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일식, 조작된 음모를 한 방에 날리다

왕정군은 성제를 낳은 덕분에 모든 희첩들을 물리치고 황후 자리에 올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정은 왕씨 일색이 되고 말았다. 애제가 황제가 되면서 막강한 왕씨 물결에 맞서는 신흥 외척 부씨와 정씨 세력이 등장했다. 앞서 보았듯 외척 세력의 진퇴를 결정한 큰 사건은 부태후의 존호 문제와 애제의 러버 동현의 출현이었다. 애제의 총애를 받기 위한 외척의 몸부림이 계속 되는 가운데 부안(부태후의 사촌동생)과 식부궁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식부궁은 병으로 인해 조례를 못 온 흉노 선우를 문제 삼아 기습 공격을 제안한다. 좌장군 공손록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

공손록 : 국은 언제나 위엄과 신의로 이적을 회유하고 복종케 하였습니다. 식부궁은 이와 반대로 거짓말로 속이자는 신의가 없는 방책이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흉노는 그동안 선제의 덕택으로 새외의 땅을 차지하고 번신을 자청했습니다. 지금 흉노의 선우는 병 때문에 입조하여 하례하지 못하겠다고 사신을 보내 말하면서 신하의 도리를 어기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흉노가 변경에서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제 스스로 보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식부궁은 공손록의 말을 트집 잡으며 말했다.)

식부궁 : 신은 나라를 위한 계책을 미리 도모하자는 뜻이며 책략은 성공하면 뒷날에 일어날 수도 있는 걱정을 미리 막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손록은 견마의 이빨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두자는 것입니다. 저와 공손록은 그 의논이 다르니 같은 시간에 말할 수 없습니다.

애제 : 옳은 말이요.

(군신의 회의를 끝내고 오직 식부궁과 논의를 하였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괴오강식부전」, 『한서』3, 명문당, 261~262쪽)

공손록은 중국이 위엄과 신의로 흉노와 관계를 맺어왔는데 기습 공격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식부궁은 선우가 황제를 얕잡아서 안 온 것이니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 그러나 그의 진짜 속내는 이 사건으로 공을 세워 애제의 총애를 받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변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식부궁은 애제에게 재이(災異)’로 교묘하게 설득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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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부궁 : 작년에 형혹성이 심(心)자리에 오래 머물렀고 태백성이 높이 떠 별빛이 사방으로 뻗쳤으며 또 각성이 하고(河鼓)자리에 나타났었는데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이는 병란이 있을 조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거짓으로 나라의 정책을 알리되 각 군이나 제후국에 보내면 천하가 소란해지고 틀림없이 비상사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대장군을 파견하여 변방의 군사를 동원하고 전투준비를 시키면서 군수 하나를 참수하여 위엄을 세우고 사방의 이민족을 놀라게 하면서 이변에 대응하여야 할 것입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괴오강식부전」, 『한서』3, 명문당, 262쪽)

별의 움직임이 병란의 징조라는 것. 식부궁은 재이로 인한 애제의 불안을 조장했다. 그의 구체적인 계획은 이랬다. 군수를 거짓으로 참수 시켜서 흉노를 겁주자는 것. 애제는 그럴듯하다고 여기면서 승상인 왕가에게 의견을 묻는다.

왕가 : 제가 알기로는, 백성을 움직이려면 말이 아닌 실천이 있어야 하고 하늘의 뜻에 응하려면 꾸밈(文)이 아닌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아무리 힘이 약하다지만 속여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하늘의 신명을 속여서야 되겠습니까. 하늘이 이변을 내보이는 것은 인군의 행동을 바로 잡아 깨닫게 하여 정(正)으로 돌아가 성심으로 선을 실천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민심도 기뻐하고 하늘의 보살핌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 그 한 끝만 보고 또는 망령되게 별의 운행에 자기 뜻을 보태어 흉노나 오손, 서쪽의 강족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날조하여 의도적으로 무기를 들게 하며 정상이 아닌 조치를 취한다면 결코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군수나 제후국의 승상이 죄를 지었다면 수레를 몰고 그 나라에 들어가 체포하거나 사형에 처하여 국법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하며, 말 잘하는 사람의 변설로 안정을 위기로 몰아간다든지 달변으로 귀를 즐겁게 하는 일은 실제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사를 의존할 때 아첨이나 남을 해치는 말, 말 재주만 좋거나 아주 가혹한 의논을 배척해야 합니다. 아첨은 주군의 덕을 해치며 남을 해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원함을 심어주고 그럴싸한 말은 정도를 깨트리며 가혹한 처사는 은혜를 버리게 합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괴오강식부전」, 『한서』3, 명문당, 264~265쪽)

