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소유욕의 화신, 연두 - 1)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공부하는 친구’에서 ‘남자’가 될 때

연두는 바로 이때부터 내 안에서 자신의 나와바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뭔가를 손에 쥐어야만 성이 차는 연두는 딱 좋은 먹잇감을 발견하고는 서서히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두의 눈에 포착된 그 순간, 그 애의 이름은 ‘공부하는 친구’에서 ‘남자’로 바뀌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애가 ‘남자’가 됐다는 것은 내가 ‘여자’가 되는 것을 뜻했다. 우린 한순간에 그 이름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름 위에서 그동안 우리가 나눠온 우정은 모두 지워졌다. 출발선에 선 자세로, 우리는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했다. 친구 사이가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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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된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저 애를 통째로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온통 물들었다. 같이 치열하게 책을 읽던 사이일 때는 1도 필요 없던 질문이, ‘여자’가 되고나자 일상을 꽉 채우는 중요 화두가 되었다. 그 애 앞에서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들보다 예뻐 보이고 싶다.” 그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애의 눈이 내 쪽에 머무르는 게 느껴질 때면 몹시 기뻤으니까. 그만큼 그 애의 눈을 독점하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애를 온전히 가졌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단둘이서만’ 있는 게 꼭 필요했다. 그래야만 그 애의 목소리, 손짓, 웃음, 생각 등이 모두 나에게로 쏠릴 수 있다. 나는 그 애가 다른 사람들 말고 오직 나만을 바라봐줬으면 했다. ‘남녀’가 ‘둘이 함께’ 라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흥분케 하는 것이었다. 난 그걸 더욱 만끽하기 위해 어떻게든 둘이 함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제 그 애에게 배우려고 하기보다, 오직 그 애를 ‘갖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배우려고 하는 것’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종류의 마음이다. 그 애를 함께 공부하는 친구로 대할 때의 나는 상대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배운다는 건 내가 가진 것들을 덜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다. 내 생각을 지키려들거나 거기에만 빠져있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면 두 귀를 활짝 열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를 들어보려고 애써야 했다. 그러다보면 내가 모르던 것들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것들이 찾아온다. 그때의 그 기쁨과 해방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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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애를 갖고 싶어 하면서부터 내 마음의 배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외모를 치장하고, 성격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그 애의 호감을 사야 했다. 그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만한 ‘여자’의 모습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남자를 다른 여자들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떠맡았다.

움켜쥐어야 할 것들이 많아진 내 세계의 문은 자연스럽게 쾅 하고 닫혀버렸다. 이제 기쁨을 얻는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내 남자가 있다는 기쁨, 저 남자에게 사랑받고 있는 예쁜 내 모습을 보는 즐거움 같은 것들에 취한 나는 굳이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내게 ‘나’ 바깥의 세계는 더 이상 신기하고 멋진 일들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싸워야 하는 전쟁터에 불과할 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머릿속에 맴돌던 ‘공부냐 연애냐’ 하는 질문은 점차 후자 쪽으로 힘이 실리게 되었다. 연두의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했다. 처음에는 ‘한번 들어나 볼까’하고 귀를 기울였던 것이, 나중에는 점점 더 그 목소리를 열심히 듣는 데 하루를 다 썼다. 그에 따라 내 몸은 완전히 장악 당했다. 악력이 어마무시하게 쎈, 연두라는 소유욕 괴물에게.

