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소유욕의 화신, 연두 - 1)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Intro

20대를 보내기 직전, 나는 적어도 나의 세계에서는 온 우주가 뒤흔들리는 연애를 했다. 내 안에 있는 온갖 욕망의 소용돌이가 나를 반겼다. 소유욕, 질투, 권력욕, 결핍…. 나는 거기에 무한히 빨려 들어갔다. 정말 이성이 있는 인간이 이럴 수 있나~ 싶을 만큼. 욕망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삶은 내게 지옥이 되기도 했다. 어째서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 걸까! 괴로움이 큰 만큼, 나는 그 방향을 너무나 바꾸고 싶었다. 내게도 분명 자유롭게 사는 길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그것은 도저히 의지로 멈춰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욕망을 그렇게밖에 쓸 수 없는 나 자신을 자꾸만 도덕적으로 재단하려 들었다. ‘이렇게 사는 건 괴롭다는 걸 배운 애가,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다르게 사는 길을 공부할수록, 내 삶을 공격할 무기를 장착한 느낌이었다. 내 안에는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변태 도덕론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욕망을 나 자신과 일치시켰다. 소유욕이나 권력욕 같은 것들이 곧 ‘나’라고 여기면서, 그것들이 조금만 언급되어도 감정이 울컥 하고 올라왔다. 그 순간 내가 이런 사람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 슬픔, 부끄러움 등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욕망과 ‘내’가 들러붙어있는 채로는 뭘 하기가 참 어려웠다. 감정이 지나치게 얽혀있는 탓에, 톡하고 건드렸다간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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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망들과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 ‘욕망이 곧 나’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그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바로 그 때, 같이 공부하는 팀에서 “욕망에 이름을 붙여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 고전 소설인 『서유기』를 보면, 요괴들을 퇴치할 때 제일 먼저 필요한 일이 바로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바로 그 퇴마법을 써먹어보자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제안했다.

“얘 이름은 연두! 어때?” 이름을, 것도 좀 귀여운 이름을 붙여놓으니 나는 일단 걔를 보는 게 쪼금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각종 귀여운 이름이 붙은 애들이 몇 명 생기고 나니, 나는 비로소 시선을 조금 달리 할 수 있었다. “내 안에는 ‘나’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애들이 있는 거였구나. ‘나’의 욕망들이 아니라, ‘욕망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었구나!” 그리하여 탄생한 게 바로 연두, 호미미, 호호미인 것이다…….

‘그 애’를 발견하다

스물일곱, 이제 막 사회생활을 가열차게 시작할 나이에 나는 하던 일을 접고 공부를 하러 남산 밑으로 왔다. 고전을 읽고 글을 쓰며 다른 삶을 모색하는 이 공부는, 노동의 현장에서 지친 내게 크나큰 해방감과 신남,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같이 공부하는 백수 친구들과의 만남 역시 새롭고 놀라운 자극이었다. ‘우리가 이렇게도 함께 살 수 있구나!’ 함께 모여 살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꾸리면서 삶의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는 이 친구들이 있다는 게 참 고맙고 든든했다. 백수가 됐다는 사실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마다, 친구들을 보면 흐뭇해졌다.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걸 뭐! 하하.’

새로운 삶에 하나 둘 적응해가고 있던 때, 친구들 중에서 유독 말을 걸고 싶어지는 애가 생겼다. 그 친구는 처음 볼 때부터 눈에 띄었는데, 이유는 ‘나와는 너무 다른 종족’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데서나 잘 눕고, 아무한테나 서슴없이 장난을 막 거는 모습들이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어 신기했다.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와 다르게, 눈치를 너무 안 보는 그 애의 모습이 어이가 없다가도 한편으로는 살짝 부럽기도 했다. 뭔가 ‘나는 자연인이다~!’ 하고 온몸으로 외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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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자연인처럼 보여서인지, 나는 그 애를 대할 때 나 자신도 어딘가 굉장히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사람을 대할 때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고 나도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반응들이 튀어나가곤 했는데, 사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애 앞에서는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애랑 같이 있으면 나는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즐겁고 신이 났다. 평상시에는 절대 하지 않는 장난도, 그 애랑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서 튀어 나왔다. 내 모습에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그 애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던 건 니체 세미나에서였다. 난생 처음 니체라는 유명한 철학자의 본격 철학서를 접한 백수들은 일동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에 이렇게 뭔 말인지 모르겠는 한국어 책이 존재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멋있다니????!! 우리는 이 감동을 도저히 말로는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더듬더듬 옹알이를 할 수 있었을 뿐. 물론 백수들마다 감동의 차이는 있었다. 그리고 게 중 그 애는 몹시 감동을 받는 편이었고, 그래서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친구였다.

