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해 완

  쿠바에 어머니가 오셨다. 삼 년 전 뉴욕을 세 번째 방문하셨을 때, 이제 여행에 질렸다며 사과 농장에 ‘올인’ 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쿠바에 누군가 가야만 한다면 그때는 아버지를 보내겠다고 못 한 번 더 박으셨고 말이다. 그렇지만 올해, 제천 사과 농장주는 스스로의 다짐을 깨뜨리고 뉴욕을 넘어 카리브해의 섬에도 자신의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게 다 뎅게 탓이다. 10월에 뎅게에 걸린 후로 내가 쉽게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탁구와 자전거로도 역부족이었다. 체력이 무너지니 멘탈도 간당간당 한계에 다다랐다. 올해가 기해년이라 가뜩이나 물 많은 내 사주에 ‘해자축합수(亥子丑合水)’까지 끼어들어서 이렇게 우울한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나의 인성 과다는 자석처럼 어머니를 쿠바까지 끌어들였다. 캐리어 두 개에 가득 찬 한국 음식과 함께. 오예!

데자뷰

좀비가 된 딸 덕분에 어머니는 관광객이 아닌 생활인 모드로 아바나를 경험했다. 열대의 열기로 채색된 아바나 비에하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는 대신, 조용한 주거지에서 집과 시장만 왔다갔다하셨다. 시가와 럼을 기념품으로 사는 대신에 시장에서 씨가 마른 소고기와 해산물의 행방을 쫓으셨다. 이 와중에 우리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오고 간 대화는 다음과 같다.

여기는 이런 것도 없니?

 “. 여기는 원래 이래.”

소름이 돋았다. 데자뷰 같은 문답이다. 어머니의 질문은 내가 처음에 쿠바에 왔을 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텅 비어 있는 마켓 진열대가 이해되지 않았다. 골목 가득히 양파와 고구마만 꺼내놓은 재래시장의 풍경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물건 하나를 구하는데 열 가지 넘는 방법이 있는 불확실성의 사회! 이런 어려움을 현지인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살펴보니, 다들 외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원조를 받고 있었다. 쿠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들은 모두 외국에서 ‘직구된’ 물품들이었다. 쿠바에는 스스로 생산하는 공산품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때는 이런 현실 앞에서 충격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쿠바 혁명에 대한 환상은 없었어도 ‘자급자족하는 로컬 경제’에 대한 환상은 품었었나보다. 하하, 나는 얼마나 무지하고 우스웠던가…… 세상에서 자급자족이 가장 잘 안 되는 섬에 와서 자생품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니…… 경제 봉쇄를 견뎌내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의 고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무작정 쿠바에 왔으니, 이건 전적으로 내 무지의 탓이다.

결국 나의 인성 과다는 자석처럼 어머니를 쿠바까지 끌어들였다.

지금은 물자 부족에 대해서 꽤 덤덤해졌다. 시간이 흐르자 어느 새 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필요한 물건을 웃돈을 얹어서 불법으로 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없이 사는 불편함을 현지인들과 함께 견디기도 하면서 일상의 균형을 잡고 있다. 일상의 문제들은 밀려오는 잔물결처럼 멈추지 않고 나를 때리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생활’에 대한 상(想)을 버린다면 이 또한 어떻게든 해결될 소소한 문제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균형감각과 낙천성은 결핍에 의해 불규칙적으로 출렁이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때 쿠바 사람들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에게 반복하고 있다. 여기는 원래 이래. 사람은 이렇게도 살 수 있더라고.

이렇게도 살 수 있지만, 이렇게 살지 않을 수 있다면 그쪽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이것이 ‘특수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상황이 구소련이 무너지고 강산이 세 번 바뀔 때까지 끝날 기미를 안 보이긴 하지만, 최근에 베네수엘라 사태와 함께 석유가 부족해지자 대통령 디에즈카날이 이 특수 상황에 ‘꼬윤뚜랄(coyuntural)’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또 붙여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놓긴 했지만, (‘꼬윤뚜랄’이란 일시적인 국면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쿠바 사람들은 언젠가 옆 동네 미국이 경제봉쇄를 철회한다면 이곳도 ‘정상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요원한 희망이다. 내가 의학 공부를 끝마칠 때까지도 이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상대성의 마법

쿠바에서 결핍을 감내하는 내 인내심은 아름답게 길러지지 않았다. 소박한 삶이 주는 미학을 가난 속에서 배웠다고 말하기에는, 나는 쿠바가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기름질 수도 있고 검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물자가 얼마나 풍부하느냐와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립을 할 수 없는 삶에는 좌절이 깃들 수밖에 없다.

