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소녀,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 1)

김석영(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남자의 시선으로 보는’ 나

이야기는 분명 ‘여자가 되고 싶다’에서 시작했다. 한데 그 욕망은 흘러 흘러 가슴수술을 위한 돈을 모으고, 케겔운동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데까지 갔다. 어딘가 이상하다. 이건 거의 자신을 ‘섹스돌’처럼 대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잡지책을 통해 ‘어떻게 여자가 될까’를 열렬히 탐구하는 동안, 사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그 아래, 더 깊은 층위에서 작동하는 ‘남자의 시선’이다. 애초에 잡지 속 멋진 언니들이 ‘멋있어서’ ‘남자들을 사로잡은’게 아니다. 그들이 ‘남자들 마음에 들기 때문에’ 거기에 있고, ‘여자’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남자들 맘에 드는 여자들’의 모습과 행동지침을 가득 실은 잡지책은, 여자들에게 명령한다. “여자들이여, 이것이 여자다. 너는 이렇게 되어라!”라고.

그러니 열렬한 잡지책 애독자이던 내가, 누구보다 엄격한 ‘남자의 눈’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 엄격한 ‘남자의 눈’으로, 스스로를 ‘여자’라는 성적-이상적 기준에 빗대어 바라보고, 평가했다. 그 눈으로 바라본 거울 속 나는 때론 너무나도 ‘섹시해’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개조해야 할 대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몸에서 ‘가슴’, ‘성기’같은 것만 그렇게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런 거다. ‘여자’가 된다는 건. ‘스스로를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그 자체. 더더욱 여자다워지려면, ‘여자’라는 상에 가까워지려면 우리는 더더욱 ‘남자다운’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여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시선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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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들을 위해서 꾸미는 게 아니야.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나를 꾸며.”라고 말할 때. 그 ‘나’의 눈은, ‘남자의 시선’과 다를까? 대체 어떤 기준으로 ‘나’는 ‘만족’되는 걸까? (나는 ‘나’를 위해, ‘자기만족’을 위해 가슴 수술이 하고 싶었고 케겔 운동을 했다!) 특정한 누군가를 유혹하려고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지만. 거울을 보며 ‘오늘 꽤 괜찮은데?’ ‘오늘 예쁜데?’라는 생각을 할 때. 그 말은 ‘이정도면 은근히 남자들 주목을 받을 수 있겠는데?’, ‘남자들이 비웃을 정도는 아니야. ‘여자 대접’ 받을 수 있겠어.’라는 말들과 차이가 있는가? 거울을 보며 ‘오늘은 왜 이렇게 못생겼어!’라고 생각 할 때. 그것은 ‘도무지 성적 매력이 없어 보인다.’와 차이가 있는가?

여성 인권이 발달한 지금, 우리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표현, 혹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보면 격분하긴 한다. 20년 전의 잡지는 지금이라면 출판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출판되어봤자 시대착오적이라고 팔리지도 않을 거다. ‘남자에게 맞춰주는 여자’는 이제 촌스럽다.

하지만 핵심을 놓치면 문제는 더 세련되고 교묘해질 뿐이다. 우리가 ‘매력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아이돌, 배우, 모델들. 그 의상, 표정, 몸짓, 그들이 뿜어내는 매력에서 ‘성적 매력’을 제외하면 어떤 인간적인 매력이 남는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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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무의식적 층위에서 그런 취향을,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남자의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손톱만큼이라도 ‘섹스어필’이 되어야만 비로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취향. 그래서 의식적으로는 ‘남자들 보라고는 아니’라는 그런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남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꾸미고, 개조하며 그 시선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순한’, ‘순종적인’ 여자가 ‘독립적인’, ‘자유분방한’ 여자로 바뀌어도. 어떤 컨셉으로 포장되고 표현되어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의 시선’을 의심한다는 건 혼란스러운 일이다. 나를 억압하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내가 가지고 있다니, 어디로 도망쳐야 한다는 말인가? 나를 열심히 가꾸면 ‘남자의 눈’으로 나를 재단할 뿐이니. 나를 돌보지 않는 게 답인가? 아니! 사람이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가꾸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게다가, 나는 내 성욕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의 취향이 ‘나를 섹스돌로 보는 것’, ‘누군가가 여자를 섹스돌로 보게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니. 그것도 견디기 힘들만큼 싫다.

