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본말이 전도되면 일은 망하고 만다. 예를 들어 공부하려고 쓰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게 되면 망한다(=글이 안 써진다). 이 작은 일도 그러한데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오죽할까. 연암의 「옥새론」은 도道가 아니라 보물로 나라를 전하는 태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나라의 무관 주발은 여태후가 죽고 옥새를 얻자 여씨들을 제거한 뒤 왕을 마음대로 바꾸었다. 이어서 대장군 곽광이 옥새를 손에 넣어 왕을 두 차례 폐위하고 옹립하기를 반복했다. 이후로 옥새는 모두가 노리는 보물이 되었다.

진시황은 제후에게서 옥새를 빼앗았고, 아들인 호해는 또 그 옥새를 훔쳤다. 그것을 보고 곳곳에서 진승, 오광, 항우 무리가 옥새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보물이 있는 곳엔 도적이 꼬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아내가 남편에게서, 종이 주인에게서 옥새를 훔치며 화가 극에 달했다.

전한 말의 효원황후는 조카 왕망에게 대사마(재상) 자리를 주면서 나라를 쥐락펴락하게 두었다. 그렇지만 옥새는 끝까지 주지 않으려고 했다. 천하를 주었는데 옥새를 주고 말고가 무슨 소용인가. 그럼에도 왕망은 옥새를 얻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다가 억지로 옥새를 받아냈다.

서진이 망한 뒤 동진을 세울 때 옥새를 잃어버려 동진의 왕들은 한동안 옥새가 없었다. 북위 사람들이 이들을 백판(도장을 안 찍은 흰 판)천자天子라고 놀렸고, 동진의 왕은 이에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황제라는 자리는 천하가 드높이는 자리인데, 이를 옥새로 임명할 수 있다는 듯이 여긴다면 그것은 황제의 자리를 비천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뒷날 천하를 전하는 사람은 응당 그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부숴버려서 도적의 마음을 막아 버리고,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절하면서 공경스레 소리 높여 말하기를 정밀하고 전일하게 살펴서 그 중을 잡으라하고, 여러 제후와 벼슬아치들은 모두 관 쓰고 제자리에서 두 손 모아 머리 숙이면서 천명은 일정함이 없어 덕 있는 자를 돌아보나니 유념하소서, 임금님이시여!”하여야 한다고 본다.

(박지원, 『연암집』(상), 「옥새론」, 돌베개, p138)

glass-1818065_1920

연암은 결국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그 ‘옥새’가 보물이 아니라 부숴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필요한 것은 옥새가 아니라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옥새(와 그에 딸린 권력)는 자꾸 끼어들어 사람들이 욕심을 내게 만든다. 천자의 자리가 나라를 다스리는(도를 따르는) 자리가 아니라 옥새를 가진 자리가 되고 만다.

우리에게 ‘옥새’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권력이 될 수 있고, 돈이 될 수 있고, 남들의 인정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것들로 우리는 우리 행위의 본말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행위의 목적이 될 때 생기는 비참함이 있다. 이런 것들을 ‘가져야’하고, 이런 것들로 증명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옥새를 갖기 위한 피 튀기는(?) 파이 싸움은 덤이다.

가져야 할수록, 얻어야 할수록 행위와 목표 사이에서 간극이 생긴다. 연암은 우리가 우리의 옥새를 부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우리가 고민하고 힘써야 하는 영역은 ‘그것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혹은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인 것이다.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