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사함은 자신의 호를 죽원옹竹園翁이라 짓고, 집에는 ‘불이당不移堂’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직역해보자면 그의 호는 ‘대나무 정원 노인’, 당호는 ‘옮기지 않는 집’이다.) 연암 시대에 호를 짓거나 어딘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렇게 살겠다’라고 하는 일종의 발심, 혹은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사함도 호와 당호를 지으면서 사철 푸른 대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기문(記文)을 부탁받은 연암은 ‘불이당’을 둘러보지만 어디에서도 대나무를 찾지 못한다. 이름은 뭐가 있어야 붙이는 것일 텐데, 당신의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는 어디 있는 겁니까? 머쓱해하는 사함에게 연암은 처삼촌 이양천의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그 편지를 쥐고 슬피 탄식하며,

이 학사李學士야 말로 진짜 눈 속에 서 있는 측백나무이다. 선비란 곤궁해진 뒤라야 평소의 지조가 드러난다. 재난을 염려하면서도 그 지조를 변치 않고, 고고하게 굳건히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으신 것은, 어찌 추운 계절이 되어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하였다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함은 성품이 대나무를 사랑한다. 아아, 사함은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인가? 추운 계절이 닥친 뒤에 내 장차 자네의 마루에 오르고 자네의 정원을 거닌다면, 눈 속에서 대나무를 볼 수 있겠는가?” (박지원, 불이당기, 연암집(), 돌베개, p66)

이양천은 영조에게 상소문을 올렸다가 화를 입어 흑산도에 위리안치된다. 말을 타고 하루 낮밤을 종일 달리는데, 유독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도착해보니 섬 공기는 습하고 독했고, 집 안에서는 독사와 지네가 튀어나왔다. 흑산도에 태풍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이양천은 노래 하나를 짓는다. “남쪽 바다 산호가 꺾어진들 어쩌리오/오늘 밤 옥루가 추울까 그것만 걱정일레”(같은 책, p64)

큰 파도가 치는데 작은 섬에 있는 위태로운 자신의 안위보다, 혹 센 바람에 추울지도 모를 영조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왕의 속을 긁어 유배를 당한 처지니, 비위를 거스르는 소리를 할 수야 없겠지만 어떻게 이런 노래가 나오는 것일까? 왕을 원망하는 마음이나 간언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를 흑산도에서 빼내기 위해 뒤로 힘을 써보려던 벗들에게도 이양천은 그런 짓일랑 하지 말라고, 그건 자기를 얕잡아 대하는 것이라며 그들을 단념케 하는 편지를 보낸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자신의 위치를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대 선비들에게 종종 놀라게 되는 지점은, 그들의 학문이 곧바로 그들의 감정과 태도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읽는 대로=아는 대로=느끼는 대로=쓰는 대로=살았다. 그런 태도는 그들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더 밝게 보인다. 여름엔 모든 나무가 푸르지만, 겨울이 오면 눈 속에서 대나무와 측백나무의 푸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몸이 편할 때나 별 일 없이 살고 있을 때에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하는 건 참 쉽다.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이렇게 생각해야지 등등. 하지만 문제가 나타나면 습관처럼 늘 하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귀양을 갈 것도 없다! 감정이 조금만 상해도 내가 ‘다르게 해보자!’고 했던 것들은 도루묵이 되어있다.

하지만 선비들에게는 일신의 평안이나 명리(命利)보다 ‘지조’가 더 중요했다. 그들은 자신의 배움을 몸의 편안함이나 이익, 명예에 대한 욕심에 팔아넘기지 않았다. 선비로 산다는 것, 학문을 존재의 중심에 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연암은 이렇게 말하고 떠난다. 당신은 학문을 하는 사람이오? 장차 추워지면 다시 와보겠소. 그때 당신에게서 대나무가 보일는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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