중흥을 이루었으며 그 은덕은 은의 고종, 서주의 선왕과 나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선제기」,『한서』 1권, 명문당, 492쪽)

한나라 전체를 통 털어 이런 평가를 받는 왕이 또 있을까. 그의 정치 키워드는 신상필벌! 관리들은 직책에 맞는 일을 하게하고 백성들은 각자의 직업에 편안하게 한 황제. 그리고 나라 밖 흉노에게까지 위엄을 떨친 황제. 선제는 안 밖으로 최고의 상태를 만든 것이다. 반고의 표현대로 은나라와 주나라 선왕과 비견할만한 정치!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선제 재위 25년 동안 곽광을 시작으로 하여 많은 신하가 함께 했음을! 난 선제가 죽기 전 마지막에 내린 조서가 기억에 남는다.

  “청렴한 관리를 천거하는 일은 정말 참된 인재를 골라야 한다. 관리의 질록 6백 석은 대부의 자리인 만큼 죄가 있다면 먼저 주청하여야 하며 질록은 그 성과에 따라 올라가야만 그 현명한 재능을 다 바칠 것이니 오늘 이후로는 6백 석 관리 중에서는 천거하지 말라.”

(「선제기」,『한서』 1권, 명문당, 491쪽

이 조서가 선제가 죽기 전에 내린 마지막 조서이다. 죽는 해까지 여전히 ‘참된 인재’ 발굴만이 정치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선제가 한나라를 중흥기로 이끈 힘이 아닐까. 아무리 시스템이고 제도가 훌륭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다. 선제의 초심이 이처럼 흔들림이 없었기에 한나라의 가을은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여기서 역사가 끝나면 좋으련만 역사는 속절없이 흐른다. 아쉽지만 열매의 완성은 곧 가을의 해체를 예고한다. 이제 가을은 저물고 겨울로 진입하는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누구나 생로병사를 밟아야 하듯 삶의 모든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 가는 한나라. 이제 천하의 한나라도 병이 들기 시작한다. 병도 생의 주기에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는 어떻게 병을 앓게 되는지 다음 스텝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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