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민(감이당)

아기가 ‘수신증’이라고?

임신부는 보통 36주나 37주 즈음, 막달 검사를 받는다. 아이는 건강한지, 임신부 또한 출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혈액검사, X-ray 검사 등등을 해야 한다.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했다고 해도,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병원의 진단서를 받아 가야 했다. 이제껏 별다른 사고 없이 지냈던 터라 이번에도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평소보다 꽤 오래 걸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담당 의사까지 소환되었다. 상황이 좋진 않아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가 말했다.

아기의 신장에 물이 차 있어요. 얼른 분만해서 신생아실에서 상태를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유도분만 할지 결정해오세요.”

아기는 신장에 물이 찬 ‘수신증(hydronephrosis)’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도 낯설었는데 의사가 결정을 재촉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것도 자신의 진료일에 맞춰 유도분만 할지 선택하라니. 더 거부감이 들었다. 이제껏 준비해온 ‘자연주의 출산’도 무산되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아이와 내가 만나는 순간이 차가운 분만실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 지금까지 상상하고 준비해왔던 터였다. 또 아이는 신장 기능이 좋지 않다는데, 지금 괜찮은 상태인 건가?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편에게 진료받은 내용을 전했고, 우리는 둘 다 패닉상태에 빠졌다. 남편과 나는 각자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몇 주 전, 이미 아이의 신장에 약간 물이 찬 것을 알고 있었다. 의사는 3주 뒤에 오라고 했지만 별다른 일이 있을까 싶어 가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되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어떤 잘못이라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수신증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음식도 가려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아기에게 해가 될 만한 일도 딱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종일 울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에 여쭤볼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건 참 다행이자 행운이었다. 선생님들은 “제왕절개 해도 괜찮아~ 산모와 아기, 둘 다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고 안심시켜주시기도 하고 집 근처에 있는 다른 병원을 추천해주시기도 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다른 병원에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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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증’, 너 누구니

제 의견은 좀 다른데요, 그럼 콩팥이 하나인 아이들은 모두 유도분만을 해야 하나요? 수신증이란 게 태어나도 바로 치료해야 할 만큼 급한 증상은 아닙니다.”

오호라~ 의견이 이렇게도 다르다니! 나이가 지긋한, 경험이 많아 보이는 의사는 훨씬 더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다급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수신증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신증은 1,000명의 태아 중 4명에게 발생하는, 특히 남자 아기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태아 때 수신증으로 진단받은 아기가 많았다. 그리고 아기의 부모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까지 있었다. 현재 아기는 수신증 3기. 수신증은 물이 찬 크기별로 단계를 나누는데, 지금 아기는 왼쪽 신장에 물이 찬 정도가 1.5cm 정도 되어 보이고, 요관까지 늘어나 있어 3기로 진단하셨다.

인터넷 카페에는 대학병원의 수신증으로 유명한 교수님들께 진료를 본 후기가 빼곡했다. 대부분의 의견은 “태아는 엄마에게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며 따로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많은 경우, 아이들이 커가면서 신장의 기능이 좋아져 자연치유가 된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지금 60대이신 어떤 분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장이 하나였는데 이제껏 모르고 살았다가 얼마 전, 건강검진 하면서 알게 되셨대요.” 헉. 신장이 하나인 걸 여태 모르고 살다니? 그렇다. 신장이 하나이든 두 개이든 일상생활에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꼭 몸의 모든 장기가 튼실하다고 해서 정말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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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는 엄마에게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며 따로 해줄 것이 없다는 것”

아이가 신장이 약하다는 걸 정밀해진 초음파 덕분에 알게 되어 앞으로 조심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발달한 의료기술 때문에 여러 걱정을 미리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간의 패닉상태에서 빠져나와, 우리는 느긋한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했다. 출산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말이다. 비록 원래 계획했던 조산원에서의 출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병원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기는 왜 수신증에 걸린 걸까?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수신증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소변이 콩팥에서 요관, 방광으로 잘 내려오지 못하는 증상(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요도계가 막히거나 방광의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질환 백과)라는 물리적인 원인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궁금해하던 중, 나는 우연히 동의보감에서 수신증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부분을 찾게 되었다.

삶에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

동의보감에 따르면 임신 9, 10개월에 아기는 수(水)기운인 족소음신경, 족태양방광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고로 신, 방광이 튼튼해지는 시기이다. 아기의 신장도 32주쯤 약간의 물이 차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9개월째인 족소음신경이 관장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아기는 한참 자기의 신장을 튼실히 하며 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운기인 듯했다. 2018년은 무술(戊戌)년이고, 절기로는 소서가 지나면서 기미(己未)월이 시작되었다. 무술도 기미도 모두 음양오행에 따르면 토(土)기운에 속한다. 너무 강한 토(土)기운은 수(水)기운을 극한다. 그래서 혹시나, 아기의 신장에 무리가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기가 수신증인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듯했다. 그저 지금 이 시기의 운기가 너무 세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물론 무술년, 여름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신장이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시공간에 태어났더라도 사람마다 체질도 다르고 또 그에 따라 발현되는 질환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유를 찾고 싶었다. 알지 못할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운기’라는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하자 갑갑했던 상황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는 아이에게 잘못했다는 생각과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된 건지와 같은 쓸데없는 걱정을 멈출 수 있었다.

아이가 수신증이라는 걸 알게 되고, 동의보감을 찾아보며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이당에서 사주 명리학을 처음 배웠을 때가 떠올랐다. 강의를 듣고 자신의 사주를 분석하며 글을 쓰는 누드 글쓰기 과정까지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과 사주를 접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인생을 간접 체험하면서 느낀 건, 어떤 사건도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누구나 봤을 때 ‘대박’으로 여겨지는 일도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지거나 가족들과 멀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집이 폭삭 망했다거나 병에 걸린 것과 같이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그때의 계기로 오히려 다른 삶을 살게 된 분도 있었다. 사람마다 겪어야 할 마디가 있었고, 시기만 다를 뿐 누구든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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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잘 겪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부모는 부모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아기가 수신증이라는 사실은 당장 큰일이 날 만큼 위험한 사건은 아니다. 어쩌면 이 또한 아기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아주 작은 마디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마디를 겪는 것이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가 수신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아이 스스로 겪는 게 있을 것이다. 덕분에 부모인 우리도 수신증에 대해 나름 의학적 지식을 얻게 되었고, 수신증이 아닌 다른 선천적 질환을 가진 아이들의 부모 마음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아이는 많은 마디를 겪을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잘 겪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부모는 부모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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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
석영
1 year ago

헉. 겸제를 낳기 전에 이런 맘고생이 있었다니.
동의보감 이야길 들으니 저도 수긍이 가네요!! 그리고 신장 없이 60년을 사신 분 이야기가 너무 유쾌해요ㅋㅋ
언니가 자책이나 더 큰 걱정으로 빠지지 않게 되어 다행이예요. 역시 다른 사람 이야기와 책 속에 길이 있군요…ㅋㅋ!!!

소민
소민
1 year ago
Reply to  석영

겸제의 수신증이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이제와 보니 동의보감 안배웠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ㅎㅎㅎ
신장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또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ㅋㅋㅋㅋ
정말 다 완벽하게 가지고 있어야 잘 살수 있다는게 우리의 편견일지도!
그리고 뭔가 일이 있을때는 같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 그래야 한 생각(망상ㅋ)으로 빠지지 않는 듯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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