왕가는 식부궁의 음모를 간파했다. 정공법이 아닌 방법을 행하면 이민족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심도 떠난다는 것. 왕가는 아첨하는 자의 달콤한 말을 배척해야 한다고 식부궁에게 기운 애제의 마음을 돌이키려 했다. 이런 왕가의 충심어린 직언에도 불구하고 애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유는 애제도 과거의 왕처럼 보란 듯 공적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제는 “천하가 평안하다지만 전쟁을 잊는다면 필히 위태로울 것이다.”라는 명분으로 무리하게 식부궁의 방책을 밀어 붙인다. 하여 ‘부안’을 대사마 위장군에, ‘정명’을 대사마 표기장군으로 임명하여 결국 흉노 공격을 허락하고 만다.

하지만 놀랍게도 공격을 떠나려는 그날(애제 원년_BC 2년, 정월 신축일), ‘일식’이 나타났다. 안 그래도 재이에 민감한 애제는 두려워 공격을 올 스톱 시켰다. 일식, 재이가 일어난 것은 황제가 정치를 잘 못했기 때문이다. 하여 황제는 널리 조서를 내리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했다. 애제는 말한다. “식부궁은 사악한 거짓 정책을 날조하여 조정을 그르치려 하였다.”고 하면서 식부궁의 관직을 면직 시키고 본국으로 보내 버렸다. 신망 받던 식부궁은 일식으로 인해 한 방에 내쳐진 것이다. 그만큼 애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정치적 비전이 없었다. 현대인도 그렇지 않은가. 자기 소신이 없을 때 결과에 집착하면서 미신에 일희일비하면서 점집을 전전하는 것처럼.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왕망은 다시 복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그해 부태후까지 사망하면서 왕씨 세력이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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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신이 없을 때 결과에 집착하면서 미신에 일희일비하면서 점집을 전전하는 것처럼.

동현이 가고 ‘왕망’이 오다

애제의 동현 사랑은 끝을 몰랐다. 동현은 승승장구 하여, 대사마 위장군에 임명되었다. “이때 동현의 나이 22세였으니 삼공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여전히 상서의 일까지 겸하였기에 백관은 동현을 통하여 국사를 상주하였다.”라고 한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제 모든 정치가 동현을 거쳐 진행 되게 한 것이다. 이제 도를 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연회를 벌이다가 애제는 술기운이 오르자 조용히 동현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제 : 내가 요임금을 본떠 순에게 선양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러자 왕굉이 나서며 말했다. )

왕굉 : 천하는 고황제의 천하이지 폐하의 천하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종묘를 계승하시어 자손에게 전하여 무궁히 이어가야 합니다. 천하 통치는 막중한 일이오며 천자에게 농담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영행전」, 『한서』8, 명문당, 520~521쪽)

애제는 농담처럼 했지만 진심이었다. 황제의 자리를 동현에게 주고 싶을 정도로 동현에게 홀릭 되어 있었다. 애제는 왕굉의 말을 듣고 불쾌했고, 조정의 신하 모두가 두려워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애제는 공사의 판단이 안 될 정도로 병이 깊었고, 동현도 애제의 과도한 사랑에 불안했을 것이다. 그 불안을 알리는 징조가 일어난다. 어느 날 튼튼하게 지은 동현의 집 바깥 대문이 이유 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몇 달 뒤 원수 2년_BC 1년 6월 무오일, 애제가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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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은 전환된다. 아들이 없는 애제가 죽자 모든 주도권을 황태후 왕정군이 장악하면서 왕망을 불러들인다. 동현에서 왕망으로 교체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왕정군은 대사마 동현을 불러 상을 어떻게 치룰까를 의논하는 듯 했지만 무능력한 동현은 대답도 못하고 관을 벗고 사죄를 했다. 그녀는 동현이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 고 있었다. 동현에게 안심하라는 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도후 왕망은 전에 대사마로 선제의 운구를 모신 경험이 있고 전례에 밝으니 내가 왕망에게 명하여 군을 돕도록 하겠소.” 동현은 의심하지 않았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왕망은 왕정군의 지시에 따라 동현을 탄핵한다. 이유는 황제가 아픈데 의약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현은 그것도 모르고 궁궐로 출근 했다가 문책을 당한다. 동현의 문책 사유는 “얼마 전부터 음양이 순조롭지 못하고 여러 재해가 한꺼번에 닥쳐 백성이 그 피해를 당했다” 는 것. 자연재해를 명분으로 들고 나오면 걸려들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애제가 있을 때는 모두 입 다물고 있다가 동현의 무능력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대저 삼공이란 정족으로 보필하는 자리이거늘 동현은 사리를 알지 못하면서 대사마가 되었으며민심에 부합하지 못하고 외적을 막거나 변방을 편하게 하지도 못했다이에 대사마의 인수를 회수하고 파직하니 집에 돌아가기 바란다.”는 정치적인 무능력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그날 동현 부부는 자살하고 만다.

