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순(감이당, 화요대중지성)

『한서』에서 성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그런데 이 점이 꽤나 의외다. 성제는 한고조 유방과 같은 넓은 포용력을 갖춘 것도, 문제와 같은 훌륭한 인성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제, 선제와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국정 장악능력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반고는 『한서』에 적지 않은 분량을 성제 치세에 할애했다. 왜일까? 그건 성제에게 뭔가 특별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나라의 겨울 그 몰락의 중심에 서 있던 군주가 바로 성제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반고가 주목한 건, 외척의 득세가 만들어내는 황제 권력과 외척 권력 간의 커다란 힘의 불균형이다. 반고는 바로 이 불균등한 힘의 배치 속에서, 성제와 신하들이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몰락의 징후를 읽어내려 했다. 한 왕조가 흥기할 때 형성되는 조건들을 보여주었듯, 한 왕조가 몰락할 때 드러나는 조건들 역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과연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군주와 신하들은 어떻게 관계 맺으며 처세할까? 우선 성제 치세 내내 핵심세력으로 등장하는 왕씨 가문부터 정리하며 이야기해보자.

1. 왕씨 천하, 세습되는 최고권력

외척의 거두 왕봉의 뒤를 이어 대사마 거기장군에 오른 이는 왕음이다. 죽음을 앞둔 왕봉은 성제에게, 자신의 동생들인 왕담, 왕숭, 왕상, 왕립, 왕근, 왕봉시 등은 절대로 자기 후임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일단 능력도 없을뿐더러, 그 행실이 대부분 사치스러워 백성의 모범이 될 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봉은 자신의 능력은 몰랐어도, 동생들의 자질만큼은 정확히 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왕봉은 왕씨 천하의 근간을 뒤흔들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태후의 숙부 왕홍의 아들 왕음을 추천함으로써, 왕씨 세습을 더욱 더 공고히 해주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왕봉에겐 사직보다 가문의 영광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한나라에서 관직 ‘대사마 거기장군’의 중요성은 대체불가다. 정치와 군사권을 양손에 쥐고 국정을 리드하는 중책으로, 충심은 물론, 신하들을 아우르는 포용력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중임 중에 중임이기 때문이다. 해서 다른 모든 벼슬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대사마 거기장군에게 필요한 역량은 업무 능력은 물론,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더불어 사심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 관리능력이다. 만약 왕봉이 한나라의 미래를 진정 걱정했다면 적어도 이런 수준의 역량을 고려했어야 했다.

그러나 왕봉의 왕음 천거 이유는 그야말로 사적이었다. 왜냐하면 왕음은 왕봉 모시기를 마치 자식이 부모 섬기듯 하였기에 왕봉이 천거(반고, 진기환 역주, 「원후전」, 『한서』10권, 37쪽) 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음은 일전에 왕장과 성제의 대화를 엿듣고 파직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공적인 잣대를 적용해야할 후임 선출에, 사적인 친분을 앞세운 왕봉! 대사마 거기장군이 될 만한 자질로는 한 없이 부족해 보이는 왕음이지만, 왕봉의 추천인데 어찌하랴! 성제는 외삼촌의 뜻을 받들어 왕음을 임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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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잣대를 적용해야할 후임 선출에, 사적인 친분을 앞세운 왕봉!

왕봉이 잘 찍었던 것일까? 대사마 거기장군에 오른 왕음은 의외로 국정을 살뜰히 챙기며, 매사 조심스레 정사를 처리해 나갔다. 『한서』에는 이런 왕음을 왕씨들의 작위는 날로 극성하였는데 오직 왕음만이 행실이 바르고 자주 바른 말을 올렸으며 충절을 지켰다.’ (같은 책, 42쪽) 고 전한다. 허나 왕음의 약진도 여기까지였다. 계속되는 왕씨 가문의 참월행위를 일일이 단속하진 못했던 것이다. 어느 날, 외숙들의 참월행위를 알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성제는 왕음을 불러다가 문책한다.

  성도후 왕상이 제멋대로 제도의 성곽을 허물어 풍수를 집안으로 끌어들였으며, 곡양후 왕근의 사치가 황제를 뛰어넘어 붉은 흙을 뜰에 깔고 기둥에 청동 장식을 했으며, 홍양후 왕립 부자가 도망친 범죄자를 숨겨 주고 그 빈객들이 떼를 지어 도둑질을 하여도 사예교위와 경조윤은 아부하면서 이를 상주하거나 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았도다.” (중략)

“외가가 어찌 이리 멋대로 재앙과 패망을 부르고 스스로 묵형이나 코를 베는 자해행위를 태후 앞에서 한다면서 자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는가? 외가의 일족이 강대하고 나 혼자 쇠약한 지가 오래거늘 지금 이를 내보이고 있도다. 장군은 제후들을 소집하여 장군의 관부 앞에서 조서를 받들도록 하라.” (중략)

왕음은 거적자리를 깔고 죄를 받겠다고 자청했고, 왕상 왕립 왕근은 모두 도끼와 도끼 받침을 들고 사죄하였다. 성제는 차마 죽일 수 없었고 그런 뒤에 끝이었다.