대체 어디서부터가 대상화고 어디서부터가 대상화가 아닐 수 있을까? 기준도 없다. 그냥 더 나아가면 심각한 대상화가 되고, 적당히 덜 나아가야 ‘그렇게 말하긴 무리’가 될 뿐이다. 이런 시선 위에서 다른 방향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적당히만’ 작동하도록 억압할 수밖에 없다. 혹은 “내가 좋아서 한다”고, 계속해서 ‘남자들 맘에 드는 나’를 만들며, 허울뿐인, 찝찝한 자유를 외치는 수밖에.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사람’을 오해하는 ‘하나의 시선’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거나, 여자들에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거나, 남자들이 모두 여자의 ‘가슴과 성기’만 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생물학적 여자인 내가 ‘여자 되기’에서 고투를 겪은 만큼 남자들 사정도 다르지 않다. 남자들도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남자’에 매료된다. tv에서든 잡지에서든 어디서든. 근사한 ‘남자’의 모습을 보고 ‘남자란 이렇게 멋진 거구나!’에 황홀함을 느끼고. ‘헐 나도 이 형처럼 될 거야!’라고 굳게 결심을 하든 않든, 무의식중에 ‘나는 남자’이며 ‘남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런 방식으로 여자를 원하고 대한다.’를 학습한다. 거기에 서걱거림과, 자신에 대한 왜곡과 결핍감이 범람할 것은 물 보듯 뻔하다.

‘그 기준이 여자들의 시선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 시선이 다른 성별의 시선인가? 스스로의 시선인가?’ 혹은 ‘이 세상을 남자가 지배하나? 여자가 지배하나?’가 아니다. ‘두 개의 성’, 그 자체가 문제다. 애초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순간부터, 두 개의 시선은 없다. 하나만 있다. 모든 것을 ‘성기적’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여자냐 남자냐’는 ‘성기’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이다. 둘은 ‘성기적 결합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여자’와 ‘남자’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남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존재,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존재. 그뿐이다. 그러니 단연 ‘여자’는 남자에게 섹스어필을 해야 여자라고, ‘남자’는 여자에게 섹스어필을 해야 남자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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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나’라고 믿고 있으니 우리가 아는 가장 강력한, 어쩌면 유일한 ‘관계 맺는’ 방식이 ‘섹스’인 것도 당연하다. 아는 관계가 그것밖에 없으니 우리는 성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할 수 있다고, 한 마디로 ‘섹시해야 잘 산다’고 믿는다.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외롭거나,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할 때 나의 ‘성적 매력’을 점검한다든가, 섹스를 하는 사이가 당연히 섹스를 하지 않는 사이보다 강력하다고 생각한다든가, ‘연애’정도는 해 줘야 누군가와 제대로 만나는 것이라 생각한다든가. 저 사람이 ‘설렘 모드’로 나를 대해주지 않으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든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중심에 ‘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성’으로만 규정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나는 여자!’ ‘나는 남자!’를 너무나 열나게 학습해왔기 때문에, 남을 통해서든 거울을 통해서든 ‘나의 성적 매력’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으면 불안감에 시달릴 정도로 ‘성적인 존재들’인 것이다.

사람이 가장 본질적 층위에서 ‘남자’나 ‘여자’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토록 크나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은 먹고, 자고, 싸고, 질문하고, 활동하며 살아간다. 우리 삶에, ‘성’은 일부분이다. 헌데 매 순간 ‘남자’혹은 ‘여자’, 즉 서로를 성적으로 자극하는 존재가 되려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자’가 지배하는 세상도,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도 아니고 ‘성’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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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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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Guest
이달팽

여자도 남자도 아닌, ‘성’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 (!!)
우리는 남자냐 여자냐, 어느쪽이 더 힘이 세냐, 어느쪽이 더 차별받냐- 이런 말들로 싸우고 있는데 말이죠
그 싸움이 끝나려면, 오히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성’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를 어떤 ‘성적’존재로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석영샘이 들뢰즈과타리와 함께 어디로 갈지 ! 궁금해지네요ㅎㅎ

moon彬
Guest
moon彬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는 것은 ‘성기’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 되는 군요!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 ‘섹스’만이 유일한 관계 방식이라는 게 공감되네요~
연애 관련 어플을 보면 온통 ‘서로의 성욕’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글 뿐이었던 게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