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1월은 연구실 방학 기간이다. 덕분에 연구실도 한산하고, 나도 한가하다. 그래서 여유를 만끽 해볼라 치면 이상하게도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다 가 있다. 더 이상한 건, 한가한 날일수록 일찍 자는 게 그렇게 안 된다는 점이다. 내일 당장 일정이 없다는 생각에 밍기적 밍기적 폰을 잡고 있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이러다보니, 1월은 일주일도 안 남았지, 낮에는 피곤하지, 이젠 늦게 자는 건 습관이 되어 일찍 누워도 잠이 안 오지, 이런 나를 보며 자책하기 바쁘고 찝찝함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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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만 여러 번하고 있을 때, 밤에 자려고 애를 쓰는 연암이 보였다. 연암은 열여섯, 열일곱 즈음, 답답함을 못 이겨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잘 못 자는 병을 앓고 있었다. 어쩜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의 몸은 이리도 반양생적인지! 연암은 그 당시 오락거리인 노래, 서화, 옛 칼, 거문고, 골동품, 여러 잡물에 취미도 붙여보고 여러 손님들을 불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답답함을 풀어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병증만 더 깊어지고 있을 때, 연암에게 백발노인 민옹이 나타난다.

옹은 매우 작은 키에 하얀 눈썹이 눈을 내리덮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유신이며 나이는 73세라고 소개하고는 이내 나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병인가? 머리가 아픈가?”

“아닙니다.”

“배가 아픈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병이 든 게 아니구먼.”

그리고는 드디어 문을 열고 들창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마음속이 차츰차츰 후련해지면서 예전과 아주 달랐다.

( 박지원, 『연암집』(하), 「민옹전」, 돌베개, 167쪽)

민옹의 처방은 단순, 간결하다. 병의 기준은 두 가지, 머리 아픈 것과 배 아픈 것. 덕분에 연암이 그토록 끙끙거렸던 게 무색해진다. 순식간에 병이 든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뿐만이랴, 민옹의 간결한 처방은 연암의 병도 축복받을 일로 만든다. 가난한데 적게 먹으니 재산이 남아돌고, 잠을 안 자서 두 배로 사니 장수를 하게 되니 부와 수를 이미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단순한 논리지만, 이상하게 민옹의 단순한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연암의 마음은 후련해진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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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민옹을 만나기 전에, 병을 치료하려 할 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자신’만 발견할 뿐이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속만 울렁거리는 자신, 잠을 자야 하는데 더 말똥말똥해지는 자신, 풍악을 보며 즐거워야 하는데 더 답답해지기만 하는 자신 등등. 연암은 마음처럼 잘 안 되는 자신을 보며 더욱더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민옹을 만나고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민옹은 연주자가 피리를 부느라 기를 쓰는 걸 성을 내고 있다고 뺨을 때리며 연암을 깜짝 놀라게 하고, 밥을 못 먹어서 뒤적거리는 연암더러 손님을 두고 혼자 밥을 먹으려 든다고 화를 내서 연암을 두 번 놀라게 한다. 민옹의 반응에 매번 깜짝 놀라며 연암은 풍악도 당장 거두고, 민옹에게 밥을 권하느라 자기를 치료해야한다는 생각도 깜빡 잊어버린다. 그 대신 풍악을 벌릴 때 연주와 관객들, 하인들의 얼굴이 보이고, 민옹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이 보인다. 단순하다는 것은 이렇게 굳어진 습관과 생각을 무장해제시켜, 눈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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