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숙

1. 황제 눈에 들면, 금시발복!

 원제 때, 간대부(諫大夫)로 발탁된 공우를 이야기해보자. 공우는 경학에 밝고 깨끗한 행실로 이름이 높았으나, 유생을 중시했던 원제를 만나 뒤늦게 발탁되었다. 간대부로 기용된 이후 81살이 된 공우는 황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린다. 물론 원제는 사직시켜 달라는 공우의 간청을 물리치고 어사대부로 중용하여 삼공의 반열에 올려주기까지 한다. 공우는 원제의 총애와 인정을 받을 만했다. 실력도 출중했지만 욕심 없이 국정의 비전을 제시했다. 원제 시대 공우 만한 인물을 찾기는 힘들다.

여기서 주목하는 바는 공우가 얼마나 훌륭한 신하였는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공우가 벼슬길에 들어서면서 받은 혜택이 어떤 정도였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간대부를 거쳐 광록대부에 오른 81살의 공우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간청을 올리면서, 황제에게 발탁된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진술했다. 황제의 은택을 넘치게 받은 황공함을 표현하기 위해 초야에서의 생활과 기용된 이후의 삶의 격차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 공우는 늙고 빈궁하며 가산은 만전이 되지 않았고 처자는 거친 음식도 모자랐고 의복도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땅 130무가 있었는데 폐하께서 호의로 저를 부르시니 신은 땅 100무를 팔아 거마를 준비하였습니다. 장안에 와서 간대부를 제수받고 녹봉이 팔백석이라 매달 9,200전을 받았습니다. 태관이 공급해주는 양식과 또 상으로 하사하는 사시(四時)의 여러 비단, 무명과 솜, 의복, 주육, 여러 과일 등 베푸신 은덕이 매우 많았습니다. 병이 나자 시의가 치료를 해주었으니 폐하의 신령에 힘입어 죽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또 광록대부를 제수받아 질록이 2천석이 되어 봉급이 매달 1만2천 전이 되었습니다. 질록과 하사품이 더욱 많아 집은 날마다 부유해졌고, 일신은 날마다 존귀하여 실로 초야에서 살 때의 은택과는 달랐습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공우전」, 『한서』6,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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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벼슬에 오른 뒤 특별히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도 공우의 삶은 몰라보게 윤택해졌다. 발탁되기 전 가산이 만전도 되지 않던 공우는 간대부가 되자 매달 9,200전을 받았고 광록대부가 되어서는 매달 1만2천 전을 봉급으로 받았다. 몇 십 년을 살며 모은 돈이 만전인데 황제의 눈에 들어 대신의 지위에 오르자 한 달에 만전 이상을 받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황제의 초청으로 동궁에서 식사할 때 대접받은 그릇은 모두 금은으로 장식된 것이었다. 공우는 청렴하고 강직하고 욕심 없는 신하였다. 봉급과 하사품만으로도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권세와 부를 누렸다.

이렇듯 관리로 발탁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지니, 유생들이 앞뒤 안 가리고 인재가 되는 길로 전력질주하리란 건 명약관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안빈낙도하며 실력을 연마하고 품행을 닦으면서 초연하게 사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실력과 능력을 모두 갖춘 선비라도 반드시 기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게 이 길의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황제에 발탁되는 일은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이런 행운이 누구나에게 오는 건 아니다. 모르는 바는 아니라 해도, 권세와 풍요가 열리는 마법의 문 앞에서 이 함정 때문에 머뭇거리는 이는 드물었다. 황제 눈에 들기 위해, 권세와 부를 잡기 위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안간힘을 썼다. 검사로 영전하면 어마어마한 전관예우가 기다리고 있는 한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처럼! 현명을 숭상하고 욕심낼 만한 것이 많아지면 다투게 되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는 노자의 말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2. 도긴개긴들의 경합, 억울하면 출세해

