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점점 깊어만 가는 외척의 늪

성제가 죽은 후 제위를 이은 왕은 애제이다. 한서에서 애제와 관련된 것은 황후의 이야기가 담긴 ‘원후전’과 ‘외척전’에 유독 내용이 많다. 그 시대가 외척의 시대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배치라고 생각된다. 애제가 태자가 된 것은 원제의 사랑을 받았던 부소의가 적극적으로 로비를 펼쳤기 때문이다. 결국 애제는 황제가 됐으나 모셔야 할머니가 장장 세 분이나 건재해 있었다. 친 할머니 부소의, 친 할머니는 아니지만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는 왕정군 할머니. 정치적인 야망은 적지만 원제를 곰의 습격에서 구해준 풍소의 할머니까지. 할머니 복이 많다고 해야 하나. 암튼 할머니들과 외척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이 애제가 놓인 조건이었다.

부소의는 손자 애제가 황제가 되자 정식 태후로 존호를 높여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애제는 친할머니 소원을 들어 주고 싶었지만 명분 없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애제는 갈등한다. 만약 친 할머니 손을 들어준다면 강성한 왕씨 외척의 힘을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명분 없이 손을 들어줄 수도 없고, 들어준다고 해도 부씨 외척이 강성해지면 왕씨와 부씨가 교체될 뿐 외척이 판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성제가 외척의 손에 움직이는 것을 본 탓에 애제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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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머니 부소의는 정식 태후의 열망을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신하들의 찬반이 대립하면서 조정은 출렁인다. 눈치를 챈 ‘동굉’은 부소의를 태후로 삼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지만 ‘왕망’과 ‘사단’은 강력 반대했다. 찬성을 한 동굉의 논리는 이렇다. ‘<춘추>에 모친은 아들에 따라 귀해’지니 응당 존호를 높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왕망과 사단은 부소의는 첩이므로 존호를 높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부소의 눈 밖에 난 왕망. 그녀는 왕망을 원망하여 애제에게 손을 써서 면직하게 만든다. 애제는 신하들의 신망이 두터운 왕망을 내치지 못하고 회의에 입조케 하였고, 삼공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에서 타협한다. 집권 초기라 애제는 왕씨 외척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

왕망의 기세가 기울자 왕상의 아들 왕근과 그의 조카 왕황의 만행이 밝혀진다. 교만과 사치가 황제보다 더하여 제도를 문란케 한다는 것. 성제의 장례식에서도 여인을 불러 가무를 즐겼고, 성제의 후궁을 데려다 아내로 삼기까지. 하여 왕근과 왕상의 천거에 의해 관직에 오른 자들까지 모두 파면되기에 이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결국 ‘모친은 아들 때문에 고귀하다’는 근거에 의해 친모 정희와 함께 할머니 부소의는 황후로 책립되었고 그녀의 횡포는 조정을 뒤덮게 된다.

  부태후는 존호를 받은 뒤에 더욱 교만하였는데 성제의 모친과 대화를 하면서 성제 모후를 노파라고 말할 정도였다. 증산효왕의 생모인 풍태후는 함께 원제를 섬겼지만 나중에는 원한을 가지고 저주를 한다는 죄를 씌워 자살하게 하였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외척전」, 『한서』9, 명문당, 555쪽)

 

애제 시대에는 원제 시절부터 형성된 외척의 힘이 커질 때로 커져 늪과 같았다. 길을 찾으려고 할수록 빠지는 늪. 애제 머릿속은 집안에 여자가 들어오면 화근이 된다고 여긴 게 아닌가 싶다. 애제는 여성 스캔들이 없는 보기 드문 왕이었다. 맞다. 그는 여성을 멀리 했다.

