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니체] 청년과 에로스 - 2)

근영(남산강학원)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은 자신이 살아가는 그 시대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흔히 하나의 사회를 규정하는 데 쓰기 마련인 정치제도나 경제 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분석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청년 니체가 아직은 미숙한, 젊은 철학도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분석이 없다는 점이야말로 《반시대적 고찰》과 니체의 독특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니체의 관심은 제도라기보다는 삶, 사회의 거시적 구조 아래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일상적 삶이다. 해서 니체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로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살핀다. 거기에 약자의 삶이 있는지, 아니면 강자의 삶이 있는지를. 제도 또한 삶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사회적 장치들이 약자의 길을 작동시키는지, 아니면 강자의 길을 작동시키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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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관심은 제도라기보다는 삶, 사회의 거시적 구조 아래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일상적 삶이다.

니체는 이런 시선으로 도래하는 시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심에서 약자의 가치를 발견한다. 근대, 그것은 약자의 삶을 생산하는 시대였다.

약자가 되기를 권하는 사회 - 두려워하라, 게을러라, 그리고 비겁하라.

강자와 약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강자만큼의 약자가, 약자만큼의 강자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 우리가 주로 선택하게 되는 길이 약자의 삶일 뿐.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게으름, 그리고 비겁함으로 일단 자기 대면은 피하고 보자는 마음. 지금 당장의 그 편안함이 우리를 약자의 길로 이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해로운 길을 가장 좋은 길이라 오해하며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강자의 길을 따라 흘러왔다. 자기 존재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인류의 근본적 욕망이 스스로에게 약자로 사는 삶을 허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의 약자적 마음을 다스려왔고, 다스리고자 했다. 혹여 약자의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자신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예방책을 마련했고, 마련하려 했다.

이를테면 종교는 불안이나 원한 감정 같은 약자적 고통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을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지혜들을 탐구해왔다. 바로 그 결과물이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이다. 역사는 이런 노력들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지만 니체의 눈에 들어온 근대라는 시대는 이와는 전혀 달랐다. 모든 것을 거꾸로 돌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다스려야 할 것은 이제 강자적 마음이 되었으며, 약자의 삶은 병이 깊어지도록 방치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상대를 끌어내리는 약자의 술책들이 탁월함의 지혜를 대신하면서, 삶은 약자적 가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근대는 강자의 가치를 약자의 가치로 바꿔치기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요컨대 가치의 전도, 그것이 근대가 기획한 새로움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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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근대는 약자를 우대하고, 약자가 되기를 권하는 시대였다. 물론 대놓고 약자의 가치를 설파하진 않았다. 그건 약자의 방식이 아니다. 약자라면 모름지기 정면승부 정도는 피할 줄 안다.(^^) 대신 근대는 그럴싸한 이름들로 그 가치들을 포장한다. 민족, 국가, 대중, 평등, 혹은 민주주의, 공리주의, 노동가치설, 진화론의 생존투쟁 등등. 이름들은 다양했지만 그것들이 내리는 명령은 일관된다. 두려워져라, 게을러져라, 그리고 비겁해져라. 그러니까……약한 놈이 되라!

근대의 그런 명분들은 우리가 삶을 더더욱 오해하도록 부추기는 장치였다. 약자로 사는 것이 잘 나게 되는 길인 양, 자기 소외가 자기 창조인 양 그렇게 믿고 살도록. 우리는 그 믿음에 붙들려 참으로 열심히 산다. 기꺼이 우리 스스로를 약자의 길에 바친다. 그렇게 우리는 약한 놈들의 전성시대로 들어선다. 두려운 놈, 게으른 놈, 비겁한 놈들의 시대로.

니체는 근대의 그 악의어린 오해를 ‘위조 화폐’라 불렀다. 죽도록 고생하며 힘들게 모았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위조 화폐. 거기에 남는 것은 피폐해진 삶과 허망함, 그리고 억울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제 알겠다. 왜 약한 놈들의 전성시대는 을들의 사회일 수밖에 없는지를. 우리 모두가 위조 화폐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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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으로 이 위조 화폐들을 찬찬히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둘러볼 곳이 있다. 위조 화폐를 찍어내는 공장,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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