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진정 나를 위한다는 게 무엇인지, 나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참 많이들 생각한다. ‘나’라는 게 뭔가 실재한다는 착각 속에서 말이다. 나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들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공부하기 전까지는 그런 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것이 없으면 왠지 밋밋한 사람 같고, 그래서 좀 더 나를 표현할 수 있을만한 ‘어떤 것’을 찾았던 것 같다.

반면에 동양고전은 ‘나’라는 주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동양고전은 나에게 천지만물은 하나라는 신비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동양에서도 이런 시대는 아주 옛날일이다. 연암의 글에서 주체가 생겨나는 과정을 보여준 대목이 있다.

  무릇 사람이나 사물이 처음 생길 적에는 진실로 각자가 구별되지 않았다. 즉 남이나 나나 다 사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들어 남과 마주 놓고서 ‘나’라 일컬으며 구분을 짓게 되었다. 이에 천하의 사람들이 비로소 분분히 일어나 자기를 말하고 일마다 ‘나’라 일컫게 되었으니, 이미 사심私心을 이겨 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까지 스스로 덧붙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박지원, 「애오려기」,『연암집(하)』, 돌베개, 103쪽)

연암은 마치 이제 이 시대가 ‘나’라는 주체 없이 설명될 수 없다는 듯, 인정하고 있다. 심각해진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따져보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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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나를 사랑하는 것”의 극단적이 예를 들어준다. 우리는 보통 이 둘 중 하나다. 이 극단을 오간다. 몸을 엄청 사리거나, 아님 막 쓰거나. 인색하거나 방탕하거나. 과하게 사랑하거나 도외시하거나.

흔히 자신을 지극히 아끼는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내 몸이 닳아 없어질까, 아끼고 또 아낀다. “자기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 사람에게 이로움이 돌아간다 해도 하지 않는 자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 것을 하나 져버리는 것이 타인에게 좋고, 심지어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될 때도, 하지 않는다. 내 몸에 붙어있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물건들, 나의 공간과 시간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 몸을 도외시함으로써 자기애를 뿜어낸다. 한번 사는 인생, 별거 있어?! 라며 몸은 내팽겨 치고, 먹고 놀기를 끝까지 간다. 연암은 이때, 충격적인 일화로 사이의 길을 보여준다.

  전에 이르기를, “사람은 제 몸을 골고루 사랑하니, 제 몸을 기르는 것도 골고루 하려한다. 그러나 몸의 작은 부분으로써 큰 부분을 해치지 말고 천한 부분으로써 귀한 부분을 해치지 말라 하였다. 그러므로 왕웅의 아내는 도끼를 가져다가 자신의 팔목을 끊어서 그 몸을 깨끗이 하였던 것이다. (중략) ‘나’를 사랑하기를 왕씨의 아내 같이 한다면 이는 사랑할 바를 안다고 할 것이다.

(박지원, 「애오려기」,『연암집(하)』, 돌베개, 105쪽)

왕웅의 아내는 타향살이를 하던 남편의 유해를 지고,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여관주인에게 숙박을 거부당한다. 이때 여관 주인은 그녀의 팔목을 잡고 끌어냈는데, 왕웅의 아내는 자신의 손목이 더럽혀졌다하여 팔목을 잘라낸다.

이 일화는 그녀의 수절이 대단하다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이념 때문에 스스로 몸을 해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왕웅의 아내에게는 수절을 지키지 못한 것이, 그 모욕을 참고 몸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작은 부분으로써 큰 부분을 해치지 말고 천한 부분으로써 귀한 부분을 해치지 말라”는 말은 각자에게 다른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왕웅의 아내에게는 팔목을 잘라내는 것이 작은 부분으로 큰 부분을 해치지 않는 일이었다.

내 몸, 내 물건, 내 시공간, 이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길인가? 이렇게 묻는 대신 “난 어떤 부분을 지키려 하는가? 그것이 귀한 부분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내가 지키려는 것이 진정 귀한 것이라면 그건 결단코 지켜내야 한다. 내가 지키려는 것이 천한 것이라면 기꺼이 내 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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