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숙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水地 比   ䷇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夫凶.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 來有他吉.

六二, 比之自內, 貞吉.

六三, 比之匪人.

六四, 外比之, 貞, 吉.

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上六, 比之无首, 凶.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와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존재한다는 것은 그 연결에 의해 가능하다.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런데 존재의 지속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연결이 촘촘하면 할수록 높아진다. 하늘 아래 아무도 없는 고아(孤兒)보다 부모 형제, 친구, 집안사람까지 층층이 주변에 포진해 있을 때 그 존재의 생존확률은 더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친구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비(比)괘는 친밀하게 협력하는 괘이다. 군중들이 있으면 반드시 친밀하게 협력을 하니, 군중이 모이는 사(師)괘 다음으로 비괘가 온다고 한다. 하괘는 땅(地), 상괘는 물(水)로 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땅 위에 물이 있는 모습이다. 물이 땅 속으로 없어지지 않으려면 땅이 촘촘하게 물을 지탱해 줘야 한다. 존재와 존재 사이 그 연결을 촘촘하게 해서 지속의 확률을 높이는 것처럼. 그러니 비괘의 친밀함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저 차 한 잔 마시고 영화 보며 쇼핑하다가 언제든 헤어지는 친함과는 다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권력(왕)을 중심으로 새판을 짤 때 어떤 사람과 어떻게 친밀하게 협력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왕의 입장에선 자신을 친밀하게 보좌하여 나라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신하의 입장에선 힘을 보탰을 때 자신들을 잘 지켜줄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괘사엔 ‘근원적으로 판단하라(原筮)’는 말이 있다. 무엇을 근원적으로 판단하라는 걸까? 친밀하게 협력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라는 거다. 정이천은 “사람들은 스스로 안정을 보존할 수가 없을 때 비로소 와서 친밀한 협력을 구”하는데, 이는 협력을 얻으면 안정을 보존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team-4529717_1920

친밀한 협력은 권력을 중심으로 새판을 짜는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단체, 모임, 공동체에서도 필요하다. 공동체의 지속은 구성원들의 친밀한 협력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협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어떤 모임에서든 난 약간 방관자적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라고 내 멋대로 생각한다.^^;) 방관자라기보단 경계인이라고 해야 하나? 모임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도 그렇다고 빠지는 것도 아닌 애매한 포즈를 취할 때가 많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낯을 가리며 뭘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건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나를 보며 ‘언제든 발을 뺄 듯이 있다’는 말을 가끔 들었다. 그 말이 약간은 억울했다. 그런데 비괘를 공부해보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 것 같다. 어떤 모임을 함께한다는 건 공동의 목표 아래 고락(苦樂)을 함께하자는 무언의 약속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나가는 것도 아닌 채 경계에 있는듯하게 느껴지는 건 왜인가.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공동체의 입장에선 정체가 모호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로선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구성원으로 품을 수 없는 모호한 사람이다.

나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비괘에서 특히 초효가 눈에 띄었다. 초효는 친밀한 협력이 막 시작되는 단계이다. 그러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협력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有孚比之 無咎. 有孚盈缶 終來有他吉.(유부비지 무구. 유부영부 종래유타길) 믿음을 가지고 친밀하게 협력해야 허물이 없다. 믿음을 질그릇에 가득 채우면, 결국에는 뜻하지 않은 길함이 온다. 정이천은 “서로 친밀하게 협력하는 도리는 진실과 신뢰를 근본으로 한다. 마음속에서 진실로 신뢰하지 않으면서 타인과 친밀한 척 관계한다면, 어느 누가 함께하겠는가?”며 친밀한 협력이 시작될 땐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믿음은 행동에서든 눈빛에서든 얼굴에서든 말에서든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경계인으로 보인다는 건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드러나지 않는가? 없기 때문이다. 행위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은가. 이 말에 의하면 각종 모임에서의 나의 경계인 같은 태도는 사실 모임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낯을 가리며 뭘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한다는 말로 치장한 것.

bowl-169435_1920
믿음을 질그릇에 가득 채우면, 결국에는 뜻하지 않은 길함이 온다.

비괘의 친밀한 협력은 자기 혼자만으로는 존재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에 시작된다. 그러니 그 시작은 자기 상황에 대해 진솔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혼자서는 안 되므로 같이 한다는. 혼자는 안 되므로 공동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그 진솔함이 소박한 질그릇을 가득 채우듯 그 마음을 표현(有孚盈缶)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표현될 때 그 속에서 함께 할 친구를 얻을 수 있다(終來有他).

수지비괘는 나에게 어떤 모임이든, 단체든, 공동체든 같이 하고자 마음먹었을 땐 함께하고자 하는 그 마음에 진솔하라고 한다. 그리고 미적거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라고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함께할 친구들을 얻을 수 있다고. 그 친구들과의 협력은 나라는 존재의 지속 그리고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최상의 선물이라고.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