무제가 천하를 통치하면서 현인을 등용하고 유생을 채용하여 나라의 영역을 수천 리나 넓히는 쾌거를 이뤘다. 공자의 도덕과 학술을 기준으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행실과 품성이 뛰어난 자, 경학의 전문 지식을 탐구한 자, 글과 문서에 능숙한 자들이 널리 채용되었다. 또한 사방에 대치한 이적들로 인해 용맹한 장수들이 길러지고 발탁되었다. 무제, 소제, 선제 시대 가히 인재들이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 인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그들의 능력과 공적에 갈채를 보내고 그에 상응한 권력이 주어지면서부터 세태가 달라졌다. 언제나 그렇듯 개인의 도덕과 학식과 능력은 관리가 되기 위한, 높은 벼슬에 오르기 위한 스펙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행실과 지식이 도구가 되고, 전쟁이 돈벌이가 되고, 공로가 목적이 되는 그야말로 ‘성공과 출세’를 향한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간대부 공우는 나름 인재등용문이 넓어진 무제 이래로 공을 세운 자는 위세를 부리며 마음대로 행동하고, 범법자라도 납속하면 용서를 받고, 곡식 바친 자를 관리에 임용하면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천하는 더욱 사치하고,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가난해지고, 도적이 봉기하고, 도망치는 백성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데 마구간의 말은 곡식을 먹어 너무 살이 찌고 기운이 너무 거칠어져 매일 걷게 시켜야하는” 기막힌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이득만 차지하면 그만인 세상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

하여 또 이 무질서를 잡기 위해 속전속결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원칙은 무너지고 기만과 편법은 필수! 완전히 전도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악순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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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국에서도 죄로 처형되는 것이 두려워 간교한 관리가 서류에 능숙한 자를 골라 상부에 거짓 보고를 잘하는 자를 승진시키고, 간악한 무리가 많아지자 사납게 백성을 모질도록 협박하거나 가혹한 폭정으로 백성을 복종시키는 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르지 않아도 재물이 있는 자가 행세하게 되고, 기만하거나 문서에 능숙한 자가 조정에서 우대받고, 패악하거나 흉포한 자가 고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은

“왜 효제를 행하는가? 재산이 많아야 영광이다.

왜 예의를 지키는가? 속리의 문서만 읽을 줄 알면 벼슬을 한다.

왜 행실을 조심해야 하는가? 흉포하면 관리가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온갖 형벌을 받은 자라도 오히려 팔을 걷어붙이고 정사를 담당하였으며, 개나 돼지 같은 행실이라도 집안이 부자이거나 권세가 있으면 마음대로 아랫사람을 부려도 똑똑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벼슬하여 큰 부자가 되면 영웅호걸이 되고, 간교한 행동으로 이권을 얻는 자를 장사라 여기면서, 형은 아우에게 권하고 부친은 자식을 독려하기에 풍속의 문란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따져본다면 모든 것이 죄를 짓고서도 속죄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인재를 구하면서 진짜 현인을 등용하지 못하고 제후의 상이나 태수가 재물을 숭상하며 형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공우전」, 『한서』6, 명문당, 321-324쪽)

물론 어질고 훌륭한 관리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관리들은 능력과 지식에 뛰어나더라도, 설혹 효제와 청렴을 지키더라도 올바르거나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공우가 말한바, 이 시대 난다 긴다 하는 벼슬아치들 중 잘못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청렴으로 이름을 날리는 관리여도 지나치게 가혹하든가 불법을 다스리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 혹은 인자하고 너그러운 관리라면 그 이면에는 지나치게 사치하거나 지나치게 돈을 좋아하여 뇌물을 일상적으로 받는 식의 적폐를 저질렀다. 아랫사람을 잘 쓰고 업적이 뛰어난 관리로 칭송이 자자해도 들여다보면 아랫사람끼리 서로를 감시하며 고자질하게 만드는 술수를 부렸다. 걸면 걸리는, 찾으면 반드시 발견되는 결함과 잘못은 관리들의 전매특허였다.

검찰 개혁, 공직자 개혁은 지금 이 시대만의 구호는 아니다. 업적과 이권이 우선인 사회에서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문제였다. 일단 출세하면 건드릴 수 없었다. 더 큰 세력의 모략이 아니라면. 공우가 간절하게 관리 개혁을 외쳤으나, 위아래 모두 자기 욕심에 혈안이 된 터라, 누가 누구를 개혁하는 건 불가능했다. 끼리끼리 편먹고서 깎아내리고 추켜세우느라 바빴다. 서로가 공과를 다퉜지만 그야말로 오십보백보, 도긴개긴들의 리그였다. 욕심 없이 담박하게 뜻을 지키며 조용히 원대하게 국정을 수행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무제 이래 이런 관리들이 점점 늘어갔고, 원제에 이르러 관리들의 속성이 되어버렸다. 방법이나 과정이 어떻든 공을 세우면 인정받았다. 이러니 잘못이 드러나 탄핵 되면 운이 나쁘고 억울하게 당한 것. 자의식도 자정 능력도 없었다. 그게 그거인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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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승리하면 장땡?