지독한 사랑에 빠진 동성애 황제

애제는 분명 여자를 멀리했다. 대신 꽃미남 동현과 사랑에 빠졌다. 아마도 외척에게 하도 시달려서 외척을 만들지 않으려다 보니 남자에 빠진 걸까. 한나라 12 왕조 중 동성애 황제가 탄생한 것이다! 애제의 러버, 그는 누구인가. 이름은 동현으로 전각 아래서 시각을 알려주는 자였다. 애제는 지나가다 빛나는 그의 모습에 빠져든다.

  잘생긴 외모에 얼굴에 늘 웃음기가 있고 그 의표와 외모가 멋져 애제가 멀리서 알아보고 물었다. ‘사인이던 동현 아닌가?’ 그리고 가까이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황문낭을 제수하였는데 이때부터 동현을 총애하였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영행전(佞幸傳)」, 『한서』8, 명문당, 510쪽)

현대인이 스타를 보고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동현의 도화살은 애제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것. 외모 뿐 아니라 동현은 입에 혀처럼 굴었던 것 같다. 한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천성이 온유하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성격이라 아첨으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자였다고. 동현 덕분에 그의 아버지도 승진한다. 애제가 수레를 타면 함께 타는 것은 기본이고 옆에서 계속 시중을 들었는데 한 달 동안 받은 금액이 거만에 달할 정도였다. 애제의 총애가 얼마나 지극했는지 조정을 뒤흔들 정도라고 한서는 기록한다. 이런 기록을 받쳐 주는 일화가 있다. 동현이 애제의 소매를 베고 낮잠을 자는데 그것을 차마 깨울 수 없어서 애제는 옷소매를 자르고 일어났다는 것. 얼마나 사랑스러웠으면 깨우지도 못할 정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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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은 외출도 못 하고 궁중에서 애제의 의약을 챙기게 되는데, 이것은 애제가 동현과 함께 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동현을 옆에 두고자 그의 아내도 관사에 머물게 하고, 동현의 여동생을 불러 황후 다음인 소의로 삼기까지 한다. 하여 동현, 동현의 처, 동현의 여동생 세 명은 모두 애제 옆에서 시중을 들게 하고, 동현의 처와 여동생에게까지 천만금의 재물을 하사한다. 애제의 동현 사랑은 폭주 기관차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또 동현의 부친에게 더 높은 벼슬을 주었고, 장인과 처남에게도 벼슬을 내리고, 심지어 동현을 위한 집과 무덤까지 짓는다.

  애제는 장작대장에게 명하여 북궐 아래에 동현의 집을 짓게 하였는데 전후 전각에 여러 문을 만들고 토목공사도 극도로 화려하여 기둥이나 난간을 모두 두꺼운 비단으로 감쌌다. 동현의 집 노비까지도 모두 하사품을 받았고 무고의 좋은 병기나 상방의 진기한 보물도 하사하였다. 황궁에 오는 여러 물건 중 좋은 것은 동현의 집에 있었고 수레나 의복 등도 그와 비슷하였다. 그리고 동원에서 제조한 관곽이나 구슬 옷이나 구슬 상자 등도 미리 동현에게 하사하여 없는 것이 없었다. 또한 장작대장에게 명하여 동현을 위한 무덤을 의릉(義陵, 애제 생전에 축조한 능)곁에 축조하게 하면서 내부에는 길을 만들고 몇 리에 걸친 담을 두르고 궐문과 정면에 쌓은 담 등이 아주 화려하였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영행전(佞幸傳)」, 『한서』8, 명문당, 511쪽)

애제 동현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애제는 동현을 제후로 만들고 싶었다. 공적이 없는 동현에게 제후로 봉할 명분이 없자, 조작까지 불사한다. 동평왕 유운이 무고, 즉 귀신에게 제사하여 천자를 저주했다는 사건이 만들어지고, 사건을 고발한 자가 동현이라 하여 공적을 만들어 준다. 결국 동현은 고안후에 봉해진다. 이 사건 조작을 앞서서 만든 자는 식부궁이다.

