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3. 귀주 가는 길 –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해서 돌아가는 수밖엔!

문리스(남산강학원)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넘어

양명은 한겨울을 북경의 감옥에서 보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입니다. 그리고 실제 상황입니다. 그저 삶에서 맞이하게 되는 어떤 위기에 봉착했다…, 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피해가 컸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요구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최전선이었던 금의위들에게 구금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중앙정보부의 남산이나 1980년대의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곳을 떠올리면 조금 실감할 수 있을지도.

정신적으로도 양명이 입은 내상은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자존심 강한 양명이 받은 모멸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정신적으로 무너질 이유는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시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양명에게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 왕양명에게 북경의 혹독한 겨울과 금의위의 감옥 생활은 충분히 끔찍하고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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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양명의 자존심과 그가 받았을 모멸감을 언급했지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혹은 조만간 본격적으로 전개될 그의 유배생활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라도, 그에 관한 약간의 전기적 사실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왕양명은 명나라 성화제 헌종 8년(1472년) 9월 30일(양 10.31.)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이름은 운(雲; 구름)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그의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와 관계됩니다.

연보에 따르면, 왕양명은 어머니 정(鄭)씨 부인에게서 14개월 만에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출생의 기록이 영웅적 탄생 설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난산에 대한 상징적 기억인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왕양명의 공식 연보에는 이 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설화적(!) 장면들이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흥미 제공이나 가공된 허구 이상으로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여하튼 양명의 이름은 그의 출생을 기다리던 가족들, 그 중에서도 특히 조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조모 잠(岑)씨 부인이 꿈에서 한 신인(神人)을 만납니다. 비단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내려온 신인은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아이를 건네줍니다. 잠씨 부인이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집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겁니다. 조부 죽헌공(竹軒公)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아이의 이름을 구름(雲)이라고 짓고, 아이가 태어난 곳을 상서로운 구름이라는 뜻의 서운루(瑞雲樓)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절강 여요현에는 왕양명의 출생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서운루도 남아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구름이(雲)가 아니라 서운(瑞雲)인 셈입니다. 왕서운. 우리말 어감으로는 좀 이상합니다만.

양명의 아버지 용산공(龍山公) 왕화(王華)는 전국 제일의 수재였습니다. 비유가 아닙니다. 양명 탄생 이후의 일이긴 합니다만, 왕화는 3년에 한 번 치러지는 중앙 관료를 선발하는 회시(回試)의 장원급제자입니다. 중국이 어디 자신들을 여러 나라 가운데 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나요? 중국은 자신들을 하나의 세계로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천하(天下)’가 중국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전체 1등을 한다는 건, 반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닌, ‘우주제일수석(宇宙第一首席)’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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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화는 당연히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인품 또한 꼿꼿하고 곧아서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왕화가 활약하던 시기는 명나라 최고의 성군이라 평가되는 홍치제(弘治帝) 효종(孝宗)의 시대였습니다. 홍치 원년(1488)부터 ‘경연(經筵)’이라는 제도가 실시되는데, 이는 경전에 박식한 전문 분야의 신하들이 군주를 위해 강론하는 일종의 군주 맞춤형 아카데미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군주와 신하는 때론 이해관계가 뒤얽힌 현안에 대해 실제적인 토론과 정책 조율 등을 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힘싸움이랄까요 여하튼 전근대시기 권력의 최상층부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완충 역할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황제(군주)의 입장에선 사대부 관료들의 온갖 점잖은(!) 충고와 도덕적 훈계를 듣고 있어야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정덕제 무종은 집권 초기부터 갖가지 이유를 들어 경연을 피해 다닙니다. 조선에서는 연산군이 그렇게 경연을 싫어했죠.

주역, ‘지금, 이 나’의 길을 묻다

성장 과정에서 왕양명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컨대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유년 시절의 양명은 매우 개구졌습니다. 당돌했고 씩씩했습니다. 어찌 보면 평범한 남자 아이였습니다. 후한 시대의 명장 마복파 장군을 존경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전쟁놀이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양명의 기질은 아버지 왕화의 눈에는 당연히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학자의 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지당합니다.

또 12세 때 양명은 사숙하던 스승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 스승은 ‘열심히 독서해서 과거 급제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양명은 그 말에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과거 급제는 최고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독서의 최고는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연보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듣고 용산공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성현이 되려고 하는가!” 여담입니다만, 당연히 양명은 독서로 과거 급제하는 일에도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잘 해야 또 한 번의 우주제일수석일 뿐이었죠. 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양명은 세 차례의 도전 끝에 회시에 급제합니다. 물론 수석(장원급제)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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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이 북경의 차가운 감옥에서 겨울을 지날 때, 용산공 왕화는 남경 이부(吏府)의 고위 관료였습니다. 병부(兵府)의 하급관리인 양명이 왜 그렇게 당돌한 상소를 올려 유근과 정면충돌했을까.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양명의 출생과 아버지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 문제를 불의를 참지 못하는 양명 개인의 기질로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점에서 양명의 이 상소문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고초를 감수하고 진행된 도발(!)이었습니다. 예상 가능했으니 견딜 만 했을 거란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정덕제 무종이 등극하면서 용산공 왕화는 남경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선황의 주요 대신이었던 왕화의 명망은 가볍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유근이 권력을 농단하기 시작하면서 중앙 관료들이 하나씩 굴복하거나 타협하는 와중에도 왕화는 유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무시했습니다. 왕양명의 상소문은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혹은 아버지를 뛰어넘어 유근과의 정면 대결 형식으로 드러난 왕양명의 존재 독립 선언서이기도 합니다. 용산공 왕화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일은 더 이상 아들(양명)이 말과 행동에 있어 자신의 훈계(혹은 웃음)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분기점이고, 또한 앞으로는 용산공 왕화의 아들 왕수인(=왕양명)이 아니라 양명 선생의 아버지로 자신이 기억되게 되는 변곡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입니다만! 왕양명이 아버지를 위해서 그랬다거나, 아버지를 의식하는 삶이었다거나 하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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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의 감옥 생활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그는 <주역(周易)>을 읽고, 시를 썼습니다. 이를테면 <주역을 읽다/독역(讀易)>라는 시에서, 수형자로 지낸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를 묻고, ‘눈을 감고 앉아 주역을 읽으며/마음을 씻어 미묘하고 오묘한 이치를 들여다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주역을 읽다>)에서 양명이 들고 있는 몇 개의 괘와 효들이 있습니다. 몽(蒙), 대축(大畜), 건(蹇), 진(震), 둔(遯), 고(蠱).

이 괘들은 양명이 점을 쳐서 뽑은 괘라기보다, <주역> 전체를 통해 양명이 뽑아낸 자신의 현재적 좌표 및 미래적 전망이라고 스스로 선택한 진단한 괘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몽은 어리석음, 대축은 큰 덕의 축적, 건은 고난과 시련, 진은 두려움, 둔은 은둔(물러남), 고는 부패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수형 생활 중인 양명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지만 간단히 이 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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