내가 쿠바의 좌절스러운 현실에서 배운 것은 바로 상대성이었다. 쿠바 사람들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과 싸워야 하고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직시하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는 이 땅에서 내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마켓에서 닭고기가 사라지면 모두가 닭을 쫓고, 국가에 석유가 떨어지면 모두가 오지 않는 버스를 쫓아야 하는 이곳에서 나는 그래도 선택지가 있는 사람이다. 27살에 원고료로 월 40만원 버는 게 다인 나는 한국에서라면 어떤 신용 등급에도 속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쿠바에서 나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정당하게 외화를 버는 사람이다. 지구상에서 190여개 되는 나라로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여권을 가진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눈 딱 감고 ‘미친 가격’을 지불해서 시장에 없는 ‘우에보(Huevo; 달걀)’을 구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부담스러운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인터넷 데이터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진 이 모든 자원을 자립을 위해서 사용한다. 내 생활은 가끔 덜컹거리긴 해도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 나는 내 힘으로 먹고 살고 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다는 자각을 동정심으로 결론짓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내가 남들보다 나은 게 내 덕이 아닌데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가. 마찬가지로 그들이 나보다 힘들 게 사는 것이 그들의 탓이 아닌데 이를 부끄러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렇지만 나는 이 비교 덕분에 내 입에서 떠나질 않는 불평이 얼마나 소모적인지 깨달았다.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의 수준은 이곳에서 이미 상급이다. 불평해봤자 더 나아질 것이 없고, 노력해봤자 더 올라갈 곳이 없다. 그런데도 때때로 내 삶이 좌절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비교 때문이다. 내가 과거에 쿠바가 아닌 곳에서 젖어있었던 삶의 방식이, 유령처럼 나를 쫓아와서 실체 없는 좌절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립했는데도 아직도 뭔가가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이 더 필요한가? 난 이미 귀족이 아닐까?

나의 생활력이 호화로운 귀족층에 속해있다는 생각은 내가 아바나에서 이사를 간 세 번째 집에서 마침내 진심으로 승화되었다. 작년에 의대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싼 맛에 들어간 집이 사실 물탱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런 문제는 여느 쿠바인들이라면 전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지만 그 후로 나는 생존을 위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했다. 48시간 중에 물이 들어오는 시간은 단 12시간, 그것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단 6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물탱크를 채워야 했다 그때 나는 인간 한 명이 몸뚱이를 유지하고 사는 데 이렇게 많은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용변을 내리는데 5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5리터의 물은 누군가의 저녁을 구원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물이라는 것도 배웠다. 설거지한 물과 샤워한 물을 변기에 재활용하는 법도 익혔다. 4개월의 고행 끝에 나는 마침내 나는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고 문제가 ‘적은’ 집으로 이사했다. (쿠바에 문제가 없는 집은 없다!) 물과의 싸움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당시 나는 전 세계적으로 물 문제와 싸우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 게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배웠다.

그 후로 내 일상에서는 좌절의 그림자가 깨끗하게 걷혀졌다. 그래도 지금 동네에서는 48시간 가운데 22시간 물이 들어오지 않는가? 내가 현재 사는 집에서는 씻을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냉장고를 돌릴 수 있는 전기가 나오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가스가 나오며, 공부할 수 있도록 형광등에 빛이 들어온다. 이 집세를 내기 위해, 또 냉장고를 채울 야채와 고기를 사기 위해 나는 필요한 돈을 번다. 공부를 위한 책과 공책도 다 구비되어 있다. 그 외에 친구들과 노가리 까고 싶을 때 마실 럼주도 몇 병 있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이 더 필요한가? 난 이미 귀족이 아닐까?

몇 주 전 문탁쌤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였다. 쌤은 내 애인이 돈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역시 청년에도 계층이 있다며 농담을 날리셨다. 내 나이 때에 정규직으로 취직한 친구들은 이제 애인과 함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만큼 돈을 번다. 그때 나는 내심 놀랐다. 어느 새 나는 내가 해외여행을 갈 만큼 돈이 없다는 사실을 궁핍이라고 ‘느끼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면 좋지만 안 간다고 해서 큰 일 나는 건 아니다. 또, 돈 때문에 애인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긴 하지만, 일 년 안에 상황을 해결할 수 있고 그 사이에 관계의 신뢰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큰 문제는 아니다. 누가 본다면 궁색한 정신승리법이라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기실 궁색하지 않은 나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나는 쿠바에서 자립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크게 필요한 것이 없다.

그리고 자립의 끝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자립은 다른 쿠바인들의 자립보다 훨씬 손 쉽다는 것. 그런데도 내 생활이 좌절스럽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탓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맛본 수많은 것들이 독이 되어버린 탓이다. 이것이 상대성의 마법이다. 비교 속에서 객관적인 통찰을 얻을 수도, 의미 없는 패배를 할 수도 있다.