여기 원제 때, 흉노를 소탕하고 흉노 왕의 목을 매달고 승전보를 울리고 개선가를 부르며 의기양양 돌아온 두 명의 장군이 있다. 감연수와 진탕. 이 두 장군은 정말 용감하게 거침없이 잘 싸웠고, 아주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팩트다. 그런데 이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엔 못내 찜찜하다.

감연수는 투석과 높이뛰기에서 두각을 나타내 발탁되었다. 진탕은 독서를 좋아하여 널리 배우고 글을 잘 짓는 것으로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승진을 기다리느라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도 가지 않아 하옥되어 벌을 받고, 뒤에 다시 천거되어 여러 번 외국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서역의 사절로 나가게 되면서 의기투합했다. 진탕은 배운 사람답게 침착하고 용감하고 생각이 깊고 책모를 잘 쓰고 기발한 일을 좋아했다. 또한 서역의 성읍이나 산천을 지날 때면 늘 높이 올라 주변을 살폈다.

감연수와 진탕이 서역의 사절로 갈 당시, 흉노는 선제 때 이미 쪼개어져 5명의 선우가 서로 다투었는데 그중 호한야 선우와 질지 선우는 둘 다 아들을 한나라에 보내어 친교를 맺으면서 패권을 다투었다. 호한야 선우는 한나라에 직접 입조하여 흉노의 복속을 입증하면서 한나라를 등에 업고 질지 선우의 세력 약화를 꾀했다. 불안한 질지는 한나라에 조공하며 인질로 가있는 아들을 귀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한나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공우와 광형 등은 질지가 한나라와의 친교를 끊으려는 행위로 사신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곡길은 별 이유 없이 관계를 단절하면 훗날의 원한을 심어주는 것이므로 이로울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원제는 곡길의 손을 들어주었고, 곡길이 사신으로 흉노에 도착했으나 결국 질지는 곡길을 살해하고 강거국으로 도주한다.

질지 선우는 강거국의 군사를 빌어 오손을 공격하고 그 서쪽 땅을 차지한 뒤 대국이라 자처하며 강거를 속국으로 취급했다. 질지 선우는 더욱 오만해져 강거의 귀족, 왕녀와 백성 수백 명을 죽이기도 하고 혹은 사지를 찢어 죽여 강에 던지기도 했다. 한나라는 질지에게 사신을 보내 곡길의 시신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사신을 가두는 등 만행을 그치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한나라에 귀속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방어를 꾀했다.

한나라로서는 질지 선우를 그냥 두기도 애매했지만 함부로 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질지 선우의 흉노가 너무 멀기에 원정을 감행하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때 감연수와 진탕이 서역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진탕은 서역의 형세를 살피면서 질지 선우를 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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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지 선우가 지금은 멀리 있지만 그들에게는 튼튼한 성곽과 강력한 쇠뇌의 수비전술이 없기에 만약 우리가 둔전하는 군사를 동원하거나 오손의 많은 군사를 몰아 그들의 근거지를 바로 공격한다면 그들로서는 패하면 갈 곳이 없고 수비한다 하여 지킬 수가 없기에 영원히 기록될 큰 공적을 어느 날 갑자기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진탕전」, 『한서』6, 명문당, 180쪽)

진탕은 천자와 공경의 의논을 구하면 비범한 대책이라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므로 단독으로 흉노를 치자고 감연수를 설득했다. 감연수는 진탕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유예하던 중, 병에 걸리게 된다. 진탕은 이 틈을 타 황제의 명령을 사칭하고 군사를 징발했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큰 공적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감연수가 놀라 일어나 중지시키자 진탕은 칼을 빼어들고 감연수를 협박하여 부대를 편성하고 진영을 짰다. 둔전하는 한나라 군사도 있었고 질지를 치고자하는 흉노 군사도 합류했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조명을 위조한 것을 자백하며 군대 편성을 진술하는 상소를 올렸다. 진탕은 자신만만했다. 승리만 하면 결코 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복수라면 복수이니 나름 명분을 갖추었다고 자신했던 것이다.

진탕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질지의 폭압에 시달리던 강거국 귀족의 협조를 받아 진탕의 군대는 질지의 성으로 진격했다. 선우와 선우의 부인들까지 전투에 나서 화살을 쏘았으나 진탕의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선우의 부인들도 죽었고, 선우도 창에 찔려 죽었다. 선우의 목을 자르고, 한나라 사신의 부절 2개와 곡길 등이 작성한 서신을 찾아냈다.