나는 그 애의 그런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이렇게 배우고 싶어 하다니! 나도 이 어렵지만 너무나 멋있는 니체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세미나가 끝난 후 그 애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봤다. 난 이러이러한 게 좀 이해가 안 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이런 건 너무 멋있지 않냐 등등…. 그 애가 나름대로 이해한 걸 듣는 건 꽤 유익했다. 어쨌거나 머리가 하나인 것보다는 둘이 맞대는 게 전투력 상승 차원에서도 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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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렇게 종종 니체의 책을 가지고 만나기 시작했다. 서른 가까이 돼서 불타오른 학구열을 친구와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그 때부터는 그 애를 의식하면서 경쟁적으로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 그때의 그 강렬함 때문에 지금도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보면 가슴이 좀 떨린다. 10주 동안의 세미나가 끝나고, 우리는 강렬했던 니체를 아쉬워하며 떠나보냈다. 그러면서 그 애와 나 사이의 공부만남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가 푸코 세미나를 듣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가 하고 있던 청년프로그램 이외에 따로 신청하는 세미나였는데, 그 애는 푸코도 니체만큼이나 멋있다면서 이것저것 배운 얘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줬다. 그 얘길 들은 나는 귀가 솔깃해졌고 마음이 두둠칫 거렸다. ‘와 재밌겠다… 나도 하고 싶다!’ 나는 그 애의 푸코 얘기에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그 애가 하는 세미나라서 하고 싶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마음으로 푸코 세미나를 신청했다. 공교롭게도 그 세미나의 주제는 ‘성(性)’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연애술’과 ‘성의 역사’…….

공부할 거야~? 연애할 거야~?

그 애와 푸코 세미나를 같이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조금씩 서로를 더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애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 애와 노는 것도 좋았고, 같이 공부를 하는 것도 참 즐거웠다. 그러다보니 그 애의 목소리가 좋아지고, 웃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다 기분이 좋고, 그 애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자, 그때까지는 없던 걱정이 내 안에 조금씩 자라났다. ‘나는 공부를 하러 왔는데,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지?’ 그런 걱정은 얼마 되지 않아 점점 더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다른 삶을 살겠다고 집까지 뛰쳐나온 애가, 남자한테 한눈을 팔고 있네?’ 바로 그때였다. 연두가 등장한 것은.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연두는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너, 공부할 거야~? 연애할 거야~?” 나는 뜬금없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그 고민이 존재론적 고민과 맞먹을 정도로 내게 아주 중대한 문제처럼 여겨졌다. 공부로 자립하려는 드넓은 야심이 막 생긴 내게, ‘연애’라는 건 왠지 걸림돌이 될 것만 같았다. 연애를 하면 공부가 잘 안 될 것 같고, 상대에게 의존하려드는 연약한 마음이 자라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간만에 생겨난 연애감정이 그런 고민 같은 건 다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강렬해서 ‘그냥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야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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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는 그 애가 좋았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린 호감 속에서 서로의 공부를 북돋우면서 더 돈독해질 수도, 그런 식으로 관계가 발전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음 앞에 갑자기 ‘공부냐 연애냐’ 하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마치 한쪽을 포기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 마냥. 그러면서 머리가 아주 무거워졌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왜 공부와 연애 중 한쪽을 택해야 하는 문제로 돌변하는 걸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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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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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Guest
이달팽

오오 강렬한 제목 !!!ㅎㅎㅎ 고생하더니 글 너무 재밌어요 !:)
‘나의’욕망이 아니라 우글거리는 ‘욕망요괴들’을 보는 작업!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니체 푸코와 함께 연애가 시작되었다니 .. 역시 공부중독자 커플..ㅋㅋ

moon彬
Guest
moon彬

제목 후덜덜
내용 오글오글
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성욕의 탄생 파이팅!!
다음편은 어떨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