애제의 죽음을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낀다. 또한 동현을 보면서 권력자의 사랑을 받는 것의 대가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과도한 사랑을 받는 게 좋은 일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아무튼 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인에게 마음이 기우는 것은 비단 여인의 덕성 때문만은 아니며 아마 남자에게도 그런 미색이 있을 것이다 (…) 동현에 대한 총애는 특히 유별났으며, 부자가 나란히 공경의 자리에 올라 귀중하기로는 가히 신하에 그런 예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를 거친 출세가 아니었고 직위가 감당할 수 없었기에 좋은 끝을 본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애지중지한 것이 도를 넘었기에 오히려 해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왕조는 원제와 성제 때 쇠약해져서 애제와 평제 대 붕괴된다고 한다. 애제와 평제 시기는 나라에 변고도 많았다. 그 큰 원인은 후사가 없었고 농신의 보필을 받았으며 삼공이 나약했고 기둥이 약해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황제가 붕어하면 간신의 운명도 다하니 동현은 목매어 죽었고 정명과 부희는 유배되었는데 재앙은 그 모후까지 미쳐 지위도 빼앗기고 유폐되었으며 그 화가 가까이 했던 아첨배까지 닥친 것은 어질지 않은 사람이 등용되었기 때문이다.”

(반고 저, 진기환 역주, 「영행전」, 『한서』8, 명문당, 526~527쪽)

애제의 통치 기간은 짧았다. 20세에 황제가 되어 26세에 죽었으니 말이다. 반고는 애제가 동현의 미색에 끌렸음을 인정할 뿐 아니라. 동현이 감당할 수 없는 총애에 대해 지적하기까지 한다. 그렇다. 애제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반고는 한 왕조가 이미 원제와 성제 때 쇠약해지고 있었음 또한 놓치지 않는다. 외척으로 인한 작은 틈이 애제와 평제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이렇듯 한서는 개인과 시대를 분리하지 않는 시선을 견지한다.

아무튼 동현은 애제에게 아부한 대표 인물이다. 애제의 동현 사랑은 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결국은 동현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도한 총애가 상대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걸까. 과도한 사랑은 상대의 삶을 존중하는 길이 아니라 결국 자기만족이 아닌가. 동현이 감당할 수 없는 버블 출세는 결국 많은 사람의 질투를 유발했고, 애제의 죽음과 동시에 사라져야 했다. 동현의 삶을 보면서 화무십일홍의 애잔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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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사랑은 상대의 삶을 존중하는 길이 아니라 결국 자기만족이 아닌가.

애제가 죽자 황태후 왕정군은 왕망을 무한 신뢰한다. 이 과도한 사랑과 기대는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왕망은 동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대신들의 신망 또한 두터운 자이다. 하지만 동현을 문책하는 과정에서 왕망의 캐릭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왕망이 문책을 하자 동현 부부는 그날로 자살을 했다. 그러면 보통 끝을 낼 것 같은데 왕망은 거짓으로 죽었는가 싶어서 관을 발굴하여 옥에 가져와 검시까지 행했다. 문책만으로 안심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광에게 동현의 문제점을 지적해서 상소를 올리도록 했다. 왕망은 매우 의심이 많고 명분을 확실하게 하는 치밀함을 지녔다. 치밀함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망이 국가를 위한 마음을 낸 자가 아니라면. 일신의 영달, 그 야심을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일을 처리하는 자라면. 왕정군과 신하들의 신망을 받은 것도 그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깜짝 속임수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은 애제가 죽었고 황태후 왕정군은 이 상황을 수습할 적격자로 왕망을 지목했다. 왕정군의 무한 신뢰를 받은 왕망의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한나라 붕괴의 때에 등장한 왕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그리고 한서는 왕망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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