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나는 올해 들뢰즈·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와 만났다. 하지만 내 머리가 나빠서, 문맥을 파악하는 섬세함이 부족해서, 다른 친구들처럼 저자들과 찐~하게 접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책을 펼칠 때 자신이 없었다. 이런 태도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과 만날 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고 어려워서 ‘관계를 맺고 싶지만, 난 잘 못 해!’라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한 편의 글로 애를 쓰면서 알 수 없는 즐거움이 꾸물꾸물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힘을 쓰는 만큼 무언가가 생겨난다는 것을. 결국 내 어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제껏 ‘힘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마침 그 무렵, 청년공자스쿨 스페셜 동양철학팀과 서양철학팀이 함께 중국 귀양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글 한 편을 써야 했는데, 나는 이 ‘힘을 쓰지 않는’ 화두를 들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여행하며 힘을 쓰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떤 배치에서 일어나는지를 면밀히 관찰해야만 했…다…!

첫 번째 사건파일 : 어디에 힘을 쓰고 있는가?

첫 번째 사건은 우리가 서강천호묘채라는 중국 소수민족 마을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날에 벌어졌다. 전날 야경을 보며 신나게 돌아다닌 피로가 쌓였는지, 피곤했던 나와 석영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한 두어 시간 잤을까? 일어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비슷하게 깬 석영에게 물었다. “나 밥 먹으러 갈 건데, 너도 갈래?” 그 말을 들은 석영은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석영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유독 말이 없었다. 그런 상황은 밥을 먹으러 가서도 계속되었고 나는 점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데 ‘잠자다가 나와서 그런 건가?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짐작으로 머릿속만 팽팽 돌아갈 뿐 말 한마디 내뱉질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석영은 먼저 숙소로 떠나버렸다. 나는 왜 그러는지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석영 때문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런데, 내 쪽에서도 석영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는 석영이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궁금한 것보다, 관계를 풀기 위해 말을 거는 것이 더 스트레스였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상대가 나에게 가진 부정적인 감정을 ‘직구로’ 받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관계에 힘을 쓰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석영이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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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관계를 푸는 것을 그토록 힘들어 하는 걸까? 그것은 내 ‘자아’가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내가 괜찮고, 멋진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자아에게는 상대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별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상대가 준 피드백으로 인해 변해야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일 따름이었다. ‘멋지고 대단할 줄 알았던 내가 이토록 찌질하고 초라하다니!’ 결국 내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관계에 힘을 쓰지 않는 것도 자아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힘을 쓰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는 관계라는 방향에 힘을 쏟지 않았을 뿐, 자아를 지키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상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래서 관계가 단절되는 방식을 기꺼이 택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힘을 쓰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힘을 쓰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질문으로 나를 들여다보자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물러나 있던 나의 태도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사실은 힘을 쓰지 않았던 게 아니라, 관계를 맺는 쪽보다는 자아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근면성실 애쓰고 있었던 것으로 말이다.

나는 양삭이라는 도시로 이동하고 나서야 석영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석영은 그 때의 내가 얄미웠다고 한다. 내가 석영이와 함께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보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먼저였다며 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점심식사를 권했던 “난 밥 먹으러 갈 건데, 너도 갈래?”라는 말 뒤에는 ‘난 이걸 꼭 하고 싶어. 그러니까 할 거면 하고, 말거면 말고!’라는 강렬한 자기주장이 깔려있었다. 게다가 내가 한 질문이 교묘한 권유의 형태를 띠어서 스스로를 ‘함께 하려고 한 사람’으로 착각까지 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를 할 때의 나는 밥을 먹고 여행지의 새로운 풍경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이 가있었다. 석영이와 함께 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석영은 그런 나에게 화두를 생각하며 여행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여행하는 동안 그 화두를 기억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뢰즈·과타리와 접속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말, 안티 오이디푸스를 통해 자아를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못 한다고 뒤로 빠질 때, 그것이 능력 때문이 아닌 나의 욕망이 거기 없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에 힘을 쓰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진짜 힘을 쏟아야 할 곳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석영이가 아니었으면 이런 나의 모습을 절대 보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아가 원치 않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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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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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하오
Guest
쩡하오

ㅋㅋ 중간에 강아지 사진 언니랑 넘 잘 어울림
언니! 이 글도 그렇고 새로 만난 언니의 모습도 그렇고 참으로 통쾌함!
배움의 순간이 참 멋지구나 하는 걸 옆에서 생생히 목격하게 되어 넘 기뻤음.
좋은 글 고마움!!

석영
Guest
석영

오오오오.. 재밌다!! 언니의 생생한 여행기. ㅎㅎ
자아를 지키려 했던 일도, 그걸 깨닫고 깨졌던 일도 참 강렬했나보다 하는 게 느껴져요!
이 글을 곱씹어보며, 나도 내 욕망을 더 들여다볼 수 있을 듯…!
쪼금씩이라두, 어떻게 조심스럽게 열릴까.
두 번째 사건파일이 기대됩니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