(반고, 진기환 역주, 「원후전」, 『한서』10권, 40쪽)

성제는 외숙들의 참월행위에 분노했다. 허나 화만 낼 뿐, 그 참월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왜일까? 성제 개인의 타고난 기질적 허약함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비대해진 외척의 권세를 누르기엔 성제의 권세가 너무나 약했다. 인재 한명을 등용하고 싶어도 일일이 대사마 거기장군인 왕씨 가문에 허락을 받아야하는 마당에, 다른 일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게다가 효심이 깊은 성제가 모친 왕태후를 앞에 두고 외숙들을 벌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형세 속에,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어느 하나 할 수 없던 성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그렇게 엄청난 권세를 가진 왕씨 가문이, 황제에게 잘못이 적발되었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재빨리 무릎을 꿇어 죄를 청한다는 점이다. 외숙들의 이러한 처세는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잘못을 신속히 뉘우치는 외숙들의 모습은 언뜻 황제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이 두려움은 황제에 대한 진정한 두려움이 아닌, 사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연출된 두려움에 가까울 것이다. 당시 성제 치세에 외척의 기승은 길가는 백성들도 다 아는 사실! 그런데 만약 황제의 분노에 외숙들이 아무렇지 않아하거나 혹은 더 분노하여 황제를 억눌렀다는 소문이 나면 어떨까? 이는 역모와 민란의 명분이 되어 자신들의 권력을 지탱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척들은 안으로는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 하면서, 밖으로는 충직한 신하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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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척들은 안으로는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 하면서, 밖으로는 충직한 신하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왕음이 죽고 난 이후에 보인 성제의 행보다. 그 동안 꾸준히 참월행위를 일삼던 외숙들에게 대사마 거기장군직을 차례대로 내어 준 것이다. 능력과 인품을 중시했던 무제, 선제의 인사정책과 비교했을 때 성제의 인사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 사실 성제에겐 인사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어머니인 태후 왕정군의 무한한 형제애에 있었을 것이다.

성제는 외척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끝끝내 외척에 대한 의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형세 속에서, 이렇듯 중요한 사안마다 번번이 외척을 끊어내는 결단을 하지 못했다, 왕봉의 뒤를 이어 왕음, 왕상, 왕근, 왕망으로 이어지는 인사가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이 성제 치세를 주무른 왕씨가(家)의 국정 농단의 대략이다. 이 사실을 기본으로 성제치세를 차근차근 짚어가 보자.

2. 왕씨 너머 인재 기용, 그 밥에 그 나물

집권 초기엔 누구나 그러하듯, 성제도 다른 여느 황제들처럼 국정을 잘 이끌려는 포부를 가졌다. 문제의 인품에, 무제의 비전을 꿈꾼 성제. 그런 성제를 태자시절부터 이끌어준 이는 장우다. 장우는 일찍이 역경과 논어를 배워 그 학식이 선제의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였는데, 선제 때에는 등용되지 않았지만, 원제는 장우를 박사 정관중의 추천으로 태자의 스승으로 삼는다. ‘주색잡기의 황제’라 불리는 성제였지만, 젊은 시절의 성제는 나름 학문에 뜻을 두고, 스승을 존중하는 인군의 풍모가 있었다. 장우는 그런 성제 덕분에, 관내후의 작위는 물론, 제리광록대부(諸吏光祿大夫)에 급사중(給事中), 게다가 영상서사(領尙書事)라는 직위를 하사받는다.

황제의 좋은 스승이자 신하였던 장우의 삶이 ‘삐걱?’거리게 된 건, 영상서사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영상서사는 상서를 감독하는 직책으로, 소제 때 곽광이 상서를 먼저 읽은 후 올려야 될 만한 것들을 소제에게 상주한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직무를 장우와 함께 수행해야하는 이가 하필 한나라 최고 권력가 왕봉이었던 것이다. 장우는 호랑이를 만난 듯 무섭고 두려워했다. 성제는 왜 이 험지로 스승을 보낸 것일까?

성제가 어떤 이유로 장우를 영상서사에 임명했는지에 대해서 『한서』에 나온 바는 없다. 아마도 당시 외척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수렴한 인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제는 스승 장우가 왕봉을 견제해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는지. 허나 이유야 어떻든, 향후 장우의 행보는 그런 성제의 예상과는 크게 벗어난다. 왕봉과 함께 직무를 잘 수행할 줄 알았던 스승 장우가, 자주 병을 핑계로 면직을 신청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성제는 답답한 마음에 다음과 같이 장우에게 말한다.