가난이 절망이 아닌 불만이 될 때

필요한 물건이 없는 상태를 가난이라고 부른다면 대다수의 쿠바인들은 가난하다. 그리고 이들은 가난한 상황에 대해서 불평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국가가, 미국이, 또 철없이 가산을 탕진하는 젊은 세대가 불평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끝없는 불평의 향연 속에서도 쿠바의 가난은 절망의 수준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가난은 인간의 존엄성을 깎아내리는 형식으로 표현될 때가 잦았다. 돈이 없어서 병을 치료할 수 없을 때, 돈이 없어서 밥을 굶을 때, 돈이 없어서 타인에게 무시당할 때 사람들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을 느낀다. 물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생명, 내 인격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의 부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고 필요한 바를 ‘해낼 수 없’는 존재의 무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처럼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되는 사회에서는 여기에 ‘욕망의 포기’라는 상처까지 덧붙여진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런 일은 쿠바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돈이 없더라도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이 되며, 돈이 있더라도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에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끝없는 불평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식재료가 부족하여 각 나라 친구들이 변형시킨 고국(한국&앙골라&브라질&스페인)의 요리

나는 쿠바에 와서야 가난과 낮은 자존감이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말로만 듣고 또 말로만 동의했던 명제였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나 또한 마음 깊숙이 이 말을 믿지 못했다는 것을 역으로 깨달았다. 돈을 쫓는 마음 뒤에는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돈이 없을 때 닥쳐오게 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겪어야만 할 절망에 대한 두려움이다. 결핍이 곧 절망이 되리라는 믿음은 강박처럼 우리들 마음속에 뿌리내린다. 그리고 이 믿음은 집단적으로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강화된다. 나 홀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여기서 탈출하겠다고 해서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욜로’ 스타일을 실제로 실천하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생각해보자.) 거꾸로 쿠바 같은 나라는 우리로서는 대책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가난 앞에서 태평하다. 불평과 희화화는 넘쳐나는데, 악에 받힌 ‘노오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쿠바에서는 실체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결핍’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실험을 해볼 수 있다. 물건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포기하는지, 또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 와중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립의 내용과 범위를 재정립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실험은 힘들기는 해도 절망적이지 않다. 최소한 쿠바에서는 아무도 나의 결핍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다 같이 물자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지 않은가. 그 누가 예외일 것인가?

없음, 다름, 깨달음

본의 아니게 강제적으로 이런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때로는 계란이, 때로는 식초가, 때로는 석유가 없다. 이 중에서 물과 전기에만 문제가 안 생겨도 소원이 없겠다. 내일이 당장 생리학 시험인데 열 시간 넘게 정전이 되거나 샤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묘사하기도 싫다!

어쨌거나 이런 실험이 계속 될수록, 삶이라고 부를만한 것들과 날 것으로 만나게 될 기회도 잦아진다. 물자 부족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조건이다. 그러나 없는 환경을 ‘없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삶’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 새 해결책을 짜내고 물자를 아껴 쓰고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모두 자립력의 일부다. 이 과정을 통과하다보면 일상의 울퉁불퉁한 질감이 느껴진다. 뭔가가 없다는 상황은 동일한데, 이것을 일상 속에서 소화해내는 방식은 각 사람마다 천지차이로 다르다. 그리고 거기서 별별 이야기들이 다 나온다. 삶의 고유한 결은 여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결핍이 곧바로 소박한 삶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몸과 마음이 점점 물자로부터 구애를 덜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소박함 아래에는 뜨거운 일상이 있다. 초에 불을 켜고 이웃과 물을 나눠 쓰며 생리학 시험을 준비하는 열정이 있다.

경제 봉쇄는 계속 되고, 특수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결 같고, 쿠바의 상황을 보면 한숨이 폭폭 나오는 것 역시 여전하다. 그렇지만 상황이 해결되고 난 후에 쿠바인들이  만들어 갈 삶은 단순히 ‘없는 걸 채워서 만드는 삶’은 아닐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쿠바인들이 배운 자립의 방식은 그보다 더 창의적이니까. 그러니까 어머니가 곧 한국 음식과 함께 쿠바를 떠나더라도 나 또한 이를 결핍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한국 동생들을 데리고 김장이나 해볼까? 자립의 길은 멀고도 어렵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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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1 year ago

해완아 너 인성 진짜 대단하다ㅋㅋㅋㅋㅋ 인성 없는 나는 한국에 계신 엄마가 집에 오시는 날이 손에 꼽는데! 지난 번, 뉴욕에서의 생활과 쿠바 생활이 완전 대비된다~ 똑같이 힘든 상황이 와도 그걸 해결하려는 자립의 능력은 다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 그리고 그 상황이 자존감을 공격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이렇게 글로 정리해서 마음을 다 잡는게 필요한 것 같아ㅎㅎ 벽 앞에서 찍은 엄마와의 사진 완전 유쾌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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