국가를 사지마비 상태로 만들다

식부궁은 <춘추>를 배우고 여러 기록과 제자서를 읽었으나 학식 보다는 “용모가 크고 잘 생겨서 사람들이 특별하게 생각하였다”는 점에 한서는 주목하고 있다. 부소의 부친인 ‘부안’과 같은 군 출신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한서에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한서가 식부궁 외모에 주목한 것을 보면 애제가 식부궁을 곁에 둔 것도 외모가 출중해서가 아닐까 싶다.

동현을 제후로 만든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풍태후가 애제를 기도로 저주한다는 거짓 상소가 올라왔다. 그 상소로 인해 풍태후와 동생 풍참은 모두 자살했으나 그 죄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 후에 위산에서 돌이 저절로 일어섰고 그 아래로 길이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동평왕 ‘유운’은 기이하게 여겨 제사를 지내주어 돌을 진정 시키고자 했다. 이것을 전해들은 식부궁과 그 일당은 이 사실을 왜곡하는 모의를 벌인다. 유운이 천자가 되고 싶어서 저주를 하는 의식이었다는 것. 이 모의는 먹혔고, 동평왕과 그의 부인을 포함하여 연루된 사람들이 줄줄이 죽게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애제를 살렸으니 엄청난 일을 한 셈이다. 동현은 이 사건의 고발자가 되고 그렇게 조서가 꾸며진다. 애제의 동현 사랑이 넘치자 식부궁은 애제에게 아부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아부한 인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승상인 왕가는 동평왕의 사건을 의심하면서 동현 제후 봉하기에 극렬히 반대했다. 애제는 직위한지 얼마 안 되어 사지마비 병을 앓고 있는 중이었는데 왕가는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린다.

  “왕자는 하늘을 대신하여 작위를 내리는 것이니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땅을 나뉘어 분봉하면서 옳지 않다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고 음양을 움직여 그 폐해로 (천자의)질병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지금 폐하의 옥체가 편안하지 못하기 에 신이 내심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고안후 동현은 총애를 받는 신하로 폐하께서 작위를 편파적으로 하사하여 고귀한 지위에 올렸고 재물을 모두 주어 부자로 만들었으며, 폐하의 존엄을 선상시키면서 총애하였기에 주군의 위엄은 이미 사라졌고 국고도 고갈되었는데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재물은 모두 백성이 만든 것이기에 효문황제는 노대를 짓고 싶었으나, 백금의 경비를 지출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마음을 접으면 짓지 않았습니다. 지금 동현에게 국가의 조세를 가지고 사적특혜를 베푸는데 한 사람에게 천금을 준 경우는 예전 총신일지라고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사방에 소문이 나서 보두가 함께 원망하고 있습니다. 속언에도 ‘천인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고 하였으니, 신은 늘 한심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태황태후께서 영신태후(부태후)의 유조라 하시면서 승상과 어사대부에게 동현의 식읍을 늘려주고 3인에게 국읍을 하사하라고 조서를 내리셨는데 신은 당혹스럽습니다. 산이 무너지고 지진이 나며 새해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일어난 것은 모두 음이 양을 침범함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전에도 동현이 이미 두 번이나 책봉을 받았고 부안과 부상도 두 번이나 식읍을 바꿔주었으며, 정업은 사적인 연고로 마음껏 재물을 늘려 은택이 이미 지나친데도 재물을 멋대로 늘려가며 만족할 줄도 모르고 지존의 존엄한 뜻을 심히 손상시키고 있기에 조서를 천하에 알릴 수도 없을 정도로 폐해가 심각합니다! 신하가 교만하여 점차 거짓을 자행하고 음양이 정도를 상실하며 천기가 감응하여 움직이면 몸에 해로울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병석에 오래 계셨고 후사도 아니 정해졌기에 만사를 정도로 생각하시고 천심과 인심에 수응하면서 복을 빌어야 하는데, 어찌 가벼운 처신과 방만한 생각으로 고조께서 고생하시며 이룩하신 제도를 끝도 없는 길로 몰아가고 있는 줄을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반고 저, 진기환 역주, 「하무왕가사단전」, 『한서』8, 명문당, 51~52쪽)