  “짐은 어린 나이에 집정하여 정사를 잘못 처리할까 걱정인데 군(君)은 도덕으로 사부가 되었고 때문에 정사를 위임했도다. 군(君)은 무엇을 꺼려 자주 면직을 바라면서 갑자기 사부의 옛 은정을 버리고 유언을 피하려고 하는가? 짐은 군(君)의 잘못을 들은 바 없도다. 군(君)은 굳은 마음으로 여러 정사를 총괄하며 심성으로 추진하여 짐의 뜻을 어기지 말라.”

(반고, 진기환 역주, 「장우전」, 『한서』7권, 322쪽)

국정을 잘 이끌어보겠다는 어린 성제의 결기는, 다른 여느 군주 못지않다. 허나 성제는 사람을 볼 줄 몰랐고, 결정적으로 장우의 면직신청이 스승의 겸사가 아니라 사실 왕봉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처세라는 걸 알지 못했다. 해서 성제는 장우를 붙잡기 위해, 장우가 면직 신청을 할 때마다 현명한 인재를 찾기보다, 오히려 장우에게 직위를 더해주고, 더 많은 재물을 하사했다. 그렇게 장우가 받은 재물이 전후 수천만 전! 스승의 예우치고는 유례가 없을 정도의 하사금이었지만, 성제는 이후에도 장우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들어준다. 재물이 많아지면 사람의 마음도 변하는 법!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장우는 하는 일 없이 오히려 성제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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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는 장우의 막내아들이 관직이 없는 것을 알고 단번에 급사중에 임명하고, 장우가 시집보낸 딸을 가까이에 두고 싶다고 하자, 딸의 남편인 장액태수 소함을 홍농 태수로 발령한다. 심지어 장우 자신이 묻힐 무덤과 사당 터를 위해 평릉 비우정 근처의 땅을 요청하자, 성제는 별 고민 없이 그 땅을 내어준다. 이에 대해 외척 왕근은 평릉 비우정터는 소제의 능으로 장우가 요청한 땅은 소제의 의관이 지나가는 길이라 말하며 극력 반대했지만, 성제는 무슨 용기가 나서인지 왕근의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건 앞으로도 보겠지만 성제의 일처리 방식과 인사발령은 거의 매번 이런 식이라는 점이다. 등용해야 할 인재들은 등용하지 않고, 등용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별 다른 능력 검증 없이 등용해버리는 성제의 이해할 수 없는 자기합리!

이런 성제의 예우에 장우는 어떻게 보답했을까? 아쉽게도 장우는 스승의 자격도, 신하의 자격도 없는 인물이었다. 장우는 사치스러웠으며, 자신과 가문의 안위에만 신경 쓴 누구보다 사심 가득한 인물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영시(永始)와 원연(元延) 사이, 일식과 지진이 자주 일어났는데 많은 백성들은 재이의 원인을 정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왕씨 가문에서 찾았다. 성제도 재이가 너무 빈번하자 두려웠던지, 장우를 찾아가 잦은 재이가 정말 왕씨 때문인지 물었다. 허나 장우는 나라의 대의 따위는 모르는 인물! 장우는 왕씨에게 미움을 사게 될까 두려워, 그건 왕씨 때문이 아니라, 젊은 유생들의 그릇된 해석이라고 말한다.

장우에겐 공자의 도가 없었다. 논어를 잘 가르치는 자일지는 모르겠으나, 논어의 담긴 공자의 도를 행하는 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도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실패할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른 길을 찾고자 시도했던 공자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장우에겐 없었다. 나라가 망하려는 때에 등장한 스승답지 못한 스승 장우! 결국 성제는 스승 장우의 말을 철썩 같이 믿어 그 뒤로 재이와 왕씨 일가를 연결하지 않았다. 장우에 대한 성제의 신뢰가 이 정도였다.

이후에도 장우에 대한 성제의 의존적 관계 맺기는 계속되었고, 장우는 성제가 붕어한 후 다음 황제인 애제시대까지 황제의 스승으로 호위호식을 누리며 천수를 누린다. 한나라 차원에서는 장우와 같은 이들의 승승장구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황제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자들이 영광을 누리는 시절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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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돌직구 신하가 살아 있다, 그럼에도!

여기 또 한명의 유학자가 있다. 그는 주운으로 나이 40에 박사 백자우에게 역(易)을 전수받고, 소망지를 스승으로 논어(論語)를 배운 인물로, 대범하고 대의를 숭상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었다. 허나 능력이 있음에도 워낙 인품이 솔직해 원제 시대에는 쓰이지 못했다. 그런 주운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상서를 통해 성제를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때 주운이 말했다.

