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영대정 잉묵』 映帶亭 賸墨. “영대정에서 엮은 하잘 것 없는 편지글(박희병 지음, 『연암을 읽는다』, 돌베개, 424쪽)”이라는 뜻이다. 이 문집은 연암이 스스로 이름 붙인 단 두 개의 문집 중 하나다.

이 문집의 자서自序에서 연암은 ‘우근진’右謹陳과 같은 상투어를 강하게 비판한다. 『영대정잉묵』이란 제목에는 상투어가 가득한 격식 있는 글(書)이 아닌 단도직입적으로 글(尺牘)을 쓰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편지글이지만,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한 번 보겠느냐고 왠지 도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엮어낸 문집의 첫 번째 글이 바로, 「경지에게 답함1」이다. 경지京之라는 친구와의 이별을 그린 편지글. 시작부터 본격적이다. 이별을 말하는데, 그 이별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한 가닥 희미한 아쉬움이 하늘하늘 마음에 얽혀 있었다고 한다. 연암은 눈앞에 어른어른한 ‘희미한 아쉬움’을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예전에 백화암白華菴에 앉았노라니, 암주庵主인 처화處華 스님이 먼 마을에서 바람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는, 그의 비구比丘인 영탁靈托에게 게偈를 전하기를,

“‘탁탁치는 소리와 땅땅울리는 소리 중에 어느 것이 먼저 허공에서 들렸겠느냐?”

하니, 영탁이 손을 맞잡고 공손히 대답하기를,

먼저도 아니고 나중도 아닌, 바로 그 사이에 들었습니다.”

하였습니다.

(박지원 지음, 「경지에게 답함1」,『연암집(중)』, 돌베개, 363~364쪽)

연암이 느낀 ‘희미한 아쉬움’은 연암만의 심상心想일까? 오롯이 생기는 혼자만의 감정은 없다. 경지와의 만남 혹은 이별로 생겨나거나, 사물과의 접촉으로 생긴다. 이 만남과 접촉에 선후란 없다. 다듬이 방망이로 ‘탁탁’ 치는 소리와 방망이를 맞아서 ‘땅땅’ 울리는 소리는 동시적이다. 동시에! 둘이 눈이 맞아야 되는 것이다. 소리는 그 사이에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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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일이다. 방망이와 돌이 아니고서는 ‘그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연암과 경지가 아니면 ‘그 희미한 아쉬움’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다듬이 방망이나 다듬이돌 중 하나만 없어도 ‘소리’ 자체가 생성되지 않는다. 연암과 경지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그 사이에서 ‘희미한 아쉬움’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만남이 아니면 이 ‘소리’도, 이러한 ‘아쉬움’도 없다. 하여 모든 만남과 접촉은 참으로 필연적이다! 이것과 저것을 통해서만이 바로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와 친구, 나와 물物이 만나게 되는 이 인연이 정말 소중하고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필연적인 만남, ‘소리(희미한 아쉬움)’는 실체가 있는 것일까? 소리를, 아쉬움을 실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심상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서로 느끼고 있고, 우리 모두가 이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말이다. 말장난 같지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필연적이지만, 그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이 만남이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매순간 우리가 보고, 느끼고, 충돌하고, 접촉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눈과 코, 귀와 입, 피부의 모든 감각들이 세상을 그려낸다. 매순간 무너지고, 또 새로 만들어지는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 사실 이 과정이 끝날 때 우리는 진정한 죽음을 만나게 된다.

이 ‘세계’는 이미 보았듯이 ‘나’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세상과의 만남과 접촉이 세계를 만들어낸다. ‘탁탁’ 치는 소리와 ‘땅땅’ 울리는 소리 사이에서. 그 찰나의 순간, 우리의 세계가 생성된다.

불교는 허무주의와는 다르다는 말에 조금의 의심이 남아있었다. 왠지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가짜인데…. 뭐더러 열심히 혹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거지’ 싶기도 했다. ‘그냥 막 살래’라는 마음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감각하는 이 세계가 매순간 무너지고, 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한 순간도 허투루 살 수가 없다. 순간의 만남들이 매번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생각하니 새삼 그 순간들이 소중해진다.

매순간 세상과의 접촉으로 만들어내는 세계. 이 세상을 만드는 일에 허무하다는 생각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매번 다른 만남이 있는데, 지루해질 틈도 없다. 내가 보고 느끼는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지금 이 순간이 허무해질 수 있겠는가. 우리의 세상은 그 찰나, 그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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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경지의 이별은 허무함과는 거리가 멀다. 둘이 서로 아쉬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다 떠나가는 이별의 순간. 그 사이에는 그들이 만들어낸 아쉬움 가득한 세상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 사이가 이들에게는 세상 전부인 것이다. ‘지극한 정’을 갖는 것과 연암의 ‘사이’철학은 이렇게 연결성을 가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이’는 지극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온 세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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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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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Guest
이달팽

다듬이질 소리에서 지극한 정까지 오다니, 대단합니다…ㅎㅎ
앞으로도 연암이 말하는 ‘사이’, 함께 사유해나가봅시다 !탁탁!