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물리적으로는 제법 무난한 하루를 보냈다 하더라도, (좀더 보태서) 전쟁 같은 날이 있다. ‘다르다, 너무 다르다!’ 싶은 타자와 대면했을 때다. 싸우게 되든, 나 혼자 지켜보든,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다름! 왜 저렇게 느껴야 하나, 왜 저렇게 생각해야 하나, 왜 저렇게 말해야 하나? 물론 어쩔 때는 그 ‘다름’이 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감사함을 잊을 때면 일상은 전쟁터가 된다. 연암도 퍽 다혈질이었지만 그가 다름을 받아들이는 기예는 참 수준급(?)이다. 범 우주적이라고나 할까!

연암이 ‘아무개’에게 답한 편지를 읽어보자. 연암이 먼저 편지에서 자신이 산속에서 한적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며 고라니에 비유했나 보다. 그러자 답장에 아무개는 자신을 고라니보다 작은, ‘기마 꼬리에 붙은 파리’에 비유했다. 명마 꼬리에 붙어서 천 리를 가는 파리처럼 자기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연암 앞에서 한껏 겸손하려고 한 모양이다.

그러자 연암은 갸우뚱하며, 이왕 작을 거면 (겸손할 거면) 더 작은 개미에 비유하지 그랬냐고 답장을 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암의 ‘고라니와 파리와 개미와 코끼리’ 이야기! 언젠가 자기가 높은 산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다 개미처럼 보이고 자기는 무척 크고 높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반대로 그 사람들이 자기를 봤다면 이가 머리털을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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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의 말에 따르면 고라니는 파리보다 크다. 하지만 연암은 고라니는 코끼리보다는 작다고 말한다. 또 파리는 고라니보다 작지만 개미보다는 크다. 결국 고라니는 크고, 파리는 작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떤 것과 비교하면서 겸손해질 것도 오만해질 것도 없다. 크고 작고를 비교하는 것은 어쩌면 끝도 없고, “망령된” 일인 것이다.

우리가 타자와 대면하면서 힘들어지는 건 내가 상대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를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작아지면서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 혹은 옳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존재에 결부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비교하려면 끝도 없고, 관점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다르긴’ 다르지 않나? 그냥 다르면 다른 대로 살면 되는 걸까?

아직 연암의 ‘고라니와 파리와 개미와 코끼리’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개미가 그 속(코끼리 발가락 사이에 있는 진흙 속)에 있으면서 비가 오는지 살펴보고 나서 싸우려고 나오는데, 이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코끼리를 못 보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 보이는 바가 너무 멀기 때문이지요. 또 코끼리가 한 눈을 찡긋하고 보아도 개미를 보지 못하니, 이는 다름 아니라 보이는 바가 너무 가까운 탓이지요. 만약 안목이 좀 큰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백 리의 밖 멀리에서 바라보게 한다면, 어둑어둑 가물가물 아무 것도 보이는 바가 없을 것이니, 어찌 고라니와 파리, 개미와 코끼리를 구별할 수 있겠소?

(박지원, 『연암집』(중), 「아무개에게 답함」, 돌베개, p411)

어느 날 개미가 집채만 한 코끼리 발가락 사이의 진흙 봉분에 떨어졌다. 개미가 비가 오는지 보려고 진흙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데, 아무리 두 눈을 부릅떠도 코끼리를 보지는 못한다. 반대로 코끼리가 개미를 보려고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쳐다보지만 또한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든 개미든 서로를 잘 볼 수 없고, 서로를 잘 알 수 없는 건 똑같다. 아예 거리를 멀리 해서, ‘고라니와 파리와 개미와 코끼리’를 보자. 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구별할 수도 없다!

다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한 눈을 찡긋하’면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조정하면서 우리와 다른 그 무엇을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뻔한 결론이지만 그렇다!) 그렇게 해서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곧 나와 다르지 않은 무엇이 된다.

연암은 이런 시선을 늘 몸에 지니고 있었다. 친구에게 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에게도,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지렁이와 매미에게도, 살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온돌과 벽돌에게도. 범우주적인 눈 부릅뜨기! 타자와의 전쟁터에서 우리가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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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통
Guest
생각통

범우주적인 눈 부릅뜨기~ 시선을 확 끈다.
느슨한 관계맺기에 대해 일침을! 글을 보면 윤하가 가진 갑목의 강렬함이 막 보임. (좋다는 거임 ^^)
잘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