  “지금 조정 대신들은 위로는 주군을 바로 보필하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니 모두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사람들이며 공자가 말한 ‘비부(鄙夫)와 함께 사군(事君)할 수 없고’ 또 ‘자리를 잃을까 걱정하여 하지 못하는 짓이 없는 자들’입니다. 신은 상방에서 말을 베는 칼을 얻어서 아부하는 신하 한 사람을 죽여 나머지를 권면코자 합니다.”

성제가 누구냐고 묻자, 주운은 “안창후(安昌侯) 장우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성제가 대노하며 말했다. “소신이 아래에서 윗사람이나 비난하고 조정에서 사부를 모욕하였으니 사형에 처하되 용서할 수 없도다.” 어사의 속리가 주운을 데려가려 하자 주운이 궁전의 난간에 매달리자 난간이 부러졌다.

(반고, 진기환 역주, 「주운전」, 『한서』5권, 540쪽)

주운이 보기에, 성제의 대소신료들은 전부 시위소찬한 비부, 즉 하는 일 없이 녹봉만 축내는 비루한 자들이었다. 왕씨 가문의 눈치만 보며 자리 보존에 급급한 신하들! 왕씨 가문의 탐욕도 문제였지만, 오히려 왕씨의 참월에 침묵함으로써 왕씨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의도치 않게 일조하는 이런 신하들이 더 문제였다. 그 중에서도 주운이 진단한 이 시대에 가장 문제적 인물은 성제의 스승 장우였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된 충심으로 수천만전이나 챙기는 자가 어찌 한 나라의 스승일 수 있겠느냐고 주운은 묻는 것이다. 해서 주운은 가장 먼저 장우를 베어야 한다고 성제에게 간언한다. 황제와 첫 대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 주운. 이에 성제는 대노하여 즉시 주운에게 사형을 명한다.

주운은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의로웠다. 두려운 기색하나 없이 신은 죽어 지하에 가서 관용봉이나 비간을 따라 놀면 됩니다! 그러나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같은 책, 540쪽) 라고 되묻는다. 주운은 나라의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안위 보단 사직과 대의를 위해 끝끝내 해야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였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실천하고자 한 유학자의 도가 아닐까. 주운은 모든 대소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무엇이 신하다운 건지 보여주었다. 이 때 좌장군 신경기가 나서 관과 인수를 풀어놓고 전각 아래에서 성제에게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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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람은 평소에도 너무 곧바르다고 세상에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 말이 옳다면 죽일 수 없으며, 그의 말이 틀렸다 하여도 한 번은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은 죽기를 작정하고 간쟁하겠습니다.” 신경기는 머리를 땅에 부딪쳐 피가 흘렀다. 성제가 뜻을 받아들이자 그만 멈추었다. 후에 그 난간을 보수하려 하자 성제가 말했다. “고치지 말라! 지금 그대로 두고 보며 직언하는 신하를 기리고자 한다.”

(반고, 진기환 역주, 「주운전」, 『한서』5권, 541쪽)

평소 생활이 공경 검소하며 의를 중시하고 성품이 돈후했던 신경기는, 주운의 이 말이 결코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료들이 왕씨 가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던 때였으니,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신경기가 보기에 지금 조정에는 주운과 같은 인재가 절실했다. 성제 역시 난간이 부서져라 매달리며 직언을 한 주운과 피가 나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선처를 호소한 신경기를 보고 느낀바가 있었는지, 신하들에게 부서진 난간을 보수하지 말라 명한다. 이 부서진 난간을 반면교사 삼아 모든 신하의 직언에 귀 기울이는 군주가 되겠노라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누가 봐도 주운을 등용했어야 할 것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제는 주운을 용서했을 뿐, 등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스승 장우를 지켜내고 자신이 옳다는 걸 관철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외숙들의 권세에 굴복한 것일까. 어쨌든 주운은 등용되지 않았고, 주운 자신도 이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출사하지 않았다. 죄다 적폐일 뿐인 조정에서, 한 명의 돌직구로 거스를 수 있는 대세가 아니란 걸 주운은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성제는 자신의 공약대로 전국에서 현량한 인재들을 모아,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야하며, 외척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또 듣는다. 허나 딱 여기까지였다. 성제는 마치 성군 흉내만 내려는 듯 오직 듣기만 할 뿐, 결과적으로 무엇도 결단하지 않고, 그 어느 하나 실행하지 않았다.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성제는 진정 애매모호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집권 중반인 홍가(鴻嘉) 연간 이후, 풀리지 않는 정국을 더 얼려버리는 여인마저 등장해 한나라의 겨울을 부추긴다. 우유부단한 황제를 더 우유부단하게 만들어 쥐고 흔드는 여인! 바로 후궁 조비연이 등장한 것이다.

 

조비연과 성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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