당신은 연두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연두에게 잡아먹힌 연애, 다른 길은 없는 걸까? 나는 처음에 사람들 속에 있는 그 애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책을 통해 활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활기에 힘입어 나는 푸코 세미나라는 낯선 장에 뛰어들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 애에게 생겨난 마음 덕분에 책과 더욱 찐하게 만나고, 새로운 인연들이 열리게 된 것이다. 얼마나 생기 있고 활발한 힘인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분명히 이런 힘이 있다. 나를 열고 나 밖의 세상과 활발하게 짝짓기 하는 힘. 그 힘 위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연애가 그런 생명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걸까? 나는 공부와 연애를 함께 할 수 없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한 연애는 왜 그런 식으로 나를 좁은 곳에 가두게 할까? 그런데 잠깐. 나는 대체 언제부터 ‘연애’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됐을까? 사람과 관계를 맺는 모양은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어떤 장소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생김새를 갖는다. 연애 역시 사람과의 만남이다. 근데 왜 유독 연애만은 상대를 ‘갖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시선을 갖고 있는 한, 나는 누구와 연애를 해도 그 사람을 못 가져서 안달일 텐데 말이다. 마치 ‘사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놨는데 월급날은 한참 남았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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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둘러보면, 내가 연애를 이런 ‘쇼핑 욕구’와 비슷한 것으로 느끼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창 연애에 눈 뜰 무렵인 10대 시절, 우리 사이에는 ‘버디버디’와 ‘네이트온’ 같은 메신저들이 유행했다. 카카오톡의 전신과도 같은 그 메신저에서는 지금처럼 ‘프로필’을 사진과 메시지로 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에게 ‘나’를 전격으로 드러내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거기에 뭘 적을지, 무슨 사진을 올릴지를 심오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정체성을 내 손으로 직접 어필하다니, 그때의 나에게는 꽤나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메신저 속에 담긴 친구들의 프로필을 구경하는 것 역시 묘한 일이었다. 평상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의 프로필을 보고 있으면 뭔가 훔쳐보는 것 같으면서도 약간 짜릿한?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프로필 문구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숫자와 하트가 붙은 것들이었다. “철수♡영희, 81일”, “넌 내꺼당♥♡” 같이 누가 누구랑 사귄다는 걸 뿜뿜 티내는 그런 메시지들. 10대 시절 연애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그런 것들을 보며 ‘연애란 저런 거구나.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걸 나도 모르게 익혔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20대에 들어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카카오톡’이라는 이름으로 변한 메신저 속 나만의 공간(프로필)에 남자친구의 얼굴을 찍어 넣고, 하트가 뿅뿅 달린 문구들을 올렸다. 그러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연애를 하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이기도 했다.

친구의 남친이 바뀌는 것 또한 바로 그 프로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프로필로도 부족함을 느낀 이들은 하나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 연애사업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하물며 지금은, 거대한 영상의 바다인 유튜브가 들어서면서 ‘커플 브이로그’까지 성행하고 있다. 일반인 커플 둘이서 먹고 자고 노는 장면들이 전 세계를 향해 송출된다. 구독자수는 채널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커플의 브이로그는 1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카톡 프로필이든 유튜브 채널이든, 온라인상에서 갖는 자기만의 공간에 이제는 ‘연인의 얼굴’이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걸 보고 있으면 마치 “얜 내꺼니까 다른 사람들은 침범하지 마세요.^^”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꼭 연인뿐만이 아니다. ‘나’를 소개하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주로 연인이나 가족 아니면 반려동물, 예쁘고 멋진 물건 같은 것들이다.

왜 프로필 사진에 연인 또는 가족, 반려동물, 희귀템 같은 것들을 올려놓는 걸까? 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상 사이트에 ‘우리 이렇게 만나고 있어요♡’ 하는 걸 인증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 또는 동물들과 그런 식으로 관계 맺는 것만 배웠는지도 모른다. ‘나’의 사람, ‘나’의 물건, ‘나’의 고양이…. 온라인 공간에서 나를 대신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하루하루 그들이 내 ‘소유’임을 확인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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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는 바로 그런 것들을 보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꺼’라는 걸 확인하는 방식의 관계는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 중 특히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게 연인 사이인 것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온 사방에서 연인을 소유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있다. 드라마, TV광고, 노래가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남자를, 이렇게 예쁜 그녀를, 가지세요.’라며 노래를 불러대고 있다. 갖는다는 건, 연두라는 건 그렇게 내 몸에 잔뜩 스며들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연두에게 잡아먹힌 연애, 다른 길은 없는 걸까? 연애는 꼭 ‘나’와 ‘너’만의 세계에 머물러야 할까? ‘나’를 누군가와 만나게 한 그 힘으로, 더 활발히 수많은 종류의 만남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자신은 필연적으로 ‘만나는’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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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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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彬
Guest
moon彬

재밌어요~~!
연두야 잘가~~ㅎㅎㅎ
열린 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