진탕은 황제의 명령을 사칭했으나 큰 공적을 세웠기에 당당하게 장안으로 입성했다. 사실 골치 아프고 접근하기 어려운 흉노를 제압했으니 큰 공임에는 틀림없으나 지휘 체계로는 문제가 많았다. 완전히 원칙을 무너뜨린 처사였다. 질지를 정벌할 좋은 기회였지만 이때 반드시 질지를 정벌해야만 하는 급박한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전심전력 흉노를 물리치는 데 진탕의 뜻이 있었다면, 황제 명령을 사칭한 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공은 공대로 인정받되, 잘못에 대한 책임은 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진탕은 승리하여 공적을 세우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탕은 공적을 세우는 데 급급했다. 공을 세워 명성을 날리고 부를 거머쥘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황제의 조서를 위조한 죄로 장안에 도착한 군리들은 묶여 조사를 받았다. 이에 진탕은 상서를 올려 질지 선우를 정벌한 군사를 길에서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어찌 벌을 주냐고 항의했다. 진탕은 승리하면 장땡, 불법에 대한 자각 능력은 없었다. 결과만 좋으면 시작도 과정도 다 무시했다. 이런 욕심으로 인해 노획한 재물을 들여와 착복했는데, 이는 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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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진탕의 공적에 대해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탕의 공적을 논하는 대신들도 공정하지는 않았다. 이들도 사심으로 움직였다. 승상과 어사대부는 자신들을 무시한 것을 증오했다.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중서령 석현은 자신의 누나를 감연수에게 아내로 주려다 거절당해 이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모두가 투명하지 않았다.

원제는 감연수와 진탕의 공적을 가상히 여겼지만, 광형과 석현의 뜻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제는 유향의 상소로 감연수와 진탕의 공적을 인정하여 작위와 식읍을 내렸다. 사감에 따라 움직이는 논공행상의 문제는 이래도 저래도 석연치 않았다. 진탕도, 석현도, 이리저리 휘둘리는 황제에게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탕에 대한 논란은 원제가 죽고 성제가 즉위한 이후까지 끝나지 않았다. 진탕을 죄 주자는 입장과 진탕의 공적을 인정하자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이에 따라 진탕은 면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된다. 이 불투명한 논란을 종식시킨 것은 진탕 자신이었다. 욕심으로 일어난 자 욕심으로 무너졌다.

진탕은 법령에 밝고 업무에 능숙하여 건의를 잘했는데, 늘 다른 사람의 돈을 받고 상주하는 글을 작성해 주었다. 진탕은 돈이 되면 움직였다. 이때 해만년이란 관리와 친하게 지냈다. 원제 때부터 황제의 능을 마련한 곳에 마을을 만들지 않았는데, 해만년과 진탕은 창릉에 성제의 능을 조성하고 성읍 만들기를 도모했다. 장안에서 이사하여 창릉에 성읍 세우는 공을 세우면 전택을 하사받으리라는 계산으로 성제를 움직였다. 진탕은 관동의 부자들을 창릉으로 이주시켜 제후 세력을 약화시키고 중간층 이하 백성들의 재산도 불려준다면 균형을 맞출 것이라는 상소를 올렸고 황제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3년을 기약한 성읍 공사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창릉이 낮아 수만 명을 동원하여 흙을 쌓아 산을 만들어도 평지 상태라, 창고는 비고 서민들의 고통은 늘어만 갔기 때문이다. 이 공사는 중단되었고, 10년 동안 공사하던 옛 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되었다.

진탕은 해만년과 함께 백성을 현혹한 죄를 받아 돈황으로 이주했다가 사면되어 장안으로 돌아와 죽는다. 한때 진탕의 도움을 받았던 왕망이 진탕을 변호하여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진탕을 변호하는 자들의 논리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는데, 진탕의 공은 그 잘못을 덮을 수 있을 정도이므로 봐주자는 것이다. 그랬다. 모두가 도긴개긴,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진탕의 운명은 좌지우지. 진탕도, 한나라의 다른 관리들에게 잘못은 잘못이 아니었다. 때에 따라 덮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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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는 진탕을 이렇게 평했다. 능력은 뛰어났으나 자신을 수렴할 줄 몰랐던 인간. 진탕은 단속할 줄 몰랐다. 그리고 반성이 없었다. 좋은 머리와 뛰어난 실력과 글 솜씨를 수단 삼아 편법과 불법을 자행했다. 세상을 기만하면서 돈벌이를 향해 질주했다.

저물어가는 늦가을의 한나라, 상벌은 명징하고 책임은 분명해야 했건만. 원제 때 그렇지 못했다. 불투명했고 공정하지 않았다. 한나라의 기둥은 이렇게 갈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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