왕가는 하늘이 애제에게 황제의 지위를 준 것은 하늘을 대신 한 거라며 애제가 동현에게서 헤어나게 하기 위해 초강수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국고는 모두 백성들이 만든 것인데 사적으로 사용하면 결국 애제의 질병이 더 나빠질 거라는 것. 질병과 무슨 상관이가 싶겠지만 동양의 우주관은 신체와 정치는 감응하는 관계에 있다. 한의학에서도 사지마비의 병을 ‘불인’하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인(仁)’이 내 몸에서 펼쳐지지 못하는 병이라는 말이다. 즉, 불인은 불인한 삶을 살 때 오는 병이기도 하고, 인하게 살면 고쳐지는 병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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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제는 황제라 백성이 원하는 정치를 못하면 나라 자체를 불인 상태로 만드는 것과 같다는 것. 정치가 인으로 펼쳐지지 않으면 막히기 때문이다. 왕가의 말에 의하면 국고는 백성의 재물이므로 황제의 소유인 양 동현에게 퍼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불인정치는 자연 재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음이 양을 침범한 자연 재해에 대해 언급하고 나선다. 애제는 왕가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리기는커녕 화가 났고 왕가는 결국 죽어야 했다. 한서는 동현에 대한 애제의 총애가 너무 커서 왕가의 노력이 ‘한 광주리의 흙으로 큰 강물을 막으려는 것으로 죽어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애제는 인의 정치에서 너무 멀어져 있었던 것. 왕가의 센 침으로도 그 병을 고칠 수 없을 만큼 애제는 중병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애제가 처음부터 병든 황제는 아니었다.

  “효 애제는 번왕에서 태자가 되었는데 문사에 박학하고 총명하여 어려서부터 좋은 평판이 있었다. 효성제 때 작록을 수여하는 권한이 황실에서 떠났고 권력이 외척에게 넘어간 것을 보았기에 조회에서 여러 번 대신을 주살라면서 군주 권한을 키워 무제나 선제를 본받으려고 했다. 평소 성격이 풍류나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고 가끔 맨손 겨루기나 활쏘기 놀이를 구경하였다. 즉위 후에 사지 마비가 왔고 말년에 더욱 심하여 재위가 길지 않았으니 애통할 뿐이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애제기」, 『한서』1, 명문당, 617쪽)

이상은 애제기에 기록된 반고가 한 멘트의 전문이다. 애제는 무제나 선제를 본받으려는 뜻이 있었다고 기록될 만큼 정치적 비전이 확실한 황제였다. 하지만 외척의 힘은 갈수록 막강했고, 애제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조건이 병을 만들었는지, 원래 병약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즉위 후 사지마비의 병증을 앓아야 했다고 반고는 서술한다.

난 애제기의 반고의 언술에 주목하고 싶다. 애제가 풍류나 여색을 좋아하지 않은 것을 강조한 한편 동현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마비가 심하게 와서 재위가 길지 못한 점을 애통해 하고 있다. 왕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동현에게 빠진 것은 사지마비 병증 증세로 반고는 본 게 아닌가 싶다. 원래 애제 본성이 동성애 취향은 아니라는 것. 외척을 피하려다 보니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사지마비 병이 생겼고, 그 병으로 인해 편향된 관계를 맺게 되는 데 그것이 동현이라고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튼 한서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동현에 대한 이야기가 ‘애제기’에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지마비 병에 걸리지 않다면 재위 기간이 길었을 것이고 한나라가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라는 반고의 애통함이 담긴 문장이 아닌가 싶다. 결국 한서는 애제에 대한 변명을 해주는 듯하다. 애제는 원래 바탕이 좋은 황제라는 것. 시절을 잘 만났으면 누구보다 정치를 잘 할 수도 있었다는 것. 환경 자체가 사지마비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으니 그것을 애통해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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