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몇 년 전, 아는 언니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누구나가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전문성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 말을 들으며 당연히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살아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로 내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독점욕’과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남들이 내 가치를 쳐줬으면 좋겠다는 명예욕(?)’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전문성을 키워야 된다고 생각할수록 내 돈, 내 이미지, 내 몸 등등 ‘내 꺼’를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남’을 위하는 사람을 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어리석어 보이는 게 아닐까? 마치 사람들이 최옹을 비웃었듯이.

최옹은 매양 남을 돕는 데에 허겁지겁 서두르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남에게 우환이나 상사(喪事)가 있으면 마음이 허탈하여 마치 허기진 사람이 아침을 넘길 수 없듯이 하고,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눈에 가시가 날아든 듯(345)’ 여겼기 때문이다. 어찌나 이 고통이 괴로웠던 것인지, 그는 남을 돕는 데에서만큼은 아낌이 없다.

친구가 죽자 그 친구의 어린애들을 길러주고, 그 아들이 가난해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수도 없자 재산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천 냥을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아버지의 친구가 홀홀 단신으로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매일 새벽에 가서 안부를 묻고 음식을 보내고, 매달 필요한 생활물품을 마련해주고 따로 저축을 하며 그 분을 위해 관까지 준비한다.(옛날에는 60세가 되면 죽을 때가 가까워져서 미리 관을 만들어야 하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시집 장가 보낸 집이 여럿, 신분을 막론하고 누군가 전염병에 걸리면 단숨에 보살펴 주는 등 최옹의 선행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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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옹은 언제나 자신의 선행을 과시하는 일도 없었고, 언제나 누군가 도움을 구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도와줘 감사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말았다. 재산도 다 털어가며 도와주는데도, 명성하나 쌓지 않으려 하니 사람들은 이런 최옹을 보며 어리석을 ‘치’자를 별명으로 지어준다. 그런데 최옹은 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호를 ‘치암’이라 하고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을 어리석게 여기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지금 가만히 그의 행적을 검토해보면, 한결같이 모두 『소학』에 열거된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이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있다 해도 실로 월등하게 뛰어난 것일 터인데, 옹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마시는 숭늉이나 국물이요, 좌우에 놓여 있는 옷가지나 그릇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높고 원대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인 줄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대개 그의 자질이 돈후하고 독실하여 겉모습을 엄숙하게 꾸미는 따위는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고례(古例)를 몹시 좋아하여 관혼상제의 예식이 시속(時俗)의 눈에는 사뭇 괴이쩍게 보이니, 향리에서는 이로써도 더욱 옹을 어리석게 여겼지만, 옹은 그럴수록 스스로 기뻐하였다. 그의 담론과 행동을 보면, 예식을 도맡아 하는 가운데 날마다 익힌 게 아닌 것이 없었다.

( 박지원, 『연암집』(상), 「최암 치옹 묘갈명」, 돌베개 , 349쪽)

최옹의 행동들은 옛날 요순임금의 태평성대 시절같이 이상적이다. 최옹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도 최옹의 행동들이 비현실적이고 낯설어 보였나 보다. 최옹에 대해 말을 할 땐, 옛날 일 이야기 하듯 했을 정도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최옹은 매일 매일 자신의 선(善)을 행함으로써 아주 흔하고, 대단스럽지 않는 일로 여기게 만든다. ‘선(善)’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기이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말이다. 어리석은 자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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