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다 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오십이 되어 연암은 한 고을의 현감이 된다. 세월이 가고 관직생활을 해도, 연암과 그 친구들과의 편지는 계속 되었다. 하루는 바쁜 고을 업무가 얼추 마무리 되고 숨 돌릴 즈음, 마침 대구에서 판관으로 지내고 있는 친구 이후에게서 편지가 온다.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뜯어보니, 편지에는 고을 일로 근심이 가득하다. 친구 이후뿐만이 아니라 수령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 매번 ‘근심과 번뇌가 너무 지나쳐서 이맛살을 찌푸리는 빛이 지면까지 드러나고 신음하는 소리가 붓 끝에 끊어지지 아니’ 했다 하니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게 큰가 보다.

그런데 이 근심과 번뇌는 단순히 수령들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니었다. 조선에서는 아무리 지혜와 학식을 갖추고 있어도, 조정에 나아가 뜻을 펼칠 기회조차 잘 없었다. 대과 급제가 아니면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등용문이 좁았기 때문이다. 음직으로 겨우 말단직, 수령이 되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으며, 명 받들어 행하기 분주하고, 인사고과에서 꼴찌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게 수령의 현실이었다. 자연히 백성의 고통을 신경 쓸 겨를은 더더욱 없었다. 더더구나 흉년까지 겹쳐 기민 선발에, 양식 확보에 신경쓸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상황이고, 연암은 근심과 번뇌에 싸여있는 이후를 향해 일침을 날린다. “정사에 마땅히 전력을 다하여 씀바귀도 냉이처럼 달게 여겨야 할 텐데어쩌자고 신세를 한탄하고 딱한 꼴을 스스로 짓는단 말이오?(193)” 헉, 무슨 열정페이도 아니고 힘든 건 정신승리법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건가 싶어 반발심이 드려는 찰나, 연암은 덧붙인다. 자신은 50년 동안 겨우 끼니를 때우며 살아왔는데, 임금의 은혜로 갑자기 “부자영감”이 돼서 굶주려 쓰러져가는 1400명의 동포들을 한 달에 세 번씩 먹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렇다. 연암은 씀바귀를 정말 냉이처럼 달게 여기고(느끼고) 있었다! 모두가 고을 일로 울상인데, 연암은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있냐’고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기민을 구휼한다고 밥을 먹이는 건 다른 고을 수령들도 했을 일인데, 왜 유독 연암만 웃을 수 있었을까? 연암은 기민을 구휼하는 일만이 수령의 일 중에 ‘포부를 펴 볼 기회’라고 말한다. 연암에게 포부란 ‘출세를 해서 이름을 드날리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듯,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실현하는 것이다.

저 장공예가 구세동거(九世同居)할 때에 애써서 참았다는 것이 무슨 일이었겠소? …(중략)… 그 백번을 참을 때에 골머리가 아프고 이맛살이 찌푸려져서 온 얼굴에 주름살이 가로세로 곤두서고 모로 잡혔을 테니, 양미간에는 내 천(川) 자요, 이마 위에는 북방 임(壬)자가 그려졌을 것이 뻔한 일이오. 눈으로 보고도 참으면 장님이 되고, 귀로 듣고도 참으면 귀머거리가 되고, 입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면 벙어리가 되는 셈이지요. 어질지 못한 일이로다. 측은지심의 싹을 잘라 버리자면 심 위의 칼날 인(刃)자 하나면 족하거늘, 무엇 때문에 이 글자를 백번이나 거푸 썼단 말이오?

이제 나는 즐거울 락() 한 자를 쓰니 무수한 웃음 소(笑)자가 뒤따릅니다. 이것을 미루어 나갈 것 같으면, 백세(百世)라도 동거(同居)할 수 있을 것이오. 이 편지를 개봉해 보는 날에 그대도 반드시 입안에 머금은 밥을 내뿜을 정도로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니, 나를 소소선생(笑笑先生)이라 불러 준대도 역시 마다하지 않겠소.

(박지원 지음, 『연암집』(상), 「진정에 대해 대구 판관 이후에게 답함」, 돌베개, 193-194쪽)

옛날에 장공예라는 사람의 집안은 9세대가 함께 살았는데, 당 고종이 어떻게 그리 집안이 화목할 수 있냐 묻자 장공예는 ‘참을 인(忍)’ 100자를 써서 답으로 올렸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른 결과였다는 것이다. 다른 수령들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백성을 다스린다하지만, 그저 관리평가에 꼴찌를 면하기 위해서, 죄 짓지 않을 정도로만 고을 일에 임하는 것은 그저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보고 듣고 말하고 싶은 것이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연암은 ‘참을 인(忍)’ 100자 대신 ‘즐거울 락(樂)’을 한 자 쓰겠다고 말한다. 포부를 펴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적어도 자신에게 찡그림과 주름 대신 웃음을 준다. 연암은 이후에게 이렇게 말한 게 아닐까? “뭐 때문에 그리 괴로워하오? 괴로운 건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외물에 맞춰 누르고 있어서가 아니오? 여기 시원히 웃으며 갈 수 있는 길도 있소. 소소선생은 현감생활을 그리 한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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